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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6-02)


성벽을 완성 시키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6장 15절-7장 4절


 

성벽 역사가 단 52일 만에 완공됩니다. 어려운 여건과 대적들의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달려온 결과입니다. 대적들과 이방 족속들도 하나님께서 일하심과 그들과 함께하심을 깨닫고는 두려워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귀한 성취를 주실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도우심과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힘입어 드디어 성벽 공사가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적들과 주위 민족들은 큰 두려움과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 공사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합니다. 성벽 공사에 이어 느헤미야는 성문을 달고, 성벽 경비 책임자를 세우는 등 성읍 경비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해 나갑니다.

 

성벽 완공과 대적의 반응(15-19)

일이 완성되고 진척이 잘 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사역을 통해 찬송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140년 동안 재건되지 않는 성벽이 52일 만에 건축된 것을 보면서 원수들은 낙담하여 두려워 할 것이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15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15-19)

 

성벽 공사의 완성을 소개하는 15-16절은 내용상 1절과 연결됩니다.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에 완공합니다.

본문은 그 시점을 엘룰 월 25일로 밝힙니다. 엘룰 월은 유대력으로 여섯째 달로 양력 8-9월에 해당합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바벨론의 연대기를 근거로 이 날을 주전 445년 10월 2일로 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로 14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벽 재건 사업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이루어낸 것입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느헤미야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큰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의구심 때문에 요세푸스는 실제 소요된 공사 기간을 2년 4개월로 보도합니다(유대고대사 11.179). 그렇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우리는 본문의 사실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첫째, 3장의 자료를 근거로 볼 때, 중건한 지역은 주로 북쪽의 양문에서 남동쪽의 샘문까지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루살렘 동쪽 지역은 보수에서 거의 빠져 있습니다. 여러 골짜기가 위치한 동쪽 지역이 크게 훼손되지 않아 공정의 상당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도착 직후 밤에 성벽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 성벽이 학자들의 생각만큼 실제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성벽의 둘레는 약 2.6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됩니다. 셋째로 에스라 4:12에 의하면, 아닥사스다 시절에 예루살렘 성읍이 어느 정도 재건되고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이 공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52일의 기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본문은 이 일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본문이 52일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는 것은 이것을 암시한다).

 

대적들의 반응(16-19)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특히 성취의 기쁨이 충만할 때 그러합니다. 느헤미야는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습니다. 성문 관리를 통해 백성이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6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16-19)

 

성벽 재건 공사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은 대적들과 이방 족속들에게 두려움과 낙담을 안겨주었습니다(16).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16a)의 표현은 대적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잘 표현해 줍니다.

정치적인 배경에서 보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는 페르시아 제국의 요새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강 서편 지역이나 이집트의 지속적인 반란, 그리고 그리스의 유다 지역(예후드) 침공의 가능성으로 인해 페르시아는 팔레스틴 지역을 안정시키고 유다를 요새화할 필요를 느꼈고, 그 책임자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의 요새화는 주변 지역, 즉 사마리아, 암몬, 아라비아 지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산발랏을 비롯하여 주변의 총독들과 민족들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귀환 공동체와 함께함으로 대적들의 음모와 방해 공작을 무력화했습니다. 그리고 대적들은 공사가 그토록 빨리 진행된 배경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16b). 결국 대적들의 방해가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귀환 공동체와 주변 백성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17-19절은 성벽 공사의 완공으로 대적들의 공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성벽 공사는 완성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7:1-4). 17a절의 그 때에는 앞의 내용과 관련하여 어느 부정확한 시기를 가리킵니다. 즉 성벽 공사가 완공된 이후에도 대적자들이 다시 느헤미야를 모함하려고 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참조 13:4). 도비아와 유다의 귀족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었습니다(17).

본문은 이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배경에 도비야가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맺은 혼인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는 스가나의 사위였고, 그의 아들 여호하난도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18b). 도비야는 그 외에도 많은 유다 사람들과 정치·경제적인 동맹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예루살렘에 도비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룹이 존재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19a)라는 말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이들은 아마 주변국들과 경제적인 교류를 맺는 등 개방 정책을 지향함으로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갈등을 빚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비야는 자신이 맺고 있는 유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어려움에 빠뜨리고자 시도한 것입니다(18b).

 

성읍 경비의 지도자들을 세움(7:1-3)

공동체의 본질은 명성이나 조직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과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에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는 적절한 은사와 자격을 갖춘 사람을 적소에 두어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잘 배치하고 있습니다.

 

1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1-3)

 

성벽 공사가 완성된 후에 느헤미야는 마지막 남은 공사인 성문에 문짝을 다는 일을 마칩니다(1a). 그렇다고 해서 성벽 재건의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웁니다(1). 아직도 대적들의 위협이 상존하는 만큼 예루살렘의 경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느헤미야는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세부적인 방어 체계를 확립한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인 하나냐를 예루살렘 성읍의 경비 책임자로 세웁니다(2a).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생 하나니를 책임자로 세운 이유를 밝히는데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2b). ‘충성스러운 사람’은 그가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신실한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니에 대해 별도의 소개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유다 공동체에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 경비와 관리에 대한 지침을 하달합니다(3). 그것은 해가 환하게 뜨기 전까지는 문을 열지 않고, 파수할 때에는 문을 닫고 성문에 빗장을 지르는 것입니다(3a). ‘파수할 때에 문을 닫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문을 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지시한 이유는 대적들의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주민도 경비를 서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고, 성벽 접경지역 주민들은 자기 집 맞은편 성벽을 경비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3b).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한 것입니다.

 

거주민 소집의 필요성과 준비(7:4)

기도하지 않을 때 비열해지고 탐욕의 노예가 되며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세상의 것들이 단절되어 집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역을 이루어 나갈 때, 세미한 것까지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4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4)

 

성벽이 완공되고 경비 체계가 확립됨으로 예루살렘 성읍은 드디어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도성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이 파괴된 지 약 140여 년 만의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고 가옥도 부족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대적들의 위협이 건재한 상태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을 꺼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공사가 끝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성읍의 인구는 더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거주민의 숫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환민들의 계보와 숫자를 파악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전체를 볼 줄 아는 포괄적인 안목과 더불어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는 섬세함을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숙함은 성취의 순간에 더욱 빛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방심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 일꾼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성숙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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