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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02-01)

 


두 번째 시험을 당하는 욥

욥기 2장 1-13절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며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유혹 앞에서 입술을 지키는 것이 죄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시작입니다. 입술에 원망을 담지 말고, 믿음의 고백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고백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은 뼈와 살을 치시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 합니다. 사탄이 욥을 치니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납니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지만 욥은 입술로 죄짓지 않습니다. 세 친구가 위로하려고 와서 밤낮 7일 동안 말을 하지 못합니다.

 

 

사탄의 두 번째 천상회의(1-6)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신앙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뜻을 알 수 없는 가혹한 재난들을 만나면 대답은 궁색해지고 변증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해명할 수 없는 곤한 중에서 비로소 신앙은 빛을 발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민 속에서 욥이 보인 태도는 무엇입니까?

 

1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3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4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5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6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1-6)

 

본문은 욥기 1장 6-7절에 언급된 것과 유사한 형식과 내용이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경건을 옹호하자 사탄은 소유의 시험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생명과 직결된 시험을 제안합니다.

 

(1) 두 번째 천상회의(1-2)

 

어느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사탄도 함께 등장합니다. 첫 번째 천상회의와 약간 달라진 부분은 사탄이 여호와 앞에 섰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첫 번째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일 때문에,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사탄이 특별히 하나님께 나왔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2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어디서 왔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아마도 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에 사탄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땅을 두루 다니다 왔다고 말합니다.

 

(2) 욥에 대한 신뢰(3)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사탄에게 하는 질문은 단지 1:8의 반복이 아닙니다. 사탄이 까닭 없이 욥을 쳤음에도,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온전함을 지켰습니다. 이것으로 욥의 경건은 사탄의 주장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3) 두 번째 시험(4-6)

 

사탄은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다른 주장을 관철하려 합니다. 사탄은 가죽으로 가죽을 바꿀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생명과 물질을 바꾸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의미는 물물교환과 관련된 말입니다. 돈으로 돈(물질은 물질로)을 대신할 수 있지만, 생명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말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생명이기에, 사람은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욥의 소유물을 다시 거두어가시고, 그의 자녀들을 죽게 하셨지만, 정작 욥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기에 경건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욥 자신의 생명에 비하면, 그의 재산이나 심지어 자녀들까지 읍에게는 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주님이 손을 펴서 욥의 몸(뼈와 살)을 치신다면 욥은 틀림없이 주님을 향해 욕을 하리라는 것이 사탄의 주장입니다.

사탄의 이러한 제안에 하나님은 욥을 사탄에게 맡기십니다. 그러나 욥의 생명만큼은 건들지 말라는 조건을 거십니다. 뼈와 살은 사람의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지만, 생명 자체는 아닙니다. 따라서 뼈와 살을 치라는 것은 욥에게 육체의 질병과 고통을 가하여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어 보라는 말입니다. 사탄의 말에는,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 존재이기에 자기가 살기 위해시는 무슨 일이든지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욥에게 닥친 두 번째 재앙(7-9)

 

고난이 닥치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시 141:3). 고난 중에서 우리는 하나니믈 운망할 뿐만 아니라 우리 부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말들은 우리가 당한 고난을 더 악화시키고 관계를 깨뜨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입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7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7-9)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욥의 전신에 종기가 생기게 했습니다. 욥이 걸린 병은 피부병으로, 이는 고대 근동에서는 저주받은 자나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식되었습니다(신 25:3.5). 이러한 질병은 욥의 고난을 악인이 당하는 심판과 연결시킴으로, 욥이 은밀하게 악을 행했기 때문에 고통 당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욥은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마을 밖 쓰레기 더미에 앉아 그릇 조각으로 피부를 긁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욥은 그때껏 쌓아 왔던 화려한 경력을 잃고, 미래의 안녕을 보장하는 자녀들 역시 잃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생겨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은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으로 고통당했으며, 사회적으로도 격리되어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욥의 두 번째 반응(10)

하나님 외에 누구도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의 두려움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킬 때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10)

 

이제 욥에게 남은 것은 아내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욥의 아내마저 욥을 향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서 ‘욕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실 ‘축복하다’를 의미하는 그리다. 이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을 축복하고 죽으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번역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1:5의 경우처럼 굳이 이 부분을 완곡어법으로 보고, 욕하고 죽으라는 말로 대치시킬 필요까지는 없어보입니다. 70인역도 욥의 부인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욥의 아내는 괴로워하는 남편을 향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 바에는 하나님을 축복하고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냐는 한탄 섞인 조언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학자가 욥의 아내를 부정적으로만 판단했습니다. 정말 욥의 아내는 칼뱅이나 어거스틴이 말하는 것처럼 사탄의 도구이거나 악마의 조력자입니까? 욥의 아내는 많은 오해를 받지만, 실제로 욥을 떠나지 않았고 끝까지 그와 함께했으며 그를 지켜 주었던 사람입니다. 어찌되었든 아내의 이러한 제안을 욥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기 때문에 화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욥은 결코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세 친구 등장(11-13)

성도는 가까이 있는 이들이 고통을 당할 때 선한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며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유혹 앞에서 입술을 지키는 것이 죄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시작입니다.

 

11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11-13)

 

욥의 친구들이 그를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욥을 방문합니다. 이들은 에돔의 북쪽 지역으로 추측되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하나님께서 정복하신다), 유프라테스강 중부 지역으로 여겨지는 수아 사람 빌닷(하닷의 아들)과 어느 지역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은 나아마 사람 소발(새)입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욥기의 프롤로그와 대화 부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두 부분을 연결 시키는 매개체입니다. 친구들은 처음에 욥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만큼 욥의 상황이 안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욥을 알아본 후엔 소리를 질러 울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재를 날립니다. 그들은 7일 밤낮을 침묵하며 욥과 함께 있었습니다.


욥의 고통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이 그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욥을 보면서 목숨까지 잃었던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께 대한 신뢰를 보였던 주님을 따라 나의 시험을 인내로 잘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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