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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60-01)


절망에서 승리로 나아가려면

시편 60편 1-12절


 

승리에 익숙한 사람과 실패에 익숙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승리에 익숙한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패배에 익숙한 사람은 어떤 실패를 만나도 충격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덤덤합니다. 공부하기를 포기한 학생은 낙제 점수를 받아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성적을 높이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일등인 인생은 작은 실수에도 크게 충격을 받고, 그 충격을 발판으로 해서 더 열심히 보완하고 노력합니다.

 

 

  • 가나안 정복 전쟁의 상황에서 패배하여 다윗이 주께서 우리에게 분노하시고 우리를 버리셨으므로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시인합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선언합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한 애통과 간구(1-5)

환난이 죄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환난의 원인이 나태, 무분별, 무지 때문일 수도 있고, 사탄의 시험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해결책은 하나,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복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셔서 힘과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결국 승리하게 하십니다.

 

1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1-5)

 

시인은 하나님을 부른 후 곧바로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흩으셨습니다. 주님이 분노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도 없고 접속사도 없이 연이어 나오는 세 개의 동사로 자신들이 당한 상황을 하나님께 탄식하며 몹시 괴롭고 힘든 것을 표현합니다. 시인은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주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은 마치 그들이 주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노하심으로 그들을 버리셨고 그 결과 그들이 완전히 깨어지고 부숴져 버렸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다시 회복시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잘못한 자녀를 회초리로 때리는 어머니 품으로 자녀가 뛰어들 듯 시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2-3절은 주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주께서 지진이 나게 하셔서 땅이 흔들리게 하시고 갈라지게 하셨습니다(2). 지진으로 인해 땅이 흔들림은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시 18:7; 46:3,6; 사13:13; 24:18–20). 시인은 하나님께 갈라진 틈을 메워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마도 지진은 전쟁에 대한 비유로, 땅이 갈라짐은 전쟁의 패배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혼돈과 좌절과 낙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갈라진 틈을 메우는 것은 이를 극복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당하게 하셨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고 합니다(3). 포도주를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는 것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쓰러지는 비참함을 표현합니다.

 

4절은 여러 다른 번역들이 시도되고 있으며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다’고 했는데 “진리를 위하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단어는 ‘화살’로 보고 ‘달게 하다’는 ‘피하다’로 본다면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활쏘는 자) 앞에서 피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3절의 내용에 애통이 나오고 간구가 나온 형식에 따라 4-5절도 애통(4)에 이어 간구(5)가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4절은 하나님께서 이미 도움을 주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외하는 자들에게 깃발을 주셔서 화살을 피하게 하셨다.’이처럼 이런 구원의 경험에 비추어, 주께서 주의 사랑하는 자들을 주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호소(6-8)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승리를 약속하는 말씀을 붙잡고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승리의 확신이 있을 때 범사에 감사하는 삶도 쉬워집니다. 현재의 고난 너머에 있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로 들어서서 좁은 문으로 들어갈지라도 승리의 확신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괴롭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승리의 가능성은 확실히 커집니다. 하나님께 승리를 약속하는 말씀을 받고 다윗이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6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6-8)

 

시인의 “응답하소서”의 간구가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신다’로 곧바로 연결됩니다. 시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땅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전쟁에서의 패배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함으로 하나님께 구원과 승리를 요청할 수 있게 하고 백성들이 다시 전쟁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며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고 합니다.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측량한다는 것은 땅을 나누고 분배하여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주인이심을 말해줍니다. 세겜은 북이스라엘의 중요한 장소이고 숙곳은 요단 동쪽에 있는 얍복강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세겜과 숙곳이 왜 언급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스라엘 북쪽 지역의 요단 동편과 서편의 땅 전체를 대표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길르앗과 므낫세는 요단 동편 땅 전부를 가리킵니다. 길르앗 남쪽은 르우벤과 갓 지파가 차지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중심 지역이고 유다는 남유다의 중심 지역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는 지역입니다.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전쟁 장비요 규는 왕권을 상징하는 지휘봉이라면, 에브라임은 방어를 유다는 공격을맡는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8절에서는 이스라엘 주위의 주요 나라인 모압, 에돔, 블레셋이 언급됩니다. ‘모압이 나의 목욕통이라’는 것은 용사들이 전쟁에서 돌아와 몸을 씻을 때 씻을 물을 가져오는 종의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모압이 정복됨을 암시합니다. ‘에돔에 나의 신발을 던진다’는 것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기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블레셋에게 ‘외치라’는 것은 패배로 인한 두려움으로 소리를 지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9-12)

생각이 행동을 규정짓지만 때로는 행동이 생각을 규정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생각이 짧아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실패들이 큰 성공을 위한 학습과정이 되고 디딤돌과 발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생각만큼 좋은 행동이 중요합니다. 그처럼 승리의 확신과 승리의 기도만큼 승리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9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9-12)

 

6-8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이스라엘의 영광된 모습과 대비되어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곤경이 묘사됩니다. 9절에서 “나”는 시인을 가리키며 시인은 왕으로 보입니다. 9절과 10절에 의하면 왕이 에돔을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돔은 바위 꼭대기에 지어진 성으로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옵 3), ‘누가 난공불으로 보이는 성을 정복할 수 있겠는가?’ 궁극적으로 그 답은 여호와입니다. 이 진리 앞에 시인이 다시 한번 탄식합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군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에 대한 경험은 주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과 확신을 가져옵니다. 시인은 구원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11절과 12절은 “대적”이라는 말로 서로 연관되어 뿐 아니라 교차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11절 상반점과 12절 하반절은 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그는 우리의 대적을 밝으실 이심이로다.” 11절 하반절과 12절 상반절은 인간의 도움과 하나님의 도움에 대해 대조적인 평행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구원은 첫됨이니이다//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승리를 위해 시도하는 인간의 모든 전략과 전쟁 기술과 무기와 군사에 따른 전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막강해도 승리와 구원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대적을 복종시킬 수 있는 분이라고 선언하며 하나님과 함께 씩씩하게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는 전쟁의 패배로 인해 생긴 국가적 곤고함과 굴욕의 시기 동안에 드려지는 백성들의 기도를 표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절과 유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절로 인한 패배의 경험은 백성들의 믿음과 방향을 새롭게 합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자신들에게 재확신시킵니다. 시인과 백성이 여전히 고통스런 상황에 있지만 그들의 전망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단념하고 여호와께 대한 전적인 의존을 새롭게 합니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둡니다.


살다 보면 때로 패배할 때도 있습니다. 패배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 3가지 승리의 재료를 더해야 합니다. 바로 ‘승리의 확신, 승리의 기도, 승리의 행동’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수단과 방법만 의지하지 마십시오. 승리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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