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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17-01)


억울한 고난 속에 있을 때

시편 17편 1-15절


예수님을 믿는다고 장밋빛 대로만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기대로 신앙의 길을 간다면 고난이 닥쳤을 때, 낙담하고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다윗 또한 억울한 비방과 부당한 고난으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억울한 고난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배워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시편 17편은 자기의 결백을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변호와 구원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다웃은 사방에서 조여드는 압력과 곤경에서 확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악인들 때문에 애통하지만, 하나님의 세심한 보호를 간청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는 악인들에게서 여호와의 손으로 구원해주시기를 구하며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기도입니다.

 

다윗의 무죄 천명과 간청(1-5)

하나님께서는 귀가 없어 듣지 못하는 목석 같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호소를 세심히 듣고 계시며 처한 상황을 잘 알고 계십니다. 공평하게 살펴 누가 옳은지 판단해주십니다.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탄없이 아뢰어야 합니다. 

1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1-5)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하나님께 아뢰며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공평하게 판단해달라고 청합니다. 자신의 진실을 입증해주시고 깨끗한 양심으로 외식 없이 외치는 부르짖음을 귀담아 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1)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1-2)

본 시를 쓴 다윗의 상황이 무척 다급해 보입니다. ‘여호와여 옳음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하소서 나의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1a) 여호와를 부르며 외치는 다윗의 연속되는 요청이 눈에 뜁니다. ‘들으소서’, ‘주의하소서’, ‘귀를 기울이소서’ 이러한 일련의 구문이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한 정보는 생략되었습니다. 그러나 ‘의’ 곧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호소하고 법적으로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 같습니다.

본문에서는 ‘나의 부르짖음’과 ‘나의 기도’는 절박함을 강조합니다. 더군다나 다윗은 자기의 기도가 거짓되지 않은 입술의 말(1b)이라고 합니다. 그는 주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음을 당당히 밝힙니다. 자기의 부르짖음과 기도가 옳음을 호소하는 것은 자기 의를 뽐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다윗을 향한 비난과 공격에서 무죄 입증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판결은 여호와께 있으니, 당신의 눈이 옳은 것을 보실 수 있기를(2)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법적 판결을 적극 요청하는 것은 긴급한 호소와 함께 정당한 판결을 구하는 결백 주장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의 결백 주장의 언어는 좀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2) 다윗의 결백 주장과 이유(3-5)

다윗은 당당합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방문하셔서 자기 마음을 시험해도 흠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3) 말합니다. 밤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깊은 사적인 시간입니다. 이 시간 주님이 ‘방문하셔서’ 마음을 시험하셔도 다윗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3절 시행에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 기관에 속한 마음과 입이 시작과 끝에 배치되어 시행을 둘러싼 형태입니다. 마음은 고대인들에게 생각, 지혜, 의지의 자리이며 의사결정기관입니다. 고대인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나의 입술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3)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무죄와 결백이 말과 관계된 것이요, 생각과 말이 일치함을 강조합니다. 이후에도 말과 행위의중요성은 계속 언급된다. 다윗은 주의 입술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 삼가고 포악한 자들의 길을 가지 않았음을 선언합니다(4).

또한 의도적으로 ‘강포한 자의 길’과 ‘당신의 길’을 대비시켜 주의 길을 굳게 지켰음을 강조합니다(5a). 이 때문에 다윗은 나의 발이 미끄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5b). 시편 1편처럼 다윗은 삶을 ‘길’에 빗대어 자신의 올바른 발걸음을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악인과 대적의 위협에서 보호 받기를 간구(6-12)

떳떳한 사람이 강합니다. 기도의 힘은 정직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했음을 호소할 정도로 거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늘 하신 말씀과 발자취만을 따랐으며 벗어난 적이 없다고 탄원할 수 있습니다. 티끌만큼도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언약의 법에 신실했다는 뜻입니다.

6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6-12)

다윗은 하나님께 떳떳한 자신의 기도에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께 피하는 자신을 그 능하신 오른손으로 구원해달라고, 주의 기이한 사랑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뿐임을 호소합니다.

(1) 내 말을 들으시고 지키소서(6-9)

이제 다윗은 ‘하나님’(‘엘’)을 부르며(6) 응답하실 것을 믿고 간구합니다(6-8). 다윗은 부르면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전제한 듯 말합니다(6). ‘그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라고 간구합니다(7a). 이 말은 히브리어와 한국어의 어순 차이 때문에 셋째 소절에 위치했지만, 본래 7절의 첫 소절입니다. 다윗이 담대하게 ‘그 기이한 사랑’, 곧 ‘헤세드’를 구합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의 핵심으로서 실패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 기이한 사랑’(‘헤세드’)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피하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7bc).

다윗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요청합니다. 그는 이른바 바다의 노래로 알려진 모세의 노래를(출애굽기 15:1-8) 되풀이하듯 같은 언어를 소환합니다. ‘나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당신의 날개 그늘에 숨겨 주소서’(8; 참조, 신명기 32:10-11), ‘눈동자처럼’, ‘당신의 날개 그늘에’라는 말은 가장 소중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옛적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구원의 은총을 다시 보여주시길 간청하는 호소입니다. 이제 다윗의 기도가 실제적이고 직접적으로 바뀝니다. 다윗은 자기를 압제하는 악인들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9).

(2) 짐승처럼 달려드는 대적들(10-12)

다윗은 악인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기름에 잠겼고, 그들의 입은 교만합니다(10). ‘마음이 기름에 잠겼다’(개역개정)는 말이 모호합니다. 직역하면, ‘그들의 살진 마음(또는 심장)이 닫혔다.’ 또는 ‘그들의 살진 마음이 무뎌졌다’라는 말입니다.

이 소절은 악인들의 교만한 입과 평행관계입니다. 한마디로 악인들은 몸의 중요한 기관들이 굳어지고 닫혀 겸손을 잃은 모습입니다. ‘이제’ 악인들은 걸어가는 길을 에워싸고 진로를 방해하고, 눈으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기까지 합니다(11). ‘이제’라는 부사를 덧붙여 악인들의 포악성을 드러냅니다. 악인들의 특징은 자기들의 몸을 사용해 타인을 넘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다윗을 공격해 오는 악인들의 적대적인 성격묘사는 점점 더 실감나고 강력해집니다. 다윗은 악인들이 포획한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사자 같고, 은밀한 곳에 숨어 공격의 기회를 살피는 젊은 사자 같습니다(12). 이처럼 다윗은 악인들의 은밀함과 무자비한 공격성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적극 요청합니다.

 

악인 심판 요청과 구원의 확신(13-15)

의의 길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탐욕이 가득하고 입술은 온갖 교만한 말로 가득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운 길 외에 어떤 불의의 길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고난과 조롱 속에 배고프고 초췌하고 불안합니다.

13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13-15)

다윗은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언약의 이름 여호와를 부르며 외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그들을 대항하여 넘어뜨려주십시오. 당신의 칼로 악인들로부터 생명을 구원해주십시오’(13). 동사들은 다윗의 긴급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일어나십시오’, ‘대항하십시오’, ‘넘어뜨려주십시오’, ‘구원해주십시오.’ 이 동사들이 나타내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다윗의 절박함 자체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노려보며 맹렬하게 사자처럼 달려드는 대적들을 하나님이 직접 처단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무죄 주장으로 호소했다면(3-5), 기도를 마무리하면서는 대적들의 심판과 멸망을, 무죄한 자신의 안전을 요청합니다. 다윗은 기도를 대충 멈출 수 없습니다. 그의 기도는 구체적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이 세상에서 제 몫을 다 받은 사람에게서 구원해주시기를 구합니다(14ab). 이들은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 삶의 전부인양 누릴 것을 다 누린 자들이며, 남은 것을 자기 자녀들에게까지 상속하는 자들입니다(14cd). 다윗은 자신이 마치 이생의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모든 것을 충분히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적들의 형통함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은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내가 의로움 중에 당신의 얼굴을 뵈오니 내가 깰 때에 당신의 형상에 만족하겠습니다’(15). 다윗은 이 땅에서 누리는 풍요로움보다 여호와의 얼굴과 형상, 곧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만족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가 처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의로움을 들어주십시오’(1)라고 기도한 것처럼, 마지막까지 ‘의로움’ 중에서 주님의 임재를 확신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깰 때에’라는 말에 부활이나 종말론적 의미를 부과하지만, 다윗은 현재의 위기와 고통의 문제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임재를 강조한 것입니다. 다윗의 언어는 기술적으로 더 교묘하고 교활한 악인들로부터 구원받고, 죽음의 잠처럼 위협적인 것을 초월할 만큼 희망을 노래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갖가지 억울하고 적대적인 현실과 위기로부터 즉각적인 구원을 과감하게 요청하라는 본보기요, 하나님 임재를 확신하도록 도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께로 피하는 사람을 오른손으로 구원해주십니다.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주십니다. 홍해를 건너던 위기의 현장처럼, 자비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곤경에 처하거나 부당한 일로 마음이 상하였습니까? 난관에서 건지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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