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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02-02)


도망가는 모세, 기억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장 11-25절


 

우리가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를 목격할 때, 공의와 정의를 지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단순한 불만이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의와 공의에 대한 열망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한 준비 과정임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실지를 기대하며 행동합시다.

 

  • 모세의 오랜 성장기가 생략된 채 그는 이제 성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판단력을 지니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성장에 대한 표현에는 그가 이제 사람들을 지도할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통상적으로 애굽의 왕실 교육 기간은 약 12년으로 알려집니다. 이는 모세가 지도자로서의 덕목과 자질을 잘 훈련받은 인물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모세가 애굽인을 죽임(11-14)

우리 삶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과정임을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단련시키고, 그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고 계심을 믿고, 그분의 뜻을 찾으며 인내와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1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11-14)

 

전 본문에서는 모세에 부모와 누나 요게벳이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 아기 모세를 살리기 위한 노력 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모세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동포인 이스라엘 백성의 중노동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형제들’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모세의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인해줍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한 애굽인이 자신의 동포 한 명을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모세는 사방을 살핀 뒤, 그 애굽인을 때려죽인 다음 모래 속에 파묻었습니다. 모세의 행위는 민족적 정당방위처럼 읽힙니다. 애굽 사람이 동포를 ‘치는’ 것을 보고 모세가 그를 쳐서 죽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해석가는 모세는 처음에 학대받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지 살폈지만 아무도 없자 자신이 나섰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황은 모세가 그 사람을 처음부터 죽일 작정으로 사방을 살핀 다음 신속히 행동에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살인을 한 모세의 행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일어난 비참한 학대에 대해 누적된 모세의 분노가 최초로 터진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추정컨대, 모세는 오래도록 자신의 동포가 학대받는 현실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개인의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지배를 받는 민족의 정당한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모세가 자신이 동포 이스라엘 사람을 구타하며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여 이스라엘 사람을 구한 것은 그가 장차 하나님의 지팡이를 사용하여 애굽 백성을 열 번이나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것을 예고합니다.

모세는 애굽인의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었지만, 사실은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현장에 다시 나가보니 두 히브리인 형제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둘 중 명백히 먼저 잘못을 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두 히브리인 동포의 싸움을 말리면서 그 잘못한 사람을 꾸짖습니다. 동포의 싸움질을 말리는 행동 역시 모세가 자신의 동포 히브리인들의 삶에 늘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이때 그 히브리인은 오히려 모세에게 대들면서 범행 장면을 다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나아가 그는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모세를 공격합니다. 역설적으로 그의 말에는 장차 사실로 성취될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이 될 것입니다. 모세에게 따진 사람이 전날 구출을 받은 히브리인 형제라고 해석하지만, 이는 잘못입니다. 그는 제삼자인 목격자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일이 들통났다’라며 염려하기 때문입니다(14). 아끼던 이스라엘 동포로부터 가해진 모세를 향한 공격과 비난은 앞으로 그들이 지도자 모세에게 거듭 반항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일이 탄로 났음을 알게 된 모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무리 왕자의 신분이라고 해도 애굽 시민을 살해한 행위는 중벌에 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세는 히브리인 양자였기에 괘씸죄가 적용되어 사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피(15-17)

우리의 인생에서 불확실하고 어려운 시기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고,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신뢰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현재의 상황과 역할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믿어야 합니다. 현재의 위치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15-17)

 

결국, 모세의 범행 사실이 파라오의 귀에 들렸습니다. 틀림없이 모세를 비난한 그 이스라엘 사람이 왕궁에 고자질했을 것입니다. 모세에 대한 개인적 감정뿐 아니라 포상금이나 신분 상승과 같은 이익을 노리고 한 밀고였을 것입니다. 파라오는 모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누군가 이 사실을 모세에게 귀띔해준 것 같습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해 멀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은 통상적으로 시내 반도 너머의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으로 간주하는데, 유목민이었던 미디안 종족의 활동 범위는 시내 반도도 포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디안 땅에 숨어 지내던 모세는 어느 날 어떤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아마 목을 축이기 위해 우물을 찾았을 것입니다. 마침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이 양 떼를 몰고 물을 먹이러 왔습니다(16). 이때 주변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늦게 양 떼를 몰고 우물로 와서 미디안 제사장 딸들의 양 떼를 내쫓고 물을 가로챈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새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 18절에서 그녀들의 아버지가 “너희가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고 놀란 것에 비추어 볼 때, 그 못된 목자들의 새치기 행패는 늘 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나서 여인들을 도왔습니다. 숫자가 많은 목자를 물리적 몸싸움으로 저지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말로 따져서 그들의 횡포를 효과적으로 저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장면은 사실 미래에 대한 징조입니다. 물에서 구출되었던 모세는 장차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의 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합니다. 여성들을 구조하여 물을 얻게 했던 모세가 장차 물이 없어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기적적으로 물을 얻게 하여 그들을 구조합니다.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18-2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분의 계획에 협력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헌신합시다.

 

18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18-22)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은 양 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들의 아버지 이름이 ‘르우엘’로 나타납니다. 이 르우엘이 이어지는 3장에서는 ‘이드로’라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므로 혼란을 일으킵니다(3:1). 이 문제는 3장에서 다루기로 합니다. 르우엘은 그녀들이 ‘속히’ 돌아온 것을 보고 놀랍니다. 르우엘이 놀란 이유는 딸들이 다른 날과 달리 매우 일찍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못된 목자들의 횡포로 딸들이 항상 가장 늦게 양 떼에게 물을 먹였음을 시사합니다. 그 딸들은 아버지에게 ‘한 애굽 사람’이 목자들의 횡포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주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녀들은 모세를 애굽인으로 간주합니다. 틀림없이 그는 애굽 복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르우엘은 예의를 중시하는 정중하고 교양 있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딸들을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다시 딸들을 보내 집으로 초대합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다시 급하게 모세에게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가 우물을 떠나기 전에 초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모세는 그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결국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습니다(21). 흥미롭게도 우물가에서 여인과의 만남이 반복해서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리브가, 야곱, 모세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십보라의 결혼에서 십보라는 우물가 장면에서 전혀 주인공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십보라의 외모와 신상, 인물됨은 철저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과 기쁘게 ‘동거’하였고 미디안 집안의 사위가 되었지만(21), 첫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으로 부름으로써 히브리인 나그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이름은 이어지는 뜻풀이에서도 나타나듯이 분명 ‘나그네’ 혹은 ‘외국인 거류민’을 뜻하는 ‘게르’를 포함하여 ‘객’, ‘나그네’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하나님이 기억(23-25)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어려움에 무관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해결책을 찾읍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원하십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3-25)

 

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애굽 왕이 죽고 왕조의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자신들의 형편을 하나님께 울부짖어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무엇보다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셨습니다’(25). 여기서 백성과 하나님 편에서 사용되는 일련의 동사들이 크게 대조됩니다. 백성들은 ‘고된 노동’ 속에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그들의 형편을 ‘아셨습니다.’


모세의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개입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모세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도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준비시키시는 과정임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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