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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06-02)

  


불순종에 대한 경고

신명기 6장 10-25절


성경은 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복’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복권에 당첨’, ‘사법고시 합격’, ‘대기업에 취직’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생각만으로 그친다면, 당신은 이 세상이 말하는 ‘복’만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셔서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과 함께 떠올릴 단어는 바로 ‘생명’입니다. ‘복’은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생명’이 ‘생명’다우면 그것을 복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 하는 과거를 회상해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온갖 축복을 선사하실 미래를 상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풍성한 미래는 의무와 더불어 보장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점유 과정에서 자신들의 능력과 재주로 공헌한 일이 없습니다.

 

복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10-13)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이 되었습니다. 태어난 사람들이 정말 복이 있다는 것은 그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따라서 존중을 받고,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알고, 그 도리를 따라서 서로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그 인생은 복을 받은 삶이라고 할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살면서도 다른 사람을 죽이고 아픔을 주는 인생은 그 사람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10-13)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자비와 구원하신 행위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의 근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으로 해방 받았다는 사실입니다(이사야서 6:21-23; 8:14-16).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⑴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역(10-11)

 

모세는 장차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누리게 될 축복을 일러줍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을 향한 맹세는 하나님에 의한 일방적 약속이며, ‘들어가게 하신다’는 사역형 동사에서 나타나듯이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면, 그들이 수고하지 않고 많은 것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즉, ‘훌륭한 성’, ‘훌륭한 물건들로 가득한 집’, ‘우물’,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것’ 등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를 누리게 될 텐데, 문제는 바로 그 때 발생합니다. 삶이 풍성해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⑵ 가나안 땅에서 신앙을 지킬 것(12-1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여러 가지 부동산들은 그 땅의 가치를 크게 높이는 귀한 재산 품목들입니다. 그러나 이 전리품들이 모두 자신들이 세우고 짓고 파고 조성한 것들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던 것들을 그저 고스란히 넘겨받게 되는 것뿐입니다. 많은 건물들을 지닌 성읍이 파괴되지 않고 점령된다면 큰 유익을 남길 것입니다. 온갖 좋은 가구들과 생활 비품들로 가득한 집뿐 아니라 우물과 과수원도 큰 재산입니다.

특히 우물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농경 문화권에서 매우 중요한 식수원이었습니다. 음력 7월에서 다음해 1월까지 6개월간(양력으로 9-10월에서 다음해 3-4월)은 우기에 해당합니다. 물이 쉽게 빠지는 석회암질의 토질과 지형의 특성상 저수지가 소용없었기에, 우기에 빗물을 받아놓는 방법들은 중요했습니다. 이 우물은 천연 우물(브에르)이 아닌 빗물을 담는 인공 우물(보드)이며, 주로 단단한 바위를 깊고 넓게 파서 우기에 내린 빗물을 보관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주거지는 대부분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따라서 하천에서 물을 공급받기 쉽지 않아 비를 식수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저하수용 우물은 목축과 식용을 위해 중요했기 때문에 우물이 거주지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지만(창 16:14; 1:19,25,30; 24:11,20), 빗물 저장용 우물 또한 목축뿐 아니라(창 37:20,22), 특히 성읍 주민들을 위해 중요했습니다. 각 주요 거점 지역이나 성읍에는 커다란 저수용 우물들이 있었습니다(삼상 13:6; 19:22; 삼하 23:16). 더불어 개인 소유의 수많은 빗물 우물들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으며 사유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지하수 우물이든 빗물 우물이든 쉽게 마르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또한 짐승이나 사람이 빠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뚜껑을 덮어서 관리했습니다.

포도와 감람나무 열매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과일들입니다. 특히 포도밭은 헤브론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었으며, 예루살렘 일대는 대규모 감람나무 단지가 조성된 ‘감람산’이라는 산이 있을 만큼 고급 감람유의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성읍들과 많은 가옥들, 우물들과 좋은 과수원들을 수고 없이 모두 ‘공짜로’ 얻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에는 의무가 뒤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며 나아가 강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을 누릴 때 그들은 애굽의 노예 신분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여호와를 잊어선 안 됩니다. 그분만을 경외하고 섬기며 죽은 신들이기에 아무런 효험이 없는 이방신들이 아닌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인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서원해야 합니다(12-13). 신약의 신자들도 그러합니다. 신자들은 죄의 노예로부터 우리를 구원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선 안 되며, 그분만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오직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모세의 짧고 강한 어조의 반복적 경고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심하여 … 잊지 말고 … 경외하며 … 섬기며 … 맹세하라’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14-19)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울 수 있으나 항상 잘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삶이 풍부해지면, 과거를 쉽게 잊고 현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점점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하려다가 실패합니다. 성도들은 풍요로울 때든지, 빈궁할 때이든지 항상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14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16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18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19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14-19)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한 거기서 놀랍도록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될 때 하나님을 잊지 알고 더 잘 섬기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육체적인 평안과 물질적인 풍요를 얻게 될 때 나태해지기 쉬운 신앙 자세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날, 그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땅에 살고 있던 백성의 신들을 추종해선 안 됩니다.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은 이스라엘 주변(사비브)에 사는 여러 가나안 족속들을 가리킵니다(14). 이 경고는 십계명 중 1,2계명의 반복적 강조입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은 진노하시어 반드시 자신의 백성마저 엄중히 징계하실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4:34에서는 하나님께서 시도하신 시험에 언급됩니다. 그것은 백성을 애굽로부터 탈출시킬 때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 친히 마련하신 검증 절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의 신들과 파라오의 권능이 참인지 거짓인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여러 차례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신지 시험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맛사’의 반역입니다(출애굽기 17장).

원래 시험은 의심을 품게 하는 대상의 신분과 능력을 확인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직후 시내산으로 가는 도중에 광야에서 최초의 식수난을 겪었습니다(출애굽기 17:1). 당시 르비딤 지역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떨어지자 모세와 다투며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호렙 산에 있는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 명하셨고, 모세가 그대로 시행하니 반석에서 물이 솟구쳤습니다(그들은 아직 시내산 도착 전이므로 이 호렙 산은 시내산을 포괄하는 넓은 산악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이 사건 이후 그곳에 시험이라는 뜻의 ‘맛사’ 또는 다툼이라는 뜻의 ‘므리바’라는 지명이 붙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검증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절대적 주권자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신 여호와께서 봉주의 자격으로 그들에게 부여한 하나님 나라의 헌법, 즉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봉신으로서 충성을 다해 지켜야 합니다.

다른 문맥들에서 명령은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법령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는 어떤 문맥에서든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앞서 4:45에서 설명한 대로, ‘증언/증거’(에두트)란 영구적으로 증가 역할을 하는 변치 않는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비롯하여 다른 책들에서 ‘에두트’는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가리킵니다(출 25:16,21; 레 16:13; 민 4:5; 17:4; 17:10; 참조 레 24:3). 신명기 밖의 증거 이긴 하지만, 이렇듯이 증언은 좁게는 십계명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미 시내산에서 반포된 십계명과 후속 율법들, 그리도 지금 재 반포 되거나 새롭게 입법될 제반 율법들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그 땅에서 대대손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무엇보다 십계명은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이 십계명은 또한 모든 율법의 초석입니다. 그 토대 위에 이후의 다양한 율법들이 주어집니다.

 

아무리 대적이 많아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기만 하면 그들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 책임질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후손에게 전해줄 역사의 교훈(20-25)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내려주십니다.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20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1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22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 23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24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25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공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20-25)

 

이 교훈은 당대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대손손 그들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은 후손들에게 이렇게 선포된 하나님의 율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이집트 땅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며 그들을 이끌어내 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대의 그들뿐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도 그 땅에서 영속적인 복을 누리며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며 사는 길뿐입니다.

모세는 이것 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의로움(츠다카)은 신구약 전반에 걸쳐 구원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츠다카의 개념은 광범위하여 간단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대체로 우리는 '올바르게 정립된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의로운 상태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의로움을 율법의 행함과 연결시킵니다. 즉, 계명의 '행함'이 신자의 의로움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단어 츠다카의 의미를 어떤 영어 성경은 ‘공덕’(merit)의 적립으로, 티게이는 하나님 앞에서 신용(credit)을 다지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단순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정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만일 이 것이 조직신학적 개념으로 구원에 이르는 정의의 개념이라면, 믿음으로 의로워 지나 진정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행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사합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매어달려도 편안해지면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기만 하면 더 잘 섬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큰 복을 받으면 부요에 젖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30: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풍요로움에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풍요로움으로 쉽게 타락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부하든지 천하든지 오직 하나님만 주인으로 섬기며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완전히 축복의 삶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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