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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21-01)

  


왕의 승리를 기뻐하며

시편 21편 1-13절


시편20편이 왕의 출전을 앞두고 그를 축복하여 승리를 기원하였다면, 21편은 승리한 후, 돌아오는 왕과 병사들을 맞아 기쁨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 죽음과 사탄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왕의 승리가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21편은 왕을 위한 감사 시입니다. 다윗은 주의 힘과 능력으로 얻은 구원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또한 기름 부음 받은 왕을 통해 얻은 승리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왕 주변을 돌러싼 적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는 오직 언약 과계 안에서 존속되며 과거의 승리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신뢰를 낳고 미래의 성공을 확신하는 근거임을 노래합니다.

 

왕의 기쁨과 근거(1)

하나님께서는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고 싸운 왕과 병사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왕과 백성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의 승리를 하늘의 승리로 완성하신 아들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탁월한 영광으로 승리를 이루신 주님을 기뻐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1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1)

 

첫 시행의 핵심은 왕이 승리한 사실보다 그 구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부르며 고백한 시인의 말에 있습니다. ‘여호와여, 왕이 당신의 힘으로 기뻐합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인해그가 즐거워함이 얼마나 큰지요!’(1). 다윗은 왕의 승리가 언약 관계로 묶인 여호와의 힘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시편 20편에서 백성들은 여호와가 왕을 ‘구원하실’ 것을 고대했습니다(20:5). 그 기대가 현실화한 것을 감격하는 감사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러니까 왕이 기뻐하는 것은 여호와의 ‘힘’과 ‘구원’ 때문입니다. 두 단어는 주로 전쟁과 군사적인 맥락에서 발견되며(시편 28:8; 118:14; 140:7; 이사야 12:2; 26:1), 시행의 평행관계 안에서 주님의 힘이 곧 구원(승리) 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20편에서 누군가는 군사력을 의지하나 언약 백성의 공동체인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20:7) 고백의 흐름을 잇습니다.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2-7)

시시각각 우리를 노리는 사방에 노립니다. 그런 악한 영들을 분별할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서야 합니다. 사방에 도사린 영적인 어두움을 잘 분별하고픈 우리의 갈망과 기도 역시 주께서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대로 잘 분별된 영성으로 늘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셀라) 3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5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6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7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2-7)

 

승리하고 돌아온 왕을 보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이 기쁨의 근원은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 기쁨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나열하는데,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 마음의 소원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2-3)

 

다윗은 왕의 기쁨과 큰 즐거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밝힙니다. 여호와 이름을 이미 부른 상태에서(1) 시인은 고백합니다. ‘당신이 그의 마음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의 입술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2). 여호와는 왕의 ‘마음의 소원’, 곧 마음에서 솟구쳐 오르는 간절한 열망을 주셨고, 왕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의 ‘마음의 소원’을 주신 주체가 여호와라는 표현이 독특합니다. 왕의 마음에 타오르는 열망은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소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뜻과 왕의 소원이 일치합니다. 언약 관계 안에서 인간 왕과 하나님의 마음이 일치하는 것은(참조. 예레미야 32:38-39; 에스겔 11:19-20) 매우 이상적인 상태입니다. 왕은 한마디로 여호와가 지목하신 왕이었습니다(참조, 사무엘상 13:14). 여호와가 왕을 위해 주신 마음의 소원은 왕의 입술의 요청으로 발설되니 거절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왕을 ‘아름다운 복’으로 기꺼이 맞이해주시고, 순금으로 만든 왕관을 씌우셨다고(3) 여호와를 찬미합니다. ‘복’(베라카)은 옛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창세기 12:2; 28:4; 49:25). 이는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더군다나 순금의 왕관을 왕이 스스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씌워주신 것에 시인은 감격합니다. 여호와가 왕의 적법한 통치권을 수여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2) 지속적인 복과 여호와의 인애(4-7)

 

왕이 생명을 구하면 여호와가 생명을 주셨고, 왕이 오래오래 영원한 날들을 살게 하셨습니다(4).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주시는 분이지만, 놀랍게도 왕에게 ‘영원한 날들’을 주셨다고 합니다. 왕이 사람인데 ‘영원한 장수’(개역개정)가 가능합니까? 고대근동 세계에서왕의 장수를 구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기도제목이며(열왕기상 3:11,14; 시편 61:6; 72:17) 문학적인 과장법입니다.

다윗은 생명과 장수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을 통해 왕의 영광을 크게 하셨고, 여호와가 왕에게 존귀와 위엄을 입히셨다(5)고 찬미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위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해 왕은 하나님의 영광, 위엄, 존귀를 반영하는 자가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여호와가 왕에게 ‘항상’ 지속되는 ‘복들’을 부으시고, 주님의 임재 앞에서 기쁨으로 즐겁게 하심을(6) 노래합니다. 이는 생명과 다양한 종류의 필요한 복들이 반복되는 현재를 항상 누릴 수 있게 하신 주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다윗은 ‘그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니(보테아흐), 가장 높으신 이의 인자함 때문에 왕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7) 고백합니다. 언급된 ‘왕’은 다윗입니다. 이때 다윗은 여호와의 ‘인자함’, 곧 실패하지 않는 ‘언약적인 사랑’이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 관계 안에서 삶의 안전은 보장됩니다. 무엇보다 언약 관계를 특징짓는 두 단어, ‘인자함’과 의심하지 않고 의지하는 관계는 시 전체를 압축하고 요약하는 말입니다. 이는 언약 백성을 대표하는 왕과 하나님의 관계를 특징짓는 말이며, 언약 관계가 지속되려면 ‘신뢰’가 유지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7절은 공동체가 예배 시간에 가장 엄숙하게 낭독하는 언약 신앙의 고백인 셈입니다.

 

왕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복(8-12)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 이루실 완전한 승리를 노래합니다. 왕은 남은 대적들을 섬멸하고 보좌를 굳건하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오른 왕이 만국을 미혹한 자를 불과 유황 못에 던질 것입니다. 왕의 승리를 본 교회는 승리를 믿고 기도하며 마지막 싸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8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9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10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11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12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8-12)

 

이 단락에서 문장 형식이 달라집니다. 6절까지 여호와를 ‘당신’(2인칭 남성 단수)으로 언급했고, 7절은 다시 ‘여호와’(1)를 직접 거명했습니다. 다시 인칭대명사 ‘당신’을 언급하는데 ‘당신’이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인지, 왕인지 모호합니다. 그러나 ‘언약적 사랑’의 혜택을 누린 왕을 연속적으로 말하므로 8절의 ‘당신’은 왕입니다. 개역개정 본문도 ‘당신’을 ‘왕’으로 표기했습니다. 이어지는 시행은 문맥상 마치 왕을 위한 신탁 말씀이 전달되는 분위기입니다. 왕의 손은 모든 원수를 찾아내고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8). 왕이 노할 때, 원수들은 풀무불처럼 타오르고, 여호와의 분노는 그들을 삼켜 소멸할 것입니다(9). 여호와의 진노 자체가 불이 되어 삼켜버렸고, 왕의 분노는 곧 여호와의 분노와 동일시됩니다. 이는 또한 여호와의 뜻과 왕의 마음이 일치된 것을 표현한 2절과 비슷합니다. 원수의 완전한 소멸은 왕의 원수들의 후손까지 확장됩니다. 왕은 자기 원수의 후손을 땅에서 멸하고 완전히 씨를 말리게 될 것입니다(10). 후손들까지 멸하는 것은 고대 전쟁의 특징이고, 고대근동 세계의 종주권 조약에서도 불충성한 속국 왕의 후손들을 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시편 37:28; 호세아 9:11-14). 또한 왕을 해하려고 누군가 음모를 꾸미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11). 왕이 원수들의 등을 돌리게 하여 그들 얼굴에 활시위를 당길 것입니다(12). 겁에 질려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원수들이 얼굴을 돌리게 만들어 치명타를 입히는 장면 묘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목한 왕에게 패한 원수들과 대적들은 세상에서 끊어질 정도의 철저한 패배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이처럼 다윗과 하나님의 언약은 왕의 모든 통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왕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적들과의 전쟁에서 생존할 것이며, 그 생존의 필연적 이유는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을 신뢰하는 것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찬양과 근거(13)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날에 심판의 화살이 아닌, 영광과 존귀와 위엄으로 옷 입히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왕은 전쟁에서 살아남기만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자손손까지 그 생명(왕위)을 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3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

 

다윗의 감사 기도의 마무리는 찬양과 다짐입니다. 왕을 위한 이 기도문의 작성자가 예언자인지 제사장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누구든 21편의 기도문을 작성한 다윗은 최후 승리의 약속 또는 신탁의 말씀을(8-12) 받았기에 주님의 능력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여호와여 당신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합니다’(13). 여호와의 능력을 찬미하는 시인은 기도를 시작하면서 여호와 ‘당신의 힘으로’(베아즈카) 왕이 기뻐한다고 감사를 드린 것처럼, 기도의 마지막에서도 ’당신의 능력으로‘(베우제카) 높여지기를 찬미합니다.

시인은 승리에 도취되어 여호와의 능력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이 높여지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언약공동체, 곧 ‘우리’가 하나님의 ‘강력한 힘’, 그의 ‘권능’(개역개정)을 노래로 만들어 부를 것을 다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개입하셔서 그의 혁혁한 능력과 승리가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기를 열망하는 반응입니다.


 

인생은 날마다 전쟁 같은 날입니다. 생존을 위해 출정하듯 출근합니다. 슈퍼 갑의 세상과 분투하며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신 왕이 되셨고, 마침내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노래하며 세상의 맞서 그리스도의 남은 싸움을 싸워 승리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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