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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7-02)

 


미항에서 출발한 후 만난 유라글로

사도행전 27장 12-26절


 

세상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면 아무리 믿음이 강한 자라도 순간적으로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배가 미항에서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일어 위기에 처합니다. 선원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바울이 배는 파선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남(12-20)

 

세상에는 힘 있는 자들만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하나님 나라도 그렇다고 생각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도 힘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다 그렇게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자들만 자기 백성으로 삼아서 일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해가십니다.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12-20)

 

백부장과 모든 사람들은 항해가 위험하니 내년 봄까지 기다리자는 바울의 제안을 거부하고 전문가인 선주와 선장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바울의 제안은 바울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바울은 단지 죄인 중에 한 명에 불과 했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미항이라는 작은 항에 정착해 있습니다. 이곳은 겨울나기에 불편하며, 또한 겨울철이면 북동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12). 그래서 넓고 편리한 뵈닉스 항으로 가야 할 것인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선장과 선주를 비롯해 배에 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항해하기 좋지 않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풍이 불면 출발하자고 결론을 냅니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이 항해하기에 유리한 상황이 오면, 곧장 겨울을 보내기에 훨씬 더 좋은 뵈닉스로 출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뵈닉스는 미항에서 해안을 타고 약 80km 떨어진 곳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다수가 뵈닉스로 가는 것에 동의한 것입니다. 미항에서 뵈닉스까지는 잔잔한 남풍에 힘입어 해안을 타고 항해하면 하루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순한 남풍이 불자 곧 출항했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줄 알았습니다(13). 그런데 그들의 결정은 실수였습니다. 항해는 오래가지 못했고 목적지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항해 전문가라도 모든 날씨를 예측하고 주장할 순 없습니다. 그들은 섬에 있는 산으로부터 광풍이 강하게 불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들이 타고 가던 배는 광풍에 휩싸이게 됩니다. 고대에는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풍을 적절하게 다룰 만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배가 해안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부는 바람을 따라 배가 움직이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선장도 선원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직 바람이 인도할 뿐입니다. 바람을 따라 가다 보니 배는 그레데 섬에서 약 37km 거리에 있는 ‘가우다’라는 작은 섬에 도달합니다(16).

 

선원들은 거룻배(구명정)를 갑판 위로 끌어올리고 배가 부서지지 않게 밧줄을 이용하여 선체를 동여맸습니다. 거룻배는 일반적으로 배의 뒷부분에 달고 다니는데, 광풍이 심할 경우에는 이 거룻배가 다른 큰 배와 충돌할 위험이 있어서 갑판 위로 끌어올렸을 것입니다.

 

선원들은 또한 배가 리비아 해안의 모래톱(스르디스)으로 처박힐까 두려워서 바다에 닻을 내리고, 그냥 계속 표류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이 모든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계속해서 풍랑에 밀렸습니다. 큰 풍랑에 의해 배 안에 물이 들어와서인지 배에는 많은 곡물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배에 실은 화물을 바다에 내버려 배를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무리한 항해를 했지만, 있던 것 마저 버려야할 저지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어떤 화물을 바다에 내던졌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타고 있는 배가 곡식을 나르는 배였기에 곡식의 일부도 어쩔 수 없이 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서 요나가 탔던 배의 상황과 비슷한 형편에 놓인 것입니다(참조, 욘 1:5).

 

사흘째 되는 날에도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는 배의 장비까지도 바다에 내던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미스(Smith) 학자는 여기서 말하는 장비는 돛대의 하활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활은 배의 길이만큼 긴 것으로서, 아마도 선원들과 승객들이 온 힘을 합해야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만난 광풍 이야기의 절정은 선원들이 지금 배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큰 풍랑과 나쁜 기후 때문에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도 보지 못하고 살아 돌아갈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태양이나 별을 봐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었고 완전히 희망의 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묘사합니다(20). 소망을 잃어버린 그들의 처지를 문학적으로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으로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 문장이 단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먼 길을 배타고 가는 항해의 길에 비유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가던 배처럼 눈앞이 캄캄해지는 암흑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가 말한 것처럼 ‘구원의 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나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합니다. 이것이 성경은 바울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는 힘입니다.

 

바울이 위로의 말을 전함(21-26)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광풍과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인생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붙잡고 쌓아둔 것이 위기 때는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해롭게 하기에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21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21-26)

 

이 단락에서는 바울이 이 이야기 속에 두 번째로 개입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느 누구도 무엇을 먹을 기운도 없었고 먹을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일어나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21). 지금까지 침묵했던 바울은 이제 모든 상황을 주고하고 이끌어갑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바울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내 조언을 듣고 그레데에서 출항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재난과 손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의 조언대로 미항에 남지 않았던 것을 매우 아쉬워합니다. 바울도 그런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생입니다. 그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희망의 줄을 놓고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소망의 말을 전합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희망 사항을 그들에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확신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미항에 있을 때 바울은 미항을 떠나 출항하면, 그 배는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27:10)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배를 타본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합리적인 판단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가 바다에서 만나는 광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경험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탔던 배의 기억을 되살렸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5에서 파선을 당한 적이 세 번 있었고 꼬박 하루를 바다에서 표류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아마 당시 에도 적지 않은 생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바울은 그 경험을 거울삼으려 했을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배의 손상은 막을 수 없겠지만,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2). 이것은 과거의 경험에서나 어떠한 계산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확신의 출처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초자연적 계시라고 밝힙니다. 그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해주었다”고 말합니다(23). 2년 전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로마에서 주님을 증언할 것이라는 확신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행 23:11).

여기서 이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준 메시지는 바울이 그때 받은 확신을 다시 확인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24). 바울은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들었습니다. 배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바울을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일 때문입니다. 그는 가이사 앞에 서서 증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라는 것입니다(24). 바울과 한 배를 탄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모두 지켜주실 것을 확인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말에는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의미이며, 누가는 그 응답의 확실성을 현재완료 시제(케카리스타이)를 사용함으로써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바울은 배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라고 하나님께서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위태로운 고백입니다. 그렇게 되지 안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가 크게 손상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믿음을 동료들과 함께 나눕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타고 가던 배가한 섬에 걸리게 되는데, 그 섬은 나중에 멜리데로 밝혀집니다.


우리의 일상은 평안한 바다나 험한 풍랑 속을 향해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풍랑으로 인해 심한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큰 풍랑이 두려워 소망을 잃어버렸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게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분의 뜻 가운데 우리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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