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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01-02)


홍마 탄 사람과 내 뿔의 환상

스가랴 1장 7-21절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해 들어오시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도무지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결국 주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날이 옵니다. 그날에는 주님을 믿고 섬긴 자들에게는 복 있는 날이 되지만, 주님을 섬기기를 싫어하고 게으름을 피운 자들에게는 심판이나 재앙의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스가랴 1:7-6:8에서 여러 환상이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 7-17절에서는 첫째 환상이 나오고, 18-21절에서는 둘째 환상이 나옵니다. 첫째 환상에서는 ‘붉은 말을 탄 자’가 여러 색의 말들과 더불어 온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둘째 환상에서는 네 뿔과 네 대장장이의 모습을 통해 유다와 주변 나라들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환상:붉은 말을 탄 자(7-17)

어떤 사람들은 밤에 불이 들어오는 수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복음의 꽃이 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교회가 교회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수의 교회와 목회자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과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중성과 교회의 순결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7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6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7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7-17)

 

이스라엘은 성전 재건이 주변 방해로 중단되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지 의심하며 나태해졌습니다. 학개 선지자의 독려로 공사는 재개되었습니다. 스가랴가 회개하라는 첫 메시지를 전한지 석 달 째 하나님께서는 8개의 환상을 통해 종말적 구원을 생생한 그림 언어로 약속 보증하십니다.

 

(1) 시대적 배경(7)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스가랴서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시간에 대한 언급은 주제의 흐름이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알리는 표시어 역할을 합니다.

 

(2) 첫째 환상의 내용(8-11)

 

이 환상에서는 붉은 말을 타고 있는 ‘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여호와의 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 사람(또 다른 여호와의 사자)을 소개합니다. 또 이 사람의 행동을 말한 후에 다시 여호와의 사자와의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이 한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가 이 환상의 핵심 주제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습니다. ‘화석류나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흔한 관목으로 뿌리가 깊게 내리며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합니다. 이런 점에서 화석류나무는 생명의 재탄생(rebirth)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1:19-20과 55:13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맥락에서 이 나무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성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이기에, 환상에서 화석류나무를 보는 것은 새로운 시작과 관련한 메시지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8절에 ‘붉은 말을 탄 자’와 더불어 여러 색의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말들이 다시 6장의 환상에 등장합니다(비록 같은 색은 아니지만). 색이 상징하는 의미보다는 말들이 활기차게 온 땅을 두루 돌아다니는 모습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들이 두루 돌아다니는 것(10)은 여호와의 통치 영역이 온 세상에 두루미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호와의 주권이 온 세상에 미친다는 메시지는 스가랴서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스가랴서는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황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주권에 대해 회의하고 불신하였기 때문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고 나서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연달아 겪고 외부 세력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신념이 스가랴서의 주요 신학적 주제로 등장한 것입니다. 말들이 온 세상을 두루 다니듯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11절에서 ‘붉은 말을 탄 자’는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라고 합니다. 평안하고 조용한 모습은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들이 방해받지 않고 승승장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온 땅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상황과 대조적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와 정착하며 성전을 재건하고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려 했지만, 그리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는 여호와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편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 땅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화롭기만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에 대한 신학적 질문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왜 회복을 볼 수 없습니까?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 불의한 나라가 평안합니까?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대답하기 시작하십니다.

 

(3) 첫째 환상의 의미(12-17)

 

7-11절이 환상의 내용을 보여주었다면, 12-17절에서는 환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줍니다. 12절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에서 ‘언제까지’는 여호와의 긴 침묵을 한탄하는 표현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12절의 ‘칠십 년’은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 언약 파기에 대한 징벌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벨론 포로 기간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사 23:15-17; 렘 25:11; 29:10). 그러나 고레스 칙령이 있던 주전 538년 이후 1차 포로귀환이 있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호와의 회복은 요원합니다.

13절의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하신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14-15절은 환상이 보여주는 의미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붉은 말을 탄 자’가 여러 색의 말들과 함께 세상을 두루 다녀 관찰한 결과,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게’(11)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해 크게 질투하실 것입니다.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15) 여러 나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질투’는 결혼 관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며, 구약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묘사해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곤 했습니다(참조, 출 20:5; 겔 5:13;8:3;16:38).

16-17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질투하신 결과로 나타나게 될 구체적 양상을 묘사합니다. 학개와 스가랴 당시 주요 관심사였던 성전 건축과 관련한 메시지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집’은 여호와의 성전을 의미하지만 건물로서의 성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회복된 모습을 뜻합니다. 성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성막이 있습니다. 이 성막은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합니다(출 25:22; 29:44-45).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위에 먹줄을 치시겠다고 합니다(16). 여기 ‘먹줄’(측량줄)은 파괴와 건설, 혹은 회복 모두를 상징하는 말로 성경에 쓰이고 있습니다(파괴: 왕상 21:13; 사 34:11; 애 2:8/건설 : 왕상 7:23: 대하 4:2; 겔 47:3). 16절의 성전과 예루살렘(여호와의 거주 장소를 상징) 회복에 이어, 17절에서는 ‘내 성읍’, 곧 땅의 회복을 다시 확증하고 있습니다. 땅은 언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땅의 회복은 언약의 회복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신 28:11; 30:9).

 

둘째 환상:네 뿔과 네 대장장이(18-21)

성도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되는 것은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속적 사상, 출세 지향적 가치관, 성적 유혹과 도덕적 타락 등입니다. 물론 이보다 더 다양한 요인들이 신앙생활을 저해하고 성도를 성결한 생활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듭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당한 뿔을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기도, 말씀, 영적 훈련, 예배의 회복일 것입니다.

 

18○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19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20그 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21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18-21)

 

스가랴 1장 18절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네 개의 뿔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슥 1:18). 이 뿔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라고 했습니다. 헤쳤다는 것은 흩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개의 뿔은 정치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네 개의 정치적인 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온 세계로 헤쳐 놓았다는 것입니다.

 

(1) 네 뿔의 환상(18-19)

 

7-17절의 첫 환상에서 세상의 평온함은 겉모습만 그러할 뿐임이 드러났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예루살렘의 회복(1:16-17)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 세상의 참 평안이 찾아옵니다. 둘째 환상은 회복의 측면을 더욱 발전시켜 ‘뿔’로 상징되는 강력한 대적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둘째 환상은 아울러 하나님이 세운 ‘뿔’을 상대하는 ‘대장장이’를 통해,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할 것 보여줍니다. 짧은 단락이지만 각각 뿔과 대장장이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고, 그 환상의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킬 것에 대해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18절의 ‘뿔’은 뿔 있는 동물의 힘을 상징합니다. 비유적인 의미로 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신 33:17; 삼상 2:1-10; 왕하 22:11; 렘 48:25; 단 8:20-21;시 18:2; 75:10; 92:10).

 

(2) 네 대장장이의 환상(20-21)

 

숫자 넷은 구체적으로 네 나라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사방의 방향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방의 강대국들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무시무시한 대적을 가리킵니다(참조. 사 11:12; 렘 49:36; 겔 7:2; 37:9; 단 7:2). 여기서 ‘흩뜨렸다’는 것은 포로로 추방당했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앗수르가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으며, 바벨론은 주전 586년 남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 포로(추방) 개념은 언약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언약을 깨뜨린 결과(레 26장: 신 28장)로 임하는 언약의 저주 가운데 하나가 이 흩어짐입니다. 20절의 ‘대장장이’는 다양한 유형의 기술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가 보다는 ‘뿔’ 넷에 대응해 이들을 처리하는 그의 파괴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 54:16에서 무기를 만드는 자로 대장장이를 언급한 바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서는 항상 핍박받고 멸시당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하신다고 나와 있고, 스가랴 1장에서도 화석류나무 사이에 거하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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