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03-01)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스가랴 3장 1-10절
이스라엘을 향한 조건없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기억해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허랑방탕한 삶, 우상숭배와 점철된 죄악으로 시간과 삶을 낭비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시고 꺼내주시고,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결한 관을 씌워 제사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며, 하나님의 도와 규례를 따름으로써,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이어갈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관련된 네 번째 환상은 이전 환상들과는 사뭇 다른 형식을 띠며, 새로운 주제가 등장합니다. 1:1-6에서 돌이킴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제시했으며, 첫 세 환상은 회복에 초점을 둡니다. 반면에 1-7절에서 네 번째 환상은 여호수아의 위임식을 보여주며 죄악의 문제를 통해 돌이킴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8-10절에서는 죄악을 해결하는 온전한 회복을 다룹니다.
환상의 내용(1): 여호수아의 위임식(1-7)
그리스도인은 완전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악의 불구덩이를 피하게 된 존재입니다. 죄로 인한 상처를 치유받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따라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은 성도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범한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1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1-7)
네 번째 환상과 다섯 번째 환상(4:1-14)은 다른 환상에 비해 특이한 점들이 발견됩니다. 연속된 환상들 가운데 다른 특이한 요소들이 많은 것은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문들은 독특한 특성을 보이며, 환상의 내용에 있어서도 역사적 인물(여호수아, 스룹바벨)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른 환상과 다릅니다. 연속된 환상들은 전체 환상이 모여 궁극적인 흐름, 즉 주제의 흐름을 갖게 되는데(1:1-6 특히 1:3에 나오는 주제를 이후의 본문들에서 확대, 발전시킨다), 그중에서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환상은 연속적인 환상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주제 역할도 합니다. 스가랴서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여호와의 회복입니다(1:3). 조건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역동적으로 여호와는 회복을 약속하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요구합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방법, 곧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오는 방법은 역사적 인물인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종교와 정치 지도자로서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여호수아의 위임식 장면은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8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하는 위임식 내용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환상의 배경은 대체로 천상 회의로 간주됩니다. 여호수아는 스룹바벨과 함께 포로 후기 유다 공동체의 대표적인 지도자인데(학1:1,12,14; 2:2,4), 이 위임식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개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합니다. 3절에서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죄로 더럽혀진 것을 나타냅니다. 여호수아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로 회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더럽혀진 옷에서 깨끗한 옷으로 바뀔 필요가 있듯이 이스라엘도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사야 64:6에서 이스라엘의 의롭지 못한 상태를 더러운 옷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은, 에봇, 겉옷, 흉패, 우림과 둠밈, 관입니다(출 28:6-14;39:2-7). 에봇의 경우 금실, 청색, 자색, 홍색의 실,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속죄일에 일 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가는 베실이 아닌 단순한 베실(세마포)을 사용했으며, 이는 단순함을 강조합니다. 또 대제사장은 세마포 속옷, 세마포 속바지, 세마포 띠, 세마포 관을 입었습니다(레 16:4). 이는 단순하지만 ‘거룩한 옷’임을 강조합니다(레 6:4,32).
한편, ‘더러운 옷’이라는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은 ‘더러운 옷’이 의미하는 바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죄악’이라는 분명한 단어는 여호수아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악을 제거함으로써(4) ‘정결한 관’을 쓰게 됩니다(5). 이 ‘정결한 관’은 3절의 ‘더러운 옷’과 대조되어, 4절에서 표현하는 대로 죄악을 제거했음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환상을 통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공동체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러움에서 정결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결함은 거룩함의 개념과 더불어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곧 정결함은 거룩함과 더불어 여호와께 다가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입니다(레15:13; 16:30; 참조 사 66:20). 이는 단순히 의식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종교 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전반적 사회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정결과 거룩함의 개념은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성전과 관련된 의식적인(제의적)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중심의 언약 공동체로 회복하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상의 내용(2) : 온전한 회복(8-10)
자신이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자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쁨과 평화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음과 실제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8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8-10)
온전한 회복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거하려면 그들이 정결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더럽혀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떠나시며 그들을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추방한 것도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함께 더 이상 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로기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온 현재에도 그들이 깨끗하게 되며 거룩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 재건은 언약 백성과 신앙 공동체의 회복에 관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하시려면 죄악의 문제, 다시 말해 그들의 정결과 거룩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문제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8-10절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죄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현재적 관점과 미래적 관점에서 더욱 큰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8절의 ‘싹’은 6:12에서도 다시 언급되는데, 여기서 ‘내 종’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대한 역할을 할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킵니다. ‘종’ 개념은 이사야에서 처음 등장하며, 메시아적인 인물로 고난을 통해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존재로 소개됩니다(사 52:13; 53:4-11). 예레미야에서는 싹을 다윗과 연관된 왕으로 그립니다(23:5, ‘의로운 가지’ : 33:15, ‘공의로운 가지’).
스가라는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키는 데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인 ‘싹’이나 ‘종’의 개념을 차용합니다. 그리하여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한 사역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미래 계획 및 완성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재건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전 재건 자체보다는 성전 재건이 상징하는 의미, 곧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통한 미래적 완성에 주목하게 합니다. 네 번째 환상과 다섯 번째 환상(4:1-14)은 역사적 인물에 집중하면서도 ‘그 날에’(10)에 대한 언급을 통해 종말론적·미래적 관점을 제시하는데,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인 회복은 메시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9)는 표현이 이런 온전한 회복을 잘 보여줍니다.
9절의 ‘돌’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귀중한 돌, 즉 보석으로 보기도 하고 비슷하게 장식용 돌로 보기도 하며, 성전 재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너면서 취한 열두 돌을 표징으로 삼아 이스라엘이 기념하도록 한 것과 같이 돌은 증거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수 4:5-7). 여기서도 이 돌은 증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4:10에서 일곱을 ‘세상에 두루 돌아다니는 여호와의 눈’으로 설명하는데, 이를 고려할 때, 9절의 ‘일곱 눈’ 역시 여호와의 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곧 ‘일곱 눈’은 ‘내 종 싹’을 통한 미래적인 일, 곧 성전 회복을 통한 죄악 제거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며 그 증인이 다름 아닌 여호와시라는 것을 보증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눈이 직접 보며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환상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성전이 서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에게는 죄 용서의 은혜가 되겠지만, 이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모든 죄가 용서받는 그날이 되면 이스라엘은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가? 하나님과 잔치를 누릴 것입니다.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사망도 없는 메시아 잔치로 초대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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