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05-01)
하나님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
신명기 4장 44절-5장 10절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듣고 배워합니다. 배워야할 때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시간이 많아지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젊을 때부터 성경을 보고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데로 한 살이라도 어려서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평생도록 그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으로 빚져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모세의 두 번째 설교가 시작됩니다. 이 설교는 여기 5장에서부터 28장에 이르는 길고 장황한 율법의 선포로 구성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 하는 역사적 회상과 더불어 하나님께 절대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한 모세는, 여기서 그들이 지켜야 하는 상세한 율법을 반포하기 시작합니다. 이 ‘율법’은 토라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그리고 교훈이 반복해서 ‘토라’로 규정됩니다.
모세가 율법을 선포한 장소(4:44-49)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감히 직접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면, 모든 사람들은 재와 같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은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새로운 창조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모세를 통해 중보자 역할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44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45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46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44-49)
모세는 요단강 동쪽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40년 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다시 선포합니다. 왜 언약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 능력의 역사를 회고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 언약이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 즉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지나간 언약이 아니라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맺은 언약이었다고도 설명합니다.
⑴ 선포된 율법의 근거(44)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 생활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율법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역사적 회고는 이 율법 선포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광야 40년 자신들의 체험을 통해 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에’라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모세가 선포하는 ‘율법’이 결코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옛 언약의 갱신이며, ‘가나안 정복’ 역시 그들에게 부여된 새로운 과업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변함없는 명령임을 보여줍니다.
⑵ 선포된 율법의 내용(45)
모세는 이 ‘율법’을 ‘증언과 규례와 법도’로 칭합니다. 여기서 ‘증언/증거’란 신격 보장과 더불어 주어진 변치 않는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를 비롯하여 다른 책들에서 ‘에두트’는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가리키며(출애굽기 25:16,21; 레위기 16:13; 민수기 4:5,17:4,17:10; 참조 레위기 24: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두 돌 판을 자주 ‘증거판’(증거의 돌판들)이라 칭하셨습니다(출애굽 31:18; 32:15; 34:29). 앞서 말한 대로 ‘규례와 법도’는 단순히 율법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증언과 규례와 법도’란 단순히 ‘십계명’과 이어서 반포되는 제반 율법을 가리킬 것입니다.
⑶ 율법이 선포된 장소(46-49)
신명기 1:1에 이어 다시 한 번 율법이 선포된 장소가 상세히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곳은 나중에 모세가 죽은 뒤 묻힌 곳이기도 합니다. 넓은 목포지가 펼쳐져 있던 그 땅은 아모리 왕 시혼의 영토였는데, 시혼을 물리친 뒤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역시 아무리 족속인 바산 왕 옥마저 물리치고 그 위쪽의 바산 땅까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47절에서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둘 다 아모리 족속이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들이 차지한 요단 동편의 범위는 남북으로는 모압의 북쪽 경계선인 아르논 골짜기 근처의 아로엘로부터(2:36) 멀리 북쪽의 헤르몬 산까지 약 230km에 이릅니다. 헤르몬 산은 시온 산, 다른 방언으로 시룐, 혹은 스닐로 불립니다(3:9). 동서로는 폭이 들쭉날쭉한 데 오른쪽에 암몬과의 국경선으로부터 아라바 바다, 곧 비스가 산지 아래쪽의 사해까지 이르는 범위입니다. 새로이 정복한 요단 동편의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 모세는 지난 광야 40년을 회상하며 율법을 선포하는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호렙 산에서의 언약 체결과 십계명 반포(5:1-5)
기독교는 배움의 종교입니다. 실천의 종교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새기고 감정적으로 사무치는 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듣지 않으면 대신 다른 것을 듣게 됩니다. 그 들은 것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율법(토라)을 전합니다.
1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1-5)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도대로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는 온 이스라엘 회중을 향해 주로 율법으로 구성된 두 번째 설교를 시작합니다. ‘토라’라는 단어를 ‘율법’으로 단언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곳에서는 근접한 단어인 ‘율법’으로 통칭합니다.
⑴ 율법(토라)의 실천성(1-2)
이제 모세가 선포하는 규례와 법도를 그들은 신중히 듣고 배우며 지켜야 합니다. ‘듣다’, ‘배우다’, ‘지켜 행하다’는 사람의 규범적인 학습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것들이 모두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들으라, 배우라 지켜 행하라, 특히 서두의 ‘들으라’는 이후로도 신명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강한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모세는 시내산 아래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 시키면서 이 율법의 강론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애굽기 24장).
⑵ 율법의 현재성(3)
이 언약은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3)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아닌 현재의 모세와 회중, 곧 ‘우리와 세운 언약’이었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시내산 언약을 체결한 1세대가 이미 다 죽었기에 새로운 세대, 곧 제2세대가 이 언약의 주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언약의 항시적 ‘현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현재 세대에게 유효하므로 과거 조상들과 맺은 언약은 현재 그들과 체결한 언약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⑶ 율법의 중요성(4-5)
현재의 본문(1-4)은 그들이 언약을 체결한 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백성에게 대면하여 말씀하신(즉, 십계명을 들려주실 것으로 설명하는 듯 보입니다. 이 율법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0-24장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언약에 앞서 십계명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선포되었습니다(출애굽기 20:1-17). 하지만 우리는 시간 순서를 자주 무시하는 신명기의 특징을 고려해야 합니다. 언약이 과거의 고리타분한 약속이 아닙니다. 그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늘 현재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한 절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십계명 : 제 1계명과 제 2계명(5:6-10)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종류의 피조물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다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짐승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 원리를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6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6-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십계명, 즉 삶의 원리를 가르치기 전에, 구원의 역사,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켜야할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은혜와 관계’를 잊고, ‘감사와 사랑’을 잃은 계명 준수는 자발적인 구속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속박입니다. 영광스러운 특권이 아니라 수고로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⑴ 제1계명 ‘다른 신을 두지 말라(6-7)
첫째 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나는’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을 단수 ‘너’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단수 ‘너’는 십계명이 공동체의 질서와 삶을 위한 규약이지만, 또한 이스라엘 각 개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시사 합니다. 모든 백성은 각자가 이 계명을 준수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이처럼 나와 너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주어집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종들의 집’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애굽 땅에서 당했던 고통을 잘 표현해 줍니다. 해방된 그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과거의 고통스런 삶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십계명은 해방되어 자유민이 된 그들을 위한 새로운 헌장입니다! 첫째 계명은 한 나라에 두 왕이 존재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우주의 창조주 왕, 유일하신 창조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신들도 거짓이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땅에서 다신을 배했던 것 같진 않습니다. 고통당하던 애굽 땅에서 애굽의 신들은 그들에게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땅의 신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온갖 풍요로움과 때에 맞는 비를 내리는 다산의 신이요 번영의 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미리 아시고 첫째와 둘 째 계명을 엄중하고 단호한 어조로 선포하십니다.
⑵ 제2계명 ‘우상을 섬기지 말라(8-10)
모든 형상화된 신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기 말라’는 히브리어로 수동태입니다. 이것은 우상들이 섬겨지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 즉 우상에게 현혹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유혹당해선 안 된다는 뉘앙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 숭배를 질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속 좁은 느낌을 주는 단어 ‘질투’가 인간의 정서상 너그러우신 하나님께는 안 어울려 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부부간의 정절을 파괴할 때 배우자의 분을 일으키는 질투에 사용됩니다. 많은 구약의 본문들이 우상숭배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이라고 비난합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죄의 앙갚음과 순종에 대한 대가인 천대에 이르는 장구한 은혜가 크게 대비됩니다. 그러나 이 원칙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불변의 공식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죗값의 승계에 대해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먼저, 아버지의 죄의 대가인 징벌이 자동적으로 후손에게 가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나타납니다. 죄의 공동 책임 원리가 때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각 사람은 각자의 죄로 망합니다! 그것을 신명기 24:16이 분명하게 진술하고, 예레미야(예레미야 31:29-30)와 에스겔(에스겔 18:19-22)이 재차 확인해 주었습니다. 사실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징벌을 받는 이유는 자신들도 아버지와 동일한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레위기 26:40). 그러나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고 바른 길을 갔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버지 아하스의 길을 떠난 히스기야; 아몬의 아들 요시야; 고라의 자손들, 고라의 후손들은 그리하여 큰 복을 받아 성전의 음악 맡은 자들이 되었으며, 많은 시편을 남긴 믿음의 가문으로 세워 졌습니다. 반대로 사무엘의 아들들과 같이 신문으로 세워 졌습니다. 반대로 사무엘의 아들들과 같이 신실한 아버지를 본받지 않고 패역의 길을 간 아들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죄의 공동 책임의 원리는 구약 사상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 원리는 세대 간에도 적용되어 후손들은 조상의 죄를 고백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레위기 26:40). 그리고 당대의 범죄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항상 공동 책임의 짐을 졌습니다. 여기에는 어린 아이라고 제외될 수 없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가혹해 보일 수 있으나, 죄의 독성은 모든 세대와 계층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후손들이 조상의 죄로 인해 3-4대까지 심판을 받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조상의 죄에 동참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그 사슬을 끊는 자는 그 순간부터 믿음의 가문을 세워나감으로써 그 복이 대대손손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은 자들로 주인이 바뀐 자들입니다. 구원과 해방은 새로운 주인을 통해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에 거리낀 것이 있으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원한 중보자, 모세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외하도 다른 진리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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