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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02-01)


척량줄을 잡은 사람

스가랴 2장 1-13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또 성소에서도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도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다 보면 마치 벌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 단락은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환상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이 성곽 없는 성읍이 될 정도로 풍요롭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이전 환상들과는 다르게 명령문을 사용하여 강력하게 권고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각각 6-9절과 10-13절에서 북방 땅 바벨론에서 피하라는 권고와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것이므로 그분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는 권고가 이어집니다.

 

셋째 환상 : 측량줄을 잡은 한 사람(1-5)

 

자신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고 다른 성도는 함께 구원받는 형제자매라는 의식을 가지고 예배드리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나 교회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데, 교회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1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2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고 말할 때에 3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고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4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5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1-5)

 

셋째 환상에서의 특이한 점은 이전 환상들처럼 회복의 주제를 전하면서도 명령문을 써서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 환상들에서는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권고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면, 여기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둘은 약간 다릅니다. 앞선 두 환상에서는 천사와 스가랴의 대화를 통해 환상의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직접적인 여호와의 말씀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변화는 3-4장에 나오는 넷째와 다섯째 환상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입니다.

 

(1) 환상의 내용(1-2)

 

1절의 ‘측량’은 1:16의 먹줄과는 다른 단어이지만 관련이 있습니다. ‘측량’은 심판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암 7:7-9),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구원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1:7-17의 첫 환상에서는 환상이 나온 후 조용한 온 땅과 여호와의 역사로 인해 예루살렘이 풍요롭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는 더 구체적으로 환상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더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 나오는 두 번의 여호와의 말씀에서는 이 환상에 대해 이스라엘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곧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절의 ‘측량하다’라는 동사(마다드)는 에스겔 40-47장에서도 성전 건축과 관련해서 자주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성읍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성읍입니다.

 

(2) 환상의 의미(3-5)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개념은 5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임재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성막(출 16:10;40:34)과 에스겔 환상의 성전(겔 9:3)이 스가랴 본문과 비슷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언약 백성 가운데 거하며 자신을 드러내시겠다는 의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공식화하는 언약 회복의 표현입니다.

5절의 ‘불’은 여호와의 임재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됐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불이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갔고(창 15:17), 모세를 부르실 때 가시떨기 나무에 불로 나타나셨습니다(출 3:2). 홍해를 건너는 상황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출 14:24: 신 1:33).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며 불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출 19:18). 이처럼 여호와의 나타나심이 자주 불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도 역시 여호와께서 친히 나타나는 것이 불로 표현됐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로 둘러싼 성곽은 여호와의 보호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성벽으로 이스라엘을 막겠다는 뜻입니다. 한편, 4절의 ‘성곽 없는 성읍’은 무방비 상태의 성읍이 아니라, 사람과 가축이 가득한 상태로 회복된 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전 재건이 중단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확신을 주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6-13)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해서 수많은 회의와 질문을 빠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시고 정의로우시다는 말씀을 접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세상의 형편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회의를 품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고 죽음과 같은 고난을 경험하는 동안 완전히 절망했을 것입니다.

 

6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8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9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10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11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12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13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6-13)

 

셋째 환상에 이어 여호와 말씀은 6-9절과 10-13절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13절은 직접적으로 환상의 주제를 다루지만, 6-9절은 예루살렘을 측정하는 환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도피할지어다’, ‘피할지니라’라는 권고에서 볼 수 있듯이 6-9절은 환상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환상을 보여주는 목적, 즉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려는 의도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1):북방에서 피하라(6-9)

 

6절의 ‘북방 땅’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침략한 나라의 방향을 의미합니다(렘 1:14). 그러나 스가랴 당시 앗수르와 바벨론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페르시아(바사) 제국도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방 땅에서 도피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 ‘북방 땅’이 현재는 위협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강대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스가랴 10:10에서도 당시와는 상관없는 애굽과 앗수르를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현재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방 땅에서 피하라는 메시지의 문맥은 8-9절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범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노략거리’가 될 것입니다(9). 북방 땅 바벨론에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이들에게 심판이 임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강대국들이 평안하고 세상은 고요한 듯하지만(1:7-17의 환상의 주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정의를 세우시며 이들을 멸하실 것입니다(네 대장장이의 환상, 1:18-21). 따라서 멸망이 임박했으므로 바벨론(이제는 바사 제국 아래에 안주하여 남아있지 말고,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미 바벨론 문화에 익숙하여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정착하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겨냥한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스가랴가 메시지를 전했던 때는 주전 520년경으로, 곧 1차 바벨론 포로귀환(주전 538년) 이후에 해당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이후에도 2차(주전 458년)와 3차(444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은 본토로 귀환했습니다.

 

(2) 여호와의 말씀(2):네 가운데 머물리라(10-13)

 

10-13절은 직접적으로 환상의 내용과 연결되어 예루살렘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이는 마치 강대국을 멸망시키고 돌아올 때 승전보를 알리며 예루살렘에 대한 회복을 확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10-13절은 5절의 ‘내가…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라는 주제를 반복하고 있으며, 환상의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이스라엘이 기뻐할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언약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머물다’라는 동사는 성막에도 사용된 단어이며, 출애굽을 통해 이룬 언약 공동체의 회복을 시사합니다. 여호와의 임재가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이 언약 백성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언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듯이(출 29:45-46), 언약의 파기로 바벨론에 끌려갔던 이스라엘의 회복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1절의 ‘그 날에’는 문맥상으로는 여호와께서 회복할 미래의 어느 날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스가랴서 후반에서 충분히 발전되는 개념인 종말의 ‘여호와의 날’을 가리킵니다.

‘많은 나라가 … 내 백성이 될 것이요’라는 표현은 약에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구입니다(참조. 신 7:6; 14:2; 렘 24:7; 겔 11:20; 37:23). 뒤에 이어지고 반복되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라는 표현 역시 언약적인 회복을 시사하며, 여기서 ‘그 날’은 언약의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은 새 언약의 성취 장면에서 자주 언급됩니다(참조, 사 2:2-3; 56:6-8; 미 4:1-2). 이 표현은 종말론적인 어투가 짙은 스가랴서 후반부에서도 다시 언급될 것입니다(슥 14:16). 이는 원래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예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또한 시내산 언약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출 19:6)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맥락에서 스가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미래에 이루어질 것임을 종말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12-13절의 예루살렘을 다시 택한다는 선언은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으며(1:17), 여기서는 많은 나라가 하나님 앞에 돌아온다는 선언과 함께 한층 더 발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 열국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세상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팔레스틴 땅 그곳에 정한 경계 안에서 걱정 없이 살게 하십니다. 다만 주변 나라들을 흥하게도 하시고 쇠하게도 하시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기도 하시고 벌을 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 가운데 영광이 되시므로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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