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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1-01)


입다를 사사로 선택한 이스라엘

사사기 11장 1-11절


세상에서는 외적인 조건을 보고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사람의 배경을 그 사람의 능력보다 중요시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기준이 다릅니다.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지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이유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 입다는 길르앗의 아내가 낳은 아들들에게 쫓겨나 돕 땅에 거주했는데, 잡류가 그와 함께합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암몬과 싸워 달라고 청합니다. 입다는 자신이 그들의 머리가 된다는 확답을 받고 그들과 동행합니다.

 

입다의 출생 배경(1-3)

세상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출신, 가문, 스펙이나 능력을 따라서 평가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 사람의 환경이 얼마나 더 소중한가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이러한 차별을 당해본 적 있습니까? 차별은 큰 아픔으로 상처로 남을 가망성이 있습니다.

 

1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1-3)

 

영적인 지도자가 없는 암흑한 시기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본문은 느닷없이 입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길리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로 소개되지만, 이는 기드온과 동일한 호칭으로 군사적으로 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사적으로 이스라엘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입다는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보다 더 출신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서 기생은 몸을 파는 여인을 의미하므로 창세기의 율법에서 여호와께서 가증한 직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기생과 길르앗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입니다. 그렇지만 그를 길르앗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생에게서 태어났어도 길르앗의 아들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르앗의 부인의 아들들은 입다에게 기억을 주지 않겠다면서 입다를 내쫓아버립니다.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 특히 이복형제들은 입다가 출신이 미천하다고 해서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든 자녀에게 유산을 나눠주는 이스라엘의 상속법을 깨뜨린 것이므로 유산을 나눠주기 싫어 형제를 쫓아 내버린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이 점점 악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급기야는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타의에 의해 고향 길르앗을 등지게 된 입다는 길르앗에서 동북방으로 20여km 떨어진 돕으로 도망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서 살았는데, 그에게 지도자 자질이 있었던지 여러 잡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점차 많은 떠돌이가 입다에게로 몰려들어 그를 추종했습니다. 만약 입다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살았다면, 자신의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되돌아와 형제 부모에게 보복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불량배로 전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배경이나 스펙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그 사람의 신실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을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차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이유로 차별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입다(4-11)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바른 신앙입니다. 자신이 먼저 결정해 놓고 도움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주인이 아닌 도우미나 종으로 전락시키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암울한 사사 같은 시대를 살지 않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4-11)

 

이 본문은 10장 18절과 연결됩니다. 정치적 약자를 이용하다 쓸모없으면 폐기 처분하려던 무정한 이들의 의도는 사사 시대에 어두운 단면이자 비정한 이 세상의 민낯입니다. 인격이 아니라 효용성에 따라 속보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값을 매기는 세상을 성도인 우리는 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1) 입다는 찾은 장로들(4-6)

 

암몬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이 임박했습니다(4).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길르앗 장로들은 형제들에게서 쫓겨난 입다를 데리러 돕 땅까지 갔습니다(5).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6). 이 단어는 주로 군사적 지휘관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장로들보다 낮은 지위로 그들의 명령 아래 길라 군대 장관이 되어 달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서 싸워줄 용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2) 장로들의 제안을 수락한 입다(7-9)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의 부탁에 대해 먼저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 입다가 그들에게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을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따집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쫓아낼 때는 언제이고 이제 힘들다고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며 그 말 속에는 조롱도 포함돼 있습니다. 사실 형제들이 입다에게 유산을 주지 않고 쫓아내기 위해서는 길르앗 장로들의 법적 승인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장로들도 입다의 형제들과 한통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따지며 조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입다는 장로들의 잘못된 행동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면서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합니다. 입다에 강한 저항과 조롱의 길라 장로들은 결국 한발 물러서며 입다에게 머리를 숙입니다. 그들은 입다가 가서 암몬과 전쟁을 해준다면 길라 주민의 머리로 삼겠다고 제안합니다(9). 여기서 ‘머리’는 군사적 정치적 우두머리를 의미하며,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의 마음을 얻기 위해 1개 군대 장관이 아닌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전쟁만 하면 머리로 삼겠다는 장로들의 제안에 입다는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입다가 장로들의 파격적인 제안, 즉, 전쟁만 해도 머리로 삼겠다는 제안에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전쟁에서 이기면 머리가 되겠다라는 뜻입니다. 입다는 이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어떤 조건이라도 들어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전쟁에 지면 책임을 물어 자신을 다시 쫓아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길르앗의 머리가 될 조건을 내세운 것입니다. 만약 전쟁에 이기면 아무도 입다가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를 내게 넘겨주시면’이라는 표현은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라고 말한 것인데 보통은 매우 신앙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과연 입다가 정말로 전쟁의 주인은 여호와이시며 여호와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조금 더 확실하게 전쟁의 승리를 얻고 싶은 욕망으로 어리석은 소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말로는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입다의 입지를 매우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것은 여호와께서 입다에게 주신 승리가 되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경우에 입다는 여호와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되기에 아무도 그의 지도자 자격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게 됩니다. 입다의 발언은 순수한 신앙의 발로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기 위한 방책일 뿐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모여서 지도자를 세우는 모습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며, 다시 한 번 암시적으로 왕의 모티브가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여호와 앞에 나간 입다(10-11)

 

입다의 제안에 길르앗 장로들은 여호와를 증인으로 삼아 자신들이 입다의 말대로 전부 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10). 장로들 생각에 일단 입다가 전쟁에 나오면 전혀 손해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입다와 길르앗 장로들은 모두 여호와를 입에 올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위는 모두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거래를 통해 길르앗 사람들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입다를 자신들의 머리와 장관으로 삼았고, 입다는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자신의 말을 다 아뢰는 절차를 밟아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길르앗 장로들과 입다가 언약을 세우시는 모습입니다.

 

당시, 여호와께 대한 제사와 예배와 신탁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재구성하기 어렵습니다. 추측건대, 여호와께 제사 지내는 제단 앞에서 길르앗 장로들과 입다는 언약 의식을 했을 것입니다. ‘사사가 되었다’는 말은 없지만 12장 7절에 비추어 보면, 사사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지만, 입다는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줄지 고민하고 계신 사이에 사람들이 먼저 사사를 선택하여 하나님 앞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큰 자비하심으로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입다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입다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풍성한 삶을 누릴 기회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사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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