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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2-02)

 

 


이방인들과는 다른 생활

신명기 12장 20-32절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예배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생활이 행복합니다. 반대로, 생활이 행복하면 믿음 생활도 은혜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 기독교의 보수 교단들은 교회의 영적인 일과 사회의 세속적인 일로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생활의 괘리가 생겨서, 본의 아니게 이중적인 생활을 강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은 잘한 편인데, 세상에서는 지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본문은 일반 도살과 제의 도살의 세부 규정이 마련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지경이 넓어진 후에 이 짐승 도살법을 따라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을 때 원하는 대로 어디에서든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신분의 제한이 없으니 정결한 사람은 물론 부정결한 사람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피를 고기에서 모두 뽑아내 땅에 쏟아야 합니다. 고기를 피째 먹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도살의 세부 규정(20-25)

온전한 누림을 위해서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마음껏 놀면서 서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범위와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되는 제한들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함을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풍성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규정을 주신 것입니다.

 

2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21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22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24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25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20-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누릴 것과 금할 것을 알려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제한과 금지를 말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짐승을 잡아먹는 규례를 언급합니다. 제물이 아닌 식용으로 짐승을 잡는 것을 말합니다.

 

⑴ 도살 장소와 고기의 섭취(20-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20)라고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점유한 뒤에 집에서 기른 짐승이든 사냥한 짐승이든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 ‘정결한 짐승’으로 분류된 모든 짐승을 원하는 대로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21).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지정된 ‘성소’에서 먼 곳에 산다면, 각 성에서 마음껏 소와 양/염소를 도축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소가 ‘네게서 멀거든’이라는 표현은 조금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정된 성소에서 ‘멀다’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문구와 더불어 더 큰 난제가 발생하는데, 이 표현대로라면 지정된 성소에서 먼 곳에서는 일반 도살이 허용되는 반면, 성소 근처의 주민들은 고기를 먹기 위한 일반 도살도 성소에서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절에서 본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피를 제대로 처리한다면 성소와의 거리와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든 각 성읍과 거처, 들판에서도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런 견해는 신명기 자체가 상호 모순된 명령을 내린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릅니다. 따라서 랍비들의 해석의 전통은(Rabbinic halakhah) ‘네게서 그곳이 멀거든’이라는 말을 15절을 따라 성소 바깥 백성들의 모든 거주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14:24의 동일한 표현은 이것을 지지하지 않으며 실제로 먼 거리를 의미합니다. 한 가지 가능한 견해는 ‘네게서 그곳이 멀거든’이라는 조건절이 27절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말하자면, 만일 성소가 네 거주지에서 다소 멀다면(21), 일반 도살은 명령한 대로 너의 성읍에서 피를 완전히 쏟아낸 다음 마음껏 먹을 수 있으나(21-25), ‘그러나’ 성물과 서원물과 번제물은 너의 성읍이 그 지역의 성소에서 다소 멀더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소’로 가지고 올라가라(26)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백성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자신이 기른 가축인 소, 양/염소를 언제든 잡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잡다’는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 모두에서 사용됩니다. 이 ‘일반 도살’을 통해 얻은 고기는 누구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정한 자나 부정한 자’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레위기 법에 의하면 원래 부정케 된 사람은 성소에 출입할 수 없고, 성소에서 나온 거룩한 고기, 즉 화목제 고기의 식탁에 참여하여 먹을 자격이 없었습니다(레위기 7:19-21).

그러나 일반 도살의 고기는 부정한 사람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21). 또한 그들은 노루나 사슴, 즉 야생의 정결한 짐승도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고 사냥감을 먹을 때처럼 집에서도 가축을 똑같은 방식으로 잡아야 합니다(22; 레위기 17:13). 이것은 신명기가 레위기를 전제로 율법 강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랍비의 전통과 그것을 따르는 밀그롬은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잡아’라는 표현에 당시에 전수되어 온 가축 도살법이 압시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내가 네게 지시한(instructed) 대로’로 해석합니다. 즉, 모세는 당시 조상에게서 전수받은 가축 도살 방법대로 도살하는데, 탈무드에 그것이 다섯 가지 규칙으로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그 기법을 요약하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날카로운 칼로 짐승의 후두를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찌릅니다. 밀그롬에 의하면 칼날을 정기적으로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 역시 짐승을 배려한 조치입니다.

 

⑵ 피는 먹지 말 것(23-25)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하는 데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한 가지만을 금하셨습니다. 23-24절에서 ‘그 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축이든 사냥감이든 정결한 짐승들은(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모두 도살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피를 명령대로 가축의 몸에서 다 빼서 땅에 쏟고 아마도 레위기에서 명시하듯이 그것을 흙으로 덮어야 합니다(레위기 17:13).

‘피를 먹지 말라’는 경고는 레위기 17장에 여러 번 강조되어 있습니다. 피 섭취를 금지하는 이유는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동물의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으며 더 나아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생명권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동물도 하나님의 소유임으로 인간의 탐욕을 위해 함부로 동물일지라도 학살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행동이라고 하셨습니다(25). 그래서 이 법을 지키면 이스라엘과 그의 후손이 대대손손 형통케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돌봄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만 극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세워서 다른 피조물에게도 영향을 끼치도록 원하셨습니다.

 

희생 도살의 세부 규정(26-2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원하십니다. 오늘날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동물이 학대받고 학살이 자행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 우주를 통치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라면 모든 피조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모든 생명들을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26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26-28)

 

성경에서 나오는 모세의 열 가지 재앙에 나온 짐승이 또한 애굽의 신들입니다. 그 신들을 점점 정복해 나가는 것이 열 가지 재앙입니다. 이방 민족들은 짐승을 신(神)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짐승을 잡는 것은 거룩한 제사장이나 아니면 아주 천한 백정들이나 짐승을 잡았습니다. 어떤 한정된 사람만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짐승을 잡아서 식량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도살’과 달리 ‘희생 도살’은 성물과 서원의 제물을 성소에 가지고 올라가듯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실 장소’, 곧 ‘성소’에서 실행되어야 합니다. 아마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다면’(21)에 연결되어 거리가 멀다 해도 모든 봉헌물은 합법적인 성소로 가져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소에 희생 제사를 드릴 때 피는 반드시 계단 위에, 부어야 하는데(28), 이것은 불판 위에 피를 붓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사법에 의하면,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서 제단 주변에 뿌리고 뿔에 바르고 남은 피는 제단 밑에 쏟는 속죄제의 피를 제외하고는(레위기 4:6,11,25) 모두 양푼을 들고 제단에 가서 제단 사면 벽에(‘계단 사방에’라고 되어 있으나 벽을 의미함) 끼얹어 뿌립니다(레위기 1:5; 3:2; 7:2). 만일 피를 제단 위의 불판에 붓는다면, 여러 마리의 짐승을 바칠 경우 불이 꺼질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27절은 혼동을 주는 번역입니다. 하반절의 ‘네 제물의 피’가 번제를 의미하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 제물’은 앞의 ‘번제’와 다른 제사입니다. 더 나은 번역은 ‘다른 희생 짐승의 피’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 번제는 사람이 어떤 것도 먹을 수 없으며 모두 하나님께 태워서 올립니다(다만 가죽은 벗겨서 집례하는 제사장의 수고비로 돌린다). 그 외 다른 제사들은 짐승의 내장을 덮은 기름과 두 콩팥, 그리고 간의 일부를 자른 간엽(간 꺼풀은 오역임)을 제단에 태우고 나머지 고기 부위는 사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제바흐’는 일차적로 가장 대중적인 제사였던 ‘화목제’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신명기는 ‘번제와 희생제들’이라는 총칭어법으로 모든 제사를 포괄하여 지칭합니다. 따라서 화목제 외에 속죄제/속건제의 고기 섭취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화목제는 제사장 몫을 떼어주고(레위기에서는 오른쪽 뒷다리와 가슴이지만 신명기에서는 앞다리와 두 볼과 위로 변경된다) 나머지는 제사자가 가져가서 식구, 친족과 더불어, 아마 큰 짐승인 소의 경우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역시 동일하게 기름과 내장 일부를 태운 다음 독점적으로 제사장들만 먹었습니다. 다만 제사장 자신의 속죄제와 속건제 짐승의 피를 성소의 본당으로 가져와 향단에 뿌린 경우 그 고기는 반드시 진영 밖에서 태워야 했던 것만은 예외입니다.

 

가나안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29-32)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역겨운 음악과 미술, 또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끄러운 일들을 종종 봅니다. 이런 것들마저도 협오하지 말도록 요구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아름다움이란 것을 지나치게 주관화 시켜서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등, 성도들은 이 세상의 어리석은 일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방 종교와 문화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2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31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32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29-3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는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는 방식을 얘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군사나 민족이 아니라 각 지방에 토착화된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 백성들처럼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황을 마무리하고 가나안에 정착할 것입니다. 그들은 낫선 땅에서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것이 현명한 방법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방법을 연구해서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이, 그 땅에 빨리 정착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철저히 지킬 것을 말합니다(18).

당시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은 지역마다 마을마다 그곳을 수호하고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그 신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멸절하고 이러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따르지 말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의 양식은 그들이 섬겼던 가증한 신들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방 종교의 유입을 막기 위한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 문제를 다루던 모세의 연설은 여기서 가나안 신들의 위험성에 대한 직접적인 주제로 되돌아갑니다. 이 주제는 13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청중에게 가나안 신들에게 호기심을 품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둡니다.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보고서 그 풍산을 주관하는 그 땅의 신들, 곧 바알과 아세라에 주목하여 그 신을 탐구해서는 안 됩니다. ‘탐구’는 ‘면밀하게 알아보다’라는 뜻으로 가나안 신들에 매료되어 심취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예배와 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그러나 그것이 백성들의 올무가 될 것입니다. 덫에 걸리면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 신들을 섬겼습니까? 심지어 그들은 인신 제사, 곧 자녀 희생마저 불사하면서 그 우상들을 섬깁니다. 과연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것을 기뻐하는 신은 어떤 신입니까? 이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일, 혐오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세속적인 생존번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땅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화 되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더럽고 악한 문화가 있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그 땅이 하나님 나라화되길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우리 정체성은 우리들이 어떤 땅에 속해 있는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며 삶의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만의 특별한 제안을 두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고기를 잡아 먹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는 성소에서만 잡길 원하시고, 피를 먹지 말도록 명하심으로서, 이방 종교의 난잡하고 협오스러운 피의 제사를 들리는 것과 구별되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이방 종교들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기교하고 비인간적인 제사에 동참하려는 유혹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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