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66-02)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인 예배
시편 66편 10-20절
신을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창조하셨고,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셨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입니다.
-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시련을 주어 시험하시는 것은 그들을 순은과 정금같이 단련하여 하나님의 성결하고 성숙한 백성으로 만드시려는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회개하여 마음에 죄악을 없애고 서원의 기도를 드리며 구원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일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시험과 인도(10-12)
신앙생활은 만사형통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우리에게는 고난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으면 받지 않아도 되는 고난까지 받게 됩니다. 기독교는 고난이 사라지는 만사형통의 종교가 아니라, 고난 중에도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10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12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10-1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고난을 주어 시험하시는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시인은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사람을 시험하고 연단하는 것은 은금과 같은 광석을 뜨거운 용광로에 넣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타오르는 용광로에서 광석에 붙어 있거나 들어 있는 철과 흙 등 불순물이 다녹으면 단단하고 조잡했던 광석이 순도 높은 값진 보석으로 탄생되어 나오듯이, 사람이 연단을 받는 동안은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기간을 견디고 나와 성결하고 성숙한 믿음과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하나님께서는 고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언약으로 맺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의 언약에 순종하여 ‘보배와 같은 그의 소유’이자 ‘제사장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되기를 고대하셨습니다(출 19:5-6).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물과 같은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고난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않는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역경 중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거리에 일렬로 눕혀 그들의 등을 도로처럼 만든 후 말이나 병거를 타고 그들을 짓밟고 지나가게 하신 일도 있었다고 시인은 증거합니다. 시인의 이런 표현은 원수들에게 당한 짓밟힘의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는데(사 51:23; 수 10:24), 여기서 시인이 확실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적들에 의해 패배하였고 그로 인한 수모와 굴욕을 당했으며, 하나님께서 이런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연단하셨다는 점입니다.
시인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불과 물을 통과였다고 말합니다. ‘불과 물’은 앞서 언급한 홍해나 요단을 건넌 사건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고 여러 종류의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든, 시인이 전달하려는 뜻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갖 시험과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연단하셨고, 결국은 그들을 고난에서 건져 안전하고 풍성한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연단한 후 하나님의 평화와 안전을 누리게 하셨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과 구원은 이스라엘이 물과 불 속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물이 그들을 쓸어버리거나 불꽃이 그들을 사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사 43:2)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시인이 선언하였듯이(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셨음을 증명해줍니다.
서원을 갚는 시인(13-15)
서원은 조건이나 거래가 아니라 전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고난은 영혼에 아픔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심으로 영혼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입술의 고백은 온 천하에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13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5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13-15)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해주신 일을 증언하며 계속 사람들을 찬양에 초대합니다. 시인은 환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므로 그에게 서원을 갚는 제사를 드리겠다고 선포합니다. 시인은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입니다”(14)라고 ‘내 입술’과 ‘내 입’을 재차 언급함으로써 자신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서원하였으며 하나님께 서원한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을 청중 앞에서 확실히 밝힙니다.
시인이 서원을 갚는 데에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헌신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먼저, 서원을 한 경우 서원을 갚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민 30장)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둘째, 서원을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 즉, 그가 계신 곳으로 가는 것도 순종입니다(신 12:11-14). 셋째,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이때 시인은 번제의 희생 제물로 살진 짐승들인 숫양들, 수소와 염소들을 드린다고 진술합니다. 이 살진 짐승은 하나님께 바치기에 적합한 질 좋은 제물임을 나타내며, 더구나 이 제물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조건인 한 마리의 소나 양이나 염소(레 3장; 22:18-23 참고)보다 더 많은 수를 나타냅니다. 이런 점들에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으며 그에게 아낌없이 드리기를 원하고 그렇게 드리려고 작정했음이 잘 나타납니다. 넷째, 제물의 연기(‘향기’로 번역됨)에 대한 언급에서 시인의 순종이 드러납니다. 이 연기는 제단의 불 위에서 제물을 태워(화제)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로서 시인이 서원제에 적합한 방법으로 제사(레 3:3)를 드렸음을 보여줍니다. 화제는 또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레 3:5, 16)이므로 예배자인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참회, 겸손, 감사, 환대, 헌신과 하나님께서 시인을 용서하고 제사를 받으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찬양(16-2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소리에 속지 않으십니다. 기도자의 중심으로 보시고 깊은 생각까지 판단하십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은 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고난은 마음속에의 쓰레기를 치우고 영혼을 맑게 하십니다. 고난을 체험한 성도는 믿음이 더 깊어지고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16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16-20)
진정한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입으로 고백하고 우리의 혀로 찬양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마음 속에 죄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입니다. 그 후에야 응답된 기도가 찬양으로 흘러나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무엇인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 찬양에 초청 (16)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화답의 표시로 서원제를 드리겠다고 선언한 시인은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모든 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간증을 전하려 합니다. 앞서 “와서 보라”(5)고 했던 것처럼 시인은 이제 “와서 들으라”(16)고 하며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이때 초청을 받은 자들이 보고 듣게 될 내용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과 구원의 일입니다. 내용에 있어서 다른 점이라면,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베푸신 일을 진술하는 반면 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인 한 사람에게 하신 일을 진술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두 군데 모두 초청을 받은 자들에게 시인이 의도하는 바는 그들이 시인이 전하는 말을 듣고 능력과 구원의 왕이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2) 시인의 간증(17-19)
시인이 그의 입과 혀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를 찬송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실제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때 시인은 마음에 어떤 죄악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며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회개하여 순전한 마음으로 간구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고 겸손하게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인의 기도 소리에 귀 기울이셨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고 보살피시는 분이며 곤경을 주어 연단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점은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3) 하나님 찬양(20)
온 땅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1)고 외치며 시를 시작한 시인은 다시금 하나님 찬양을 촉구하며 시를 마감합니다(20). ‘하나님께서 송축 받으시리로다’라는 그의 외침은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마땅하심을 재차 강조합니다. 이 외침은 이미 8절에서 만민을 향해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시인의 촉구에 대한 화답으로도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20절에서는 온 땅(1,4)이나 만민들(8)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송축하는 대상임이 암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두지 아니하신 점을 들어 감사하는데, 이 두 가지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의 하신 일과 성품을 표현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니라 밀접하게 관련된 하나의 내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기도를 들어주신 데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즉, 인애와 성실, 긍휼 등의 성품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역으로, 이러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동과 성품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일치되어 나타납니다. 덧붙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하고 견고한 왕국을 약속하셨을 때 그의 인자하심을 다윗으로부터 거두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신 후 다윗의 왕국과 그의 왕좌가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셨듯이(삼하 7:15-16), 이제 시편 66편에서도 시인을 향한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인자하심을 계속적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심으로 시작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그분이 우리를 만나주셨고,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예배와 찬양은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 응답을 받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과 예배의 감격을 회복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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