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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02-02)

 


새롭게 시작한 정복 전쟁

신명기 2장 26-37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면서 이방인의 사상에 오염되지 않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정결된 삶을 위하여 죄의 원인을 미리 제거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은 자신을 더럽히는 죄와 죄의 가능성에 대해서 단호하게 척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삶에 진멸되어야할 죄의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거짓말, 불평, 폭력, 도박, 게으름, 성적 탐닉 등이 있습니다. 친숙하게 동거하는 것들과 전쟁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진멸되어야할 죄의 요소들과 타협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어서 그들이 모압 국경 아르논 계곡을 넘은 후 강력한 대적인 아무리 족속과 맞선 일들을 회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지 아래쪽 그레못 광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사신을 보내 아모리 왕 시혼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그레못은 이미 아모리 족속의 영토로서 헤스본 왕 시혼의 실효적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의 협상(26-30)

하나님의 사역을 해나가면서 명분(名分)만으로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나 합의 없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라고 주장하며, 타인과 공동체에게 무리하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과의 협상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갑니다.

 

26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27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28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내가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 나는 걸어서 지날 뿐인즉 29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이 내게 행한 것 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하였으나 30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26-3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싸움을 금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자기 부인의 정도를 시험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비록 수적으로 우세했을지라도 그 부족들에 대하여 어떤 공격도 감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비옥한 영토를 조용히 통과하자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영토를 소유로 주심으로써 순종에 대한 보답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르논 골짜기를 통과하여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진입했습니다. 이 아르논 일대는 모압과 접경 지역입니다. 국경 수비가 허술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한 뒤 북진하여 비스가 산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민수기와 상충하는 진술이 또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모세가 사신을 보낸 곳이 ‘그데못 광야’인 반면, 민수기에서는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꼭대기’였습니다(민수기 21:20). 이 문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비스가 산의 북쪽은 모압 광야인 반면 남쪽은 그데못 평지인데, 그곳이 넓은 의미로 비스가 산지로 간주되었을지 모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일단 그데못에서 사신을 보낸 뒤, 계속 여행하여 비스가 산에서 신신을 보냈다는 말이 충분히 성립될 수 있습니다. 민수기 21장 13-19절에 아르논 계곡 도하 이후의 여행 목록을 살피면 후자의 개연성이 더 큽니다. 그들은 일단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는데’(민수기 21:13), 그곳이 그데못 광야이고 거기서 시혼에게 사신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후 14절 이하에 나온 대로 아르논 북쪽 일대의 몇 군데를 거쳐 마침내 비스가 산에 도착합니다(특히 18절의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에서 이 광야는 그데못 광야일 수 있다).

헤스본 왕 시혼과의 협상 과정 또한 민수기 21장 21절 이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돔과 모압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혼에게 평화적 협상을 위해 사신을 보내 영토를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26; 민수기 21:21). 에돔과 모압을 통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길로만’ 지나면서 어떤 재산상의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식량과 물을 사서 먹겠다고 제안했습니다(27-28; 민수기 21:22). 하지만 아모리 왕 시혼은 이스라엘의 통행을 거부했으며(30) 국경 방어에만 치중했던 에돔과 달리 공격까지 합니다(32; 민수기 21:23).

여기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진술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혼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시고 완고하게 하셨다는 발언입니다. ‘완강하다’와 ‘완고하다’는 이미 애굽에서 파라오에게 적용되었던 완고한 심리를 나타내는 동사들입니다.

앞서 2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사람 시혼과 더불어 싸워서 그 땅울 차지하라’고 명령하신 반면, 곧바로 26절에서는 모세가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의 협상안을 제시합니다. 과연 모세가 제안한 협상은 하나님의 의도였겠습니까? 우선 평화로운 협상의 시도는 명백히 신명기 20장 10절 이하의 규정에 의해서도 정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성읍을 치려할 때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거부하면 전쟁을 개시하여 그들을 진멸해도 됩니다(신명기 20:10-13). 흥미로운 것은 파라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모리 왕 시혼의 거친 심리는 하나님께서 시혼 왕을 ‘완강하게, 그리고 완고하게 만드신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즉, 시혼 왕은 파라오와 같은 자임이 암시됩니다. 시혼 역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고하게 만드시는 이유 또한 동일합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30).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기시려고 그들을 완고하게 하십니다. 그들의 완고함 때문에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전쟁을 명령하신 것이며, 아무리 족속과 그들의 왕 시혼은 단지 전쟁에 이르는 협상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완악한 마음을 드러내 진명의 대상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호 격파와 헤렘 전쟁 수칙 준수(31-35)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귀 기울이고 순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무단히 노력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31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32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33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34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음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35다만 그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31-35)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존재인지를 증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행보는 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얼마나 할 말 없는 악행이고 어리석음인지 보여줍니다.

 

⑴ 시혼을 격파함(31-33)

 

협상이 결렬되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시혼 왕과의 전쟁을 선포하십니다. 이제 시혼 왕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32). 시혼이 먼저 공격을 해왔습니다. 시혼은 야하스에서 이스라엘과 격돌했습니다. 아마 이곳은 이스라엘이 아직 느보 산에 도착하기 전에 숙영을 한 비스가 산악 지역 아래쪽에 위치한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과 맞선 끝에 물리쳤는데, 앞서 건너온 아르논 골짜기로부터 멀리 얍복 강에 이르기까지 아모리 인의 땅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후대의 선지자 아모스의 회고적 기록에 따르면 이때 이 지역의 아모리 족속은 백향목처럼 장대하고 상수리 나무처럼 강했다(아모스서 2:9).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그 무적의 종족을 무찌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시혼 땅의 모든 성읍을 정복하고 또한 각 성읍에 살던 모든 사람을, 즉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 유아까지 진멸했습니다.

 

⑵ 헤렘 전쟁(34-35)

 

하나님께서는 시혼 땅에 살던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무자비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진멸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의 의미는 ‘전적 봉헌’이며 명사는 헤렘(םרח)입니다. 특별히 ‘헤렘 전쟁’은 진멸 전쟁으로 인간이 그 전쟁으로부터 전리품이나 소유물, 나아가 포로도 사로잡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전쟁입니다(신명기 20:10-18). ‘헤렘 전쟁’의 규칙은 대상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가나안 족속의 경우 모든 사람을 죽이는 철저한 진멸이고 비(非)가나안 족속은 남자만 죽입니다. 현재의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대표 족속으로 전자의 기준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정서상 매우 불편하게도 헤렘 전쟁에서는 여성과 유아까지 모두 죽여야 합니다. 가나안 전쟁은 헤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렘 전쟁은 신학적 관점에서는 일종의 심판 전쟁이며, 마땅히 인간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징벌을 받는 셈이었습니다(창세기 15:16; 신명기 9:5). 아브라함 때에는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약 400년(창세기 15:13)을 기다려야 했습니다(창 15:16). 그 후 가나안 족속의 악이 가득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쓸어내셨으며 이 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맹세를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신명기 9:5). 그들이 진멸 당한 이유는 가중한 죄악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임계량을 넘겼을 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결국 심판을 실행하신다. 노아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장차 있을 인류 최후의 심판도 하나님의 정당한 헤렘 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의 대가를 치를 뿐이며, 이런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시혼 땅(길르앗)의 점령지(36-37)

항상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나 고집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에 빠지고 패망하게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워할 대적도, 정복하지 못할 성읍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36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까지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37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36-37)

 

이스라엘이 점유한 헤스본 왕 시혼의 영토 범위가 대략적으로 묘사됩니다. 그것은 아르논 골짜기에서 가까운 아로엘과 그 골짜기 주변의 성읍들로 시작하여 길르앗에 이릅니다. 여기서 길르앗은 얍복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평원을 의미합니다. 그 너머는 바산 평원으로 바산 왕 옥이 다스리고 있는 영토였습니다. 민수기 21장 25-32절에서 확인되듯이,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의 성읍들을 모두 정복했으며 그들의 수도 헤스본과 위성 촌락들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 곧 그 땅이 모두 그들의 수중으로 넘어왔음을 의미했습니다. 과거 헤스본은 원래 모압 왕의 영토였으나 아모리 족속이 모압을 물리치고 아르논까지 모압을 밀어내 그곳을 국경으로 삼았습니다(민수기 21:26).

그러나 그 지역이 이제 이스라엘의 수중으로 넘어왔습니다. 얍복 강 주변은 당시 암몬 땅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서 진격을 멈추었다. 민수기 21:25에서 보고하는 대로 암몬은 강력했고 국경 수비 또한 견고했기 때문이며, 그보다 중요하게는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전쟁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일에 완고하기에 그들의 저항과 방해는 반드시 수반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신앙은 없고 저항을 요구하지 않는 신앙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저항은 그분을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에게 모두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는 하나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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