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도행전(25-02)

 


거듭된 바울의 재판에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25장 13-27절


 

눈에 보이는 법만 지키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법을 지키는 자들의 삶은 존경받을 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바른 사람을 살아갑니다.

 

  • 바울은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을 받으면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항소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베스도가 이를 수용했지만, 당장 로마로 보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자신을 예의 차원에 방문했을 때, 바울에 관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기회로 아그립바 왕 앞에 서게 되고,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를 때 하셨던 말씀처럼 세상 임금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의 무죄를 인정한 베스도(13-22)

 

하나님의 복음에 강렬한 체험을 한 사람, 말씀의 깊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3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13-22)

 

본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당해서 가이사랴에서 2년 이상이나 미결수 상태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의 만남을 통해 바울이 다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1) 총독 베스도를 축하하려온 아그립바(13-15)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왕은 총독 베스도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가이사랴를 방문합니다. 이때 베스도는 바울 사건을 아그립바 왕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상과 다르게 자세합니다. 그래서 마치 예루살렘 방문, 가이사랴 재판이 본 이야기의 서막처럼 보입니다.

이곳에 등장한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주후 50-93년)로, 헤롯 아그립바 1세(주후 41-44년)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내 ‘버니게’는 아그립바의 여동생인(13), 철저하게 친로마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때 베스도는 바울의 소송 문제로 고만하고 있었습니다(14). 바울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황제에게 보낼 고소장에 죄목을 적어야 하는데,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바울에 대한 소송은 로마의 실정법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유대인의 종교를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왕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수의 힘으로 총독 베스도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소당할 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배신자 바울을 정죄하고 고소했습니다(15). 베스도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법과 양심이 아닌 힘의 논리에 재판이 좌우되고 있습니다.

 

(2) 예수님 때문에 고소당한 바울(16-19)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바울의 제거를 요구했습니다(16).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법에 의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바울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바울을 심문한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 실정법을 위반한 일이 없음을 알았습니다(18).

유대인의 고발이 결국 유대교 문제에 관한 다툼임을 파악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께서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시며 부활하시고 살아 계심을 전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러한 바울의 주장에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고소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소당한 것입니다.

 

(3)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뜻(20-22)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부르실 때부터 예수님께서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고 소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을 특별히 택하셔서 이방인들과 여러 왕들과 유대인들에게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 택한 그릇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총독과 왕들 앞에서 복음을 변호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변호해야할 자리에서 자신보다 복음을 위해 변호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바울 사도의 모습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의 대화를 통해 바울과 복음에 대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벨릭스를 대신해서 베스도가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당시 유대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그립바 왕이 새로운 총독에서 인사하려 가이사랴로 찾아왔습니다. 수일동안 인사와 교제를 하고 있을 때,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바울의 소송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총독 베스도는 아마도 바울을 유대인에게 넘겼을 것입니다(21). 빌라도처럼 다수의 요구에 따라 바울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적당하게 타협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 섬(23-27)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에 흠 잡힐 만한 일들이 없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종종 전도의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일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삶 가운데 간직되어 있다가 우리의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삶 가운데 간직되어 우리의 거룩한 인격의 통로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23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23-27)

 

베스도는 진리나 인권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의 사형을 요구했습니다(24).이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깊은 어둠에 빠진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운데서 다시 부활했다는 바울의 주장이었다.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혐의는 문제의 핵심에서 사라지고 부활이라는 주제가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되었다. 베스도는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는 바가 없었고 어떻게 부활이라는 주제가 고발의 대상이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표명한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근본적으로 부활을 부인하고 바리새인들은 모든 자들의 최종 부활을 받아들이지만 예수의 부활은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스도는 이 사건의 핵심이 유대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고, 구체적으로는 예수라는사람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바울의 주장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바울 건에 대한 재판을 열것을 제안한다. 사도행전 25:9에 나타난 그의 제안의표면상의 이유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였다.그러나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의 사적인 대화에서자신이 이 제안을 하게 된 동기는 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망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죄 판결을 내려 피의자를 석방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그가 망설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울은베스도 총독의 제안을 거부하고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기로 결정한다. 누가는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주기를 호소했다'고 기록한다. 바울은유대인들로부터 로마 정부가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원했으며, 로마의 최고 사법 기구가 자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할 수있도록 해주기를 원했다.

 

아그립바 왕은 자기도 바울의 진술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원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아그립바 왕의 관심은 아마도 지금까지 진행된 이야기를 베스도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생겼을 수도 있지만, 이미 소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수도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그립바 왕은 예수를 면담한 헤롯 안티파스처럼(눅 23:8) 이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튿날 바로 바울을 면담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자리에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뿐만 아니라 천부장들과 도시의 고위 인사들도 동석합니다.

 

곧이어 바울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비록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누가에게 그는 주인공과 같은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바울은 이 자리에서조차도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복음 21:12의 예언을 성취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12에서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라고 하신 말씀과 사도행전 9:15의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인물로 바울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총독 베스도는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는 자”로 바울을 소개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가 ‘유대의 모든 무리’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묘사합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를 제외하면 모두 유대인이 아닌 청중에게 베스도는 자신의 소견으로 바울은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였으므로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입니다.

베스도는 26절에서 바울을 아그립바 왕을 비롯해 여러 고위 인사 앞에 세운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는 이 심문을 통해 바울을 로마 황제에게 보낼 때 피고인에 대한 죄목을 좀 더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얻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죄수를 보내면서 혐의가 없다는 보고서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입니까? 그 역시 자신의안위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명자의 삶에도 무수한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함께 하는 동료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여 결단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침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