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72-01)
하나님의 판단력으로 다스리는 왕
시편 72편 1-11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를 이루시기에,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확실한 길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하며, 기도가 실천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 하나님을 따르는 왕은 그가 주신 판단력과 공의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 결과 온 나라에 평화가 깃들고 의인이 흥왕하게 됩니다. 왕의 통치는 영원하며 땅 끝까지 이르므로 온 세계 왕들과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왕(1)
왕은 결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의를 왜곡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특히 힘없고 약한 가난한 자들을 향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공의와 정의를 적용하여 억울한 피해를 막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판단력(공정한 마음)과 정의로운 마음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그렇게 사용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1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1)
시편 72편은 시편 제2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인 인간 왕을 위한 기도입니다. 1절에 소개된 ‘왕’와 ‘왕의 아들’은 같은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두 사람이라면 왕의 아들이 이번에 새 왕이 되므로 적법한 왕임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시 45:16). 시인은 “하나님이여”라고 기도를 시작하며 백성을 다스릴 때 왕에게 가장 필요한 하나님의 판단력(또는 정의)과 공의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판단력과 공의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께서 규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 대신 그의 백성을 통치하는 자이므로 하나님의 통치 속성인 판단력과 공의를 가져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간구는 솔로몬이 왕이 된 후 하나님의 백성을 재판할 때 제대로 판결할 수 있도록 지혜와 판단력을 하나님께 간구한 모습을 기억나게 합니다(왕상 3:9-12). 솔로몬은 백성을 공의로 판단하고 선악을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의 통치 방법임을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 후에도 하나님께 자신과 백성을 위해 기도하였고, 백성들에게는 여호와만이 온 세상의 하나님임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라고 권면함으로써 영적 지도자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왕상 8장).
왕의 공의로운 통치(2-4)
하나님을 떠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연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자연을 파괴하는 동안 자연도 인간을 외면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우리를 징계하시지만, 우리가 나누고 사랑하고 평화를 구할 때 사람은 물론 자연과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2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3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4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2-4)
왕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를 받아야 백성을 하나님 방식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태도를 가지고, 공의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통치를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시 45:7). 그렇다면 이때 왕이 돌봐야 할 백성은 누구입니까? 나라의 백성은 왕의 개인 소유가 아니라 2절에 언급하듯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출 19:5).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왕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백성들로 소개된 자들은 삶 속에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무리라는 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억울하고 압박 받는 자들을 소개합니다(2,4,12,13).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벙어리, 고독한 자, 간곤한 자, 궁핍한 자를 예로 들었습니다(잠 31:8). 시편 113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자들의 예로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잉태하지 못한 여자를 언급했습니다(시 113:6-9). 이런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본 시에서 언급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란 단지 물질적인 부족함을 느끼는 무리만이 아니라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신앙적이든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도움이 필요한 무리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이웃과 가족에게 소외당하고 마음에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자들입니다. 이런 백성들은 가족과 사회의 관심과 긍휼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왕의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입니다. 왕이 이들을 성실하게 변호하여 억울함을 풀어주고 핍박하는 자를 심판할 때 그의 왕권도 견고하게 되며(잠 29:14) 이스라엘 온 산지, 즉 나라 전체에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시 72:4).
왕의 영원한 왕국(5-7)
왕의 통치는 해와 달이 있을 동안 영원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왕의 나라는 강성할 것이고, 왕의 통치가 때맞춰 내리는 비와 땅을 넉넉히 적시는 소낙비(폭우) 같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정의가 만개하고(혹은 의인이 번성하고) 평화가 것이며, 왕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5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6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5-7)
공의를 실천하는 왕이 있는 나라는 평화롭고 영원히 지속됩니다. 백성들은 왕이 자기들을 어떻게 보살피고 정의를 구현하는지 보았으므로 해와 달이 지속되듯 변치 않고 ‘주’를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5). 여기서 ‘주’(당신)는 하나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왕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1, 2절에 나오는 ‘주’는 분명히 하나님을 지칭하므로 여기서도 일관성 있게 하나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인간 왕의 공의로운 통치를 통해 백성이 하나님을 계속 경외할 것으로 이해됩니다. 반면 2절부터 시작하여 17절까지 줄곧 ‘그’(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므로 문맥상 ‘왕’으로 읽는다면 자연스럽습니다. 이 경우는 왕의 공의로운 통치를 보고 백성이 그 왕을 계속적으로 존경할 것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둘 다 시의 전체 주제인 ‘공의의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의의 왕의 다스림’에 벗어나지 않으므로 하나를 고르기보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그대로 두어도 해석상 큰 문제는 없습니다.
왕의 공의로운 다스림은 물이 꼭 필요한 풀 위와 땅에 내리는 비와 같이 백성에게 유익을 줍니다. 건기와 우기만 있어 물의 소중함이 더 절실한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는 것은 다른 것으로 충족할 수 없는 큰 유익과 축복을 뜻합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파종과 추수 때에 맞춰 내리는 이른 비(가을비)와 늦은 비(봄비)를 종종 하나님의 은혜로 표현하듯(호 6:3; 욜 2:23) 6절의 비나 소낙비는 백성에게 임한 왕의 은혜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공의로운 왕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나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의 백성들의 합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왕만 공정하고 의롭게 다스린다 해서 나라의 명화가 자동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왕을 따라 백성들도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 중에서 의인이 늘어나고 흥왕하게 될 것이며 달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나라에 평화가 유지됩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역할은 무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지도자였을 때는 그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종용하였으므로 그나마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랐지만, 가나안 정착 후 여호수아가 죽자 백성은 곧 우상을 섬기고 자기 눈을 기준 삼아 제멋대로 살게 되었습니다(삿2:10-13; 17:6). 다윗의 경우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자였으므로(왕상 9:4; 14:8) 그 시대의 백성만이 아니라 후대의 왕들과 백성들이 따라가야 할 표본이 되었습니다(왕하 22:2; 대하 28:1). 그러나 여로보암이나 므낫세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을 행하는 자가 왕으로 통치했을 때는 백성이 더한 악을 행하게 되었고(왕상 14:16; 대하 33:9).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죄를 범한 것은 왕이 악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왕상 14:16: 16:2).
왕의 우주적 통치(8-11)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창조 이래로 지금까지, 또 영원토록 변함없이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스라엘 왕들을 통해 펼쳐졌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펼쳐집니다.
8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9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8-11)
백성의 좋은 지도자인 왕의 나라는 영원할 뿐 아니라 그의 통치가 세상 모든 땅과 바다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라는 어구는 두 가지 단어로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입니다. 구체적으로 바다는 지중해를 강은 유브라데를 가리키지만 전체적으로는 온 세상을 지칭합니다. 이와 같이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의 모습은 시편 2:8에 언급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실현되는 장면입니다. 왕의 위세와 우주적 통치는 땅 끝까지 영향을 미쳐 온 민족이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상황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왕을 대적하던 자들조차 왕에게 나와 굽히고 티끌을 핥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굽히다’는 무릎을 꿇어 복종하며 경배하는 모습을(시 22:29), ‘티끌을 핥다’는 완전히 패배하여 수모를 당하는 모습(창 3:14; 사 49:23: 미 7:17)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둘째, 온 세계의 왕과 민족이 왕을 경배하고 섬길 것입니다. 다시스, 스바, 시바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진귀한 예물을 들고 와 그를 경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의 왕이 온 세계 모든 왕을 다스리게 되므로 땅 끝에 있는 민족들까지 다 그 앞에서 경배할 것입니다(시 22:27-28). 지금까지 언급된 이상적인 왕국은 다윗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며 (삼하 7장),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높여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의 무름을 예수의 이름으로 꿇게 하시고 모든 자가 그를 주라 칭할 때 완벽하게 실현될 것입니다(빌 2:10).
기도는 단순한 기대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여는 열쇠이자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의 실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기도 중에 의지는 새로워지고 성령께서 복음으로 충만케 하시고 주의 뜻을 행하는 자로 우리가 변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19 시편(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86) - 시편 73편 1-16절 - 악인의 번영함을 보고 받은 교훈 (0) | 2024.07.02 |
---|---|
시편(85) - 시편 72편 12-20절 - 고통받는 자를 위한 왕의 사랑 (0) | 2024.07.02 |
시편(83) - 시편 71편 17-24절 - 끝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 (0) | 2024.07.02 |
시편(82) - 시편 71편 1-16절 -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신뢰한 하나님 (0) | 2024.06.25 |
시편(81) - 시편 70편 1-5절 - 여호와여, 나를 도우소서 (0) | 2024.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