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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4-02)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호하는 바울

사도행전 24장 10-23절


 

복음을 전하는 길은 꽃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유대인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모함하고 무고했습니다. 없는 사실을 만들고 증거를 왜곡하고 조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박해는 교묘하고 악랄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한 죄로 고소당했습니다.

 

  • 거짓 변호사 더둘로는 사도 바울을 벨릭스 총독 앞에서 짜맞추기식 고소의 모든 내용이 끝났습니다. 바울은 더둘로의 발언 구조를 따라 차분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사실이 아님을 변론합니다. 고소 내용에 대한 증거나 증인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변증합니다. 벨릭스는 천부장이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합니다.

 

세 가지 고소에 대한 반박(10-20)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란 책에 보면, ‘정직하면 항상 손해 본다. 그러나 결국 정직 때문에 흥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정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복음 증거자들은 억울한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왜곡된 사실로 모함을 당할 때, 간사한 불의 앞에 좌절하지 말고 바울처럼 당당한 태도로 변호하시길 바랍니다.

 

10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10-20)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재판에서 유대인들의 고발에 적극적으로 대처합니다. 그의 증언에는 변호사 더둘로와 반대로 일체의 아첨이나 간사함이 없습니다. 사실을 논리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1) 소요와 선동에 무고함을 변증함(10-13)

 

예루살렘에 가이샤라로 후송해 온 후, 예루살렘에서 고소했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정식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들은 유대인 측 변호사 더둘로로부터 바울에 대한 고발 내용을 모두 들었습니다. 고소 내용을 모두 듣고 난 후에, 이제 바울에게 신호하여 변론을 듣기 원합니다.

바울은 총독 벨릭스의 허락을 받아 변론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변론하는 모습은 변호사 더둘로와 같이 아첨이나 장황한 거짓말로 총독의 환심을 사려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짧지만 예의를 갖춰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라고 인사합니다(10). 실제로 벨릭스는 약 서기 52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 총독으로 파견되어 유대-시리아 전체 주 총독으로 5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총 8-9년 동안 유대 민족의 사안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 동안 유대를 통치하면서 유대에서 일어난 일들은 많이 재판했기 때문에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란 정도 인사를 전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에 대해 흥분하지 않고 매우 절제된 언어로 진실에 입각하여 변론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벨릭스 통독과 무리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합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고소가 사실이 아닌 증거들은 담대하게 피력합니다.

 

첫째 증거는,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11)라며,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12일이란 기간 동안 소요를 조직하기에 부족한 시간입니다. 7일 동안 나실인의 결례를 행하고 있었고, 나머지 5일은 로마군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더 나가서 자신을 고발한 유대인들 중에 자신이 누군가와 변론하거나 회당 또는 성내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없다고 합니다(12). 그들이 고발한 대로 불법을 행하거나 공중을 선동하지 않았으니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이 고소 사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13). 여기까지 더둘로의 고소 항목 중 소요 선동죄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이것은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편지에 써 보낸 내용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고소가 거짓됨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거짓 증언에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대처했습니다.

 

(2) 바른 신앙을 소유함(14-16)

 

다음으로 바울은 신앙적인 부분으로 이어갑니다. 이 말 중 ‘이단’이란 말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매우 긍정적으로 확장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라고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믿고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은 유대인들과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성경, 같은 신앙이라고 강조합니다(14). 만일 한 하나님과 한 성경을 믿는다면, 한 신앙의 내용을 가질 것입니다. 그 조상이 믿었던 메시아,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가리키는 그림자였던 구약과 율법 그리고 선지자들이 전한 말을 다 믿고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15)라고 구약에서도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이제 예수님을 통해 의인과 악인의 부활, 그리고 그 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자신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열두 사도들과 바울의 일관된 주장입니다(17:18; 눅 24:26-27, 44).

바울은 이것을 ‘그들이 이단이라 부르는 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며 복음이 새로운 ‘길’에 대한 계시인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원리, 즉 잃어버렸던 길이요, 율법과 죄로 덮인 정통 신의 회복이라는 주장입니다.

 

그의 결론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라는 것입니다(16). 나아가 그는 자신에게 주신 계시,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길,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항상 다치지 않는 양심으로 노력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력한다’(ασκέω)라는 말은 ‘수고하고 분투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이 온전한 양심의 분투 중 가장 최근 일을 소개합니다.

 

(3) 성전 모독죄에 대한 반박과 역고소(17-20)

 

바울은 자기 민족 유대인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아니라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증거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방문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17b-18).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은 전체 이방인 교회에서 모금한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20:1-4; 고전 16:1-4). 그는 이방인 교회들에게 오해를 받으면서라도 구제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려고 왔습니다. 바울 서신들을 보면, 헌금하는데 잡음이 안 날 수 없습니다. 자기 쓰려고 헌금을 모은다고 하는 비난을 들으면서 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비를 모금해서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했던 일은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결례를 행한 것뿐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아무런 소동 없이 결례만 행한 것을 그들도 보았습니다.

물론 바울이 방문한 목적인 내적으로는 이방인과 유대인 교회가 ‘하나 됨’이라는 신학적 목표가 있었지만, 기근에 처한 유대 교회를 구제하는 일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객관적인 사실에 담았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한 벌 더 나가서 사건의 발단은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18b-20)라고 말합니다. 진짜로 고소 내용을 들어야할 사람들은 고발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소동케 하려고 했던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직접 이곳에서 와서 증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없고,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이 증거나 증인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발한 사람들이 고소해 놓고 재판에 출두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항의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 폭행을 하고 구금을 하고 협박할 수 있지만, 이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힘을 사용해서 겁박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고소를 포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으로 ‘데스티소치오’라고 불렀습니다. 로마법은 고소를 포기하는 원고에게 엄격했습니다. 아시아계 유대인 고소자들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는 것은 고소 철회를 뜻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소요죄와 성전 모독죄로 고소당했는데, 고소인은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계 유대인들이 소송을 철회했을 때, 바울은 확실히 제시할 수 있는, 법률상 성립하는 반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역고소입니다.

 

소송 처리를 연기함(21-23)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죽음 후에는 영생 혹은 영벌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에 근거해 이 땅에서의 삶을 신중히,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적 가치관과 다른 것을 맹렬히 비난하고 파괴하는 기독교 근본주의는 우리가 지양해야 할 태도입니다.

 

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21-23)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에게서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성전에서 소요를 일으킬 어떤 동기도 없습니다. 소동은 흥분한 율법주의자들과 유대주의자들이 일으킨 것입니다.

 

(1) 바울이 심문을 받는 이유(21)

 

바울은 결론적으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라고 말합니다(21). 총독 벨릭스는 바울이 무슨 내용인 부활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총독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화제가 되는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다니면서 전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보고 받아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나는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오늘 너희 앞에서 심문받는다!’라고 외친 것을 원고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몇몇 장로들도 이미 들었습니다. 이것은 1-2차 변증의 요약이요. 바울 변증의 뼈대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들의 부활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변증은 부활에 대한 증거입니다.

 

(2) 재판을 연기하는 총독 벨릭스(22-23)

 

총독 벨릭스는 여기까지 듣다가 심문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연기’합니다(22). 이 ‘연기’는 법적 결정을 연기하는 일을 뜻하는 전문용어입니다. 그러면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너희에 관한 일을 처결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통해 루시아의 증언이 필요한 것 외에는 바울의 혐의가 무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풀어주어야 마당한데도 대수의 유대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독 벨릭스는 바울이 소요를 선동했는지 여부를 루시아가 증언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벨릭스 치하에서 후속 재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바울을 예우했고, 친구들이 바울의 편의를 돌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형이 확정되지 않는 로마 시민의 합당한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을 하나님께서 바울을 계속적으로 도와주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수이지만 죄수가 아닙니다. 그는 로마까지 미결수 신분으로 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복음 앞에서 당당한 사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을 깨끗하게 지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지키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명자의 삶에도 무수한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함께 하는 동료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결단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침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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