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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01-01)


온전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자녀 욥

욥기 1장 1-12절


살면서 점점 인생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집니다. 삶을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삶의 기술도 매번 달라지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삶을 윤택하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그 지혜라는 것은 어떤 ‘원리’나 ‘규칙’ 혹은 일정한 패턴이나 질서를 아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항상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잠언을 비롯한 규범적 지혜의 근간입니다. 욥기 1장은 이 원리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그렇다면 무죄한 자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을 위한 두 가지 전제를 1-12절에서 다룹니다. 첫째,욥은 의로운 자입니다. 즉, 욥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1-5). 둘째, 욥의 고난은 하늘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지 욥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6-12).

 

규범적 지혜의 화신으로서의 욥(1-5)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게 하시지만 정직한 사람들의 집은 흥하게 하십니다. 물론 물질적 부만이 하나님께서 그의 정직함과 온전함을 인정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욥의 높은 도덕성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온전한 성품은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온전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닐 것을 오늘도 기대하고 계십니다.

1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3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4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1-5)

본 단락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욥이라는 인물의 캐릭터 설정(1-5)과 (2) 욥의 고난의 이유가 설명되는 천상회의(6-12). 이 단락(욥 1:1-12)은 앞으로 전개될 욥과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엘리후의 진술, 하나님의 언설 등을 이해하기 위한 대전제가 됩니다.

(1) 온전하고 정직한 자(1)

본문의 공간적 배경을 “우스 땅”으로 두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이스라엘 지역 내에서 일어난 일로 그리기에는 앞으로 진행될 내용이 전통적 여호와사상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욥기의 저자는 책의 내용 자체가 기존의 이스라엘의 사상적 경계를 넘어서 있다는 사실을 공간적 배경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욥에 대한 묘사를 네 가지로 하고 있는데 “온전하고” “정직하여”,“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그립니다. ‘온전함’은 ‘탐’이라는 형용사로부터 왔는데 외모를 포함하여 전인적으로 완벽한 삶을 의미합니다. 정직(야살)은 구부러짐 없는 올곧은 심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표현은 전통적 지혜 사상에서 최고의 현자적 삶을 살아가는 욥의 모습을 부각시킵니다.

(2) 자녀와 재물의 복을 누리는 자(2-3)

욥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났다는 보도는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는 자녀에 관한 한 완벽한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완전수 일곱과 셋은 이를 상징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자녀들에게 장차 닥칠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그렇게 완벽한 자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될 때 욥이 경험할 참담함이 역설적으로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최선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최악의 삶으로 떨어지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문학적 의도는 3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의 재산목록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대의 소유를 자랑합니다. 이곳에서도 7과 3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부각됩니다. 말 그대로 우스 땅이 위치한 인근 동방 지역에서는 가장 “큰 자”(가톨)로 소개됩니다.

(3) 자녀를 위한 번제(4-5)

욥의 최선의 삶을 보여주는 절정은 자녀나 소유물에 대한 소개를 지나 종교적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즉. 그의 자녀들을 위해 한결같이 드리는 속죄를 위한 번제 장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최고의 신앙적 행위의 보도 가운데 어두운 그림자가 동시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속죄 제의를 드리는 욥의 분명치 않은 동기입니다.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5). 주석가들 가운데에는 욥의 자녀들의 희생 자체가 욥이 행여나 걱정했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욥을 방문한 친구들의 과도한 교리적 입장입니다. 욥기의 서론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욥이 지금 자신의 완벽주의적 신앙의 태도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삶에 있어서 흠이 없는 신앙은 자녀들의 혹시 모르는 죄악의 씨앗까지도 말소하려는 경향을 띠게 합니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에서 ‘항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욥의 완벽주의적 신앙의 화룡점정입니다. ‘콜하야밈’은 ‘모든 날들’ 즉 매일같이 일관되게 행하는 신앙적 성실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6-1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시며 오직 마음의 중심을 살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보시며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이처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욥기는 종교적 형식을 갖추는데 머물지 말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6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9-12)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하늘의 법정에서 회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삳탄에게 욥에 대한 시험을 허락시는 것은 사탄의 도발과 충동 때문이 아니라 욥의 고난을 통해 드러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천상회의(6)

지상에서 의인 욥의 행사가 소개되다가 갑자기 천상에서 벌어진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회의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욥이 받는 의로운 고통의 발단이 이곳에서 설명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천상회의 또는 하나님의 어전회의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하늘의 결정을 말할 때 도입되는 문학적 수단입니다. 실제로 천상회의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소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창 1:26)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다 대표적인 예는 이사야의 소명 장면인 6장 8절입니다. 세상에 베풀 하나님의 말씀 선포 사명을 어떤 이가 감당할지 하나님께서 회의에 참석한 천사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천상회의를 목도하고 있던 이사야가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욥에 다한 하나님의 칭찬(7-8)

천상회의의 문학적 모티프를 통해 본문을 보게 되면 이곳에 참석한 사탄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의아해집니다. 타락 이전의 천사장 하사탄은 다른 천상의 존재들처럼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소집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하사탄의 역할이 본문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로 땅을 두루다니며 여기저기 구석구석 사람들과 그들의 행사를 파악하여 하나님께 보고하는 기능을 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바로 이 한마디 질문으로 인해 욥의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천상회의의 안건(agenda)은 ‘욥의 의로움에 대한 검토’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1절에서의 욥에 대한 나레이터의 소개가 8절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통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의 고통의 발단에 대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또 없는 욥의 의로움을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통해 검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을 살펴보고 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욥의 ‘여호와 경외’를 검증하려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욥기 38-41장의 하나님의 폭풍우 응답에 이르러서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욥의 신앙의 동기에 대한 검토가 사건의 발단이었음을 아는 데 만족해야 합니다.

(3) 욥에 대한 사탄의 참소(9-11)

하사탄은 단순한 보고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심지어는 고발까지 하는 검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의로움을 보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하사탄은 욥의 신앙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묻고 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가히 충격적인 고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욥의 하나님 경외는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축복하셨기 때문에(10)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전제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손을 펴서 그의 소유물을 앗아간다면 욥의 신앙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 하사탄은 확신합니다(11).

(4) 하나님의 시험을 허가(12)

의외로 하나님께서는 순순히 하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처분토록 허락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욥의 신앙의 동기의 순전성을 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몇몇 주석가들은 이 장면을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내기로 간주합니다. 마치 양자 사이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고 욥은 그 와중에 희생양이 된 것처럼 해석합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피고인 욥을 둘러싼 검사인 하사탄과 변호사인 하나님 사이에 법정공방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전하는 더 정확한 진실은 본래부터 하나님께서는 “까닭 없는” 신앙을 강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욥의 순전한 여호와 경외의 참모습을 확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하사탄의 파송과 결과 보고를 위한 천상회의 장면에서, 그리고 까닭 없는 신앙에 대한 이의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하나님의 모습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욥의 고통은 까닭 없는 신앙을 발견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물론, 그 실험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놀라웠습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 없다는 말로 하나님께 대적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배운 하나님이고 어떻게 형성된 이해입니까? 우리는 설명하지 못하는 고난이나 예기치 않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 지평을 넓히고 깊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 당신이 내 신앙의 이유가 되게 하시려는 뜻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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