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신명기(07-01)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

신명기 7장 1-11절


전에 사람들을 만나서 작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했습니다. 그곳은 과거에 정미소 자리로, 하지만 지금은 먼저 뻘뻘 날리며 시끄러운 방아소리는 없어졌습니다. 리모델링한 후에, 이제는 방앗간 뼈대는 남기고, 레스토랑으로 바꾸어서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식사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부족한 부분을 지금에 맞게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것이 리모델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광야에서 리모델링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축복 받은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본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 거민들과 구별된 생활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상생은 통혼으로 귀착됩니다. 결혼하거나 어떠한 관계를 맺는 일이 없도록 금지합니다. 거룩한 가정에 다른 신을 유입시키며, 결국 이스라엘의 신앙이 그 땅의 종교와 문화에 흡수되어 배교하는 길을 걷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심판을 불러올 통혼과 혼합주의를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가나안 족속과 언약과 결혼 금지(1-5)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 복은 다른 말로 생명력입니다. 복하면 생각나는 것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돈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생명과 인격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한 고유한 가치를 가졌으니 그 가치에 어울리도록 사는 것이 복입니다.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5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1-5)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가나안 원주민들과 다르게 사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안 믿어질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풍요롭게 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광야에서 고생할 때,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간곡히 원하는 것은 가나안 원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⑴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지 말라(1-2)

 

가나안 땅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일곱 족속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등이었습니다. 열 개가 훌쩍 넘는 종족들이 발견되는데, 신명기는 그들을 일곱 종족으로 대표해서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수적으로 많고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할 때는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한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이들 중 헷 족속의 기원과 정체가 가장 논란이 됩니다. 이들은 노아의 중손자, 즉 족보상으로 노아-함-가나안-헷으로 확인되는데(창세기 10:15), 그의 후손들이 헷 족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이들이 어느 종족과 연결되는지는 모호합니다. 첫째 견해로, 주전 2000년 경 소아시아 일대에 살았던 하티(Hatti) 종족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티 종족을 정복해서 건립된 히타이트(헷) 제국의 민족(하티 족이 아님)에서 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히타이트(헷) 제국은 주전 1200년경에 해양 민족들에게 멸망당했는데, 그들의 영토로 보아 팔레스타인의 한참 북쪽에 위치했으며, 결정적으로 구약의 헷 족속은 히타이트(헷) 종족의 관습과 풍속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족장 기사들 속에 등장하는 헷 족속은 히타이트 종족의 인명이 아닌 셈족 인명을 지니고 있으며, 족장 서사의 분위기로 볼 때 아브라함은 통역자 없이 그들과 대화를 나눈 것 같습니다. 즉, 팔레스타인 남부의 산지에 거주했던 이 헷 족속은(창세기 15:19-21) 히타이트(헷) 제국과 분명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이 헷 족속은 시기적으로 한참 후대인 왕조 시대에 이스라엘과 접촉했던 시리아의 신-히타이트 도시 국가들과도 무관합니다(왕상 10:29:11:1; 대하 1:17). 아마 하티 종족의 일부가 가나안으로 이주해 헷 족속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헷 족속은 가나안의 아들 후손이며, 초기 예루살렘 정착민들의 목록 주변에 거어 있습니다(에스겔 16:3). 이들은 족장 시대에는 헤브론 주변에 거주했는데(창 23장을 보라), 그들의 문화는 반-하나님 적이어서 이삭과 리브가는 그들을 떠나 살았던 반면, 에서는 그들과 통혼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창세기 26:34-35; 27:46).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권고합니다. 가나안 땅을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죄악이 만연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 보내서 심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과 우호관계를 맺는다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종족들을 모두 ‘진멸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헤렘’ 심판의 명령입니다. 헤렘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동사 ‘하람’은 앞에 부정사 절대형 ‘하하렘’을 둠으로써 이 동작이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진멸의 반대는 상생 혹은 공생입니다. 상생은 쌍방의 약조를 통해 우호적 관계가 정립됨으로써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코 상생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과 어떠한 언약도 맺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어 그들과의 상생의 길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문화가 이스라엘에 침투하게 해선 안 됩니다.

 

⑵ 가나안 족속과 통혼하지 말라(3-5)

 

가나안 족속과의 상생은 혼인 관계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상생을 위한 통혼은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그들과 결혼은 그 가족의 문화와 종교를 가져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신들이 유입되어 여호와를 떠나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심판과 멸망입니다(4).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히 그들의 종교와 문화의 유산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들의 성소를 파괴하고 제단들을 헐고 각종 우상숭배에 사용된 주상들과 목상들을 깨트리고 불살라야 합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타문화의 유산과 그들의 종교를 이렇게 폭력적으로 말살하는 것은 모든 인명의 멸절을 요구하는 ‘헤렘 전쟁’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조치의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은 순결한 신앙의 보존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며, 구약 시대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백성의 거룩성을 보존했습니다. 신약에서 ‘헤렘 심판’은 종국의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단호히 이방의 관습과 도덕 종교의 가르침이 교회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린도전서 5:13) 이방의 제단들은 번제단과 향단 둘 다를 포함합니다.

이러한 제단들은 흙이나 돌로 축조되었으며, 거기에 다양한 제물들이 드려졌습니다(예. 희생 짐승과 음식, 술, 향). 돌기둥인 주상(마체바)은 모두 제의적 용도로 만들어져 세워졌으며, 때로 표면에 우상들을 묘사하는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세라 목상 ‘아쉐림’은 제단 주변에 세워놓은 나무 기둥이거나 어쩌면 종교적 숭배를 위해 심어놓은 나무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과 같이 이것이 많은 곳에서 복수 ‘아쉐림’으로 나타납니다.

이 목상 혹은 나무는 보호와 번영을 주관하는 가나안의 여신 아세라를 상징한,,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각종 우상들과 제의 시설들을 부숴야 합니다. 실제로 당시 하솔의 지층에서는 목이 잘린 우상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들어내려면 강한 나라를 선택한 것이 어울릴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 성공시키면 세상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란 것입니다. 진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모습은 힘센 하나님, 무엇이든지 구하기만 하면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며 아름다운 하나님, 윤리의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너무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힘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6-8)

어느 지역에 문화는 그곳의 종교를 통해 형성됩니다. 그 문화를 받아들이면 그 종교도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로 이교 문화를 받아들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6-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사랑을 보이셨고, 얼마나 약속을 지키신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주십니다. 역사를 가로질러서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격적인 신은 고대 근동에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암 카도쉬’, 즉 ‘거룩한 백성’은 신명기 특유의 어법입니다(7:6; 14:2,21; 28:9). 성민으로서 이스라엘의 신분과 정체성은 신명기에서 두드러집니다.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레위기에서는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법이 두드러지는 반면, 신명기에서 ‘너희는 거룩하다’는 직설법이 지배적입니다. 즉 레위기에서 ‘거룩’은 성취하기 위해 갈망해야 하는 목표이고, 신명기에서 ‘거룩’이란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별된 신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서 ‘자기 기업의 백성’은 아쉬운 번역입니다. ‘암 세굴라’는 ‘보배로운 백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세굴라’는 어떤 사람이 매우 아끼는 물건이나 힘들게 모아놓은 귀중한 재산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인 재산을 가리킬 때는 흔히 ‘아후자’가 쓰입니다(출애굽기 19: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쁨으로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강하고 뛰어난 민족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인구 숫자도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 민족이었습니다. 여기서 적은 인구라는 말은 현재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아마 이 표현은 그들을 겸손케 하려는 일종의 수사학적 과장법이거나, 실제로 가나안의 인구가 그들보다 많았거나, 아니면 애굽 땅에서 학대받던 소수 민족으로 시달렸던 시절부터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많은 인구를 거느린 그들은 우쭐대서는 안 됩니다. 가나안 민족 중에는 강인하고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도 즐비하며, 인구도 이스라엘을 능가하고(7:7, 17:92), 그들의 성들은 견고한 요새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신분이었던 그들을 속량하시어,(죄수를 석방한 것처럼) 자유인으로 해방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고,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율법을 행하라(9-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것을 보여주신 사건은 출애굽입니다. 가장 강한 제국을 가장 약한 이스라엘 민족을 제압하고 거기서 탈출했다는 것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기 충분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9-11)

 

하나님께서는 자신처럼 백성들에게도 사랑과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인격적인 신이기 때문에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굽이 심판을 받았듯이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들도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참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구속의 하나님,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요구는 고대 중동 지역의 봉신 조약에서 나타나는 계약 언어인 ‘충성하라’에 대한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 속국의 어떤 군주는 애굽의 봉주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의 내장과 내 등에 내가 나의 왕, 나의 주의 말씀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을 맺음으로써 그분과 일종의 봉신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24장). 따라서 봉주 혹은 종주가 되는 하나님께 속국이자 신하인 이스라엘은 그분과 약속한 조약의 조항들을 모두 순종할 의무가 있으며, 그분에게 충성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모든 기계는 동력의 근원인 휘발유나 전기가 근원입니다. 사람들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면, 성도들의 삶도 힘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애굽처럼 될 것인지, 축복 받은 백성이 될 것인지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가서 승리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끗하게 리모델링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가면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