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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64-01)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악인의 존재

시편 64편 1-10절


 

태산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하늘 아래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하고 똑똑하고 과학이 발달한 첨단의 시대를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조금만 힘이 생기고 소유가 늘어나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망각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착각합니다.

 

 

  • 본 시편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나오며(1-2), 악인들의 계획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고(3-6),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용사이신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타난 후(7-9), 의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는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10).

 

하나님께 드리는 구원 요청(1-2)

세상은 큰 울음소리도 흘려듣지만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고통당하는 백성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악인의 계략에서 건져 주십니다. 은밀히 공격하는 대적들에게서 ‘숨을 곳’이 되어주십니다. 그리니 하나님 앞에서는 숨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토설하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2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1-2)

 

시편 64편은 하나님께 대한 구원 요청으로 시작됩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애가(탄식시)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여”라며 하나님을 부르고, 원수의 두려움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과연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해있는 것입니까? 그 내용이 2절에 간략하게 등장합니다. 악을 꾀하는 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악을 행하는 자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악인들의 계획 때문에 시편 기자는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까지는 전형적인 애가(탄식시)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인들에 대한 묘사(3-6)

원수들의 무기는 칼처럼 날카로운 혀와 화살같이 독한 말이었습니다. 완전한 자의 의로움을 견딥니다. 완전한 자의 의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거짓과 비방으로 그를 넘어뜨렸습니다. 사냥꾼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예고 없이 공격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그의 마음은 돌같이 굳어 있었습니다. 악인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정려하고 힘을 합쳤습니다.

 

3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4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 5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6그들은 죄악을 꾸미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3-6)

 

1-2절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 후 시편 기자는 이제 3-6절에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 부분은 악인들에 대한 집중적인 묘사를 제시합니다. 먼저 3-4절은 악인들의 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3절은 악인들이 입으로 펼쳐내는 언사가 칼과 같고 화살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칼과 화살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이며, 다른 이들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됩니다. 따라서 악인들이 칼과 화살과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악인들이 의인들을 죽이기 위한 말을 한다는 뜻이 됩니다. 4절은 이에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악인들은 그 독하고 악한 말을 칼과 화살과 같이 사용하되, 숨은 곳에서 갑자기 자신의 길을 올바로 가고 있는 사람을 겨냥해서 씁니다. 즉 악인들이 하는 말은 의인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의인들을 억울하게 무너뜨리기 위해 하는 악한 말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그 일에 대해서 조금도 두려움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 일로 인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언뜻 보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7절 이하에 내려가면 명확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5-6절은 악인들에 대한 묘사를 이어갑니다. 3-4절이 악인들의 말에 대해서 언급했다면, 5-6절은 그런 악한 말을 하고 있는 악인들의 속마음이 어떠한지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5절에서는 악인들이 악한 목적으로 서로를 격려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격려합니다’는 말은 ‘강하게 합니다’는 뜻입니다. 악한 목적으로 서로를 강하게 붙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불성설이지만, 이것이 악인들의 정체입니다. 악한 일을 위해서 서로 힘을 합하고 뭉치는 것이 바로 악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바로 ‘몰래 올무를 놓는 일’입니다. 원어를 보면 ‘올무들을 놓는다’라고 복수형태를 사용합니다. 즉 길을 올바로 잘 가고 있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올무를 여러 개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누가 이것들을 보리요’ 하면서 의인들이 올무를 보지 못하여 그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인들의 속마음은 6절에 더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악인들은 악한 계획을 꾸며내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습니다’라며 기뻐합니다. 이러한 악인들의 행태를 향해 시편 기자는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다’고 한탄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깊은 곳까지 죄악으로 물들어 있기에,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악한 역사와 죄에 물든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7-9)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맘 놓고 거만하게 떠들던 악인들의 입은 닫히고, 탄식하며 기도하던 의인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즐거운 찬양을 부를 것입니다. 그들의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가게 하시고 그들이 친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들어 조롱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7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8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9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7-9)

 

이제 7절부터는 3-6절에서 언급한 악인들이 어떤 최종적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심판을 내리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화살로 쏘신다’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화살로 쓴다는 표현은 다름 아닌 4절에서 악인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표현과 동일합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악인들은 의인들을 악한 말이라는 화살로 쏘아 넘어뜨리려 했으나, 정작 화살을 맞아 넘어지게 되는 자들은 다름 아닌 악인들 자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인들을 향해서 화살을 쏘시는 분은 심판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8절은 이러한 악인들이 맞게 되는 멸망이 바로 자신들의 악함의 결과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강조합니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들이 엎드러지나니’라는 말은 ‘그들이 그를 엎드러지게 하나니’라는 뜻으로, 악인들이 스스로를 엎어지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악인들의 혀는 그 자신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3-4절에서 의인을 상하게 하려고 악한 말을 꾸며냈는데, 그 악한 말이 악인들 자신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인들을 보는 자들이 다 머리를 흔들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를 흔든다는 말은 악인들이 받는 형벌을 보고 만족스러워하거나 혹은 그 형벌로 인해 놀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악인들이 받는 벌을 보고 놀라서 도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악인들의 계획은 의인을 넘어뜨릴 줄로 예상되었으나, 놀랍게도 악인들 자신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9절은 이러한 모든 일의 결과,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앞서 4절에서 악인들은 온전한 의인들을 향해 화살을 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악인들이 맞는 종말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을 그 악인들에게 갚으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10)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피와 생각을 좇아 삽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반면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임을 기억하십시오.

 

10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10)

 

64편의 마지막 구절인 10절은 ‘의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64편에서 ‘의인’이라는 단어는 10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오직 ‘악인’ 혹은 ‘악을 꾀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언급해 왔습니다. 악인에 반대되는 말은 4절에서 ‘온전한 자’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10절은 64편의 마지막 구절로서, 악인들의 계획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졌지만,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을 ‘의인’이라고 명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그 앞을 막아서는 간교한 악인들의 계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도우심을 기대하고, 악인들과 싸우시며 그들의 악한 계획을 물리쳐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의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음이 정직한 자 곧 마음이 올바른 자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악인들의 계획을 만나게 될 때, 64편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악인들의 악함을 물리쳐주시고 의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임을 믿으며 담대한 신앙으로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악인이 우리를 공격하고 힘들게 해도,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일 뿐입니다. 악인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우리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모든 행위를 아십니다. 악인의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무지(無知)만 못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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