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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9-01)


제사장 지파 사람 레위인과 첩

사사기 19장 1-10절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경험하기도 하고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른 인간관계는 단지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의 이기심으로 깨어진 인간관계가 온전히 희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습니다. 첩이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레인은 이 첩을 데리고 오기 위해 장인의 집을 방문하고 환대를 받습니다. 장인의 강권을 이기지 못한 레이는 그곳에 더 머물게 되고 날이 저물어 떠나게 됩니다.

 

레위인의 첩이 친정으로 감(1-3)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면서 공동체를 일으키고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이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세상은 더 악한 길로 치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타락과 몰락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까지 위협했습니다. 그 사건의 발단이 오늘 이야기입니다.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1-3)

 

본문은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그 때”라는 표현을 통해서 사자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1). 하나님을 떠난 인간 사회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함 때문에 세상과 차별화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이 세상과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 17장과 18장의 관계 속에 볼 때,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영적으로 얻은 시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브람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레위인입니다. 그 또한 17장에 레위인처럼 거류자로 소개됩니다. 동일한 장소적 배경과 고려하는 레위인의 등장은 19장 이야기가 17장과 18장의 이야기와 상당히 연속성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레위인의 이름과 첩의 이름은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행동이 어떤 특별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당시의 보편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첩을 얻습니다(1). 첩은 정부인이 아닌 다른 부인을 일컫는 말로, 주로 정부인의 불임으로 인해 아들을 얻기 위해서 맞이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맥락에서 보면 입다나 아비멜렉의 예에서 보듯이 첩을 보는 사사기의 시각은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그 첩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넉 달이나 그곳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 말 번역에서는 ‘행음하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래 원음을 본다면 ‘싫어하다’, ‘화를 내다’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만일, 원래 번역처럼 ‘행음하다’라고 이 단어가 해석된다면 아내가 행음하는 일은 남편이 그 아내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범죄이며 이혼의 사유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남편이 첩을 데리러 간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전혀 없어집니다. 대신 첩이 남편을 싫어하여, 혹은, 남편과 다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간 경우에는 남편의 첩을 데리고 오는 상황이 충분히 납득됩니다.

 

특히 3절에서 “다정하게 말하고”라는 표현을 통해, 남편이 첩을 설득하고 달래는 입장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첩이 남편한테 화가 나거나 다투어서 집을 나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싸우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첩은 넉 달 동안 아버지의 집에 지내게 됩니다.

 

넉 달 후 남편은 첩에게로 갑니다. 아마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안 돌아오니 직접 데리고 오려고 나선 것입니다. 하인과 함께 나귀 두 마리를 가지고 가는데, 나귀 한 마리는 첩을 태워서 데리고 오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이는 첩을 반드시 데려오고 싶은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첩의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그를 마중 나와서 그를 자신의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간 남편에 대한 화가 풀렸고 오랜만에 보는 남편이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첩의 아버지도 사이의 방문을 매우 기뻐하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서야 떠나는 레위인(4-10)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무한 이기주의 늪에 깊이 ᄈᆞ져들게 되어 서로를 이한 배려나 선행을 찾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은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공동체성을 상실한 이기적인 백성으로 전략했습니다.

 

4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10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4-10)

 

사위가 딸을 데리고 가기 위해 집을 방문하자, 3일 동안 환영 잔치를 엽니다. 3일 동안 먹고 마시며 장인의 집에 머문 것을 간략하게 언급한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 사위가 왔을 때, 3일 정도 머물게 하며 한다는 것이 당시의 관습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부부 싸움 한 부부가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화해하고 즐겁게 지내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환대가 끝나고, 이제 레위인과 첩은 일찍 일어나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둘이 화해를 하고 같이 떠나려고 한 것입니다. 근동 지역은 낮에는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한낮을 피하여 주로 오전이나 오후에 여행을 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는 반나절 거리였기 때문에 일찍 오전에 출발하면 오전 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첩의 아버지는 레위인에게 음식을 좀 먹고 기운을 얻은 후에 출발하라고 명령합니다. 명령형을 사용한 것을 통해 장인이 사이를 강하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강권의 레인과 접은 장인과 같이 먹고 마십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첩의 장인은 레위인에게 묻고 가라고 부드럽게 설득합니다. 앞에 명령한 어조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부드럽게 의사를 타진한 것입니다.

 

7절에서 보면, 이런 요청에 레위인은 일어나서 가려고 하지만, 장인이 그를 강압적으로 잡았기에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날도 넷째 날과 동일한 일이 반복됩니다. 레위인은 첩을 데리고 출발하려고 하고 장인은 이를 하루라도 더 잡아두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인이 일반적인 환대를 벗어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사위를 환대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환 대는 긍정적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남을 대접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미덕입니다. 후에 기브아와 거민들이 레위인들을 환대하지 않고 공격하려 했던 것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룹니다. 장인은 과도한 환대를 통해 사이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딸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환대 장면에 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딸의 생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런 비정상적인 한 대를 통해 출발하는 레위인의 의지를 반복적으로 막는 것을 보면서, 본문은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상황이 레위인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극진한 환대에도 레위인은 더 이상 출발을 지연시키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는 대접을 받는 동안 음식을 먹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8절에서 보면 6절과 다르게 ‘마셨다’라는 표현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이 반드시 이날 떠나겠다고 결심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을 유지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9절에서 레위인은 첩과 그의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도 장인은 7절처럼 또다시 머물러 가라고 간청합니다. 이번에는 6절과 다르게 이유가 나옵니다. 해가 이미 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라는 말은 한낮이 지나서 가라는 의미이고 9절에서 날이 저물어 간다라는 말은 해가 저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전에 쉬었다가 한낮을 피해 오후에 출발하라며 잡고 연회를 베풀었는데, 레위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연회가 너무 길어져서 오후를 지나 저녁이 가까워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가 반나절이라고 해도, 여행을 해가 저물 무렵에 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행동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인은 이번에도 사이에게 하룻밤 더 머물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내일 일찍 출발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부분은 19장에서 21장의 서론 부분으로 레위인에 대한 장인의 지나친 환대와 출발 지체가 이후에 일어날 일련의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레위인은 장인이 간곡하게 하룻밤 더 자라고 붙잡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장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그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은 감정적 판단을 따라서 고향까지 가기 전에 해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늦은 오후에 길을 나섰습니다.

아마도 장인의 지나친 환대가 지겨웠거나 부담스럽기에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결심이 서자마자 일어나서 곧바로 떠납니다. 일어나자마자 여브스 근처에 이르렀다라고 부모는 말하는데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함으로써 레인의 급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브스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 이곳은 사사기 1장 7-8절에 유다가 아도니 백섹을 죽이면서 승리하였고, 사사기 1장 21절에서 베냐민 사람들이 이곳을 공격하였지만, 완전히 정복할 수 없었기에 그곳에는 여전히 이방인들인 여브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악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고 살아간다면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날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는 참된 성도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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