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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5-01)

 


감정적으로 복수에 집착한 삼손

사사기 15장 1-8절


미움은 미움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사랑과 용서만이 미움과 복수를 끊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분노는 사람을 자유케 하도록 얽맵니다. 분노 때문에 끊임없는 방황하게 하고 갈등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일어나는 이런 죄악 된 생각은 마음을 편안하게 못 합니다. 편안하지 못한 마음 가운데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길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가장 진리인 것을 확인하는 축복의 날이 되길 축원합니다.

 

  • 삼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잘못 사용한 삼손은 삶이 꼬입니다.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조절되지 못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한 삼손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시고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다시 아내를 찾은 삼손(1-2)

우리는 희박한 윤리의식에 비해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 섹스, 권력을 추구하지만, 이에 따른 윤리적 책임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만큼 나누는 미덕을 찾기 어렵고,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되 결혼 관계의 신실함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되 만큼 비전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1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1-2)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불임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보내신 사람 나실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야 하고,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실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눈에 옳은 것만 선택하며 살던 사람들이라도 사사인 삼손을 보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깨닫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의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삼손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고 계십니다. 삼손은 마음대로 블레셋 여인 가운데 신붓감을 골랐습니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결혼까지 강행합니다. 사자의 시채를 마음대로 만졌습니다.

수수께끼를 낸 것은 좋았지만, 이것이 발단되어 악화하였고, 결혼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삼손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 30명을 죽이고 앙갚음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블레셋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사건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보복의 악순환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결혼식장에서 흥을 돋우기 수수께끼를 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결혼 생활이 시작하기도 전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성경에서는 ‘얼마 후’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 후’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구약성경에 3번(수 23:1; 삿 11:4; 15:1) 사용되었습니다. 삼손이 다시 아내를 찾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을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삼손은 끓어올랐던 분노와 서운함이 진정될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밀을 수확하는 시기인 5월도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삼손은 아내와 화해하고 싶어 딤나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삼손은 아내의 행동에 화가 나서 딤나를 잠시 떠났지만, 혼인 관계는 완전히 정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삼손은 다시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서 블레셋으로 갑니다. 그는 선물인 ‘염소 새끼’를 가지고 아내에게 찾아갔습니다. 이는 나름 화해의 제스처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장인이 다른 블레셋 사람에게 아내를 주었다는 것을 압니다. 장인으로서 얼마든지 삼손이 자기 딸에게서 마음이 떠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인은 삼손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사람인지는 몰랐습니다. 삼손은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1)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장인은 방문의 목적을 거절합니다(1).

이미 삼손에게 보복이나 하듯이, 이미 장인은 자신의 딸을 결혼 잔치에 참석했던 삼손의 친구에게 주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장인은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2)라고 말합니다. 장인은 성급하게 다른 남자에게 준 것입니다. ‘심히 미워한다’는 표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인이 삼손과 결혼했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은 일면 합리적입니다. 결혼식에서 삼손의 반응을 참작할 때, 장인은 삼손이 그녀를 버렸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장인이 삼손 대신 선택한 사람은 결혼식에 동행했던 블레셋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대, 책임을 느낀 장인은 삼손에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2) 고 청하며 타협을 제안한 것입니다.

 

삼손의 복수(3-5)

하나님께 받은 지혜, 능력, 은사를 자기 자신만을 위햐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발견하고 자신의 은사를 계발하고 열정을 다해 달려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 사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거기에 삶의 방향을 맞추고 에너지를 기울여야 합니다.

 

3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4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3-5)

 

삼손은 자기 뜻대로 되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른데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핑계만 됩니다. 그는 장인의 말을 듣고서 분노합니다. 사실 장인과 삼손 둘 다 성급하고 쉽게 행동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장인은 더 젊고 예쁜 동생으로 대신하려 했지만, 삼손은 자신의 눈에 좋은 대로 행동한 인물이기 때문에 설득이 통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분노하면서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고 말합니다(3).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삼손은 자신의 블레셋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분노가 정당함을 밝힌 후에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보복을 시작합니다. 삼손의 말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허물’로 번역된 ‘ה󰘝󰙜,라아’는 원래 ‘악’이라는 뜻으로 ‘도덕적 악’ 또는 단순히 ‘재난’, ‘해로움’을 의미합니다. 장인의 처신에 대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지 복수를 감행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삼손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여우를 300마리를 붙잡아서 재빨리 뛸 수 없게 두 마리씩 꼬리를 묵습니다. 그리고 그 꼬리에 횃불을 달아 놓습니다. 그 여우들이 추수 직전에 블레셋의 밀밭과 과수원으로 보냅니다. 두 꼬리 사이에 나무 막대 하나를 매달고(4) 거기에 불을 붙여 여우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밀밭으로 몰았습니다.

그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마침 밀 수확 철이기 때문에, 한 해 농사 밀을 모두 태웠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포도원과 감람나무들까지 불탔습니다(5). 수년간의 과일 농사까지 완전히 망쳐 놓았습니다. 이 세 가지는 고대 팔레스타인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삼손의 이러한 행동은 블레셋 지역 경제의 핵심을 공격한 셈이었습니다.

 

아내를 죽인 것에 대한 삼손의 복수(6-8)

세상에서는 죄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점점 더 심각한 범죄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서로 속이고 속는 일뿐만 아니라 관용하지 않고 적개심을 키우며 자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약자를 밟고 일어서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방관하시지 않고 개입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로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6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7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8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6-8)

 

밀밭과 포도원 감람나무까지 불태우는 기가 막힐 일을 당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수소문했습니다. 사람들은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 벌인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판단을 삼손의 장인이 딸을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주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절반만 사실입니다. 그들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책임자를 정하여 책임을 물었습니다. 삼손을 ‘딤나 사람의 사위’라고 부르며 삼손이 그 딸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삼손의 잘못이 아니라 삼손의 장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은 3절에서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라고 한 말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삼손의 엄청난 파괴력을 본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더 이상 건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딤나 여자와 그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삼손의 화를 달래려고 했을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와 아버지는 재앙을 피하려고 수수께기 답을 알아냈지만, 수수께끼 답을 알아냈기에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아이러니가 생겨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올라가서 삼손의 아내와 그의 아버지를 불살라 죽임입니다(6). 삼손의 파괴력을 보면서 삼손에게 물을 수 없으니, 삼손의 장인에게 씌운 것입니다. 밀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이 불타 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삼손이 아닌 그의 장인과 딸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희생양이 필요했던 그들에게는 삼손보다 딤나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삼손이나 블레셋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수수께끼가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삼손의 아내와 아버지는 재앙을 피하려고 수수께끼 답을 알아냈지만, 수수께끼 답을 알아냈기에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아이러니가 생겨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것을 본 삼손은 다른 분노를 자극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복수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이 일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삼손은 화가 나서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 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7)라고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복수하려 삼손의 장인과 아내를 죽었지만, 또 사실을 알게 된 삼손은 아내와 장인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다시 원수를 갚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복수를 낳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원수, 민족의 원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더니, 자기 개인적인 원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습니다(8a). 이번에도 블레셋에 결정에 분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삼손의 이런 모습을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폭력적입니다. 재미로 시작한 수수께끼 때문에 삼손과 블레셋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 극복할 수 없는 골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다 지역에 있는 에담의 바위틈에 도망쳐 숨었습니다(8b). 에담의 위치는 불확실한데, 지리적 위치보다 상징적 의미가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끝없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그리고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을 뿐입니다. 연속되는 복수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종노릇하면서도 그 상황에 안주하여 영적 전쟁을 피하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타협하는 선택을 반복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깨워 주시기를, 그래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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