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01-01)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참된 지혜
야고보서 1장 1-11절
살아가다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납니다. 문제에 대한 태도에 따라 쉽게 풀리거나 더 꼬이는 수 있습니다. 문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하는 것을 ‘지혜(智慧)’라고 합니다. 시련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인내를 통해 믿음의 열매가 맺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이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통해 능력 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기독교 핍박으로 팔레스틴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특징은 교리적이거나 논쟁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생활을 권면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신약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인사말(1)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들이 모두 변합니다. 부정적인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긍정적인 삶으로, 핍박하던 자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병들었던 사람들이 치유까지 받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1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
야고보는 당시 편지의 형식을 따라 먼저 발신인과 수신인을 언급하고 그들에게 인사말을 전합니다. 발신인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이며, 수신인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곧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친 동생이었던 야고보’라고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부른다는 사실은 야고보가 거듭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사역하실 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불만을 가졌습니다(요한복음 7:3-5). 한 번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동생인 야고보는 고향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야고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변했던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7). 그의 영적인 변화는 예수님을 부르는 용어에서 나타납니다. 자신을 ‘예수님의 친 동생’으로 부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육신의 형인 예수님을 ‘주님’라고 부른 것입니다. 속된 이야기로 예수님의 친 동생임을 내세워 덕을 보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변화를 가져옵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길 시험(2-4)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인도 면할 수 있는 것이 ‘인내(忍耐)’입니다. 인내는 예로부터 인륜지덕(人倫之德)으로 분류되어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인내는 별로 중요한 덕목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렇게 인내하는 사람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는 선입관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 사회는 인내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겠습니까? 인내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공정 사회 속에서, 억울한 갑을의 관계 속에서 저마다 인내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내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인내는 기독교인에게도 중요한 윤리적 덕목입니까? 성경은 이 인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2-4)
초대교회 당시에 성도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는 일반적으로 큰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8:1). 이로 인해 성도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사도행전 11:19).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과 스데반 집사의 순교이후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도망친 사람들은 은둔 생활하고 있었습니다(히브리서 11:37-38).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종종 기독교를 표현할 때 ‘익두스(ΙΧΘΥΣ)’라는 고기 문양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면, 체포되었습니다. 때문에 성도들끼리만 은밀하게 ‘그리스도인’라는 암호로 사용하고 다녔던 표시입니다. 이처럼 참으로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고난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향해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열두지파’라고 부른 이유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구원 받은 백성을 의미합니다. 당시는 신약의 신학이 형성되어 있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지만, 구약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구원 성도들이란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교훈과 일치합니다.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1-12)
성도들이 시험을 기뻐해야할 이유는 ‘믿음의 시련(testing of faith)’을 통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사단은 자기 자녀를 핍박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육이 온전하게 되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 가운데 인내(忍耐)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인내하는 과정 속에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있어도 인내가 없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결실을 맺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누가복음 8:15).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훈련시키신 것은 세상의 축복과 번영을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완전한 자질과 인품을 만들어 가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시험을 환영하고 기쁘게 받아들려야 합니다.
고난은 당장 힘들어도 반드시 선한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인내는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성도들을 만듭니다. 시험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채워감으로 하나님의 성도로서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상황과 조건을 초월해서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난관과 역경은 영적 거장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시련을 통해 당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시험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상황을 뛰어넘는 영적 지혜(5-8)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여러 가지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낙심하거나 영적으로 침체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낙심은 전적으로 어려운 상황과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해쳐나갈 지혜가 부족함에서 오는 근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5-8)
‘지혜’는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닥치는 환경에서 각각의 경우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문제와 환경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해 주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더 나가서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종종 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이 배운 지식과 정보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과 정보는 바른 판단력을 가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때론 학교에 가지보지 못한 분들이 배운 사람들보다 어려운 일을 순조롭게 처리하는 것을 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래서 ‘지혜’라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생활 속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 대처 능력인 지혜가 부족할 때,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지혜를 아끼지 않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후히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무엇인가를 베풀어주면서 조건을 답니다. 그러한 선물은 받긴 받았지만 왠지 씁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마가복음 11: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는 의심 없이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하나님께서는 ‘새벽 이슬’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두 마음을 품는다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불안해서 바닷물처럼 흔들리게 됩니다. 아니 마음속에서 해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지혜로운 삶(9-11)
세상에서는 부자가 더 행복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더 강한 것 같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더 약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과 힘을 가지려고 그것에 전력투구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참된 가치와 진정한 행복은 보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9-11)
이제 주제를 바꾸어서 ‘부’에 대해서, 즉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 대해서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갑자기 주제를 바꾸는 것은 실천적인 사람의 특징입니다. 먼저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랑할 것이 소유가 아니라 따로 있습니다.
야보고는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라고 권합니다. 육적인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비천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태도, 곧 겸손한 태도입니다(베드로전서 5:6). 부자가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모든 것이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실수할 수 있습니다. 가진 사람은 자칫 가진 것을 가지고 교만할 수 있습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열등감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모두 상대적일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풀의 꽃처럼 사라집니다. 누구든지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간구한다면,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응답과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서 힘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에 초점을 맞추며 의심하지 말고 구함으로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우리는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응답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상대적인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두지 않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구시길 바랍니다.
성도들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세속적으로 포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련을 바르게 통과하면 영육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래서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겪는 고난과 아픔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승리할 능력과 온전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지혜를 따라 여러 가지 시험을 승리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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