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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25-01)


기다림과 기대 사이에서

시편 25:1-22


기다림은 시제를 바꾸는 일이라고 했던 한 평론가의 문장이 시편 25편과 맞닿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현재 속에서 미래를 들춰보게 되고, 없을 지도 모르는 미래가 가까운 미래가 될 것 같은 기대랄까 기다림이랄까. 당신은 어떤 기다림으로 삶을 물들이고 있습니까?

 

  • 시편 25편은 죄와 아픔, 고독, 그리고 마음의 슬픔과 내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원수의 적대감과 싸우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안과 밖에서 밀려드는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가르침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의로운 길을 걷고 찬양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합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1-3)

정직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선하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 겸손하고 온유한 자에게 공의와 도를 가르쳐 그 길을 걷는 자들에게 충실히 언약을 지키십니다. 죄는 미워하시되 돌아온 죄인을 받아주시고 갈 길과 행할 도를 알러 주십니다. 다윗은 애초에 고난과 원수의 위협 앞에서 죄에 빠지지 않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1-3)

 

시인은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봅니다.’(1) 이것은 목을 들어 올려 간절하게 위를 바라보는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응답의 주도권이 위에 계신 여호와께 있음을 인식한 태도입니다. 가난한 노동자가 하루 품삯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신 24:15), 마음과 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어 올리듯(애 3:41; 시 86:4; 143:8) 시인은 절실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후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당신을 신뢰합니다.’(2a). ‘신뢰하다’(바타흐)라는 말은 어렴풋한 것이 아닌 어떤 의심도 없는 확신으로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고지식하고 그릇된 자기 확신이나 자기 과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터득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일하심에 대한 인간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시인의 의심 없는 믿음은 당당한 요청의 근거가 됩니다.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2bc) 시인은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3d)이기에 상황이 뒤집혀 그들이 어떤 이득이나 성공, 은총도 없기를 간청합니다(3c). 반대로 자신과 하나님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동일시하고 그들이 부끄러움 당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3ab).

 

여호와의 가르침과 죄 용서를 구함(4-7)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백성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려움만 주목하지 말고 고난 중에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기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 못지않게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있습니다.

 

4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4-7)

 

시인의 기도는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지도와 교훈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4-5). ‘여호와여, 당신의 길을 내게 보이시고 당신의 행로를 내게 가르치소서’(4). 시인은 삶의 여정, 곧 ‘길’(데렉)에서 방향을 설정해주실 여호와의 가르침이 절실합니다. 삶을 위한 여호와의 ‘방식’(오라흐)을 구합니다. 시인은 삶의 방침과 그 이유와 근거를 여호와로부터 얻고 싶습니다.

시인은 더 구체적으로 요청합니다. ‘당신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이는 당신이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내가 온종일 당신을 기다립니다’(5).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참된 배움을 얻고 교화되기를 열망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시인은 가르치고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면서 ‘구원’을 온종일 열망하며 기다립니다. 그가 갈망하는 구원은 현재 당면한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구출입니다. 시인은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7a). 그 이유는 영원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7b). ‘긍휼하심’(라하밈)과 ‘인자하심’(헤세드)은 하나님의 핵심적인 성품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긍휼하심은 어머니가 자식을 향해 품는 사랑의 감정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시인은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실패하지 않으시는 ‘언약적인 사랑’(출 34:6)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셔서 자기 삶에서 그 따듯한 영향력을 발휘해주시길 요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을 의지하는 시인은 ‘당신의 인자하심을 따라’ 젊은 시절의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길 간청합니다(7ab). 반면에 ‘당신의 선하심을 위해’ 나를 기억해주시길 간구합니다(7cd). 시인은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하면, 하나님 성품에 위배된 것이요 주님이 손해를 볼 것처럼 하나님을 압박하듯 호소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하여 죄의 사면을 청하고, 여호와의 어머니 같은 사랑에 기대어 호소합니다.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죄 용서를 구함(8-11)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죄인을 심판하시기도 하지만 반대로 회복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십니다. 죄인은 그 속성상 금방 깨닫지 못하고, 곧바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온유한 마음을 잃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일깨우십니다.

 

8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8-11)

 

시인은 여호와가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 방식으로’(‘주의 도로’) 죄인을 교훈하실 것이라(8)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선함’과 ‘올곧음’은 죄인을 교훈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여호와는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시고, 온유한 자에게 그의 ‘길’(도)을 가르치실 것이라고(9) 선포합니다.

시인은 온유한 자(비천한 자)를 ‘공의’(미슈파트)로 지도하고 가르치는 스승 같은 여호와를 믿습니다. 이 시행은 시인의 의도적인 어휘 선택이 돋보입니다. ‘지도하다’, ‘인도하다’라는 동사 다라크()와 ‘도’(길)를 뜻하는 명사 ‘데레크’를 연결시켜 주님의 길과 인도하심이 분리될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곧이어 시인은 여호와의 모든 길은 인자와 진리이며, 이는 그분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들을 위함이라(10) 선포합니다. ‘인자’(헤세드)와 ‘진리’(에메트)는 하나님 성품을 압축한 말입니다. 따라서 인자와 진리는 ‘언약’(베리트)과 ‘증거’(에두트), 곧 경고의 법규를 지키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후 시인은 언약의 이름 여호와를 부르면서 간청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의 죄악이 클지라도 용서하소서’(11). 앞서 시인이 ‘당신의 선하심을 위하여’ 기억해주기를 청했다면(7), 이번에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명목을 내세워 죄 용서를 구합니다.

시인은 언약에 충성을 다할 때에야 여호와의 실패 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맛볼 것임을 알지만, 동시에 그 언약적인 사랑 때문에 죄 용서를 적극적으로 청할 수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서 시인은 용기 있게 자신의 크고 무거운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구원을 확신(12-15)

과오를 저지르는 존재, 인간, 과오는 인간성의 기본적인 조건이자 불가피한 인간 요소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한계 속에서 과오를 범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생의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들을 돌아보시고 인도하십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어서 잚은 날에 범한 과오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12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12-15)

 

시인은 질문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 누구인가?’(12a) 시인은 여호와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위해 택하신 그 길에서 여호와가 인도하실 것이라(12b) 답합니다. ‘여호와 경외’는 이스라엘 지혜신앙의 핵심이며 가장 중요한 명제입니다(잠 1:7).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하나님 신뢰의 표시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자는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13) 여호와가 친밀하게 대우해주시고, 그분의 언약을 이해하고 깨닫게 될 것을 믿습니다(14). 경험과 믿음이 분리되지 않고 반영된 이러한 말들은 기계적으로 수학적으로 주고받는 계약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통해 얻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그분만이 나의 발을 올가미에서 이끌어내시기 때문입니다’(15). 시인은 마치 덫에 걸린 짐승처럼 위기에 봉착했지만, 여전히 여호와만을 앙망한다.

 

환난에서 벗어나기를 구함(16-22)

고난 중에 또 고난을 만나면 크게 고생합니다. 사람들은 고난당하기 전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고난에 빠진 이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겹치는 고난으로 크게 고생합니다. 안으로는 근심이 있고, 밖으로는 원수들이 호시탐탐 노립니다.

 

16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20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1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16-22)

 

시인의 탄식과 하소연은 여호와만을 앙망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시인은 깊은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은혜를 구합니다(16). 시인은 적극적으로 호소합니다. ‘내 마음의 근심이 많으니 나의 곤경에서 나를 이끌어 내소서’(17) 애타는 간절함은 여호와를 향해 ‘보십시오!’(18, 19)라는 반복적인 외침에서 강화됩니다. 시인은 언약의 하나님을 향해 곤고와 환난, 그리고 원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라고 촉구합니다(18a; 19a). 또 시인은 자기 죄가 사함받기를 구하면서(18b), 원수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나를 미워하는지 알아주시기를 청합니다(19b). 시인을 향한 원수들의 미움은 폭력을 동반한 증오와 혐오로 표출됩니다.

 

시인은 절박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향해 구출을 요청합니다(20). 그러고서 시인은 알파벳 마지막 자음 ‘타브’ 절의 첫 글자인 ‘온전함’과 ‘올바름’, 곧 ‘성실과 정직’이 보호해줄 것을 믿고 청합니다. 시인은 ‘내가 당신을 앙망하기 때문’이라는(21) 고백적인 선포를 끝으로 알파벳에 맞춘 시행을 마무리합니다. 시인은 처음처럼 마지막에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러러보며 의지했습니다(1-2). 그리고 마지막 시행(22)은 알파벳 ‘페’로 시작하는 ‘구속하소서’에 초점을 둡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부르며 이스라엘을 모든 환난에서 구속(속량)해주시기를 구합니다. 22절은 마지막 알파벳 ‘타브’ 시행 이후에 덧붙였기 때문에 후대의 예배 공동체가 개인적인 환난을 넘어 국가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첨가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시인의 기도에는 간구와 탄원, 신뢰와 확신, 회개와 중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롭습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지금 그는 어느 때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절박합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주를 경외하고 가르침 받기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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