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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66-01)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시편 66편 1-9절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무엇보다도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조성하셨고 지금도 유지하고 계시고 때문입니다.

 

  • 온 땅에 사는 만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택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놀라온 권능의 역사를 베풀며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와 거기에 사는 백성 모두를 다스리고 보살피시려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온 땅이여 하나님을 찬양하라(1-4)

때로는 기쁜 소리를 높여서 찬양해야 하며, 때로는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찬양하는 것이며, 그분의 역사에 믿음으로 참여하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입술의 찬양이나 기술적인 찬양에 그치지 않고 우리 전체로 찬양하고 온 삶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대적을 이기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 백성의 존재 방식입니다.

 

1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2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3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4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1-4)

 

시인은 온 땅 즉, 온 땅에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그가 단순히 그가 속한 공동체의 몇몇 사람이나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명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뿐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를 포함한 우주의 왕이라는 점이 함축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심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온 세계와 우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기도하는 자, 세계를 품은 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 다양하고 적절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즐거운 소리를 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소리를 내라’는 말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며 함성을 외치듯, 승리의 환호를 지르듯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기쁨으로 외치라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또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하되 영광스럽게 찬양해야 합니다. 여기서 찬양은 악기로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때 시인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언급하고 또한 영광스럽게 찬양하라고 요구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이름이란 그 소유자의 존재와 능력과 성품 등을 다 함축하고 있는 단어로서 그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구실을 합니다. 시인은 만민이 그의 초청을 받아들이되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른 채 찬양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통하여 그의 왕 되심, 전지전능하심, 거룩하심, 정의와 은혜 등을 떠올리며 그가 우주의 왕이심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그가 만민의 영광과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분임을 분명히 인식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한 찬양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영광스러운 찬양이 됩니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그에게 아뢰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권능의 놀라운(엄위한'으로 번역됨) 일과 그에 수반된 결과를 찬양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의 존재와 능력을 밝히 드러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능력의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도 자기를 높이지 말고 승리의 하나님께 굴복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경배하다’는 ‘절하다’라는 뜻이므로 온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를 노래해야 합니다.

 

와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라(5-7)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고 구원자이심을 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그러면 온 맘 다해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5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6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7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셀라)(5-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갈라진 홍해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하신 일입니다.

 

(1) 시인의 명령:와서 보라(5a)

 

시인은 온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와서 직접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경험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국 중에서 선택하여 특별히 보호하고 구원하셨지만, 그가 온 세계의 왕이시므로 궁극적으로 만민을 돌보고 구원하실 것임을 그들이 분명히 알고 체험하기를 시인은 소망합니다. 시인은 3절에 언급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의 예로 사람들이 바다를 육지처럼 통과한 사건을 듭니다. 여기서 바다가 육지가 된 일과 사람들이 강을 걸어서 건넌 일을 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으나, 각각 홍해와 요단을 건넌 두 사건으로 읽는 것도 적절합니다. 유사한 용례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사건을 배경으로 기록된 시편 114편에서도 나오는데, 이때 시인은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바다가 보고 도망하였고 요단은 물러섰다…바다야 네가 왜 도망하느냐 요단아 네가 어찌 물러서느냐”(시 114:3,5)라고 노래하며 홍해와 요단을 건넌 사건을 언급합니다.

 

(2)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5b-7)

 

시인이 실제 일어났던 나님의 행사를 진술하는 주된 목적은 온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셨는지,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알아 그분에 대한 확실하고 견고한 믿음을 갖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큰 능력을 직접 눈으로 본 후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출 14:31). 시인과 그의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시 66:6). 이때 6절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바다를 육지로 변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강을 그들이 걸어서 건넜다’로 번역되며, 그 다음 문장은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다’로 번역되었지만(개역개정) 문자적 번역은 ‘거기서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자’입니다. 앞의 번역을 따르면 시인과 공동체가 기적의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기뻐했다는 의미로 또는 과거의 기적 사건을 기억하며 그 장소에서 기뻐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뒤의 문자적 번역을 따른다면, 시인이 청중에게 과거 기적의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으로 인해 함께 기뻐하자고 요청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번역과 해석이든 여기서 시인이 확실하게 진술하려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능력과 구원을 베푸셨다는 점과 그 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시인과 모두의 기쁨이 되신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런 놀라운 사건을 통한 하나님 찬양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 땅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확실히 인정하고 그가 능력의 왕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여 그들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일 가운데는 인간의 이성과 상식이나 과학을 뛰어넘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다스리심과 전능하심을 보여주신다. 동시에 인애와 정의를 비롯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십니다. 눈앞에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시는데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믿기를 거부하거나 머뭇거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시인의 초청을 거부하는 자들을 완악하고 고집 센 반항자라고 칭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들을 살피고 계시며, 그의 다스리심이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하나님께 도전하여 반역하기를 그치라는 시인의 경고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라(8-9)

 

능력으로 영원히 온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온 나라들을 살펴서 교만한 자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라고 부릅니다. 또한 자신들의 영혼을 살려두시고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은총을 찬양하라고 부릅니다.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신실하신 구원과 보호의 역사입니다.

 

8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9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8-9)

 

인생 가운데 고난의 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을 고난의 불 속에 넣어 담김질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성숙하도록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1) 시인의 명령:하나님을 송축하라(8)

 

능력의 왕이신 하나님을 송축하며 찬양해야 하는 것은 온 세계 백성의 의무입니다. 시인은 재차 세상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이번에 시인이 언급하는 하나님 송축의 이유는 그가 생명을 제공하고 주관하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군대의 생사가 하나님께 달려있었듯이 현재와 미래에도 인생의 삶과 죽음이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특히 그의 백성이 어려움과 죽음의 위험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원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권위와 능력으로 백성을 강압적으로 눌러 그들로 하여금 억지로 복종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돌보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의 실족함 즉, 발이 흔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표현하는데, 이때 실족함이란 어려움이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발이 흔들릴 때 도와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발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랑의 마음과 능력과 강한 의지를 이미 소유하고 계신 분입니다.

 

(2) 하나님을 송축하는 이유(9)

 

하나님 덕분에 우리의 생명이 붙어있고 그가 주시는 안전과 보호를 체험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기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이 특권을 그의 성도만이 아니라 만민이 함께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고대합니다. 시인처럼 온 세계 만민이 놀라운 권세와 능력으로 세계를 다스리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를 찬양하는 소리가 울리는 날을 우리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계 7:9-12; 19:6).


믿음의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세상을 다스리시고 당신의 백성을 보살피십니다. 악이 강하고, 세상의 힘이 막강하다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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