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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3-02)


나중에 기묘한 일을 깨달은 마노아

사사기 13장 15-2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람과 은혜로 개입하셔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자들이 먼저 갖추어야 마땅한 올바른 태도가 있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아내 말을 믿게 된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된다고 말합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지만, 지혜로운 아내의 말처럼 그들은 죽지 않았고 약속대로 삼손이라는 아들을 얻게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마노아(15-20)

교회를 봉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영광을 취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점점 교만해져 버립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실족합니다. 봉사자라고 한다면, 항상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시면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있는가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15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15-2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를 찾아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마치 나그네를 환대하는 태도였습니다.

 

(1)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는 마노아(15-18)

 

마노아는 모든 말씀을 들은 후 여호와의 사자에게 대접하기 원합니다. 고대에는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는 풍습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에게 마노아는 꼭 대접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15)라고, 여호와의 사자에게 염소 새끼를 준비할 것이니 머물러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이런 마노아의 요청에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16)라고 말합니다. 즉 여호와의 사자는 식사 대접 대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본문 이렇게 마노아와 여호와의 사자 간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마노아가 상대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17절에서도 마노아는 계속해서 여호와의 사자를 선지자로 생각하여 이름을 묻고 예언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려 명성을 높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마노아는 예언이 이루어지면 이를 이루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의 이름을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질문에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기묘자’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기묘’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이라는 뜻으로, 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자신은 ‘너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암시적으로 나타냅니다.

하지만 마노아는 여전히 자기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약화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자신의 백성을 보고 계시며,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셔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2) 재물을 드리는 마노아(19-20)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따라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바위에 올려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곳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불꽃이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사자도 불에 휩싸여 올라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기묘자’ 즉 ‘놀라운 자’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이적 즉 논란 일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는 사자를 통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놀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반신반의하던 마노아에게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시므로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마노아에게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징표를 주신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자신의 말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징표를 보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는데, 이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들은 이제야 자신에게 말했던 존재가 선지자가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정체를 알게 마노아(21-23)

 

여호와의 사자가 완전히 하늘로 올라가서 다시 나타나지 않자, 드디어 요와의 사자의 정체를 알게 된 마노아는 여호와를 보았으니,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21-22).

마노아도 기드온처럼 당시 민간에 퍼져 있는 속도를 더 믿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해보면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 방문을 받고 부름을 받았던 상황과 동일합니다. 기드온도 여호와의 사자를 선지자로 알았고 자신에게 임무를 주며 여호와의 신탁을 전한 그에게 대접하기 원했으며, 염소 새끼 한 마리와 소재로 사용되는 무교병을 가지고 와서 바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블로 제물을 태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그 후의 자신도 사라졌습니다(삿 6:11-18). 또 여호와의 사자가 사라진 후에 둘 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죽을까 봐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이야기와 마오나의 이야기는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데, 기드온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나타나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말을 해줍니다(23). 그런데 여기서는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남편을 설득합니다. 만일 죽이실 것이라면 권제와 소재도 받지 않으셨을 것이고 이 모든 일도 보이지 않으셨을 것이며 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하나님을 약속을 지키는 분이며 자신의 일에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신뢰한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오직 당시에 퍼져 있던 잘못된 이야기만 믿고 하나님의 일관성이 없고 즉흥적이며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한 마노아나 기드온과 대조를 이룹니다.

전체적으로 마노아보다 마노아의 아내가 더 신뢰감 있고 지혜롭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로운 마노아의 아내의 모습은 후에 사무엘를 임신한 한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삼상 2:18-21). 마노아와 그의 아내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을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평안이 올 수 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앙은 늘 불안하고 두렵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삼손의 출생(24-2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은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더욱 높여 드리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며 그분을 신뢰하는 태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24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24-25)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집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그 아이의 이름을 ‘삼손’이라고 지었습니다.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는 의미입니다. 태양을 섬기는 이방 종교가 반영된 이름이라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또 ‘들릴라’(밤'이라는 의미)의 이름과 삼손이 눈을 잃게 되는 사건과 연관하여 매우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나실인으로 부르셨고 사사로 세우시기 위하여 그에게 복을 주셨으나, 어리석은 죄인의 삶은 온전치 못했습니다.


사사시대는 회개도 없고 구원에 대한 간절함도 없는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삼손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부으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절망스러운 시기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인간의 능력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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