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01-01)
깨어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라
스가랴 1장 1-6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죄악에서 돌이킬 것을 기다리셨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둔하고 어리석어 이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등한시할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동안 복 주시기 위해서 많은 권면과 훈련으로 인내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을 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선지자를 통하여 잘못을 촉구하고 회개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 스가랴 1:1-6은 스가랴서 전체의 서론적인 역할을 합니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주제를 먼저 제시한 후에 이 주제를 확대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전개합니다. 이스라엘 조상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현 세대를 향해 회개와 순종을 촉구합니다. 핵심 구절은 3절에 나오는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입니다.
시대적 배경(1)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로 가는 백성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경거를 무시한 채 욕심대로 행한 사람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은 악한 길을 떠나 돌아오기를 촉구하셨던 음성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선을 행한 자는 영생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1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1)
스가랴서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시기를 세 번 언급합니다(1:1; 1:7; 7:1). 이는 스가랴가 여호와에게서 받은 예언의 시기를 가리키는 동시에 스가랴서 전체의 흐름을 가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곧 장면이 바뀌거나 주제의 흐름이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는 표시어(marker)에 해당합니다. 시간에 대한 언급을 중심으로 1:1-6과 1:7-6:15과 7:1-8:23이 구분되고, 9장 이후부터는 시간에 대한 언급과는 다른 표시어가 나옵니다. 전혀 다른 표시어는 주제의 흐름이 더 크게 바뀐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회개와 회복(2-4)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통해 거울삼아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악을 떠나 하나님께로 오면, 하나님께서 돌아와 함께 거하겠다고 하십니다.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가면 주께서는 용서하시고 품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 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2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2-4)
스가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 재건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짐승과 새와 고기뿐 아니라 사람들도 그리하실 것입니다. 이 엄중한 심판은 유다 민족을 대표하는 예루살렘을 향해 집중적으로 선포됩니다.
(1) 조상들에 대한 심판(2)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이 표현이 스가랴를 통해 전달되는 첫 메시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전달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스가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포로 됨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가랴 당시(주전 520년경) 이스라엘이 주전 538년 1차로 바벨론에서 돌아오고 성전 건축을 시작했으나, 내외의 어려움으로 중단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또한 국제 정치와 경제적으로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이스라엘은 더더욱 포로 됨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남유다는 왜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됐는가?’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신앙 공동체를 회복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허락했겠는가?’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려 할 때, 왜 성전 재건에 대한 방해가 있었는가?’ ‘과연 성전을 재건하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능하셔서 그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어려움에 처했고, 돌아와서도 성전 재건과 더불어 공동체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조상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 약속과는 달리 성전과 신앙 공동체의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너희’에게 있습니다.
(2) 회개와 회복의 메시지(3)
‘너희의 조상들에게’는 과거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시점의 이스라엘에게도 이 말씀은 그대로 해당합니다. 선지자는 지금 과거 이스라엘 모습에 빗대어 현재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의 이 말씀(“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가랴와 ‘너희’(현재의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첫 메시지입니다. 이후 스가랴 선지자는 이 메시지를 확장 발전시킵니다. 3절의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에서 ‘그들’은 스가라 당시의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2절에서 ‘너희 조상들’을 이야기하고, 4절에서 다시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면서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단락의 주요한 초점은 현재의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또한 이 단락의 핵심 표현은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입니다(참조, 호 6:1; 암 4:6,8,9; 말 3:7). 이 표현은 스가랴서 전체의 주제를 통제하기도 합니다. 이후에 나오는 환상이나 ‘여호와의 날’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처럼 양상은 달라지지만, 이 핵심 주제는 스가랴서 전체를 통해 유지됩니다. 동일한 동사 ‘슈브’를 가지고 ‘돌아오다’와 ‘돌아가다’를 표현했지만, 이 동사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여호와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모두 전달합니다.
(3)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4a)
이전 세대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자신들의 악한 행위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물려받았지만, 그들은 결국 땅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6절에서는 이런 비극이 이스라엘이 범한 악한 행위로 인해 심판을 받았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악한 길’과 ‘악한 행위’는 병행을 이루며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를 지적합니다.
(4) 순종하지 않았던 조상들(4b)
그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듣지 아니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하는데(“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조상들의 불순종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현 세대 이스라엘 역시 조상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5-6)
기회는 영원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기회가 있을 때, 두려우신 하나님께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아직까지도 이방인의 가치관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5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5-6)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백성의 관계가 올바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착수해야할 고적인 과업은 성전 재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방해와 불리한 상황으로 인해 그 과업에 대한 열망은 식고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1) 조상들과 선지자들의 운명(5)
5절에서의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라는 표현은 6절의 ’내 말과 내 법도‘가 영원하며 끝까지 미치는 것과 대조됩니다. 이를 통해 조상들이나 심지어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들도 영원하지 않으며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2)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6)
6절에서는 조상들이나 선지자들은 일시적인 존재들이지만, 여호와의 말씀과 법도(율법)는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 행한 대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6절의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는 여호와 말씀대로, 곧 율법에 기록한 대로 조상들에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의미는 6b절에서 조상들이 스스로 하는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행하셨다는 표현에서도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심판하신 근거가 그들에게 임한 여호와의 법도와 말씀이었음을 알려줍니다(여기서 ‘우리’는 조상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내산 언약(레 26장)과 모압 언약(신 28장)에서 언약적인 저주와 축복을 선포하여 언약에 충실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이 언약에 따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점령과 정착보다 중요한 것은, 그 땅을 주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제사장 나라로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출 19:6). 현재의 이스라엘은 언약의 길을 떠난 조상들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시고 포로로 만드신 비극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 땅을 차지한 것이 끝이 아니듯이,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에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불순종하여 벌을 받은 조상들의 행적은 오늘을 향한 경고가 됩니다. 악한 선조들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께 돌이켜야 할 만큼 주께로부터 떠나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복을 예배하고 계십니다. 헛된 것에서 돌이켜 어서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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