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7-01)
가이사야에서 로마로 출발하는 바울
사도행전 27장 1-12절
‘역설(逆說)’은 수면 위에서는 모순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에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없음이 하나님의 인도의 표지도 아닙니다. 고난 가득한 삶이 있을지라도 그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그리고 그 너머의 목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이제 바울은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손에 넘겨져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됩니다. 가이사랴를 출항한 배는 이튿날 시돈에 도착합니다. 바울은 백부장의 특별한 호의를 받아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식탁교제를 나눕니다. 사돈을 떠난 배는 맞바람을 맞는 어려운 기후 조건에서 항해하다가 무라에 도착하였고 여러 날 만에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좋지 않은 기후에도 항해를 강행하려는 선장과 선주에게 출항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가이사랴에서 출항(1-5)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황이나 삶에 의해 좌우될 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는 자신의 인생의 배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항구에 이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마다 통제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여건을 조성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만 일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는 더 많은 여백과 신비를 남겨둘 때, 결과로 인하여 교만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찬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황이나 사람에 의해 좌우될 때라도 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1-5)
바울은 유대인의 고소로 인해 재판을 받으면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했습니다(25:11-12). 이제 드디어 바울이 로마로 향해 출발합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에 따라서 복음의 사역이 땅끝을 향해 진행되어져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님께서 주신대로 ‘로마에서 증거하리라’(23:11)는 사명을 따라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로마 행은 많은 사람들이 환영 받은 성공한 사역자의 모습이 아니라 사슬로 묶인 죄수의 신분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러 장에 걸친 바울에 대한 고발과 재판 그리고 바울의 변호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이제 27장부터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긴 여정이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1절부터 다시 ‘우리’ 단락이 시작됩니다(참조. 행 16:10-17; 20:5-8, 13-15; 21:1-18). ‘우리’ 단락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여기서 묘사되는 사건에 동참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단락이 끝난 구절은 21:18(예루살렘교회 방문)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누가가 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어쩌면 이 기간 동안 누가는 유대 팔레스타인에서 자신이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초반부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추측은 입증할 방법이 없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를 통치하고 있던 로마 관리들은 바울과 죄수 몇 명을 백부장 율리오에게 로마까지 호송할 수 있도록 맡겼습니다. 이것을 누가는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라고 기록합니다(1). 그러나 누가의 이 표현은 바울만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된 것이고,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일행인 ‘우리’는 단지 같은 배를 타고 가게 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바울의 로마행 항해 이야기는 당시 일반인들이 지중해를 어떻게 항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자료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배들은 지중해의 해변을 따라 항해했으며, 가능한 한 겨울철에 항해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간 이 배는 원래 소아시아 서쪽 해변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아드라뭇데노(드로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발해 여러 항구 도시를 거쳐 항해하고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직접 가는 배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일반적인 방법을 취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백부장 율리오는 향해하는 도중 어느 중간 지점에서 이탈리아 행 배를 만나 환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는 이 여정에 마게도냐 지방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동행했다고 밝힙니다(2). 아리스다고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때 등장했고, 20장에서 바울과 함께 이방인 교회의 대표자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행 중 한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얻은 재종자로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 즉 빌레몬서 1:24과 골로새서 4:10에서 바울의 동역자이자 함께 옥에 갇힌 자로서 끝까지 함께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약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레몬서와 골로새서가 기록된 것이 사실이라면, 아리스다고가 이때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을 가능성이 분명해 보입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는 가이샤라에서 출발한 다음 날 북쪽 해안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진 시돈 항에 도착했습니다(3). 이곳은 조류가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하루 만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이샤라에서 보낸 화물을 내리고, 다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갈 화물들을 선적하기 위해 잠시 정박했습니다.
그 사이에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줍니다. 어떤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동료 그리스도인들(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식사를 대접받거나,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바울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아니고 아마도 바울을 지키는 군인이 그와 동행했을 것입니다.
배는 다시 출발하여 다음 기착지 루기아의 무라 성 항구로 향했습니다(4). 시돈에서 무라까지의 일반적인 항로는 구브로 섬 서쪽 해안을 따라 힘겹게 목적지를 향해 갔습니다. 바울도 3차 선교여행 도중 바다라에서 두로로 여행할 때 이 항로를 이용했을 것입니다(행 21:1-3). 그러나 이 항로는 서풍 혹은 북서풍이었기 맞바람으로 아주 어려운 항해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람이 없는 구브로 섬의 동쪽 해안을 끼고 항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배는 구브로 섬을 돌아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항해해 무사히 루기아의 항구 도시인 무라에 도착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항해는 15일 걸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무라에서 로마행 배에 승선(6-8)
편한 것,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평안과 안전은 상황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분명한 의로운 사역에도 역풍은 있습니다. 순풍이 늘 하나님의 인도의 표지는 아닙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순풍은 아니지만 아무도 그 길을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6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6-8)
바울이 탄 배가 무라에 도착함으로써 첫 번째 항해가 마무리 됩니다(5). 당시 로마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곡식을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실어 나르는 배가 많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로마에게는 이집트가 곡식 창고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항해할 수 있는 항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북쪽으로 먼저 항해를 해서 무라에 도착하고, 거기서 소아시아의 해변을 따라 항해하는 항로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바울을 태운 배가 무라에 도착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알렉산드리아 배는 분명히 로마로 곡식을 수송하는 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사실은 나중에 배를 가볍게 하려고 싣고 가던 밀을 바다에 내던져야 했던 일에서 확증됩니다(38).
바울 일행이 환승해 로마가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는 올라탔습니다(7). 그 배는 강한 북서풍 맞바람으로 인해 항해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들은 수일 만에 이집트로부터 오가는 배가 많이 들어오는 니도라는 항구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니도까지는 동쪽에서 부른 바람은 배를 밀어주는 순풍이기 때문에 그 바람을 만나면 하루에 항해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짧은 거리를 상당한 날 동안 항해한 것은 역풍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 줍니다.
여기 무라에서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순풍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역풍을 맞으며 항해를 강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배는 심한 바름 때문에 정상적인 경로로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는 북서풍을 피해 그레데 섬의 남쪽 해안을 따라 거슬러 가는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레데 섬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라새아 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항이라 불리는 항구에 도착합니다(8).
선장은 이곳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 항구는 작아서 큰 배가 겨우내 머물러 있을 여건이 갖추지 못했습니다(12).
이 짧은 단락에서 바울이 탄 배의 항해가 순탄치 않음을 계속 지적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두 배의 경우 바람과 풍랑으로 인해 항해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실은 바울을 비롯한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점차 풍랑이 심하게 일어나 항해가 어려운 상황에 항해를 계속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항해를 계속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이유도 이러한 사실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조언이 거부됨(9-12)
생명의 길은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소수만이 그 좁고 불편한 길을 걸어갑니다. 다수가 그 길을 걷는다고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찾는 이가 적어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밝혀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이제 이 배의 운명은 선장이 아니라 바울의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9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9-12)
1-8절에서 저자는 바울 일행이 승선한 배가 항해하는 데 계속해서 이려움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바울은 험난한 항해를 예고하는 풍랑을 수동적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락부터 바울은 항해를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9). 이 단락의 초점은 바울이 항해를 만류하면서 경고했던 대로(9-10) 점차 실현되는 것(14-20)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바울의 경고는 항해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열쇠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 구체적인 내용을 검도해 보아야 합니다.
그 동안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못해서 항해가 많이 지연되었고, 그들은 미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항해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나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누가는 금식하는 절기로 표현합니다(9). 이 표현은 유대인들의 대속죄일을 가리킵니다. 유대교 달력은 음력 기준이므로 달의 위치에 따라 매년 날짜가 바뀝니다. 주로 9월에서 10월에 해당하는데, 브루스(Bruce)는 주후 59년에는 대속죄일이 평년보다 조금 늦어져 10월 5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견해는 로마 군인 작가인 베게티우스의 진술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9월 15일 이후부터는 항해가 위험하다고 기록하고 있고 11월 11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까지는 항해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 중에 항해가 위험한 이유는 극심한 겨울 폭풍 때문만이 아니라, 짙은 구름과 안개로 인해 안전한 가시거리의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시점에서 바울이 개입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바울은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10)고 말합니다. 그는 여기서 단순히 시기적으로나 기후적으로 항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상식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선견지명을 가지고 예언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혹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고 이 발언을 했는지 누가는 어쨌든 그 사실을 여기서 확실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단순히 어떤 막연한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재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이어지는 바울의 21-26절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11절은 백부장이 항해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보다는 선주와 선장이 그의 의견을 물었을 때, 백부장이 바울의 말보다 항해 전문가인 선주와 선장의 의견을 따랐음을 뜻합니다. 좋지 않은 항해 조건에도 왜 항해를 감행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백부장은 반대로 세 가지 요소에 근거해 항해를 강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곧 해를 지휘하는 선장의 주장, 배의 소유자 선주의 주장, 그리고 겨울을 보내기에 미항이 불편하다는 점이었습니다(11-12).
사람들은 대부분 뵈닉스 항구로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의견에 찬성했습니다. 뵈닉스 항구는 크레타 섬의 항구로, 겨울에 부는 북동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지형 조건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배는 미항에서 멀지 않은 뵈닉스 항구까지만 갈 것이므로 항해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크게 무리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객선은 아니었지만 바울이 탄 배는 로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향해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자만 보일 수 있는 통찰, 하나님의 돌보심의 증거들을 갖고 있는 다들입니다. 그 증거들로 고난의 항해를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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