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20-02)
베냐민 지파와 동족 전쟁한 이스라엘
사사기 20장 12-23절
청년 시절에 성탄절 이부에는 회원들끼리 교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서로 선물 교환합니다. 한 번은 선물 받을 상대방에게 장난치려고, 한 번은 백화점 포장지로 상자를 포장하고 내용물은 형편없는 것을 넣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선물을 일부러 성의 없게 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다른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 포장은 그럴듯한데, 속 내용물이 별 볼 일 없다면, 선물은 받은 사람은 정말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 베냐민 지파가 기브아 사람을 내놓기를 거절하자 베냐민과 전쟁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이 모였고 전쟁에 관한 것을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들은 전쟁에 나가 자신들보다 수적으로 열쇠인 베냐민에게 두 번이나 크게 패하고 돌아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기브아를 징계를 결정한 이스라엘(8-16)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성급하게 판단할 때 일을 망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뜻보다 앞서는 섣부른 결정과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오만된 행동입니다.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이스라엘 상황은 지혜로운 왕이 부재한 한계와 현실을 보여줍니다.
8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9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10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1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2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16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8-16)
사사 시대는, 특히, 본문에서는 한 레위인의 사건을 조작한 이런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선동되었습니다. 이러한 선동에 휘둘렸다는 것 자체가 이 레위인은 물론이고, 이 시대 자체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1) 기브아를 징계하기로 경의한 이스라엘(8-11)
레위인이 기브아 사람들이 한 일을 왜곡하여 보고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액면 그대로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고 흥분하여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기로 결정합니다. 정확히 잘못한 사람들을 응징해야 하는데, 베냐민 지파 전체를 응징하려고 전쟁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먼저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물어야 마땅했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했던 것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서 나타난 사건입니다.
병사 40만 명이 모였습니다. 군인 중에서 10분의 1을 제비를 뽑아 베냐민의 기부와 사람들을 치기로 결정하고, 자신들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브아를 칠 때까지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8).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광기입니다. 이런 무자비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범죄는 율법에서 강력하게 금하고 강간에 경우에는 돌로 처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이 모든 결정에 이스라엘 모두가 단결했습니다. 모든 단결과 하나 됨이 항상 좋은 것만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하나가 되려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나 전체주의가 됩니다. 사사 시대는 볼 수 없었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스라엘의 연합이 동족을 전쟁의 대상으로 할 때 나타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외부의 적과 전쟁하는 상황에서는 기드온 때부터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었던 이스라엘이 자기 동족을 치는 데 합심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겠습니까? 참으로 심각하게 병은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부한 베냐민 지파(12-16)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베냐민을 공격하기 전에 베냐민 지파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회개를 유도하기 위해, 베냐민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내 기브아 불량배의 악행을 설명하며 그들을 넘기라고 요구하였습니다(12-13). 그들을 죽여서 악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합리적인 제안을 듣지 않고 사람들을 기브아에 모아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14). 본문은 베냐민의 이런 행동을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표현함으로써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형제이지 결코 서로 싸울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13). 동족 에브라임 지파에게 무력을 행하여 입다나, 우상숭배를 선언해서 영적으로 해악을 끼친 단 지파가 했던 악행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베냐민 지파에 대한 설명입니다(15). 베냐민 지파는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받는 대신에 기브아로 모여서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런 지파 분위기 때문에 불량배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모은 군사의 수가 26,700명이었습니다. 칼 빼낸 자 즉 전투병이 2만 6천 명이며, 기브아 주민 중에서 뽑은 용사들은 왼손잡이로 700명 모두가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 더 틀림없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생각나게 하는 장면으로, 매우 용맹스러운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베냐민은 전쟁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베냐민이 기브아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선악간에 판단하지 않고, 자기 지파 사람이라고 무조건 감싸며 형제들인 모든 이스라엘을 적으로 삼은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연합군(17-28)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구하며, 이 문제의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 삶에 겪는 이 문제들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7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17-28)
사사기가 시작하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인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시작했지만, 사사기 마지막 부분은 동족들 간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베델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음(17-18)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기브아 사람들을 징벌하는 대신 전쟁을 도모하자, 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가 40만 명이 이르렀습니다. 신실하지도 않는 한 레위인을 위한 복수에 40만 명이 모여 형제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하는 이 모습은 상식에서 벗어난 결정입니다(17).
이때 제사장이 비느하스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도 베델에 함께 있었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베델로 올라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18). 베델에 언약궤가 있다는 것은 임시로 언약궤만 베델에 옮긴 것 같습니다. 20장 27절에서 “그 당시에는 베델의 여호와의 궤가 있었고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그 앞에서 제사장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베델의 여호와의 성소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법궤를 마치 부적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사사기 1장에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은 것처럼, 이번에도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과 싸우리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되는지에 관해 물어야 하는데, 전쟁을 사실화하고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를 묻습니다(18). 놀랍게도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베냐민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라는 승리 약속이 없습니다.
(2) 이스라엘과 베냐민과의 쉽지않는 전쟁(19-21)
19-21절은 전쟁 장면을 설명한 부분으로 이스라엘과 베냐민 전쟁이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치르는 전쟁과 같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전쟁의 결과는 놀랍게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에게 패배하여 22,000명이 죽습니다(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기도와 이기적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먼저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기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전쟁하기 위해 재정비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진영에 약간의 변화가 생깁니다. 이들은 전쟁에 진 것을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저녁까지 울었는데, 이 부분은 사사기 2장의 보임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보임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질책을 얻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보임에서처럼 이들의 눈물은 고통 좌절 분노에서 나온 눈물일 뿐 진정한 회계와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의 눈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급한 이 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이 상황이 끝나자 곧바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전쟁이 여부를 묻는 이스라엘(22-26)
다음으로 전쟁에 과연 형제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물었습니다(23). 이제야 그들은 베냐민이 자신의 적이 아닌 형제이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식하고 하나님께 베냐민을 줘도 좋을지에 대해서 물은 것입니다.
이들은 패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겸손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라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리의 약속은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베냐민과 전쟁하러 나갑니다. 하지만, 전날 졌기 때문에 더욱 소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한 번의 패배에 베냐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베냐민 사람들은 전날처럼 용맹하게 전투에 임했고 이번에도 이스라엘 군대를 이깁니다. 25절에 보면 칼을 빼는 자가 1만 8천 명이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칼을 빼는 자’라는 것은 무장한 군인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전날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4천 명이 적지만, 전쟁에 능한 장군이 죽었다는 것은 전력 면에서 매우 큰 손실을 입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왜 전쟁에서 졌겠습니까? 이 베냐민과 유다의 전쟁은 양 진영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이 강한 전쟁이기 때문에 형제가 비록 잘못했더라도, 그 역시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싸울지 말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도록 해야 했는데, 싸움을 기정 사실화하고 묻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패배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28절의 세 번째와 같지만, 그들은 울기만 할 뿐 진정으로 회개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전쟁에서 또다시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이스라엘 향해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있습니다. 전쟁은 군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적으로 20대 1의 대결이기 때문에 분명히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전쟁에서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쟁의 승패는 여와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의 이스라엘이 적은 수의 베냐민에게 크게 진 것입니다.
두 번의 패배를 통해서 교훈을 깨달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 앞에 모여 울며 금식하고 번죄와 화목죄를 들였습니다. 이것은 23절보다 종교적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구약에서 금식은 해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금식과 번죄 함목재는 하나님 앞으로 진정으로 나오려는 행동들입니다.
(4)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27-28)
그리고 27절에서 28절에 언약궤와 아론의 후손인 비느하스의 제사장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므로 그들의 금식과 회개가 올바르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회개하고 올바른 모습을 갖춘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세 번째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형제 베냐민과 전쟁을 해야 하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질문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점점 더 겸손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하나님은 베냐민을 내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승리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은 영적인 타락에서 왔습니다. 영적인 타락은 도덕적인 타락이 오게 됩니다. 도덕적인 타락이 오게 되면 이기심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또한, 판단력이 흐려지면 어려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먼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선택한 것이 있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어두워진 영안을 다시금 밝혀 주심으로 말씀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될 때,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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