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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2-01)

     


택하신 곳에서 드릴 제사

신명기 12장 1-19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분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있었던 세상의 흔적을 아직도 아쉽다고 남겨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내려놓지 못해서 자신을 왕으로 군림한 부분은 없습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영역들을 발견하고, 그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역사적 회심과 더불어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준엄한 결과인 축복과 저주를 상세히 경고한 다음, 모세는 12장에서 본격적인 율법을 강론하기 시작합니다. 이 강론은 12-26장에 이르는 기나긴 분량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할 ‘규례와 법도’입니다. 모세가 가장 먼저 꺼낸 주체는 십계명의 1,2계명입니다.

 

불법적 성소의 철거(1-3)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할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은혜로 이스라엘이 선택을 받았지, 절대로 구원의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처럼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1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2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1-3)

 

하나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서 어떠한 생활을 살아야 할지 그 청사진을 보여주십니다. 모세는 이제 그들이 지켜야 할 ‘토라’을 12장을 시작으로 26장까지 장황하게 풀어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그들이 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그 땅의 곳곳에 설치된 우상의 제단을 파멸하고 그곳의 각종 우상물, 곧 주상과 아세라 상과 조각 신상들을 부수고 불사르는 일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힘써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땅에서 없애야할 것은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신을 섬겼던 곳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던 모습을 철저히 없애길 원하셨습니다. ‘높은 산’과 ‘언덕’ 그리고 ‘무성한 나무 아래’와 같은 이방의 성소와 제단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가나안의 지방 제의 처소들은 대체로 돌이나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라기보다 옥외에 있는 제의 시설을 의미합니다. 2절의 긴 명령문은 ‘파멸하라’가 가장 앞에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3절의 연쇄적인 명령인 ‘헐라’, ‘깨트리라’, ‘불사르라’, ‘찍으라’, ‘멸하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얼마나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 심으셔서 열방 가운데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되심을 보여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을 섬기는 반역과도 같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땅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전에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흔적도 철저히 제거하므로, 그곳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방신들의 제단들을 비롯하여 그곳에 세워진 주상(돌기둥), 아세라 목상, 조각된 신상들을 부수고 찍어 내고 불살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우상의 이름들을 지워버려야 하며(3), 5절에서 보듯이, 오직 그 땅에 하나님의 이름만 남아야 합니다. 이것은 뒤에서 논의할 여호와 예배의 ‘중앙 성소화’를 위한 강력한 조치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이 주인 삼고 있는 것들을 ‘헐고’, ‘찍고’, ‘깨뜨리며’ 멸하라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보다 앞선 것들을 다 깨뜨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해야 합니다.

 

합법적 성소의 지정(4-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배하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많은 성취나 높은 직위 그리고 많은 군중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과 배려하고 긍휼히 여기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신 제사에서도 바로 그 섬기는 모습입니다.

 

4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4-7)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아무 곳이나 아무렇게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분명하게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바른 예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신 다음 이제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인가를 말씀하시며, 그들이 제사드릴 것들을 언급하십니다.

 

⑴ 일정한 장소(5)

 

첫째는 일정한 정하신 장소에서 드려야 합니다(5). 하나님께서는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말씀합니다. 이방 민족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서 정해진 장소가 아니라 아무 곳이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무 곳이나 드린 것이 아니라 지정하신 장소에서만 드려야 했습니다.

바른 번역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곧 자신이 거기 거하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라’(5) 이러한 해석은 ‘자신의 이름을 거기 둔다’와 ‘자신이 거기 거하신다’를 같은 개념으로 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성소에 자신의 이름을 둠으로써 거기에 거하십니다. 어떤 형상이 있는 곳에 신이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현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인 예배 장소를 지정하십니다. 사람들이 지정한 곳은 불법적인 장소이며, 단지 그들이 만든 신들을 섬기는 우상의 신전일 뿐입니다. 모세는 그곳을 단지 여호와께서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이라 부를 뿐 특정한 곳을 적시하지 않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지정된 성소를 예루살렘 성전이 유일한 합법적 성소로 허용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며, 가나안 땅 지방의 몇 곳에 합법적인 여호와의 성소가 허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자신이 지정한 그 장소, 곧 성소에 자신의 이름을 두며 또한 자신이 거기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⑵ 일정한 예물(6)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서 바쳐야 할 제물들의 품목을 나열합니다. 그것들은 먼저 희생 제물들이며, 이어서 십일조와 거제, 그리고 서원제와 낙헌제, 또한 소와 양 첫 태생들입니다. 번제와 제물의 정확한 번역은 ‘번제’와 ‘희생제’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번제와 화목제’로 보면서 나중에 레위기에서 신설되는 속죄제와 속건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선 책들의 내용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이 트인 신명기에서 ‘번제와 희생제’는 모든 희생 짐승의 제물들을 가리키는 총칭어법(merism)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견해는 이어지는 품목들에서 별도로 ‘서원제와 낙헌 예물(낙헌제)’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지지를 받습니다. 서원 제와 낙헌제는 다름 아닌 화목제의 품목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들은 공동체의 나눔을 강조하는 신명기에서 특히 중시되는 제사이기 때문에 뒤에 별도로 나열된 것으로 보입니다. 십일조와 거제 또한 지정된 성소에 올라가 바쳐야 합니다. 거제는 사실 손으로 올리는 동작으로 바치는 제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성전에 ‘올려 바치는’ 봉헌물, 곧 자원해서 가져온 것,(출애굽기 25:2)으로 다양한 종류의 봉헌물들이 여기 포함됩니다. 서원제와 낙헌제(혹은 자원제), 곧 ‘네데르’와 ‘네다바’는 레위기에서 세 종류로 구성된 화목제의 품목들에 속합니다(레위기 7:11-21). 서원의 화목제는 서원 기도가 응답된 후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기도가 응답된 후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바치는 감사의 제물이며(삼상 1장에서 한나가 서원 기도의 응답 후 바친 화목제), 낙헌의 화목제(네다바)는 특별한 감사할 일이 없음에도 순전히 자원해서 바치는 감사의 제물입니다. 여기서는 레위기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찬양/감사’의 화목제인 토다가 빠져 있는데, 토다는 특별히 목숨과 관련된 감사한 일을 경험했을 때 바치는 가장 뜨거운 감사의 제물입니다. 신명기에서는 ‘토다’는 특별히 목숨과 관련된 감사한 일을 경험했을 때 바치는 가장 뜨거운 감사의 제물입니다. 신명기에서는 ‘토다’가 단순히 감사의 화목제인 ‘네다바’에 함께 같은 범주로 묶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와 양/염소의 첫 새끼는 자동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분류되어 성전에 바쳐야 했습니다(출애굽기 13:2; 34:19-20).

 

⑶ 일정한 교제(7)

 

셋째는 일정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7)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제물들을 지정된 성소에 가지고 올라가 여호와께 드린 후에 온 가족이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가족들만 아니라 남녀종들과 레위인들과 더불어 이 제물들을 나누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는 사람들의 임의대로 자기 목적과 편의대로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방법대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편의와 목적에 따라 드려지는 것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공동체가 같이 모여 드리는 공예배 뿐만 아니라 개인의 예배라고 할 수 있는 기도시간과 말씀 묵상시간도 자기중심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고 기다리게 하는 ‘인간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합법적인 성소에서의 제사들(8-12)

아무리 화려한 제사이고 웅장한 예배이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다 종교의 제사들을 보면 때로는 헌신적으로 신을 부르고 웅장하게 종교의 위엄을 자랑하는 것에 기가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방법을 따라 제사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합법적인 제사를 지시하고 계십니다.

 

8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8-12)

 

모세는 ‘너희 소견대로’ 여호와의 제단이라 불린 곳에서 봉헌물을 바치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막이 아직 없던 애굽에서 오래도록 그런 전통을 유지해왔던 것입니다.

성막 완성 직후 반포된 레위기는 17장에서 그런 사적인 제단의 불법적 운용을 강력히 금지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레위기 17:14). 그것은 가나안의 거짓 신들과 그들의 우상들을 따라갈 큰 위험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한 번 조상들의 오랜 관행을 금지하면서 ‘지정된’ 성소에서만 그런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에서 열거한 모든 제물들과 봉헌물들을 ‘각기 소견대’로, 아무데서나 바쳐 선 안 되며, 그 땅의 정복을 완료한 후에는 ‘지정된 성소’에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너희의 가족이 그것을 즐기라’고 했는데, 12절에서 상세하게 그 가족 범위를 넓힙니다. 아내(암시됨)와 자녀가 동반되어야 하고, 심지어 노비(정확히 는 남종과 여종)와 더불어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들도 참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분명 정중의 레위인의 동석은 이 봉헌물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각 지방의 여호와의 ‘택한 성소’가 있는 레위인의 성읍에서 드려졌을 가능성을 강력히 암시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각 지방의 어떤 레위인을 동석시켰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매번 봉헌물을 바칠 때마다 전국 48개 도성에 퍼져 사는 레위인들까지 그 먼 거리를 갔다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가까운 택한 성소에서 이 법규를 지켰다고 결론 내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레위인들은(제사장 포함) 성막 봉사라는 특수한 임무를 받은 지파로서 땅을 전혀 할당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생계를 책임져줘야 했습니다(12).

 

오늘날에는 예배는 개인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예루살렘의 중심’인 ‘교회 중심’으로 예배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도원이나 기타 단체를 찾아가서 집회 참석하는 것도 담임 목회자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에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희생 도살과 일반 도살의 구분(13-19)

하나님께 나올 때는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예물을 위한 예물이 아니라 예물에 담긴 믿음을 보시기 위합니다. 성도들이 헌금을 준비할 때 믿음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신앙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드릴 재물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13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13-19)

 

소위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희생 도살은 반드시 ‘택하실 성소’에서 실행되어야 하지만 고기를 먹기 위한 일반 도살은 가축이든 사냥감이든 어느 곳에서든 가능했는데, 피는 반드시 모두 땅에 쏟은 뒤 먹어야 합니다. 일반 도살의 고기는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17-19절은 앞서 강조한 바 성소에서 바치는 각종 봉헌물들을 가족과 레위인들이 함께 나누라는 명령의 반복입니다. 이러한 강조는 나눔을 통한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이 법의 실천이 대단히 중요했음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12장이 다른 신의 추종과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루다가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의 문제를 심각히 다루는데, 이는 희생 도살을 지정된 성소로 제한하여 불법한 성소의 우상숭배가 유입되지 못하게 철저히 막기 위함입니다.

 

믿음은 아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천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단 가나안 족속들이 전통적으로 섬기던 우상 종교가 있습니다. 이 우상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윤리적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짓 종교들은 결국 가정과 사회 그리고 나라까지도 망치는 역할 합니다. 거짓은 아무리 꾸며도 거짓일 뿐입니다. 거짓 종교는 아무리 거룩하게 꾸며도 거짓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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