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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22-01)

 

  


미리 보는 십자가의 고난

시편 22편 1-2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선조들의 역사와 구원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계획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명료히 보여 주셨습니다. 신구약에 보여 주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역사를 찬찬히 생각하며 감사 찬양을 드립시다.

 

  • 21편은 왕을 위한 감사 시입니다. 다윗은 주의 힘과 능력으로 얻은 구원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또한 기름 부음 받은 왕을 통해 얻은 승리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왕 주변을 돌러싼 적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는 오직 언약 관계 안에서 존속되며 과거의 승리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신뢰를 낳고 미래의 성공을 확신하는 근거임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의인의 탄식(1-2)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하늘을 보면서 탄식입니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고 홀로 남겨진 것도 더 견딜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은 죽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환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시고, 멀리하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1-2)

 

다윗의 첫마디는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을 향한 호소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1a) ‘내 하나님’을 반복해서 부르는 ‘엘리 엘리’라는 말은 구약에서 유일한 표현입니다(참조, 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 그는 하나님께서 아니라 ‘내 하나님’을 부릅니다. 깊은 유대감과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항의처럼 들리는 질문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는 친밀한 유대감 없이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신명기 31:6, 8)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두었습니까? 적극적으로 어찌 나를 멀리하고 돕지 않으시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시는지(1bc)따져 묻습니다. ‘신음 소리’는 괴로움과 번민으로 소리치고 신음하는 말들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응답을 촉구하는 반어적인 외침입니다.

다윗은 다시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자신이 밤낮으로 부르짖고 잠잠히 있지 않는데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지(2) 묻습니다. 지금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입니다. 밤낮없이 소리쳐도 소용없습니다. 다윗은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묻고 또 물으며 절실함을 피력합니다.

 

조상들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을 신뢰(3-5)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두렵기 시작합니다. 진퇴양난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는 상황에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답답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선조들에게 응답하셨던 하나님께 이제도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3-5)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항변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은 갑자기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시며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좌정하신 분입니다’(3)라고 말합니다. ‘내 하나님’을 부르며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지만, 자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고백합니다. 마치 그룹 위에 앉으신 하나님(사무엘하 6:2; 시편 80:1; 99:1)을 떠올려 이스라엘의 찬송(또는 영광) 중에 앉으신 하나님으로 대체한 것처럼 보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송을 보좌삼아 앉으신 것을 상상하면서 하나님을 언약백성의 찬양의 대상과 본질로 고백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신뢰해서 당신이 그들을 건지셨습니다’(4), 다윗은 ‘우리 조상들’과 ‘당신이 그들을 건지셨다’는 말로 출애굽과 광야의 삶을 현재로 소환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은혜를 언급하며, 묵상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그때처럼 응답하시기를 촉구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당신을 신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5) 각성시켜 자신이 더 이상 유기되거나 수치 당하는 일이 없기를 열망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려는 다윗의 절실한 내적 투쟁은 ‘신뢰했다’(의뢰했다)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한 데서 드러납니다. 다윗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과거 사건으로 묻어두지 않고 다시 현재의 경험으로 되살리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공개적인 멸시(6-8)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조롱합니다. 환경도 힘든데, 사람들까지 더 힘들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끝까지 신뢰로 가난을 이겨낸다면, 주님 따라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6-8)

 

또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신’(3)이 ‘그러나 나는’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원받은 자기 선조들과 다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까? 다윗은 ‘그러나 나는 벌레이고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비방거리이며 백성의 조롱거리입니다’(6)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한 처지인지 묘사합니다. 신체적 질병에서 오는 고통 못지않게 타인의 비방은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더군다나 자기를 보는 사람마다 비웃고 입술을 비죽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합니다(7). 그 말은 더없이 다윗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8).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을 빈정대는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에 따른 보상 체계를 앞세워 맹렬하게 공격해옵니다. 사람들이 다윗의 고통을 보응의 체계로 보면 고통은 죄 때문입니다. 이것은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입니다. 반대로 죄 없이 당하는 고통이라면 하나님께서 위협받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조롱입니다.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신뢰(9-11)

참 신앙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지식적인 신앙은 결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있어야 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고백을 통하여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9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9-11)

 

다윗은 또 ‘그러나’로 말문을 엽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모태에서 끌어내셨고, 당신은 내가 당신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을 때조차’(9). 다윗은 숨막혀오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성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습니다. 출생의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어머니 품에서 보호받는 유아기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은 자기 의지보다 하나님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음을 강조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지금 너무 멀리 계신다고 느낍니다. 다윗은 몹시 걱정스럽고 속이 끓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부터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으니(10) 멀리하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환난 날이 가까이 왔지만 도울 자가 없기 때문에(11) 더 간절합니다. 매우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짐승처럼 달려드는 원수들의 위협(12-18)

들판에서 피폐해 죽어가는 짐승처럼 쓰러져 가고 있을 때 주변인들을 보면,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사방에 에워싸고 있습니다. 대답이 없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곡진한 신뢰의 고백이 때로 영광이 아니라 쓰디쓴 조롱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우리가 이 음란한 세대에서 당신을 인정하기를 기대하십니다.

 

12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2-18)

 

절망의 상황은 짐승처럼 달려드는 자들 때문에 더 험악해집니다. 다윗이 자신이 겪는 고통을 축소해 말하거나 삭제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많은 황소와 바산의 힘센 소들이 입을 벌리고 사자처럼 달려든다고 말합니다(12-13).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위협적인 짐승들은 많고 강합니다. 이 때문에 시인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물처럼 쏟아지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지고, 내 마음은 밀랍(초)처럼 녹았고,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는 입천장에 붙었다’(14-15ab)고 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슬픔과 고통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고통이 시인을 짓누릅니다. 다윗은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견디기 힘겨워하며 하나님께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죽음의 흙먼지 속에 두셨나이다’(15c). 그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죽음에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궁지에 처한 사람이 되어 공포와 고통을 호소합니다.

다윗이 죽은 사람처럼 보였습니까? 개들이 에워싸고 악한 무리는 수족을 찌르고(16), 뼈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앙상한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주목해서 쳐다보고, 그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겉옷과 속옷을 나누고 제비 뽑습니다(17-18). 겉옷도 모자라 속옷까지 빼앗기는 치욕스러운 상황에 던져졌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데 옷 벗김을 당하는 수모와 굴욕을 당하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며 호소(19-21)

어려움이 닥치면 탈질하고 마음이 녹아 사라지듯이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목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며 뼈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만큼 앙상하게 튀어나왔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주여 내게서 말리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댈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19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19-21)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시인이 멀리서 돕지 않으셨던(1) 하나님을 향해 호소합니다. ‘여호와 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의 도움이 되소서’(19). 처음에 다윗은 ‘내 하나님’이라고(1) 불렀지만, 지금은 언약의 이름, ‘여호와’를 부르고, ‘나의 도움’(‘나의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미 다윗은 나를 멀리하지 마시기를 요청했지만(11), 여전히 응답 없는 하나님을 향해 절규하듯 ‘나의 도움’이 되시기를 청합니다.

다윗은 더 필사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자기 ‘생명’과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을 칼과 개의 세력으로부터 낚아채 주시고(20), 사자의 입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나를 구원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말입니다. 이후 ‘들소의 뿔로부터 당신이 내게 응답하셨습니다’(21b)라는 완료형태 문장으로 급전환합니다. 이와 같은 구문법적인 변화는 들소의 뿔처럼 위협적인 세력에 받히려는 순간 하나님의 신속한 개입과 응답이 실현되는 극적인 장면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 순간에 신뢰와 죽음의 순종으로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살려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고난을 통해 온전케 하시려는 선하신 뜻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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