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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6-02)


성벽을 완성 시키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6장 15절-7장 4절


 

성벽 역사가 단 52일 만에 완공됩니다. 어려운 여건과 대적들의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달려온 결과입니다. 대적들과 이방 족속들도 하나님께서 일하심과 그들과 함께하심을 깨닫고는 두려워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귀한 성취를 주실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도우심과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힘입어 드디어 성벽 공사가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적들과 주위 민족들은 큰 두려움과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 공사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합니다. 성벽 공사에 이어 느헤미야는 성문을 달고, 성벽 경비 책임자를 세우는 등 성읍 경비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해 나갑니다.

 

성벽 완공과 대적의 반응(15-19)

일이 완성되고 진척이 잘 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사역을 통해 찬송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140년 동안 재건되지 않는 성벽이 52일 만에 건축된 것을 보면서 원수들은 낙담하여 두려워 할 것이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15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15-19)

 

성벽 공사의 완성을 소개하는 15-16절은 내용상 1절과 연결됩니다.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에 완공합니다.

본문은 그 시점을 엘룰 월 25일로 밝힙니다. 엘룰 월은 유대력으로 여섯째 달로 양력 8-9월에 해당합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바벨론의 연대기를 근거로 이 날을 주전 445년 10월 2일로 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로 14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벽 재건 사업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이루어낸 것입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느헤미야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큰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의구심 때문에 요세푸스는 실제 소요된 공사 기간을 2년 4개월로 보도합니다(유대고대사 11.179). 그렇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우리는 본문의 사실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첫째, 3장의 자료를 근거로 볼 때, 중건한 지역은 주로 북쪽의 양문에서 남동쪽의 샘문까지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루살렘 동쪽 지역은 보수에서 거의 빠져 있습니다. 여러 골짜기가 위치한 동쪽 지역이 크게 훼손되지 않아 공정의 상당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도착 직후 밤에 성벽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 성벽이 학자들의 생각만큼 실제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성벽의 둘레는 약 2.6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됩니다. 셋째로 에스라 4:12에 의하면, 아닥사스다 시절에 예루살렘 성읍이 어느 정도 재건되고 있었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이 공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52일의 기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본문은 이 일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본문이 52일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는 것은 이것을 암시한다).

 

대적들의 반응(16-19)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특히 성취의 기쁨이 충만할 때 그러합니다. 느헤미야는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습니다. 성문 관리를 통해 백성이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6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16-19)

 

성벽 재건 공사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은 대적들과 이방 족속들에게 두려움과 낙담을 안겨주었습니다(16).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16a)의 표현은 대적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잘 표현해 줍니다.

정치적인 배경에서 보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는 페르시아 제국의 요새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강 서편 지역이나 이집트의 지속적인 반란, 그리고 그리스의 유다 지역(예후드) 침공의 가능성으로 인해 페르시아는 팔레스틴 지역을 안정시키고 유다를 요새화할 필요를 느꼈고, 그 책임자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의 요새화는 주변 지역, 즉 사마리아, 암몬, 아라비아 지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산발랏을 비롯하여 주변의 총독들과 민족들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귀환 공동체와 함께함으로 대적들의 음모와 방해 공작을 무력화했습니다. 그리고 대적들은 공사가 그토록 빨리 진행된 배경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16b). 결국 대적들의 방해가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귀환 공동체와 주변 백성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17-19절은 성벽 공사의 완공으로 대적들의 공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성벽 공사는 완성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7:1-4). 17a절의 그 때에는 앞의 내용과 관련하여 어느 부정확한 시기를 가리킵니다. 즉 성벽 공사가 완공된 이후에도 대적자들이 다시 느헤미야를 모함하려고 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참조 13:4). 도비아와 유다의 귀족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었습니다(17).

본문은 이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배경에 도비야가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맺은 혼인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는 스가나의 사위였고, 그의 아들 여호하난도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18b). 도비야는 그 외에도 많은 유다 사람들과 정치·경제적인 동맹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예루살렘에 도비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룹이 존재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19a)라는 말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이들은 아마 주변국들과 경제적인 교류를 맺는 등 개방 정책을 지향함으로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갈등을 빚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비야는 자신이 맺고 있는 유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어려움에 빠뜨리고자 시도한 것입니다(18b).

 

성읍 경비의 지도자들을 세움(7:1-3)

공동체의 본질은 명성이나 조직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과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에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는 적절한 은사와 자격을 갖춘 사람을 적소에 두어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잘 배치하고 있습니다.

 

1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1-3)

 

성벽 공사가 완성된 후에 느헤미야는 마지막 남은 공사인 성문에 문짝을 다는 일을 마칩니다(1a). 그렇다고 해서 성벽 재건의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웁니다(1). 아직도 대적들의 위협이 상존하는 만큼 예루살렘의 경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느헤미야는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세부적인 방어 체계를 확립한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인 하나냐를 예루살렘 성읍의 경비 책임자로 세웁니다(2a).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생 하나니를 책임자로 세운 이유를 밝히는데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2b). ‘충성스러운 사람’은 그가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신실한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니에 대해 별도의 소개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유다 공동체에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 경비와 관리에 대한 지침을 하달합니다(3). 그것은 해가 환하게 뜨기 전까지는 문을 열지 않고, 파수할 때에는 문을 닫고 성문에 빗장을 지르는 것입니다(3a). ‘파수할 때에 문을 닫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문을 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지시한 이유는 대적들의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주민도 경비를 서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고, 성벽 접경지역 주민들은 자기 집 맞은편 성벽을 경비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3b).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한 것입니다.

 

거주민 소집의 필요성과 준비(7:4)

기도하지 않을 때 비열해지고 탐욕의 노예가 되며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세상의 것들이 단절되어 집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역을 이루어 나갈 때, 세미한 것까지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4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4)

 

성벽이 완공되고 경비 체계가 확립됨으로 예루살렘 성읍은 드디어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도성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이 파괴된 지 약 140여 년 만의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고 가옥도 부족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대적들의 위협이 건재한 상태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을 꺼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공사가 끝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성읍의 인구는 더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거주민의 숫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환민들의 계보와 숫자를 파악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전체를 볼 줄 아는 포괄적인 안목과 더불어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는 섬세함을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숙함은 성취의 순간에 더욱 빛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방심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 일꾼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성숙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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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6-01)


옴모와 모함 속에서 승리한 느헤미야

느헤미야 6장 1-14절


산발랏 무리가 느헤미야를 해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상의하자며 평지로 불러내어 죽이려 하고, 실패하자 역모를 꾸민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선지자를 매수하여 함정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이 모습을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자 대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의 한 촌으로 유인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도비야와 산발랏이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예언하게 하여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시도합니다.

 

상황 설명(1)

대적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대적들은 자기 원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너질 때까지 음모를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격합니다. 유다가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을 저해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대적들은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먼저 처리하려 했습니다.

 

1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1)

 

느헤미야와 백성들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성벽 재건공사가 많은 진척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문에 문짝을 다는 일만 남겨놓은 상태입니다(1b). 주위의 대적들, 즉 산발랏,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나머지 원수들은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해서든 진행 중인 작업을 중단시키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은 고고학적 자료에 ‘게델의 왕(총독)’이라는 칭호로 소개되고 있어 당시 팔레스틴 남부와 델타 지역까지 흩어져 살고 있던 게델 민족들(연합족속)의 총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벽 재건으로 인한 유다의 요새화는 사마리아, 암몬, 아라비아 지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총독들이 연합하여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왜 게셈이 느헤미야의 일에 참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1b절의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은 이들에게 동조한 사람들인 암몬과 아스돗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참조 4:7).

 

산발랏과 게셈의 음모(2-9)

성벽을 쌓는 일도, 공동체를 세우는 일도 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젠 다 됐다고 마음을 놓을 만한 때부터 방해와 위협은 더 교묘해지고 거세집니다. 성벽을 틈새 없이 잘 쌓았듯이 마음에도 악이 들어올 만한 조그마한 틈새도 허락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에게는 대적들은 매우 집요하게 공격해 옵니다.

 

2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3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5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2-9)

 

성벽 재건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자 산발랏과 그 일당은 전략을 수정하여 공격의 대상을 전적으로 느헤미야 한 개인으로 집중시킵니다(3-4장에서는 성벽의 건축자들을 향했다). 그리고 대적들의 방해도 더욱 교활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바뀌어갑니다(지금까지의 방법은 조소, 공갈, 협박 등이었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오노 평지의 한 마을에서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2a).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25마일쯤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사마리아(산발랏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와 아스돗(블레셋 지역)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오노 평지를 선택한 이유는 그 지역이 산발랏의 고향(벧 호론)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거나 중립 지역이기 때문에 느헤미야를 안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평화 회담을 제안한 것처럼 위장해서 느헤미야를 은밀히 해치려 했습니다(2b).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이들의 회담 제의를 즉시 거절합니다(3a). 공사의 완공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3a) 책임자인 자신이 현장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3b). 느헤미야의 말(3c)로 추측해볼 때, 느헤미야는 이들의 제안에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포기하지 않고 네 번이나 느헤미야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만(4), 느헤미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응하지 않자, 산발랏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번에는 신하를 시켜 느헤미야에게 ‘봉하지 않은 편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5). ‘봉하지 않은 편지’는 누구나 읽어 볼 수 있는 흑색선전용 편지를 말합니다. 봉하지 않은 편지를 사용한 것은 느헤미야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이번에는 유언비어를 이용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는 것입니다. 편지 내용에 의하면, 느헤미야가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아닥사스다 왕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응하지 않자, 산발랏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번에는 신하를 시켜 느헤미야에게 '봉하지 않은 편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5). ‘봉하지 않은 편지’는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흑색선전용 편지를 말합니다. ‘봉하지 않은 편지’를 사용한 것은 느헤미야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이번에는 유언비어를 이용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는 것입니다. 편지 내용에 의하면, 느헤미야가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아닥사스다 왕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유다와 이방 사람들 가운데 떠돌고 있다는 것입니다(6). 이미 느헤미야가 예언자들의 지원 아래 유다 왕으로 즉위할 준비를 마쳤다는 것입니다(7a).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써서 유다 지도자를 참소하는 것은 수년 전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예루살렘 재건 공사를 멈추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참조 에스라 4:7-16), 산발랏은 아닥사스다 왕이 강 건너편 영지의 불안정한 정세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발랏은 이 소문이 머지않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알려질 수 있음을 알리면서, 함께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합니다(7b). 그렇지만 느헤미야의 반응은 단호합니다. 그 소문이 산발랏이 지어낸 허구라고 하면서 산발랏의 제안을 묵살합니다(8b). 느헤미야는 이미 산발랏이 자신과 유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입니다(9b). 느헤미야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9b).

 

도비야와 거짓 예언자들의 음모(10-13)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다.’는 말은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속을 때 하는 말입니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일을 막는 경우가 있어서 가장 힘들게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10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10-13)

 

느헤미야를 해하려 한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내부의 인물들(스마야와 여선지 노아댜)을 통해 느헤미야를 제거하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도비야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것으로 보아(12b), 이번에는 도비야가 주도적으로 행동한 것 같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당시 유다의 지도층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참조, 느헤미야 13:4-5, 28). 도비야는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유대 관계에 있는(참조. 13:4)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서 느헤미야와 제사장 그룹을 이간시키려고 합니다. 도비야는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스마야라고 하는 사람을 시켜서 느헤미야를 성전으로 유인하려고 합니다. 스마야의 정체에 대해서 본문이 침묵하지만, 문맥상 성전 예언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12b). 10b절의 스마야의 말은 예언자의 선포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느혜미야는 스마야가 두문분출하자 그를 찾아갑니다(10a). ‘두문불출하다’는 다양한 의미(‘감금하다’, ‘저지하다’, ‘억제하다’)로 사용되기 때문에 ‘스마야의 두문불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 치는 않습니다. 정황상 스마야가 예언자적 황홀경 상태에 있는 것을 가장해 느헤미야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스마야의 행동이 느헤미야의 위험을 알리는 행위예언으로 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가 소문을 듣고 스마야를 찾아오자,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대적들의 암살 음모를 알리며 성전에 숨어 있을 것을 제안합니다(10b).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곧 스마야의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스마야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1). 느헤미야는 자신이 성전에 숨을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합니다(11a).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라는 말은 ‘사명을 맡은 자가 자신의 신병을 위해 그 자리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는 말은 제사장이 아닌 자가 성전에 들어감으로 제의 규정을 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비록 총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종교적인 규율을 어기도록 하면서까지 성소로 은신하게 하려는 것을 보고 그의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확신한 것 같습니다. 결국 스마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자신을 속이려고 했다는 것이 느헤미야에게 알려지게 됩니다(12b). 느헤미야로 하여금 제의 규정을 어기도록 해서 제사장들의 적대감을 사도록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13).

 

느헤미야의 기도(14)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세상의 게략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하고 순결하되, 하늘의 지혜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느헤미야는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14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14)

 

이번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대적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깁니다(참조, 로마서 12:19). 여기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던 느헤미야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자신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했던 여 선지자 노아댜와 다른 선지자들을 언급합니다(14b).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위협이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면, 여선지자 노아댜와 성전 내 거짓 선지자들은 내부의 적들입니다.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의 재가로 시작된 성벽 재건 공사를 공식적으로 방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 공동체 내부 인사들과 연계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안팎의 방해 세력과 싸웠던 것입니다. 꿋꿋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맡은 일을 이루어가는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돋보입니다.


주의 일꾼은 순결하되 순전해서 안 됩니다. 지금도 악의 세력은 거룩한 사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세력을 물리칠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순결하면서도 지혜로움이 탁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주의 일꾼들에게 그러한 지혜롭고 순결한 모습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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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5-02)


예루살렘 공동체를 세우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5장 6-19절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시대 앞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갈등 구조를 낳은 이기주의에 대해서 느헤미야처럼 거룩한 의분을 갖는 것입니다. 거룩한 의분을 가지고 시대의 어려움,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 때 느헤미야처럼 권면하는 사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에게 행한 일이 있고 유대민족 전체 공동체가 한 일이 있습니다.

 

  • 본문은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시작하고 찾아온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동족들 사이에 생긴 위기 상황에 느헤미야는 분노합니다.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즉흥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지혜롭게 처리합니다. 먼저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율법에 따라 동족들로부터 이자를 받지 않기로 맹세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12년의 유다 총독 재임 기간 동안 총독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 모범을 보였습니다.

 

느헤미야의 공적인 개혁(6-13)

지도자는 공동체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합니다. 지도자들 가운데는 공동체의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덮어두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비겁함이고 개으름입니다. 지도자는 문제를 직시합니다. 느헤미야는 금전 문제로 유대인 공동체에 일어난 문제를 직시하고 아픈 마음으로 해결책을 찾습니다.

 

6○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2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6-13)

 

느헤미야는 입술의 회개만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르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그 예로 이제 이자 받기를 그치고 받은 이자는 돌려주자고 제안합니다. 백성은 이 제안을 수용하고 제사장은 이 맹세의 증인이 됩니다. 맹세를 어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란 말씀에도 ‘아멘’으로 화답하여 단호하게 실천을 다짐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1) 느헤미야의 분노(6)

 

6-10절 느헤미야의 분노와 귀족들과 민장들에 대한 질책 성벽을 재건하는 동안 발생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에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처하여 오히려 내부의 문제를 돌아보고, 더 나아가 공동체 연합을 도모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느헤미야는 부자들의 탐욕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의 울부짖음과 동족들 사이에 생긴 위화감에 분노로 반응합니다(6).

 

(2) 귀족들과 민장들에 대한 질책(7-10)

 

느헤미야는 거룩한 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연합을 위협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대신, 먼저 조용히 대안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7). 이것은 즉흥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매사에 계획성을 갖고 행동하는 느헤미야의 인물됨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지도자들을 불러 그들의 책임을 추궁합니다. 여기에서 ‘귀족들과 민장들’은 성벽 공사에 함께 참여한 공동체의 지도자들입니다(4:14,19). 그들의 잘못은 형제들에게서 높은 이자를 취했다는 것입니다(7). 느헤미야는 그들의 행동을 ‘형제를 파는 행위’로 간주하면서 강한 어조로 비판합니다(8).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합니다(출 22:25; 레 25:35-38; 신 23:19-20;24:10-13). 그 근거는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느헤미야는 거듭 귀환민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귀환민들이 회복된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이 자리합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귀환민들은 언약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9).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서의 삶). 그리고 그 삶은 지금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형제들에게 돈과 양식을 빌려주고 이자 받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사례를 들어 백성들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준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주었지만, 이자를 받지 않았음을 알립니다(10). 느헤미야는 스스로 본을 제시하면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에 동참하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3)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11-13)

 

느헤미야는 이어서 백성들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만약 동포들에게 돈을 꾸어주며 부동산(밭, 포도원, 감람원, 집)을 담보로 잡았으면 당장 돌려주고 이자(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1/100)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11). 여기에서 1/100은 월 1%나 연 12%의 이자를 의미합니다. 느헤미야의 권고에 대해 백성들은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12a). 즉, 이자도 받지 아니하고 담보로 잡은 것도 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 말을 이자와 더불어 모든 빚을 탕감해주는 것으로 해석하여 ‘돌발적인 희년’의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합니다(Blenkinsopp). 느헤미야는 이들이 후에 마음이 변해 자신들이 한 약속을 어길 것을 염려하여 제사장들을 불러(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합니다(12). 이것은 하나님을 이 약속의 증인으로 세우는 의미를 지닙니다. 느헤미야는 이어서 그들이 만약 자신들이 한 약속을 어길 경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경고합니다(13a). ‘옷자락을 터는 것’은 이 약속을 어긴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저주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Breneman; 참조. 행 18:6). 이에 대해 그 자리에 있는 회중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본문(13b)은 백성들이 자신들이 말한 대로 실천했음을 알립니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는 허물어진 성벽과 함께 금이 간 공동체의 장벽도 보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서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집(성전)을 세우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느헤미야의 개인적인 모범(14-19)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이신 주님께서는 먼저 걸어가신 길입니다. 죄 문제를 분명히 지적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주셨습니다. 주님 닮은 귀한 지도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강압이 아니라 솔선수범으로 백성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참된 지도자입니다.

 

14○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6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17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19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4-19)

 

느헤미야와 동료들은 바벨론에 유배 중이던 자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지도자들은 도리어 돌아온 자들을 다시 종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며, 대적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고 우리끼리 사랑하지 못하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면 세상이 믿을 리 없습니다.

 

(1) 느헤미야의 사역 회고(14)

 

이 단락은 느헤미야가 총독 재임 기간에 보여준 지도력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다룬 내용이 성벽 재건 때의 위기에 대한 느헤미야의 대응이라면, 이후의 내용은 12년의 총독 재임 기간 동안 느헤미야가 보여준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 단락은 후에 느헤미야가 앞에서 언급한 사건을 회고하면서 기록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앞 단락에서 자신과 백성들이 한 맹세(12)를 스스로 어떻게 지켜 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의 임명을 받은 총독으로서 예루살렘을 찾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합니다(14).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20년부터 32년(주전 445-433년)까지 12년 동안을 유다도 총독의 자격으로 사역하게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총독은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총독들은 이 세금을 가족들과 종들의 생계비와 외교적인 목적으로 사람을 접대하는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Breneman).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이 기간 동안 총독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이러한 특권을 기꺼이 포기했음을 밝힙니다(14b).

 

(2) 느헤미야의 섬김의 지도력(15-18)

 

느헤미야는 자신의 관리들과 함께 온 힘을 기울여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세금을 못 내거나 빚을 갚지 못할 때, 총독의 권한으로 그들의 땅을 구입하지도 않았습니다(16,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느헤미야의 이러한 통치 행위는 이전의 다른 총독들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포도주와 은 40세겔의 세금을 거두어들였습니다(15). 은 한 세겔이 보통 노동자의 나흘 치 품삯인 것을 생각할 때, 은 40세겔은 상당한 액수입니다. 거기다가 총독 밑에 있는 신하들마저 백성들을 압제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임을 밝힙니다(15). 앞에서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할 것을 권고했는데, 스스로 본을 보인 것입니다. 17절은 당시 느헤미야가 접대를 베풀었던 사람들을 밝히는데, 그들은 유다 사람들, 민장들 150명, 그리고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느헤미야에게 나아온 자들입니다. ‘주위에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은 페르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관리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매일 상당한 양의 양식이 필요했습니다(18).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이 모든 비용을 개인 재산으로 충당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렇게 한 이유는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18b).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백성들이 세금에 대한 부담까지 지는 것은 너무 과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형편을 헤아리는 느헤미야의 세심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참조, 요일 3:17). 느헤미야의 이러한 희생은 한편으로 백성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 그리고 또 한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느헤미야는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3) 느헤미야의 기도(19)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이 단락을 마칩니다(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와 유사한 기도가 느헤미야서의 끝부분에도 등장합니다(13:31). 느헤미야의 기도는 일부 주석가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행동에 어떤 보상을 바라는 마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단지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증인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McConville).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참조. 히 11:6).


느헤미야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도자였다. 권력을 남용하는 이전 총독들과 달리 그는 백성이 질 부담을 염려하여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헌신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 백성의 재건이었지 자기 아성 쌓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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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4-01)


성벽 건축에 방해받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4장 1절-5장 5절


 

거룩한 일일수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 하여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도 마찬가지, 걸림돌을 넘어야 해고, 방해 세력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넘고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외적인 방해와 내적인 위기를 소개합니다. 1차 귀환 이후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적들(그 땅의 백성들)의 반대가 있었듯 성벽 재건에도 산발랏과 도비야를 중심으로 한 적대자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힙니다. 외부세력의 방해와 더불어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또 하나의 방해 요소로 등장합니다.

 

재적들의 반대(1-8)

승리를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은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입니다. 비웃음은 식중독처럼 사람을 힘 빠지게 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한 첫 방법은 비웃음이었습니다. 사악한 비웃음을 앞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비열한 비웃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의연한 기도뿐입니다.

 

1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1-8)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인물로 산발랏이 등장합니다(1). 그는 귀환 공동체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와 조롱으로 반응합니다(1b), 히브리어 구문은 분노하는 동작을 묘사하는 두 개의 동사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산발랏의 격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산발랏은 이전에도 암몬 사람 도비아와 함께 찾아와 느헤미아를 조롱하고 협박했던 인물입니다(참조 2:10,19). 산발랏은 자신의 군대(2a, ‘사마리아 군대')를 동원하여 군사적인 시위를 하며 위협을 가합니다(2), 산발랏에 이어 암몬 사람 도비야가 나서서 유다 사람들을 조롱합니다(3). 도비야는 유다 사람들과 그들이 하려는 시도(성벽 재건)를 비아냥거리며 조소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위협과 조롱에 대해 느헤미야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4).

느헤미야의 기도(4b-5)의 내용은 시편의 탄원시(시편 17, 54편)나 저주시(시편 35, 38, 39, 09, 83, 109, 137편) 혹은 예레미야의 기도(예레미야 11:18-20; 15:15; 17:18; 18:19-25)를 연상케 합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조롱과 욕설이 그들에게 돌아가길 기도하면서(4),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에 이 문제를 맡깁니다(5a).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동으로 간주합니다(5b), 대적들의 방해에도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공사를 진행해 나갔고, 짧은 시간에 상당한 진척을 이루게 됩니다(6).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간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의 대적들은 다같이 모여 또 다른 음모를 꾸밉니다(7). 아라비아 사람, 암몬 사람, 아스돗 사람들도 대적들의 무리에 합류합니다(7).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해 있어(북쪽: 산발랏, 동쪽:도비 야와 암몬 사람, 남쪽: 아라비아 사람들, 서쪽:아스돗 사람들), 예루살렘이 대적들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주위의 대적들은 모두 예루살렘 중심의 유다 공동체가 재건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을 치고 요란하게 할 것을 결의합니다(8). 조롱이나 협박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직접 행동으로 성벽 재건을 저지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참조, 시편 2:2).

 

느헤미야와 공동체의 대응(9-23)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세력이 침공한다는 소문이 백성 사이에 펴져 나갑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을 향한 두려움을 이기는 첩경은 하나님을 행한 두려움입니다.

 

9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14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15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16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21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9-23)

 

상황을 알아차린 느헤미야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고(9a), 곧바로 대응책을 강구합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해 파수꾼을 세워 주야로 방비하게 합니다(9b). 한편 대적들의 계략이 알려지자 공동체 안에 동요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대적들이 금방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소식(11)은 공동체 내부에 위기의식과 좌절감을 불러일으켜, 백성들로 하여금 공사를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지게 합니다(10b). 느헤미야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이제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불평, 패배 의식, 내부 분열이라는 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두 차원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갑니다.

첫째는 다가오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칼과 창으로 무장한 민병대를 편성하는 것입니다(13). 의도적으로 적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인 성벽 뒤 낮고 넓은 장소에서 군대를 소집합니다. 둘째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14).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싸우도록 합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대적들을 상대로 거룩한 전쟁을 치를 군대를 소집한 것입니다(참조, 신명기 20장). 느헤미야의 전략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의 신속한 대응으로 자신들의 시도가 실패할 것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계획을 철회합니다(15a). 본문은 이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힙니다(15b). 이것은 이전에 느헤미야가 했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합니다(참조 9). 이후에도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다양한 조치를 취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사병들)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성벽 공사에 참여하게 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무장한 상태로 현장을 지키게 합니다(16),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도 무장한 상태에서 일하도록 하고(17a), 나팔수를 두어 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신호 체계를 세웁니다(20). 이것은 마치 옛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참조, 민수기 10장). 구약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며, 거룩한 전쟁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참조. 사사기 3:27). 나팔 신호를 통해 느헤미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의 싸움이 거룩한 전쟁임을 상기시키려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대응은 효과적이어서 전에 낙심했던(10b) 백성들이 이제 다시 일어나 공사에 참여하게 됩니다(21). 느헤미야는 그의 형제와 신하들과 더불어 공사를 마칠 때까지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물을 길으러 갈 때도 무기를 지니고 다녔습니다(23). 이 단락에 묘사된 느헤미야의 대응 장면에는 거룩한 전쟁의 용어와 사상이 나타나 있는데, ‘대항할 능력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들의 모습’(9-10),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대적들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장면’(15),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것’(19-2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고백’(20b) 등입니다. 옛적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도력 하에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전쟁을 치름 같이 느헤미야는 귀환 공동체를 위협하는 대적들을 향해 거룩한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공동체 내의 위기(5:1-5)

승리로 가는 길에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필요한 싸움이라면 피 흘려 싸우는 용기 있는 백성입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백성들은 한 손으로 일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았습니다. 경고의 나팔도 준비하여 언제든지 전투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1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1-5)

 

5장은 느헤미야와 귀환 공동체가 경험했던 또 하나의 위기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빈곤으로 인한 공동체 내부의 분열입니다. 4장이 공동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는 이야기라면, 5장은 공동체 내부의 위협을 극복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유다 지역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당시 유다 지역의 흉년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입니다(3). 느헤미야가 귀국할 당시 이미 흉년으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는 주위 민족들의 적대감으로 인한 유다 지역의 고립입니다. 이로 인해 유다와 인근 지역 간 상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이는 물자 부족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셋째는 공사 진행과 예루살렘 이주 정책(참조, 4:22)으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수확량 감소와 양식 부족 현상을 초래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부자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하여 부를 증대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면서 공동체 내부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1). 여기에 ‘아내들’까지 나선 것은 당시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 의미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한 ‘그들의 형제 유다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 있는 부유한 계층을 말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원망의 내용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1) 부양가족이 많은 백성들의 식량 부족 문제(2), (2)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밭과 재산을 저당 잡혀야 하는 경우(3), 세금 때문에 진 빚과 인신매매(4-5). 이러한 것들은 공동체 내부 결속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외부의 압력을 잘 이겨내며 과업을 진행하던 느헤미야에게 공동체 내분이라는 복병이 나타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사회-경제적 불평 등으로 생긴 내부의 불평, 원망의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공동체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길은 험난할 수 있지만, 그 길은 반드시 승리로 귀결됩니다. 그 길에 참여하는 자들은 비웃음과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또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바쳐 싸울 각오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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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3-01)


백성들과 함께 재건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3장 1-32절


 

위대한 사역이 시작됩니다. 느헤미야와 함께한 백성이 팔을 겉어붙이고, 한 마음으로 성벽 재건에 나섭니다. 수많은 이름들이 각자에게 합당된 부분을 힘써 재건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 본문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소개하는 기사로 성벽 재건 공사는 성벽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 시작합니다. 성벽 재건 소개는 이어서 옛 문과 골짜기 문이 위치한 서쪽 성벽으로 옮겨갑니다. 남쪽 성벽 공사는 분문과 샘문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끝으로 동쪽 성벽 공사는 수문에서 함밉갓 문을 지나 처음 출발했던 양문에 이릅니다.

 

성벽 공사(1-32)

성벽 재건은 이스라엘 전체가 연합하여 한 사역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들에게 자기 집 가까운 곳에서 일하도록 작업을 지시합니다. 이는 일할 맘을 불러일으키고 소요시간을 줄이며, 대적들이 공격할 경우 일한 곳과 가족을 쉽게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1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6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8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12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3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14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15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16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17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18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19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20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21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22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23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24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25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26(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27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28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29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30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1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32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1-32)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목록은 성벽 주변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방식으로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연속적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출발점인 양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1) 북쪽 성벽 공사(1-5)

 

북쪽의 성벽 공사는 성전 구역과 가까운 ‘양문과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넬 망대’에 이르는 구간을 건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전과 인접해 있어 성벽 공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 구간은 제사장 그룹이 담당하고 대제사장이 직접 지휘를 합니다(1a).

1절에서 대제사장으로 소개된 엘리아십은 1차 귀환 시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 공사를 담당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입니다(느 12:10). 양문 건축 과정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참여한 것과 공사 직후에 봉헌식을 거행한 것(1b, ‘건축하여 성별하고’)은 이 구역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은 이어서 함메아 망대와 하나넬 망대를 보수합니다(참조, 느헤미야 12:39). 이 두 망대의 위치는 분명치 않지만, 양문과 어문(Fish Gate) 사이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스니아의 자손들이 건축한 어문은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문으로 이곳에서 수산시장이 열려 두로 사람들이 어류를 가져다가 이곳에서 팔았던 것 같습니다(참조. 느헤미야 13:16).

 

(2) 서쪽 성벽 공사(6-13)

 

성벽 재건의 방향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서쪽 성벽 공사와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서쪽 성벽 공사 단락은 ‘옛 문(Old Gate)’에 대한 건축 보고로 시작합니다. 옛 문은 히브리어로 ‘샤아르 하예샤나’의 번역으로 ‘옛날 성읍의 문’을 줄인 말입니다. 이 문은 히스기야 왕 때 확장된 예루살렘 제2구역과 연결됩니다(열왕기하 22:14; 스바냐 1:10).

이 지역의 공사에는 기브온, 메르놋, 미스바 사람들이 참여했는데(7), 기브온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가나안 원주님이었던 히위 사람의 후손으로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여호수아 9장). 이들은 비록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실하지만, 그 이후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여 성소의 일을 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 존재가 됩니다. 기브온 거민들은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공동체에 흡수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역 공사에 상인 조직들인 금장색(금은 세공업자)과 향품 장사(향품 제조업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입니다(8). 금은 세공업자들은 이외 다른 성벽 공사에도 참여합니다(31-32). 이것은 성벽 재건 공사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입증합니다.

하눈과 사노아 주민은 협력하여 골짜기 문을 세우고 분문(Dung Gate)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합니다(13). 13b절의 분문(Dung Gate)은 예루살렘 남쪽의 힌놈의 골짜기(인신제사를 드리거나 오물을 태우는 곳)로 가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신약성경에서 지옥을 의미하는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나온 용어다).

 

(3) 남쪽 성벽 공사(14-15)

 

서쪽에 이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남쪽 성벽의 재건과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록을 소개합니다. 이 지역에는 두 개의 성문이 세워지게 됩니다. 남쪽 끝에 위치한 분문(Dung Gate)은 벧학게렘 지방의 책임자인 말기야가 중수하였습니다. 예레미야 6:1에 의하면, 벤학게렘은 예루살렘, 드고아와 함께 베냐민 성읍으로 소개됩니다.

다음으로 샘문(Fountain Gate)은 미스바 지방 행정 책임자인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합니다. 샘문은 엔로겔 샘으로 가는 문으로 엔로겔은 힌놈 골짜기와 기도론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서 약 200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4) 동쪽 성벽 공사(16-32)

 

3장의 목록은 끝으로 동쪽 성벽의 재건과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이 지역은 전에 느헤미야가 말에서 내려 도보로 둘러보았던 지역입니다(참조 2:14-15). 이 부분에서는 가옥이나 건축물의 재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개인 주택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20-21, 23, 아사랴의 집, 제사장들의 집, 사독의 집, 므술람의 집, 성전 봉사자들과 상인들의 집).

느헤미야는 주택 소유자들에게 맡겨 스스로 보수하게 하여 이 공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합니다. 예외적으로 대제사장의 주택은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21절)이 보수하는데, 므레못은 바룩과 함께 제사장으로 소개됩니다(참조. 느 10:1-8). 성전 언덕 부근에 위치한 대제사장의 저택은 견고하고 규모가 컸기 때문에 다른 제사장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벨에 거주한 느디님 사람들은 동쪽 수문을 세웁니다(26). 오벨은 느디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장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노예가 된 사람들의 자손으로 알려지는데, 에스라 2장의 목록에 의하면 포로기 이후에 수백 명의 느디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참고. 에스라 2:43-54).

수문(Water Gate)은 성읍 내의 왕궁과 성전 단지로부터 기혼 샘을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수문(Water Gate)이라는 이름은 기혼 샘에서 물을 길어 오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라는 데서 유래합니다(느헤미야 8:1,3,16; 12:37), 28절의 마문(Horse Gate/Guard Gate)은 기마대들이 왕궁을 출입할 때 이용했던 문인 것 같습니다(참조, 역대하 23:15; 열왕기하 11:16; 예레미야 31:40). 이 문은 예루살렘 성전 동쪽 성벽에 위치해 있고, 이 지역에 제사장들의 주거지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28절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29절에 소개된 임멜의 아들 사독은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제사장으로 소개됩니다(참조. 에스라 2:37; 느헤미야 10:21). 31절의 ‘함미갓 문’은 ‘점호 문’(Inspection Gate/Muster Gate)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 문은 느헤미야 12:39에서는 감옥 문과 동일시 됩니다. 이 문은 성전 구역 내 북쪽 내벽에 세워져 있고, 양문과 인접해 있었습니다. 이 문앞 광장에서 성전 혹은 왕궁 수비대의 조회나 점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참조, 역대하 32:6). 끝으로 동쪽 성벽 공사의 마지막은 성루에서 양문까지의 구간을 건축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벽 재건 공사 목록은 양문 건축으로 시작하여 양문 건축에 대한 언급으로 끝맺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에 대한 안내는 양문으로 시작해서 양문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성벽과 성문 재건자들의 목록을 소개하는 3장은 느헤미야가 뛰어난 기획력과 행정력을 지닌 인물(organizer)임을 보여줍니다. 본문에는 사십 개가 넘는 공사구간과 열 개의 성문이 언급됩니다. 열 개의 성문 가운데 보수된 성문은 여섯 개로 소개됩니다(1,3,6,13,15).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고 성문을 세우는 작업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일꾼들을 조직하고, 재원을 조달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받아 이 과업을 지혜롭게 처리해 나갑니다.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에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3장은 성벽 재건과 관계하여 최소한 열두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즉, 제사장들(1,22,28), 여리고 사람들(2), 미스바와 기브온 사람들(7), 전문 직업인들(8, 31, 32), 성읍 관리들(12, 16, 17, 19), 여인들(12), 하눈과 사노아 사람들(13), 레위 사람들(17), 성전에서 봉사하는 느디님 사람들(26), 드고아 사람들(5,27), 문지기들(29), 상인들(32)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한 대표자만 해도 75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스룹바벨 당시 자신들의 조상들이 기쁨으로 성전 재건의 일에 헌신했던 것처럼(에스라 3장), 자발적으로 일 일에 참여했습니다(참조 4:6b).

저자는 이를 통해 성벽 재건이 귀환 공동체 전체가 참여한 사역이며, 이 일로 인해 백성들은 성벽을 쌓아 올리면서 그동안 무너져 내렸던 신뢰와 화합이이라는 벽돌도 쌓아 올렸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벽 재건은 공동체의 연합을 이루게 된 기회로 작용한 것이며, 그 배후에 지도자 느헤미야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특히 준비된 일꾼을 쓰십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동역, 그리고 방해 앞에도 흔들린 없는 귀한 일꾼이 우리 안에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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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2-01)


주께서 사용하신 느헤미야

느헤미야 2장 1-20절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앞 장에서 왕의 힘을 통해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려고 주의 도우심을 구했는데, 주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니다. 주님이 느헤미야를 회복의 일꾼으로 쓰기로 하신 것인비다. 주께서 쓰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 아닥사스다 왕은 술 관원인 느헤미야가 얼굴에 수심이 있음을 보고, 그 이유를 물은 다음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을 중건할 것을 허락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이 소식을 들은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가 근심합니다. 느헤미야는 몇 사람을 데리고 은밀히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한 다음 성 재건에 대한 계획을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알립니다. 이에 대해 산발랏, 도비야, 게셈이 함께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업을 방해합니다.

 

느헤미야의 귀환(1-10)

기도의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중하면서도 용의주도하게 필요한 것을 간구하여 응답합니다. 기도한 후 두 손 놓고 기다리는 것보다 도우시고 인도하실 하나님을 크게 신뢰하고 하나님의 때와 행동을 잘 분별하기를 원하십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한 지 4개월 만에 기회를 주셨습니다.

 

1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2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4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9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10)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신중하면서도 용의주도하게 필요한 것을 왕께 요구하여 얻어 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회복의 한 중심에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기도했습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1-8)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한 후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간 때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로 언급됩니다. 니산월은 페르시아 월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달로 이때 신년 축제가 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는 느헤미야가 고국에 대한 소식을 들은 때(기슬르 월, 1:1)로부터 약 넉 달 정도 지난 시점이 됩니다. 느헤미야는 그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아닥사스다 왕이 잔치를 벌이게 되자, 술 관원인 느헤미야가 왕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왕들은 정기적으로 특별한 잔치를 벌이곤 했는데, 때로 그 자리에서 호의를 베푸는 일들이 있었습니다(Herodotus 9.110). 그때 느헤미야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아닥사스다 왕 앞으로 나아갑니다. 평소와 다른 느헤미야의 표정을 금방 알아차리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 연유를 묻습니다(2). 느헤미야가 그동안 기회를 보다가 신년 축제가 있는 날을 택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술 관원이 안색이 좋지 않은 상태로 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였다’(2b)라고 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금식한 후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간 것과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질문을 기회로 삼아 예루살렘의 안타까운 형편을 아룁니다(3b).

느헤미야는 왕에게 예루살렘의 형편과 동족들에 대한 연민으로 인한 자신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 요청에 대해 호의로 반응합니다(‘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4a). 이 질문은 선왕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한 질문을 연상케 합니다(참조. 에스라 4:8). 하나님의 손길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느헤미야는 곧바로 하나님께 짤막한 기도를 올립니다(4).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때를 위해 지금까지 기도로 준비했고, 이 순간에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최대한 경의를 표하며 자신의 요구, 즉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유다 땅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을 재건하는 일을 허락해줄 것을 아룁니다(5). 에스라서에 의하면(4:11-21) 아닥사스다 왕은 이전에 칙령을 내려 예루살렘 성읍 재건을 중단시킨 장본인입니다. 그가 스스로 선포한 칙령을 번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때문에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왕 앞으로 나아갈 당시 왕후가 왕 곁에 있었음을 밝힙니다(6). 이것은 모든 상황이 느헤미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어서 느헤미야에게 여행에 소요되는 기간을 묻습니다(6b). 이것은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요청에 호의적으로 반응함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체류의 기한을 알리는데, 본문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서 문맥에서 이해할 때(특히 5:14와 13:6), 그 기한은 12년인 셈입니다. 느헤미야는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왕에게 요청합니다(7-8). 가장 우선적인 것은 느헤미야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왕의 친서입니다(7,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지나가야할 강 서편 지역의 총독들이 인정해줄 수 있는 보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는 성읍 재건에 사용될 목재를 조달받을 수 있도록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공문서를 내려줄 것을 요청합니다(8a).

 

(2) 느헤미야의 여정(9-10)

 

본문은 ‘왕의 삼림’이 있던 지역을 밝히지는 않지만, 당시 목재 원산지였던 레바논일 가능성이 큽니다(참조 에스라 3:7). 느헤미야의 요청에 대해 왕은 호의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셨음을 고백합니다(8b). 느헤미야는 모든 상황에서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호의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9a). 이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군대의 호위를 받지 않고 귀환한 것과 대비를 이룹니다(비교. 에스라 8:21-23). 그렇지만 이것도 느헤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직접 귀환민들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페르시아 군대를 통해 지키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 일행이 지나온 길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들은 수산을 출발하여 바벨론, 다마스커스 그리고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심히 근심합니다(10). 이들은 앞으로 느헤미야의 성읍 재건 사업을 방해하게 될 핵심 인물들입니다. 또 다른 대적인 도비야는 요단 동편 암몬 지역의 총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서의 증언에 의하면, 도비야는 유다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고(참조 6:17-19), 제사장과도 친분이 있어 성전 안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13:4-7).

 

귀환 후의 사건들(11-20)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조롱과 업신여김을 쏟아 놓습니다. 그릇된 여론을 조성하여 협박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먼저 계획하셨고, 또 때를 정하여 허락하셨으니 꼭 형통케 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또한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11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17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11-20)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3일 동안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곧장 왕에게 받은 권한을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귀로 듣던 예루살렘의 참담한 현실을 남몰래 눈으로 확인합니다. 느헤미야는 강요하지 않고 올바른 현실인식과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백성을 설득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백성에게 직접 확인한 성의 절망적인 상황을 환기시킴으로써 변화를 향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1) 야간 답사(11-16)

 

2장의 후반부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귀환한 직후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개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3일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12a). 그는 오랜 여정 이후 지친 심신을 회복하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얻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직후 예루살렘 방문 이유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조용히 행동하기 시작합니다(12b). 그는 밤중에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둘러봅니다. 이렇게 한 배경에는 전에 대적들의 방해로 에스라가 주도했던 성벽 재건이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한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일행은 골짜기 문에서 출발해서 용정, 분문, 샘문, 왕의 못까지 갔고 그곳부터는 길이 없어 계곡을 따라서 성벽을 살핀 후 다시 골짜기 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13-15). 본문에 나오는 명칭을 근거로 추측해보건대, 그들은 대략 예루살렘 성읍 서쪽에서 출발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동쪽에 도착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과 일행이 그날 밤에 했던 일에 대해서 비밀에 부칩니다(16).

 

(2) 느헤미야의 결단과 백성들이 동의(17-18)

 

느헤미야가 자신의 행적을 비밀에 부친 이유는 당시 유다 귀인들과 민장들이 대적들과 결탁한 정황과 관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후에 느헤미야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이제야 비로소 백성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을 밝힙니다(17). 그리고 그는 계획했던 일들을 신속히 처리해 나가기 위해 백성들의 지지를 호소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하심(‘하나님이 선한 손’)을 간증하고, 그것이 어떻게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밝힙니다(18).

 

(3) 대적들의 비웃음(19-20)

 

이 소식은 대적들인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귀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산발랏과 도비야와 함께 소개된 게셈은 아라비아 부족의 족장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사방의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일행이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반역적인 일이라고 협박하면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성읍 재건의 과업을 포기하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용기를 얻습니다(20,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느헤미야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이며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확신합니다(참조, 빌립보서 1:6).


주님을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특히 준비된 일꾼을 쓰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치밀하게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일하는 기쁨을 경험해보았습니까? 아니면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시고자 할 때, 마음도, 계획도, 기도도, 믿음도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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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01-01)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1장 1-11절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댐 건설로 수몰된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마을을 보면서 눈물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생 동안 살아온 집이 무너지고 마을이 사라져갈 때, 추억들이 사라져간 것입니다. 많은 집들이 무너져 퇴락되게 변했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많이 아플 것입니다.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담긴 시골 고향을 가보면, 집들이 하나하나 폐허로 변하고 무너져 내려져 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집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추억이 무너진 것입니다. 무너진 터를 보면서 어릴 적 추억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매우 아파 옴을 느낍니다.

 

  • 본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의 소식을 슬퍼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멀리 이국땅에서 성공한 사람이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고향을 향해 있었습니다. 폐허된 고향의 모습을 듣고 괴로워했던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Nehemiah)입니다. 그는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향한 영적인 지도자를 찾고 계심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도자가 당신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봄(1-3)

믿음의 선진들이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노아도 그의 약속을 따라 방주를 만들었고(창세기 6장), 아브라함도 그의 약속을 따라 이삭을 드렸고(창세기 22장), 다윗도 그의 약속을 따라 인내했습니다.

 

1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1-3)

 

느헤미야의 몸은 대제국의 궁전에서 안락했지만, 그의 마음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소식을 먼저 물었으며,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마음도 무너졌고 새까맣게 탔습니다.

 

(1) 역사적인 배경(1)

 

느헤미야서는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로 시작합니다. 다음으로 이 책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설정하는데, 원문은 ‘제20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간 중에 있었는데’로 되어 있습니다. 2장 1절에 가서야 비로소 20년의 통치 기간의 주체가 아닥사스다 왕임을 밝힙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 7:1에서 이미 언급되어 느헤미야 1:1은 왕의 이름을 생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서로 연결된 책임을 암시합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은 주전 445년으로 에스라가 귀환한지 13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당시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 궁’은 페르시아 왕이 겨울철을 보내는 장소로 페르시아의 겨울철 수도와 같은 곳입니다.

 

(2) 예루살렘이 대한 소식(2-3)

 

느헤미야의 직업은 바벨론에서 왕을 시종 드는 사람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의 방문을 받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습니다(2). 그들은 에스라-느헤미야서 문맥상 바벨론 포로에서 귀화한 유다 공동체나 포로로 끌려오지 않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가 들은 소식은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입니다(3b). 에스라 4:11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읍은 아닥사스다 왕 때,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재건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이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2차 귀환(주전 458년) 후 에스라를 중심으로 성읍 재건의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성읍 재건은 대적들의 반대로 중단되었고(에스라 4:12-23),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훼파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귀환 공동체의 성벽 재건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느헤미야는 형제들을 통해 이 계획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4-11)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시각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연약한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비참한 조국의 소식을 들고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4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4-11)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한 백성들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거룩한 약속의 땅입니다. 거룩한 땅이 더러운 이방인들이 침략의 발로 거룩한 것을 짓밟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아십니까?

 

(1) 슬퍼하는 느헤미야(4)

 

하나나를 통해 고국의 비참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본문에서는 네 개의 연속된 동사(‘울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여’)를 사용하여 느헤미야의 안타까운 심정과 슬픔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절망과 슬픔 속에서 느헤미야가 한 일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2) 기도하는 느헤미야(5-11)

 

느헤미야서 안에는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전체 아홉 개), 본문은 그중 첫 번째입니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고, 느헤미야의 지도력의 원천이 기도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기도는 공동체의 탄식시를 연상시키며(참조, 시편 74, 79, 80, 85편 등),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느헤미야의 깊은 통찰력을 잘 보여줍니다.

본문에 소개된 느헤미야의 기도는 ①하나님을 부름(5), ②간구(6), ③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백(6b-7), ④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호소(8-9), ⑤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백(10), ⑥백성과 자신을 위한 기원(11)의 순으로 구성됩니다. 기도의 분석해 보면, 오늘 기도와 동일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기도의 구조는 찬양, 회개, 감사, 간구 등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부름(5)

느헤미야의 기도는 먼저 하늘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5a).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사람들이 신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이 하늘을 지배한다고 믿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칭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하늘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참고, 창세기 24:7).

본문은 이어서 느헤미야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줍니다(5b). 그가 믿는 여호와는 ‘크고 두려우신 분’이며,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의 공이로우신과 신실하심, 그분의 긍휼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균형 잡힌 신관(神觀)을 엿볼 수 있습니다.

 

② 간구(6)

이어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6).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부릅니다(6a). 느헤미야의 기도에 나오는 ‘주의 종’이라는 표현(6, 8, 10)은 그가 귀환민들을 여호와의 언약백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고레스 왕 때부터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언약의 회복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③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백(6b-7)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흩어지게 된 이유를 하나님께 대한 범죄 때문이라고 밝힙니다(7a, ‘크게 악을 행하여’; 참조. 신명기 4:26-27). 이스라엘이 범한 ‘큰 악’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것으로 요약됩니다(7-8). 7b절에서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들(‘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을 사용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④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호소(8-9)

8절에서 포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제시한 ‘범죄’는 언약 파기를 암시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마알은 언약적인 개념으로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행동을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과 언약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과 맺은 언약 파기로 나아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에 충실한 삶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가 지속되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참고.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9절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주제로 바뀝니다. 본문에 의하면, 회복의 군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 즉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이라는 주제는 느헤미야의 기도의 핵심으로 기도문 전체 구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A. 하나님의 부름과 간구(5-6a)

    B. 고백(6b-7)

       X.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에 호소(8-9)

   B′. 고백: 하나님의 백성(10)

A′. 하나님의 부름과 기원(11)

 

9b절의 약속의 말씀은 신명기 30:49의 말씀 인용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참조, 열왕기상 8:50). 신명기 30장은 모세를 통해 주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백(10)

느헤미야는 이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귀환민들을 가리켜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라고 칭합니다(10; 참조, 신명기 9:29).

 

⑥ 백성과 자신을 위한 기원(11)

신명기 인용을 통해 느헤미야는 고대 이스라엘과 귀환민들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냅니다. 귀환민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남은 자들’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끝으로 백성들과 자신을 위한 기원으로 마무리됩니다(11). 여기에서 그는 귀환민들을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이라고 언급하면서 여호와의 종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11b절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는 느헤미야 자신을 위한 간구입니다.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요청은 곧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왕이 자신의 요청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자신의 직책이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음을 회고합니다(11c). 이 구절은 문학적으로 술 관원으로서의 느헤미야의 모습을 묘사하는 2:1과 자연스럽게 연결 됩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타까운 소식을 통해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길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이 회개하고 기도할 때, 어려운 환경에서 회복되어지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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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 서론


느헤미야서 개론

-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 -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와 함께 바벨론 포로기 이후 귀환 공동체의 재건과 주제로 합니다. 에스라서가 성전 재건과 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느헤미야서는 성벽 재건과 공동체 회복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에스라서가 총독과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를 중심인물로 소개한다면, 느헤미야서에서는 총독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두 책을 연결해서 읽으면 전체 흐름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벽의 재건으로 정체성 회복에서 공동체의 회복으로 주제가 확대되며 발전하는 도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전통적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한 권의 연속된 자료로 읽혔습니다(맛소라 사본은 두 책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는다).

 

느헤미야서의 저자

느헤미야가 본서의 저자라는 데는 큰 이의가 없습니다. 특히 본문에 나타난 주어의 대부분이 1인칭인 것은 느헤미야 자신이 저자임을 가리킵니다. 자신을 3인칭으로 언급하는 곳도 있으나(8:9; 10:1; 12:26,47) 같은 시대의 다른 인물들과 함께 자신을 열거하면서 지난 날 자신의 행적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의 수산 궁에서 술 따르는 일을 맡은 관원으로서 영향력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주전 465-424년). 그의 이름 끝자인 ‘야’는 그의 가족이 유다 정통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느헤미야 1:1). 주전 444년에 친척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겪고 있는 참상을 전해 듣고 슬퍼하며 수심에 가득 차 있던 중 왕의 허락을 받아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습니다(느헤미야 1:1-2:8).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에의 충성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위하여 백성들과 동고동락합니다. 담력과 지혜, 겸손과 신념, 불타는 애국심과 경건한 신앙심을 갖춘 지도자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큰 사역을 마친 뒤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 책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저작 연대

본서의 사건들은 대략 주전 445-425년경에 일어난 일들로서, 느헤미야가 총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저작 연대는 대략 주전 42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느헤미야의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서는 고레스 칙령으로 첫 번째 귀환 행렬이 있은 후(주전 538년), 약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책의 중심인물인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기 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주전 465년부터 주전 424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에스라-느혜미야서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해 호의 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녠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 행렬이 고토 로 돌아오고(에스라 7-10장), 이로부터 13년 후 아닥사스다 통치 20년(주전 445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3차 귀환 행렬이 이어집니다(느헤미야 2:1). 귀환 후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있으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공동체를 재건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이후 느헤미야는 잠시 페르시아를 다녀온 후 두 번째 공동체 개혁을 추진해 나갑니다(느헤미야 13장).

 

느헤미야의 기록 목적

본 느헤미야서의 기록한 목적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3차 귀환의 과정과 성벽중건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하여,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과 종교적 정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이에 대한 인간의 복종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주요 내용

본서에 나타난 주요 내용은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충성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더불어 민족의 상징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원수들의 갖가지 조롱과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건축하라는 나팔소리는 결국 승리의 환호로 이어져, 죄악으로 인해 허물어졌던 성벽이 갖은 고초 가운데서 재건되었습니다. 이는 포로 후의 새 출발에 있어서 새 삶의 터전이 되었고, 또한 신앙의 증거로서 후대에 큰 귀감이 되었다

느헤미야는 이전 자기 민족의 멸망과 포로생활의 고난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한 범죄의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율법의 회복과 거룩한 말씀에 대한 충실한 해석 및 준행에 그의 정성을 기울여 강력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특히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마음 판에 새겨 온전한 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구조

Ⅰ. 성벽재건(1-6장)

  A. 예루살렘의 상황(1장)

  B. 느헤미야의 귀환(2장)

  C. 성벽 재건(3-6)

 

Ⅱ. 포로 귀환민들의 명단(7장)

 

Ⅲ. 공동체 재건(8-13장)

  A. 수문 앞 광장의 모임(8-10장)

  B. 예루살렘 거주민들의 명단(11-12장)

  C. 공동체 재건을 위한 개혁(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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