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04-01)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장 1-14절
살아오면서 한 번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실행했는데, 큰 장애물을 만난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인도하던 여호수아가 맞닥뜨린 여리고 성이 그러했고, 와서 도우라는 호나산을 따라간 빌립보 성에 이른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종을 깨끗하게 해 준 후에 맞이하게 된 심한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투옥되는 일이 그렇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 제건이라는 큰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 네 번째 환상과 비슷하게 다섯 번째 환상 역시 다른 환상들과는 다른 특징들이 보입니다. 네 번째 환상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집중했다면, 다섯 번째 환상은 스룹바벨에게 집중합니다. 역시 성전 재건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스룹바벨과 관련된 두 감람나무에 대한 환상을 소개하고 두 감람나무의 정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환상(1-5)
이 세상에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아니 되고 모든 기술과 재능을 다 동원해도 안 되는 일은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주십니까? 그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아니 되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1-5)
동 시대에 선포된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차이 중 하나는 학개는 사람의 책임을, 스가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을 통해서 성전 건축이 완성될 것이고 방해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명확히 지적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른 것을 통하여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을 통하여 들어내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환상의 내용(1-3)
2절에서는 순금 등잔대에 초점을 두고 등잔대의 위에까지 어떻게 기름이 공급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는 3절에서 등잔대 곁의 두 감람나무에까지 연결됩니다. 감람나무는 감람유를 내는 나무로, 등잔을 밝히는 재료인 기름의 근원이 됩니다. 감람나무와 기름을 연결시키는 것은 이 장면에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1-14절에서 감람나무와 기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두 감람나무는 2절에서 묘사하기 시작한 순금 등잔대 위의 등잔을 밝히기 위한 기름의 근원입니다. 다시 거꾸로 보자면, 이는 두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어 순금 등잔대 위의 등잔이 밝게 비추고 있는 장면을 소개한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에 대한 설명은 12-14절에서 다시 거론하며 설명하는데, 거기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대답합니다.
(2) 환상에 대한 질문(4-5)
두 감람나무의 정체는 환상의 의미를 밝히는 가운데 드러나지만, 순금 등잔대는 이 환상과 환상에 대한 설명에서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대체로 세 가지 해석이 제시됩니다. 문맥상 순금 등잔대의 환상이 성전 재건과 관련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금 등잔대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성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감람나무의 정체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적 인물이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라는 두 인물이라고 한다면, 순금 등잔대의 환상은 기름이 공급되어 등잔대가 유지되듯이 이 둘을 통해 성전이 완성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환상과 관련된 말씀(6-10)
순금 등대와 같은 교회에 성령님의 은혜가 충만해질 때 교회는 세상에 빛을 밝게 비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은혜가 없는 교회와 성도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야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6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6-10)
시작이 미약해 보인다 하여 우습게 여겨서도 안됩니다. 여전히 지금 상황은 성전을 건축하기에 낙담할만한 환경, 그리고 지쳐버리고 무감각해져 버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회복의 차원에서 주어진다는 문맥에서 이 모든 것을 해석해야 합니다. 즉, 지쳐버리고 무감각해져 버리면 성전 건축 자체가 매우 무가치한 일 정도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 (6-7)
1-3절에서 환상의 내용을 소개했는데, 4절 이후에서는 이 환상이 의미하는 바에 집중합니다. 다른 환상들에서는 스가랴가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1:9,19)라고 물을 때 천사가 대답하며 환상의 의미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11-14절에 가서야 이 질문을 다시 확인한 후 감람나무의 정체에 대해 밝히는데, 그 대답도 역시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순금 등잔대의 의미는 더욱 모호하게만 남겨집니다. 4-5절에서는 환상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주목하게 합니다. 그러나 6-7절의 대답은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6-7절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6절의 ‘힘’과 ‘능력’은 ‘내 영’과 대조되는 인간의 힘을 의미합니다. 물론 ‘내 영’의 역사는 9절에 표현된 성전의 기초와 관계가 있습니다. 스가랴가 이 메시지를 전하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은 성전 건축이 여러 반대에 부딪혀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학개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재건을 독려하고 있었는데, 스룹바벨은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성전 재건을 주도해야 할 인물입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가 아니라 여호와의 영으로 성전 재건이 가능함을 권고하며, 주변 환경이나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권고하는 메시지입니다.
7절은 성전 재건에 방해가 되는 것을 ‘산’에 비유하였으며(사 40:4), 산이 평지가 된다는 것은 평탄하게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7절의 ‘머릿돌’은 건물의 완성 단계에 놓는 중요한 돌을 가리키며, 성전이 완성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모두가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완성은 곧 성전이라는 건물의 완성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순금 등잔대라는 환상을 통해 암시하듯이, 여호와께서 자신의 언약 백성 가운데 다시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의 완성은 언약 공동체, 신앙 공동체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전 재건은 단순히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함께하시는 역사입니다.
(2) 백성에게 하는 촉구의 말씀(8-10)
6-7절이 스룹바벨에게 한 말씀이었다면, 여기서는 스룹바벨이 할 일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9절의 ‘손’은 하나님의 사역 대행자를 가리킵니다(8:9,13). 6절에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했으나,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영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9절의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참조, 즉 2:9). 다시 말해, 선지자를 통해 대언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됨으로써, 그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임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10절에서 ‘작은 날’이라고 멸시하는 것은 당시 제2성전의 초라한 외양에 얽힌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킵니다. 파괴되기 전 솔로몬 성전에 비해 기초를 놓은 제2성전의 겉모습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는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기초를 놓은 후에도 십육 년 동안 여러 가지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실망은 커져만 갔을 것입니다.
10절에서 스룹바벨의 손에 있는 ‘다림줄’은 다른 단어이기는 하지만, 2:1의 측량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10절의 ‘일곱 눈’은 아마도 3:9의 ‘일곱 눈’과 연결될 것입니다. 2절에서도 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일곱’이 반복됩니다. 순금 등잔대와 그 위에 있는 것을 보는 환상이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보는 여호와의 눈 일곱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증인이 됨과 동시에 성전의 완성에 대한 예언이 확고히 성취될 것을 보증하는 이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두 감람나무의 정체(11-14)
교회는 세상의 빛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순금 등잔대처럼 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을 무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기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의 헌신입니다. 나아가 그 기름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11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11-14)
여기서는 두 감람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내용이 진행되며, 감람나무와 순금 등잔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묘사가 있습니다(12). 11-12절은 두 감람나무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반복하여 묻습니다. 이어서 13절은 스가랴 선지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합니다. 14절에서는 두 감람나무의 정체를 알립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할애해서 주목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감람나무를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확인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기름(이츠하르)은 보통 임명할 때 붓는 기름이나 연료로 사용하는 기름(셰멘)과는 다릅니다. 혹자는 여호수아는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 받았지만 스룹바벨의 경우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을 역사적 인물인 여호수아와 스룹바벨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스가랴서의 첫 독자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분명히 알았다는 것을 암시할 것입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행자로서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통해서만 성취될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일차적으로 당시의 역사적인 두 인물에게 적용하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성전의 완성을 이룰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곳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성전 한 곳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자 하시는 곳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자녀들과 교통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사랑하시어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공급해 주시고, 변함없이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항상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을 위협하는 큰 산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면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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