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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01-04)


잃어버린 기회를 회상

신명기 1장 34-46절


‘기록한 역사’는 의미 없이 문자로 기록해 보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록을 소홀하게 다루면, 그 역사를 여지없이 되풀이 하고 맙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환경은 달라져도 인간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사람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대하였고, 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살펴보면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삼기 위한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불신에 노하셔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어린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불신에 노하셨습니다. 방향을 돌려 광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자 백성은 그제야 잘못을 깨닫지만, 반성하면서도 그들은 경솔하게 올라가지 말라고 명하신 산지를 올라갔다가 아모리 족속에게 패하고 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34-37)

살아있는 신앙은 소문으로 듣는 간접적인 누군가의 체험을 통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살아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34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35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34-37)
 
성경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의적인 선택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 사건을 기록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은혜로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든지 약속하신 땅을 주신다면, 모세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신명기를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모세는 광야 시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축복뿐만 아니라 경고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34-35)
 
열 두 명의 정탐꾼들 중에서 열 명의 보고는 그 땅에 기골이 장대한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세력들이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민수기 14장). 이스라엘 백성은 탄식하고 절망하며 밤새 울부짖으며 불평불만을 쏟아 냈던 것을 살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미워하셔서 광야에서 죽게 하시도록 출애굽 시켰다고 생각하고 해괴망측한 불신의 말들을 쏟아내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과 반역은 그들의 행동 지침에서 반영 됩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다시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하면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권을 지닌 모세와 아론을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무섭지 않고 만만했던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이런 불신앙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셨습니다(34).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도 잘 모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 추구하는 자들은 사실상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우상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황금 송아지 하나님’ 즉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잊은 백성들에게 화를 내십니다. 그들을 향해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35)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기로 한 땅은 좋았지만, 그 땅에 거할 사람들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신앙을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⑵ 지도자인 모세(37)
 
가나안 땅은 불신앙으로 가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도자 모세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37)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 때문에 자신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민수기서에 보면, 모세 역시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 13장). 그 이유는 두 가지 다 맞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때에 가나안 땅을 올라가기로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80세의 모세에게 맡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민수기 13:3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나이가 120세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120세 모세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나이에 가나안 정복까지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가 사라져야 다음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소신껏 지도자로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 않는 일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신앙대로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 그 불신대로 될 것입니다. 반대로 믿겠다고 하면,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는 일을 믿어야지 자신이 바라는데로 믿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자들(34-37)

참다운 영성은 영향력 있을 때보다 영향력이 사라질 때 들어나는 것입니다. 때론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져 주는 것을 견디는 사람이 진정한 기성인으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짜 실력입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지도자를 양육하고 세우는 일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38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39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38-39)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하셨지만, 그런 가운데도 그 땅에 들어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선악을 분별치 못하는 어린 아이들은 예외였습니다.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고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약속의 땅에 허락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다음 세대를 책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온전하게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밥이라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데로 될 것이라고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36)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가나안 땅에 입성해서도 빛이 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여호수아서 14:12)라고 간구합니다. 갈렙이 원했던 이 산지는 정복하기가 어렵기로 유명한 요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는 믿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차지하려고 엄두도 내지 않는 땅, 그는 그 땅을 요구했고 결국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38)고 하였습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렘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모세가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영광을 누릴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어린아이들만 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눈앞에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 없음으로 인해 그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불순종과 불평불만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선물을 얻지 못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던 길도 멈추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자와 취하지 못할 자의 차이는 믿음의 눈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와 같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고집한 백성들(40-46)

불순종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큰 단절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들어내는 결정적인 순간에 고백하는 하나님과 너무나 무관하게 결정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 생각하고 고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40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4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45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46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날 수대로니라(40-46)
 
이제 가나안 땅은 지금 건장한 부모 세대가 감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를 거친 다음 세대,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의지하는 자녀 세대가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모 세대가 감당할 일은 이 자녀 세대를 가나안 땅을 차지할 만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죄가 큰 잘못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⑴ 자기 마음대로 나감(40-4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처분에 반발했습니다.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할 때는 거부하더니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니 그들은 고집을 부리며 올라가서 싸우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41)라고 소개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행동을 경솔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4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또 거역하고 고집 부리면서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보는 것입니다.
 
⑵ 고집으로 행한 결과(44-46)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모한 행동에 대한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 한 것입니다.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44)고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이 싸움에서 패하여 벌 떼처럼 쫓기듯 모든 것을 버리고 호르마까지 도망해야 했습니다. 남는 것은 후회뿐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잘해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만회는 말씀 앞에 순종이었습니다.
심판을 달게 받는 것이 회개이지 죄의 대가는 받지 않겠다는 마음은 회개가 아닙니다. 잘못되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보상이나 사과하지 않고 여기저기 피해 다니면서 하나님께 회개했으니 용서 받았다는 사람은 거짓된 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움에 나갔다가 패배하고 돌아와서 결과는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45)라고 통곡뿐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안 백성은 때늦은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주셨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싸움을 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말에 귀를 닫으시고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전투를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가데스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내 맘대로, 내 필요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가감 없이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듣는 대로 순종하는 성도의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만 싸우면 패하지만, 자신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게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자신 안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록 해야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말씀대로 싸워야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싸움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략을 잘 세워야만 효과적으로 적과 대치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전략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지혜나 여론으로 이것을 대신하게 하는 것은 패배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좋은 작전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대적을 굴복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므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돕지 않으셨습니다.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삶을 방치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길 원합니다. 당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태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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