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09-01)
과거 광야에서 은혜로 주신 구원
신명기 9장 1-12절
세상에 아무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는 왜 지금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고 여쭈어야 합니다. 의무감으로 살아가면 힘들 것입니다. 다만 그 의무가 하나님과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라면 더 이상 의무감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에게 물에서 사는 것은 의무감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에서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9장은 다시 ‘쉐마’, 곧 ‘들으라!’는 명령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모세는 다시 한 번 만만치 않은 대적들을 눈앞에 두고 백성들이 심기일전하여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출애굽 후부터 지금까지 목이 곧은 백성으로 항상 여호와를 거역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시내산 아래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입니다.
가나안 족속의 진멸을 약속하심(1-3)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너무나도 쉬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상직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도무지 세상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게서 앞서 싸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1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1-3)
모세의 두 번째 설교가 계속됩니다(4:44-26:19). 모세는 9:1-10:11을 여는 구절은 신명기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른 많은 주제를 요약합니다. 다시금 ‘들으라 이스라엘이여’를 외치며 이스라엘을 강하게 독려합니다.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그들은 정복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의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의 방향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약 38년 전 가나안 정탐하고 나서 가나안 정복의 불가능을 역설했던 정탐꾼들의 보고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민수기 13:25-29). 가데스에서 정탐꾼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 가나안 사람들의 거인 같은 골격과 그들의 견고한 성읍들로 인해 떨고 있었습니다. 모세 또한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그 민족들은 ‘크고 강대한 나라’이며 그들의 성벽은 견고한 요새와 같아 성벽은 깎아지른 듯 하늘 높이 솟구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인구도 많아 천하에 당할 민족이 없어 보입니다(1-2).
그러나 용사이신 하나님을 앞세운 이스라엘 백성은 이 강한 민족들 앞에서 비관적인 말을 해선 안됩니다(2).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고대에 민족 간의 전쟁은 사실상 민족 신들끼리의 전쟁이었습니다. 앞서 그들은 이미 아모리의 두 왕을 연파함으로써 이 사실을 직접 경험한 상태입니다. 아모리가 모압을 제압함으로써 아모리의 달신인 신(Sin)이 모압 신 그모스를 이겼는데, 여호와께서 그 달 신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그들의 신들을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38년 전 정탐꾼들은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하면서 괴물과 같은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단정 지었습니다(민수기 13:28f). 이것은 아낙 자손과 그들의 신을 발아래 두시는 하나님 그보다 더 강대했던 파라오와 그 신들과 군대를 제압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순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불’, 정확히는 ‘서명하는 불’이요 ‘삼키는 불’이십니다(4:24). 그분이 뿜어내는 불이 하나님의 임재의 불이요 두려운 심판의 불이라는 사실은 몇 차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할 때 뒤쫓아 오던 파라오의 군대를 저지한 보호의 불기둥이 이스라엘 진영에 내려왔으며(출애굽기 14:20), 백성들은 시내산 정상에 불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신현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출애굽기 19:18). 그 불은 잘못된 제사를 시도하던 두 제사장 나답과 아비 후를 삼켰으며(레위기 10:1f) 반란을 일으킨 250명의 고라 일당을 몰살했던 심판의 불입니다(민수기 16:34). 이제 그 삼키는 불이 이스라엘을 이끌며 나갈 것입니다. 백성들은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삼키는 불을 뒤따라가며 그들을 전멸시켜야 가나안 족속을 무찌르고 속히 그들을 전멸시켜야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 애굽의 강력한 군대와 철병거가 수장시키시고, 광야에서 아말렉 군대를 쳐서 파하셨고, 옥과 시혼이 어떻게 몰락시키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먼저 앞서 나아가서 싸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뿐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진멸된 이유(4-6)
구원에 관한 한 사람들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말할 수 없이 큰 은혜뿐입니다(참조. 에베소서 2:8,9). 현장에서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약체 이스라엘이 강력한 민족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전술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4-6)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한 후에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행여나 그들은 그 땅의 정복한 것이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는 길은 ‘믿음’과 말씀에의 ‘순종’입니다.
모세는 앞서 계명 준수가 ‘우리의 의로움’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우리는 말씀 순종을 통해 계속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의로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지원을 받을 만한 자격을 스스로 갖췄다는 자긍심을 말합니다. 이 의로움은 자신의 노력과 행위, 공적을 통해 갖춘 자질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은 의롭고 가나안 백성들은 불의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나안을 차지했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로워서 그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정복은 순전히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성취하신 업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유산(기업)으로 주신 이유는 자신들의 ‘의’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목이 곧은 백성’일 뿐입니다. ‘목이 뻣뻣하다/곧다’라는 표현은 오경에서 이스라엘의 완고한 불순종을 표현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출애굽기 32:9;33:3,5;34:9; 신명기 9:6,13;10:16;31:27), 이스라엘 백성을 비난하는 문맥에서 계속 나타납니다(열왕기하 17:14, 역대하 30:8; 느헤미야 9:16-17,29, 예레미야 7:26). 특히 잠언 29:1은 ‘목이 곧은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망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목을 숙이지 않는 인간의 고집스러움과 거만함에 대한 표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가 산에서 받은 십계명 두 돌판(7-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사람들에게 살아주길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하나님 백성다운 살기 위해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십니다.
7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8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9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11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9-12)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내내 뻣뻣한 목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며 그분을 분노케 했던 일들을 잊어선 안 됩니다. 특히 대표적인 사건이 호렙 산에서 저지른 금송아지 사건은 정탐꾼 사건과 더불어 가장 중대한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자마자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 정상에 하나님을 알현하러 올라갔습니다(9;참조 출애굽기 19:3). 그는 40일 밤낮을 음식은 물론 물마저 마시지 않는 극단적 금식을 하며 보내면서, 거기서 십계명 돌판을 받았습니다(아마 그 외에도 십계명 이후의 언약의 율법과 성막 제작법 등 일련의 율법들을 받았을 것이다). 십계명 돌판을 받기 위한 이 첫 번째 등산에 장차 모세의 후계자가 될 2인자인 여호수아가 동행했습니다(출애굽기 24:12-14).
모세가 산에 올랐을 때 그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형언할 수 없는 빛과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빛을 바울은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다’라고 묘사했습니다(디모데전서 6:16).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시다’(신명기 4:24; 히브리서 12:29).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자는 죽는다고 진술한다(창 32:30; 출 19:21; 신 4:33; 삿 13:2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따라서 원칙적으로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찬 시내산 정상은 인간 모세에게 접근이 허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구름으로 자신의 영광을 차단하신 뒤, 모세에게 특별한 자격을 부여하여 그의 시내산으로 입산을 허용하셨습니다. 모세는 40일간 음식과 물을 끊어 내장을 깨끗이 비워내고 인간의 생리적 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첫 번째 40일간의 시내산 입산에서 금식에 대한 언급이 없고(출애굽기 24:18), 두 번째 입산에서만 언급되나(출애굽기 34:28), 우리는 신명기에서 첫 번째에서도 모세가 식음을 끊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금식을 어떤 사람은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수종 드는 천사와 같이 되기 위한 정화 과정이라고 해석합니다. 모세가 금식했던 의도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적절치 않은 모든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십계명 두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십계명을 기록하신 돌판들입니다(10). 십계명은 산 아래에서 그들이 ‘총회’로 모였을 때 그들의 귀에 직접적인 음성으로 들려주었던 특별한 열 가지 말씀들입니다. 40일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서둘러 하산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산 아래에서 백성들이 ‘스스로 부패하여’ 광란의 우상숭배 축제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패하다’의 히브리어 ‘쉬헤트’는 우선적으로 ‘망쳐놓다’, ‘쓸어내다’, ‘황폐화시키다’를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들과 주변의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상황입니다. 흥미롭게도 2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백성들을 쓸어내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때만 해도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여호수아와 함께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닌 ‘네 백성’, 곧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이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라고 준엄하게 선언하고 있으며, 백성의 문제로 그들의 대표이자 책임자인 모세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승리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가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평안이 넘치는 것이지 우리의 악한 본성이 완전히 사라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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