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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08-01)

    


이스라엘이 차지할 아름다운 땅

신명기 8장 1-10절


살아가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납니다.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래 바람만 일어나는 광야 같은 환경에서 갈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더욱이 지혜로운 백성이라면 역경과 고난을 통해서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은 ‘생명’과 ‘번성’을 위한 길입니다. 여기서 계명 준수는 생사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가나안 족속이 당한 모든 재앙이 자신들의 것이 된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번성과 번영의 복을 노릴 것이며, 그 땅을 점유하며 오래도록 거기에 거할 것입니다. 

 

거친 광야에서의 훈련을 위한 공급(1-6)

광야는 모든 사람들을 겸손하도록 만듭니다. 광야와 같이 어려운 길을 가는 동안 자신의 미약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광야길 가운데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1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1-6)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회상합니다. 그런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⑴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도보로 10여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40년 동안 광야의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모세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기 위함(2a)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2a)고 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다’는 의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단순히 예의 바른 태도를 넘어 자신의 한계를 깨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이며 ‘낮아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뱀과 전갈의 위험이 있고, 농사도 짓을 수 없고, 기온 차가 심하여 생활하기 어려운 광야라는 공간을 통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깨달게 하십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광야 40년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기된 40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으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세대가 지나가도록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잘 준수하는지 지켜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2b)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2b)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 생활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지, 아니면 불순종하는지를 지켜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게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머지않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에 만연한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 앞에 순종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③ 40년 광야를 허락하신 이유(3b)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를 허락하신 이유를, 사람들은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인생임을 깨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b)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훈련소에서 40년 동안 끈질기게 훈련시키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떡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떡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인생입니다.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거듭 그분의 명령을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그것은 사는 길이자 번영의 통로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의 의의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확인하듯이, 40년 광야 기간 내내 그들은 수도 없이 반역과 배교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혹독한 징계를 받았고 모세의 중재를 통해 뒤늦은 회개와 더불어 사함을 얻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이 뻣뻣한 죄의 근성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는 40년도 부족했습니다.

 

⑵ 사십 년 동안의 의식주 공급(3-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로 내몰아 혹독히 훈련하여 낮추시고 시험을 하셨으나, 그들을 향한 은혜를 중단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광야 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과 의식주를 끊임없이 공급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황량한 광야에서 수많은 백성들을 위한 식량 배급은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만나를 공급하심으로써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출애굽 직후부터 공급된 하늘의 식량입니다(출애굽기 16장) ‘만나’의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과 같았습니다(민수기 11:8). 만나는 생김새가 마치 깟(가드) 씨처럼 보이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습니다. 가드는 중동 지역의 식물로 ‘고수풀’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채취해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만나는 시내 반도 일대에 서식하는 타마리스크 나무에서 생기는 분비물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딱지 벌레가 기생하여 분비하는 점액질의 분비물로 몇 가지 측면에서 만나와 비슷합니다. 만나는 다음 날 아침이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기에 이튿날까지 보관이 어려웠는데, 이는 타마리스크 나무 분비물의 특징과도 일치합니다(참조, 출애굽기 16:20).

이 분비물은 주로 자당, 글루코오스, 프루토오스, 점액 등으로 이루어진 단맛이 나는 황색의 액으로, 6-7월경 주로 야간에 분비되고 아침에 고체화되었다가 해가 뜨면 녹습니다. 오늘날 시내 반도에서 여전히 생산되는 이 분비물은 연 평균 산출량이 불과 약 250킬로그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분비물의 양으로는 장정만 60만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일 이것이 만나였다면, 이스라엘을 위한 만나의 공급은 놀라운 기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나는 안식일 전날에 두 배로 채취한 것이 이튿날 안식일까지 변질되지 않았으며(출애굽기 16:5), 그 나무 분비물의 채취 기간은 1년 중 6-7월, 즉 여름의 짧은 몇 주에 불과하지만 만나는 40년간 매일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직후 그들을 극도로 낮추시어 굶주리게 하신 뒤 기적적으로 만나를 공급하셨습니다(출애굽기 16:3-4). 이는 그들로 하여금 과연 자신들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생명을 얻는 길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사는 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극적으로 하늘의 떡을 얻어 목숨을 연명했지만, 그 떡을 주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심을 인식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율법대로, 즉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6:4에서도 이미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면서 강조하셨던 교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늘에서 생명의 만나를 내려 육신을 먹이시는 분은 또한 생명의 말씀을 내려 영혼을 먹이시는 분입니다. 이 교훈은 예수께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면서 사용한 말씀이 기도 합니다(마태복음 4:4; 누가복음 4:4). 또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 내내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과거 라쉬(Rash)라는 유대 랍비는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구름 기둥이 백성들의 옷을 말끔히 세탁해주었고, 아이들의 옷은 마치 달팽이집이 커지는 것처럼 그들이 자라면서 저절로 커졌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의복 한 벌 갖고 40년을 입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옷을 공급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네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표현 역시 발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는 기적을 말하기보다는 지속적인 신발 공급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29:5의 ‘너의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라는 진술에서도 확인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고대에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 지역 사람들이 신발을 신었다는 증거를 제공합니다(창세기 14:23; 출애굽기 3:5;12:11; 신명기 25:9;29:5; 여호수아 5:15;9:5; 룻기 4:7 등). 예를 들어, 여호수아 9:5에 기브온 족속들 모두가 일부러 낡은 신발을 신었다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위한 옷과 신발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만나와 메추라기의 공급처럼 기적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들이 하늘에서 내려진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런 물품들은 외부 집단들과의 교역이나 물물 교환을 통해 조달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듯이 광야의 떠돌이 생활이라 해서 외부세력과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최소한 제사장들이 바친 매일의 소제에 필요한 소정의 밀가루는 외부에서 사들여야 했을 것입니다. 설사 이집트에서 약간의 밀가루를 자져왔다 해도 그 양과 보존 기한을 고려해볼 때 한두 해에 국한될 정도였을 것이고, 40년 내내 필요한 소제의 밀가루는 자체 조달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척박한 광야에서 의식주의 중단 없는 공급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때는,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할 때처럼,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5-6).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광야 훈련소’로 인도하십니다. ‘벌’이 아닌 ‘훈련’을 목적으로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와 같은 어려움과 답답함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시고 계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그곳은 풍요의 땅이겠지만, 가나안 땅이라도 하나님을 잃는다면 그곳은 죽음의 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세상의 떡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서의 풍성한 공급(7-10)

들어갈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소개함으로 가나안 정복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키고, 그처럼 아름다운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7-10)

 

모세는 그 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더욱 상세히 묘사합니다. 그는 그 땅을 가보지 못했지만, 이러한 시청각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과거 정탐꾼들의 상세한 보고를 통해서 얻은 정보였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마 환상을 통해 미리 보여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땅의 골짜기와 산지의 많은 계곡들에 계절 천(Wadi)이 흐르고 ‘분천’, 곧 솟는 샘물들이 곳곳에 산재하며, 깊은 우물들(지하수)도 풍부합니다. 우기와 건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곳에서 이와 같은 지속적인 물 공급은 가장 중요했습니다. 또한 그 땅에서는 밀과 보리가 풍년을 이룹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일대는 무엇보다 과일 농사가 잘되는 땅입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과일들과 생산품은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나무, 꿀이었습니다. ‘감람나무’의 원문은 ‘기름의 감람나무’, 곧 감람유를 의미하고, ‘꿀’은 앞서 6:3과 8:8에서 말한 대로 중동의 대추나무 열매로 제조한 과일 꿀을 가리킵니다. 즉 이 둘은 제조된 농산물품목입니다. 이러한 먹거리들이 그 땅에서 살 때 전혀 부족함 없이 제공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땅에서는 철과 동이 생산됩니다. 이 지역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확장된 약속의 땅의 범위에 들어 있습니다(출 23:30-31; 신 11:25). 따라서 모세는 여기서 지금 당장의 약속의 땅인 요단 동편에 국한해서 풍부한 철과 동의 생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확장된 약속의 땅을 염두에 두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풍년을 이룬 곡식들과 풍성한 과일들을 배부르게 먹으면서, 그러한 옥토를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올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가나안 땅에서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민족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능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으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다가도 그 열정이 금방 식어지는 반면에, 생활이 좀 어려워지면 원망하면서도 오히려 열정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곤 합니다. 이렇게 신앙이 환경에 좌우된다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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