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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4-01)

 


총독 벨릭스 앞에 선 바울

사도행전 23장 31절-24장 9절


 

어둔 세상은 진리의 빛을 미워합니다. 어둠은 어둠의 방법과 과정으로 또 하나의 어둠을 만들어 냅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자들도 증거와 증인들 대신에 거짓과 선동에 능한 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 로마 경비대의 경호를 받은 바울은 무사히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천부장의 편지를 받은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 출신지를 묻고 분봉왕국 출신이 아님을 확인 후 바울의 기소 사건을 맡기로 결정하고 바울을 헤롯 궁에 구금할 것을 명령합니다. 닷새 후 재판이 시작되고 대제사장 측 변호사 더둘로는 총독 앞에서 바울을 기소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소는 지나치게 아부적인 발언만 넘쳐날 뿐 바울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31-35)

때로는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의 마지막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장에는 재앙이나 시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돌아가며 막히는 듯 보이는 길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께서 원하시는 길에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항상 주님만을 의지하여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31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31-35)

 

천부장의 지시로 시작된 로마 군대의 바울 호송작전을 준비했습니다(23). 준비된 작전이 이제 31절에서 다시 재개됩니다. 누가는 백부장 두 명에게 야밤에 출발할 경비대를 준비하라는 천부장의 지시를 언급한 후 여섯 절을 할애해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기록합니다(25-30).

 

(1) 안디바드리에 도착함(31-32)

 

해가 저물고 밤 9시경(밤 제 삼 시) 예루살렘을 출발한 경비대는 다음 날 아침 안디바드리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입니다. 목적지까지는 절반을 넘게 갔습니다. 밤에 신속하게 행진을 강행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는 거리입니다. 보병들이 예루살렘의 위험한 지역을 벗어난 후에 영내로 되돌아왔을 것이라 추정한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안디바드리는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적지까지 절반 넘게 간 것입니다. 안디바드리에서 보병은 다시 예루살렘 영내로 되돌아오고 가아사랴까지 나머지 40킬로미터 정도는 기병이 바울을 호송하기로 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음모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1:8-17에 의하면 약 2주 전 바울과 그 일행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누가도 이 여행의 동행자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 여정에서 지금과 동일한 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온 바울 일행이 이제는 밤에 그 길을 다시 가이샤라까지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단지 피신하여 간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로마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 길이 로마행이 될 것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2) 가이사랴에서 바울이 총독을 대면함(33)

 

가이사랴에 도착한 기병은 바울을 안전하게 총독 벨릭스에게 넘겨주었고 천부장의 서신도 함께 전달해 주었습니다. 천부장의 편지를 읽은 벨릭스는 바울에게 로마 제국의 어느 속주(개역개정은 ‘영지’) 출신인지를 묻습니다.

만약 바울이 시리아 혹은 아나톨리아 지방의 분봉왕국 출신이었다면 벨릭스 총독은 그 지방의 분봉왕에게 먼저 자문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외교적으로 올바른 절차였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 지방의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 역시 나사렛 예수가 갈릴리 출신인 것을 알고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에게 그를 보낸 바 있습니다(눅 23:6-12).

 

그러나 바울은 로마 제국의 속주인 길리기아 출신으로 로마 제국의 총독인 벨리스가 이 사건을 외부 자문 없이 직접 다룰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벨릭스는 바울을 기소하는 고소인들이 도착하면 고소 사건을 공식적으로 다루겠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은 바울을 헤롯 궁에 구금할 것을 명령합니다.

 

(3) 바울이 헤롯 궁에 갇힘(34-35)

 

‘헤롯 궁’은 헤롯 대왕이 본래 자기 자신을 위해 가이사랴에 지은 왕궁이었지만, 지금은 로마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유대인의 손에서 벗어나 로마 총독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성난 유대교 열성분자들과 자기들의 책임을 면하려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바울이 이토록 차분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사도행전 23:11에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사도 바울처럼 상황은 비록 어려울지라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과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에게 기소(1-9)

하나님의 뜻을 알면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을 해석하는 안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을 판단하는 기준도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입니다.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삶의 의미입니다. 그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아마 우리는 것을 위해 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죽음을 나누어 놓을 것입니다.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6하반-8상반 없음) 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1-9)

 

세상은 우리보다 항상 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을 수도 있고,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상상 외로 빈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면 힘 있는 자들에게 아부할 수 있습니다. 더둘로는 총독에게 잘 보이려고 상투적인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1) 더둘로가 바울을 기소함(1-2)

 

이제 바울이 구금된 지 닷새 만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일부 산헤드린 공회원과 더둘로라 하는 변호사 한 명을 대동하고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1). 오늘날 법정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대변해 변호사 더둘로가 발언을 시작합니다.

누가는 더둘로의 기소 내용을 매우 간략하게 기술합니다. 그러나 더둘로는 당시의 관례를 따라 아부성이 다분한 발언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총독에게 좋은 인상을 얻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평화를 누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둘로의 아부적 발언과는 정반대로 벨릭스 총독은 유대 사회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했습니다. 권력자들만 누리고 있는 나라인데, 총독이 잘해 주었다고 마음에도 없는 치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독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유대는 불안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한결같이 벨릭스 총독의 무능한 통치에 대해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둘로는 로마가 베푸는 평화를 바울이라는 작자가 해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소 내용을 간략하게 하겠다는 표현을 비롯해 재판관의 관용을 구한다는 발언 역시 당대 법정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2) 더둘로의 기소 내용(3-9)

 

3-4절에서 지나치게 긴 아부적 발언을 한 변호사 더둘로는 5절에서 바울에 대한 기소 내용을 간략하게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바울은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을 상습적으로 법을 어기며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할 때 받은 고소 내용과 흡사합니다(행 17:6-7).

당시에는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면, 이번에는 암시적으로 나타납니다. 누가가 이 사실을 두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바울뿐만 아니라 당시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된 반역죄 혐의가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로마 제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선동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소보다 내용이 더 구체적이긴 하지만, 그 근거는 역시나 매우 빈약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민란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 그 민란을 주도했다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합니다. 물론 때로는 바울이 방문한 도시의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소동이 벌어지곤 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남부 갈라디아와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에서 이러한 소동이 벌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셋째, 바울이 나사렛파 우두머리라는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이 더둘로의 이 표현을 얼마나 잘 이해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앞의 두 기소 내용과 함께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조직의 우두머리 정도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개역개정이 ‘나사렛 이단’으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 ‘나자라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예수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유일하게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더둘로의 기소 내용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며 중요한 내용은 6절에 나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소도 단지 소문에 의한 것이지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서방 사본에는 6b절과 8a절 사이에 천부장 루시아를 향해 불만을 표출하는 내용이 추가로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율법대로 재판하려고 했으나 천부장 루시아가 와서 그를 우리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갔나이다. 그러고는 그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각하께 가라고 명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비록 역사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지만, 사본학적 근거는 매우 빈약합니다. 후대 필사자가 본문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고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이 추가 내용이 원문에 속했다면 8절의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은 ‘루시아를 심문하시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총독이 더둘로의 발언 이후에 바울의 발언을 들으려 한 것으로 보아 ‘바울을 심문하시면’의 뜻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둘로의 말에 유대인들은 확실히 제시할 만한 증거도 없으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밀어붙이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독자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칠 것입니다.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을 사용한다면 과연 그 의도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어둠의 세상은 진리를 거짓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쓰고 있습니다. 진리가 살게 한다고 믿기보다는 진리에 의해 자신의 거짓이 폭로되지 않아야 산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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