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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09-02)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재

신명기 9장 13-29절


선물을 받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날마다 선물을 받는다면 매일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루’라는 포장 속에 많은 선물들이 배달되었습니다. 순서에 따라 하나씩 열어 봅니다.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이 적당한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기쁨은 선물의 종류가 아니라 선물을 받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삶은 선물이고 기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질 못하고 화를 자초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정상의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가 있는 동안, 산 아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과 40일 전에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십계명을 받은 백성들이(출애굽기 24장) 첫째와 둘째 계명을 어기는 가장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때 맹렬한 심판으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백성들을 위해 드리는 모세의 탄원 기도는 절박하고 처절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진급한 중재(13-18)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섬기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임의대로 만든 후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축복하기 위한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감히 형상화할 수 없는 하나님을 인간의 손으로 임의대로 만든 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자신을 축복해 주는 종교로 만들어가는 우상화 작업입니다.

 

13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13-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받을 백성에서 버림받은 백성으로 위기에 처해 있던 사건을 언급합니다. 이런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⑴ 목이 곧은 백성(13-14)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따르지 않는 첫 번째 사건은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한 동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온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자신들을 출애굽한 신이라고 섬깁니다.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 두 돌판을 받은 모세는 산 아래 백성들에 대한 심상치 않은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분노하시면서 백성들이 극단적 패역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9:6에서 모세가 백성들의 근본적 악함을 가리킬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나를 막지 말라’는 말은 그들을 멸망시킬 결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패역한 백성을 제거하고 모세, 너를 통해 크고 강대 한 나라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을 없앤다’는 표현은 고대 중동의 전형적인 저주 문구로서 대적을 전멸시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참조.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천하에서 버리라는 지시, 출 17:14; 신 25:19). 사람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보존되기를 원하는데, 그 이름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사후에 어떠한 명예도 그에게 돌리지 않는 저주의 징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 것이다’라는 약속은 사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한 것이었는데(창세기 12:2), 현재 하나님의 제안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약속의 계승자를 모세로 바꾸겠다는 선언입니다.

 

⑵ 시내산을 하산한 모세(15-17)

 

소스라치게 놀란 모세는 황급히 돌이켜 시내산을 내려갔습니다. 하산 길에 그는 그 신령한 산에서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불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보았으며, 두 손에는 십계명 두 돌판이 들려 있었습니다.

하산한 모세가 목격한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조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광란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속히’ 떠났다는 모세의 말은 적절합니다. 그들은 바로 직전에 시내산 언약을 맺었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산 위에 올라간 지 불과 40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당장의 안전과 보호 속에 자신들을 인도할 구체적인 신이 필요했으며, 그 신은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결국 황금 송아지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신입니다. 하산 길에 축제의 현장에서 들리는 괴성이 어찌나 컸던지, 모세와 동반했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진영 내에서 큰 싸움이 난 줄로 착각했습니다(출애굽기 32:17). 그러나 모세는 산 아래의 사태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 소음이 그저 광란의 ‘노래 소리들’인 것을 간파했습니다(출애굽기 32:18). 백성들의 춤은 소리를 지르며 온 몸으로 추는, 그리고 음란한 행위마저 수반된 광란의 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분노한 모세는 돌판을 던져 깨트립니다(17). 돌판을 깨트린 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파기를 상징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법에 의하면, 계약 파기는 당시의 계약서였던 점토판을 깨트림으로써 확정되었습니다.

 

⑶ 중보 기도하는 모세(18)

 

모세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 대한 대가로 심판 당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돌판을 파기하면서까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다시 시간의 순서를 잠시 이탈해 그 후 모세가 결행한 두 번째 40일 금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모세의 연설은 19절에서 황금 송아지 사건으로 복귀하여 잠시 이 금식 주제가 끊겼다가 25절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첫 번째 금식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음식과 물을 모두 끊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금식은 목적과 취지가 달라졌습니다. 앞서 첫 번째 40일 금식에서는 모든 인간의 욕망을 끊고 하나님의 면전 앞에 거룩하게 서서 말씀을 받기 위함이었다면, 이제 두 번째에서는 그가 백성들의 죄로 인해 금식의 고행을 자처한 것입니다(18,25). 결국 모세의 여러 차례에 걸친 중재 기도와 금식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이후 깨진 두 돌판이 나중에 다시 제작되는데 이 때는 모세가 친히 깎습니다(출애굽기 34:1,3,28-29). 이것은 언약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가만히 있지 않고 이스라엘 범죄 현장으로 내려옵니다. 이 모습은 죄 많은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진멸되어야 합니다. 그 심판에 대상이 아니었던 하나님의 아들이 굳지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그 역할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중재와 사건 해결(19-21)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도를 충성했거나 거역하지 안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후에도 속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런 거역과 불순종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19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19-21)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야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따라야할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시고 멸하려 한 것입니다. 이런 위기마다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한 역할을 합니다.

 

백성이 진멸할까 두려워한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참조, 출애굽기 32:32). 뜻을 돌이켜 달라는 기도는 선지자들의 전형적인 탄원 형식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모세의 결사적인 탄원 기도와 중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19). 모세는 또한 하나님께 아론에 대한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론은 영적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백성들의 집단적인 종교적 타락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오히려 그것에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백성을 엄중히 꾸짖은 뒤,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자신의 목을 걸고 탄원의 기도를 드린 모세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백성의 여론에 떠밀린 아론은 신의 형상을 제작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빼서 금을 모으라고 지시했습니다(출애굽기 32:2). 애초에 백성들이 모은 금붙이는 성막 건설을 위한 봉헌물로 바쳐져야 하지만 불행히도 우상 제작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주조한 금송아지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에젤’은 새끼 송아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1년생(레위기 9:3; 미가 6:6)에서 3년생(창세기 15:9)에 이르는 어린 연령의 젊은 수소로 충분히 자란 소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출토된 15-20센티미터 크기의 청동 송아지 상으로 보아 그것이 실물 크기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모세는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찧고 가루로 빻아 그것을 산의 계곡물에 뿌렸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신명기 본문은 이 우상의 가루를 시내산 시냇물에 뿌렸다고 말하지만, 출애굽기에서는(출애굽기 32:20) 그 가루를 백성들이 마시게 했다고 보고합니다. 아마 두 책의 관점과 강조점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가루의 일부를 계곡에 뿌리고 그 물을 떠 와 백성들이 마시게 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두 그 우상의 가루를 마신 것은 그들의 공동책임을 확증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의 배교 행위들(22-24)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할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본래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전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시작점입니다. 

 

22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23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24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22-24)

 

그들의 배교는 금송아지 사건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중재로 그들은 극적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에도 시내산을 떠난 직후 광야 여정의 첫걸음부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만성이 된 그들의 반역질로 인해 모세는 내가 너희를 처음부터 알아봤다고 질타합니다.

 

용서를 위한 모세의 탄원 기도(25-29)

범죄한 이스라엘에게서는 용서받을 만한 근거를 전혀 찾아 수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그 언약을 근거로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철저히 주님의 십자가 공로와 그 언약을 근거로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긍휼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25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만한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하기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니이다 29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노라(25-29)

 

하나님께서는 이 극악한 패역 행위를 자행한 백성을 멸망시키고 모세를 통해 새로이 큰 나라를 이룰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을 통해 대안적 큰 나라를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40일간 금식하며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출애굽기 32장과 이어지는 신명기 10장에 비추어 볼 때, 모세는 분명히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 기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는 조목조목 논지를 펼쳐가며 하나님을 설득합니다. 첫째,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속량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니 멸망시키면 안 됩니다(26). 여기서 이스라엘을 ‘내 주의 백성’으로 지칭하면서 12절에서 ‘너 모세의 백성’이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에 맞대응 합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억해서 이들을 용서해 달라. 만일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하나님께서 파기하신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계수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이 백성을 힘들게 애굽에서 끌어내신 하나님이 결국 그들을 멸망시키시면 애굽 민족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차라리 하늘의 생명책에서 뺄지언정 백성들은 살려달라는 모세의 끈질긴 탄원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국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새로운 모세로 오셨던 예수님의 생명을 바친 희생을 통해 ‘너를 통해 새로운 큰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 성취되었습니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은 잘려 나간 나뭇가지가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큰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모세는 거역한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가 그 백성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진작에 심판을 받고 진멸되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거역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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