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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8-01)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바울

사도행전 28장 1-15절


 

구원은 죽어 있는 자를 살리는 역사입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구원을 받아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자유를 배웁니다. 나와 타인을 나누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을 살게 하는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에게 살림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 파선 배에서 구조된 바울 일행은 시칠리아 반도의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겨울을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원주민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는 거건이 발생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보호해주십니다. 또한 바울은 추장 아버지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부터 환대를 받습니다. 것 달 후 멜리데를 떠난 바울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합니다.

 

시칠리아 멜리데에서 월동(1-10)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상태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정과 헌신을 통해 새롭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멜리데에 도착한 바울은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1-10)

 

본 단락에는 로마로 가는 여정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도착한 시칠리아 반도의 한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일들과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마지막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하셨던 주님은 오늘날 사도행전을 읽는 성도들의 삶에도 함께하십니다.

 

(1)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1-2)

 

바울 일행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서 십사일 동안 표류하다가 한 섬에 도착했습니다. 누가는 모든 사람이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나서 보니 이 섬의 이름이 ‘멜리데’ 섬이었다고 기록합니다(1). 멜리데 섬은 다행이도 시칠리아 반도 남부에 위치한 섬인데, 오늘날 몰타에 해당합니다. 폭풍이 로마 가까운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배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이곳으로 인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로마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죽을 줄로만 알았습니다. 바울의 지도 하에 모든 사람들이 구조된 것입니다. ‘멜리데’는 셈족어로 ‘안식처’ 혹은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누가가 당시에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본래 페니키아인들로서 셈족어 계통의 포에니 사투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변방에 사는 사람들은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토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그들을 ‘원주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대체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표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주민들은 특별한 동정을 베풀어서 파선으로 인해 난민 신세가 된 276명(27:37)을 오히려 정성껏 환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배를 노려서 강탈하려는 원주민이었다면, 겨우 구조된 후에 비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환대함으로 그 날 비가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불을 피워서 바울과 선원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합니다(2).

 

(2) 독사에 물린 바울(3-6)

 

하지만 바울에게는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옵니다. 배 안에서도 매우 헌신적이며 현실적인 도움을 주었던 바울은 육지에 오른 후에도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3). 바울은 추은 날씨에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아다가 불 속에 넣었더니 뜨거운 열기 때문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고 있었습니다(3). 여기서 사용한 헬라어 ‘에키드나’(ἔχιδνα)는 독사를 가리킵니다.

그 순간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다음과 같이 수군거렸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지만 정의의 여신이 그를 그대로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4) 독사가 물어 죽게 되는 것을 보니, 바다의 신이 살려주었을지 모르지만, 정의의 신이 바울을 심판하여 살인자가 분명하다고 확신합니다.

바울은 태연하게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그 독사를 불속에 떨어뜨렸습니다(5).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머리털 하나 상치 않고 로마에’ 도착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27:22-26).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주시하며, 그의 살이 부어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으려니 생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자 그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는 문학적인 위트를 소유한 누가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원주민들의 미신적인 생각을 살짝 유머러스하게 믿음의 비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진정한 신이라고 보여 주었습니다.

 

(3) 열병을 치유하는 바울(7-10)

 

누가는 7절부터 ‘멜리데’ 섬에서 일어났던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과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고친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멜리데 섬의 추장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초대를 받아 사흘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초대를 받은 자 중에는 바울과 내레이터(누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는데, 바울이 그를 보고 들어가서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병을 낫게 해주었습니다. 바울의 치유 기적을 듣고 그 섬에 사는 다른 병자들이 바울을 찾아왔고, 바울은 그들의 병도 모두 고쳐주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준 일에 대한 감사의 멜리데, 표현으로 극진히 접대하였고, 그 섬을 떠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누가는 이 단락에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하는데 이는 누가도 바울과 함께 의료 기술을 발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단순히 바울이 행한 일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11-15)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 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 가운데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감당하야 할 일들을 예수님의 제자답게, 거룩한 방법으로 감당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19:21)고 약속하셨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11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11-15)

 

바울과 그 일행이 멜리데에서 석 달을 보낸 기간은 긴 겨울철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다른 배들도 겨울철이었기 때문에 항해를 멈추고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멜리데 섬에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가 정박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 배 역시 곡식을 로마로 실어 나르는 배였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배의 세부적인 정보까지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 제공해줍니다. 그는 이 배의 선수상(船首像)은 두 신(디오스구로)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이 탄 배는 먼저 시칠리아 섬의 수도인 수라구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사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런 정보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의 단순한 창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들은 수라구사를 떠나 레기온(오늘날로 하면 레기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레기온에서부터 북쪽으로 남풍을 타고 속도를 내어 이튿날 보디올(오늘날로 하면 포추올리)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은 당시에 밀무역의 주요 항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그 일행이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초대를 받아 이레를 그들과 함께 지냈다고 기록합니다. 보디올은 당시 유대인 공동체를 비롯해 국제적인 도시였으므로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바울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신자들과 한 주간동안이나 교제하며 지낼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 기간을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올 수 있는 누가의 문학적 장치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편 백부장이 이 기간 동안 로마에 가서 추가 지시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는 누가의 설명도 난해합니다. 아마도 이 구절은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의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보디올에서 로마로 들어가기까지 육로를 통해 여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그를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은 아마도 보디올에 있던 성도들에 의해 로마에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두 지역의 성도들이 각각 바울을 맞이하러 로마로부터 약 6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압비오 광장과 로마로부터 약 53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나오게 됩니다. 누가는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예배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바울에게는 적지 않은 격려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났습니다.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낯선 사람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과 능력의 성령과 동행했습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여 설려내는 역사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살아난 자를 통해 살려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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