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시편(015-01)


진정한 예배

시편 15편 1-5절


 예배란 어떤 의식이나 행위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식 예배보다 삶의 예배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어떠합니까? 내게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면서 진정한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이 시는 하나님 임재의 처소에 들어가기 전 예배자의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이 조건들은 지혜로운 삶의 방식으로서 윤리적인 삶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장막과 성산으로 언급되는 곳에서 예배하기 위한 열 가지 선행 조건들인데, 이것을 온전히 충족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시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죄사함의 필요성을 깨닫고 겸허히 예배하도록 교훈합니다.

 

[질문] 누가 당신의 장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1)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지만, 그것이 구속의 이유는 아닙니다.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고 유하면서, 그 백성은 왕이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내리시는, 살아있는 교제가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걸맞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열망이 있을 때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질문합니다. 두 개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여호와여, 당신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 사는 자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요한 장소가 언급됩니다. ‘장막’과 ‘거룩한 산’입니다. ‘장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후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께서 주신 도면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장막은 이동이 쉽도록 설계되었으며, 하늘 하나님께서는 땅에 거주하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막을 만나는 장소로서 회막(사무엘하 7:6)으로도 불렸으며 솔로몬의 성전으로 대체됩니다. 장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며 예배의 장소로서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 장소입니다. 15:1처럼 장막과 거룩한 산이 함께 등장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2:6; 3:4; 43:3; 48:1).

다윗의 질문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이 서로를 향해 반복했던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누구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항의합니다. ‘머무르고’ ‘사는’ 것은 비슷한 의미입니다. ‘머무르다’는 일시적 ‘거주’(구르)이고, ‘살다’는 ‘정착’ (샤칸)을 뜻합니다. 다윗은 성전과 거룩한 산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정착하든 누가 거기에 머물며 살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하나님 임재 앞에서 보호받고 쉴 권리를 가진 자들이 누구인지를 새겨보라는 초대입니다.

 

[대답] 정직, 공의, 진실한 일상(2-5ab)

하나님께서는 책망 받을 것 없는 길을 걷고, 공의롭게 행하며, 맘속에서부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경배를 받으십니다. 근사하지 않더라도 고백과 마음과 삶이 하나 된 백성의 찬미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받고 싶은 제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가꾸운 벗과 이웃조차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이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울 수 없습니다.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2-5ab)

여호와의 성전, 곧 그분의 임재 앞에 거할 수 있는 조건이 열 가지로 제시됩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조건들입니다. 적극적으로 수행할 일과 금지 조항들이 각각 다섯 가지로 열거되었습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것으로, 정직하게 걷고, 공의를 행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2).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서원을 했다면 해를 입더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4).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정직하게 걷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어로는 결점이 없고 비난할 것이 없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둘째, 공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공의’는 보편 타당하게 옳은 일을 행하는 것과 관련된 덕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평하고 법적으로도 결백하고 진실한 사람이 공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마음으로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굳이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진실한 말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지혜와 의지와 의사결정의 자리이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진실’(에메트)은 구약성서에서 공의와 거의 항상 짝꿍처럼 함께 어울리는 말로서 믿을 만하고 신실하고 충성스러움을 가리킵니다. 이는 표리부동한 언어의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의지와 말이 일치하는 사람이 예배의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넷째 조건은, ‘망령된 자’를 거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4a). 이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4b)과 동의적인 평행관계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망령된 자’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망령된 자’는 비열하고 야비하고 깔보고 얕보는 사람입니다. 남을 얕보고 깔보는 사람은 당연히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비열한 태도를 보이거나 남을 얕잡아 보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예배자의 적극적인 행위로 제시한 마지막 요청이 있습니다. 주의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는 자는 손해를 보더라도 맹세한 것을 바꾸지 않습니다(4bc). 해석하기 까다로운 부분입니다. ‘서원’은 자기가 믿는 신에게 맹세하고 서약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레위기 마지막은(27장) 서원을 되돌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서원의 엄격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서원을 무를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구약 본문은 서원의 나쁜 예로 사사시대 입다를 지목하곤 합니다. 사사 입다는 무분별한 ‘서원’으로 자기 딸을 번제물로 바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4일 동안 애곡하는 풍습이 생겼습니다(사사기 11:34-40). 전도서는 서원한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서원’을 이행하라고 조언합니다. 서원하고 이행하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안하는 것이 낫다고 덧붙입니다(전도서 5:4-5). 이것은 서원의 신중함을 말한 것이지 서원을 장려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 본문의 전반적인 맥락처럼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것은, 예배자의 서원을 장려하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4절 시행에서 하나님께 서원하는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행위보다 ‘맹세하다’(샤바)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직역하면 ‘그는 잘못 행동하지 않도록 맹세하고, 취소하지 않는다’(4bc)라는 말입니다. 그릇된 행동을 안 하기로 맹세한 것을 철회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이는 시행의 전체 맥락에도 어울립니다.

그러면 다윗이 말하는 예배자의 금지 조건은 무엇입니까? 3,5절에 제시되었는데, 이 사항들은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사항이 아니라 금해야 할 행동과 관련 있습니다. 첫째, 자기 혀로 남을 험담하고 뒷공론을 즐기며 떠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을 비방함으로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자기 친구나 동료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 자기의 가까운 이웃을 경멸하거나 비웃고 모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3). 이 중에 하나라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예배자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웃과의 일그러진 관계성 회복이 예배 행위보다 먼저라는 뜻입니다. 넷째, 이자를 받기 위해 타인에게 돈을 꾸어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무죄한 사람에게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5ab). 시인은 이자와 뇌물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스라엘 밖 이방인들과의 사업상 거래는 예외였지만(신명기 23:19-20),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언약백성 사이에서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출애굽기 22:25; 레위기 25:36-37).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인 궁핍함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을 마땅히 할 일로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돈은 오직 도움을줄 목적으로만 빌려줘야 하며, 이자 없이 담보물로 저당 잡는 것만 허용되었습니다(신명기 24:6).

그러나 이 법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에스겔 18:13;22:12; 느헤미야 5:1-13; 사무엘상 22:2). 뇌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윗은 단순히 뇌물 받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예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뇌물 받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뇌물이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비틀어 곡해하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23: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경제적인 일상의 삶에서 약자와 무죄한 자에게 피해를 입힘으로 공평과 정의가 짓밟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결국 처음 시행으로 되돌아가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흠이 없고, 공의를 실천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2) 집약됩니다. 한마디로 정의로운 삶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약속] 흔들리지 않는 삶(5cd)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더 괴롭게 하는 고리대금과 억울한 자를 더 억울하게 하는 뇌물을 싫어하십니다. 뇌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자ㅓ기 백성끼리는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신명기 23:19-20). 지금도 처지가 궁한 성도들을 상대로 이득을 취하거나 뇌물을 받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들 듣지 않으십니다.

5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cd)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열거되었지만, 모든 것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예배자의 합당한 삶은, 공의와 진실한 마음으로 비난 받을 일을 하지 않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을 위한 약속이 선포됩니다. 이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 삶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흔들리거나 비틀거리거나 요동칠지라도 하나님 가르침 안에서 의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며 사는 자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돈으로 타인을 괴롭게 허거나 유혹받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친 이자나 뇌물은 궁핍한 형제를 절망으로 내몹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이득을 취하는 이들의 위선적인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도리어 내쫓고 심판하십니다. 나눔과 선행으로 예배자의 모습을 보이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