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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73-02)

 


고통받는 자를 위한 왕의 사랑

 

시편 72편 12-20절


세상 왕의 악한 통치를 경험해본 사람은 의롭고 사랑이 많은 왕을 모시는 행복을 알 것입니다. 우리의 왕은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에는 구원과 감사와 평화가 깃듭니다. 그 백성인 우리가 가는 곳에 드러나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통치할 때 왕과 백성은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왕은 긍휼과 정의의 재판장이 되어주며 백성은 그를 존중하고 위해서 기도합니다. 왕과 백성들의 이상적인 관계는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기타 모든 면에서 풍요로움을 가져옵니다. 왕의 이름이 장구하리라는 약속과 그를 통해 온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왕의 공의로운 통치(12-14)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긍휼히 여길 뿐 아니라 손을 내밀어 구해낸다는 뜻입니다. 또 약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의와 거짓과 악한 구조에 저항하여 그들의 생명도 나의 생명만큼 고귀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12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12-14)

 

왕의 영원하고 우주적인 통치를 기원한 시인은 다시 왕의 본연의 의무인 백성을 향한 공의로운 통치를 간구합니다. 12-14절에 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궁핍한 자, 도움을 못 받은 가난한 자, 압박과 강포를 당하는 자로서 2-4절에서 소개된 백성과 같은 상황에 있는 무리입니다. 실제 백성 중에는 선을 행하는 무리와 악을 행하는 무리가 있습니다(잠 29:13). 하나님의 관심은 그를 경외하는 진정한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악을 끼친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심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관심도 이런 자들을 신원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2-4절과 마찬가지로 왕은 공의의 재판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함으로써 하나님 백성의 권리를 찾아줍니다. 이런 일에 있어 왕은 그들에 대한 긍휼과 그들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채우고 이유 없이 당하는 힘없는 자들은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며 그들의 생명을 구원해줍니다.

이처럼 왕은 자신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인간 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이 돼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왕은 온 백성의 영적 지도자, 영적 대표가 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기에 앞서 그도 먼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신 사항은 한 가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제사장들의 나라와 거룩한 민족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출 19:5-6). 하나님께서 완전하고 거룩한 분이므로 그가 택한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바라셨습니다(레 19:2). 이 점은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17:14-20의 하나님이 규정하신 왕의 규례를 보면 왕이 해야 할 평생 의무는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필사하여 그의 평생 옆에 두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복을 누릴 수 있듯이,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공의와 긍휼을 자신의 삶과 백성의 삶에 실천할 때 진정한 왕이 될 것이며 그의 왕국이 지속될 것입니다(왕상 9:4-9).

 

왕의 우주적 통치(15-17)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고, 그의 은혜를 입은 열방의 백성들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축복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백성은 그에게 복을 빌어주고, 그를 통해 백성이 복을 받는 이 아름다운 관계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뤄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15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6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17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15-19)

 

왕의 긍휼과 공의로운 다스림을 경험할 때 백성들은 그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하나님의 진정한 왕임을 알게 되므로 이에 마땅한 존경과 감사로 화답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왕에게 예물을 바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송축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온 세상을 지배하는 왕에게 다시스, 스바, 시바와 같은 먼 곳 왕들과 민족들이 진귀한 예물을 바치는 것은 그들이 왕에게 굴복하고 복종한다는 표현이며 강제성도 있지만(8-11), 자국 내에서 백성이 왕에게 진귀한 보배를 바치는 것은 그의 공의로운 통치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과 감사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그 왕을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종일 그를 축복하는 말을 쉬지 않습니다(“찬송하리로다”로 번역됨). 이와 같은 공의로운 인간 왕과 백성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와도 유사하여,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정의와 긍휼을 베풀고 백성은 자원하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으로 화답합니다.

시인은 왕과 백성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늘어가는 것만 아니라 산과 들에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고 백성의 수가 늘어남으로써 경제, 사회 등 다방면으로 풍요와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이때 곡식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린다는(16) 표현은 들의 열매가 얼마나 풍성한지 레바논의 자랑인 백향목(사 6:13)을 비롯한 수목들이 흔들려 풍성한 소리를 내듯 한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이 땅의 풀처럼 번성한다는 것은 그의 백성을 별처럼, 모래처럼 늘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상기시킵니다(창 22:17).

나라의 번영에 덧붙여 시인은 왕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것을 고대하며 간구합니다. 시인은 왕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시에서 ‘해’나 ‘달’(17,5,7)은 자연 세계에서 변함없이 항상 존재하는 피조물로서 영속성, 지속성, 확실성을 내포합니다. 왕의 이름의 장구함은 두 가지 함축성이 있는데, 첫째로 하나님의 축복이 이 왕과 후손에게 임함을 나타냅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성품, 능력, 가능성 등을 함축하고 있어 그 사람을 대표하는 힘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영원한 이름’으로 소개하시며 자기의 성품과 능력이 변함없음을 선언하셨고(출 3:15)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높이고 찬양함으로 응대했습니다(삼하 7:26: 시 135:13). 사람의 경우는 이름의창대함을 약속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창 12:3; 삼하 7:9), 특히 아브라함에게는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3). 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후손 다윗은 영원한 왕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왕으로 알려졌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구속하심으로써 영원한 구세주와 만민의 축복이 되셨습니다. 둘째, 왕의 이름의 장구함은 그의 나라가 영원무궁할 것이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본 시와 시편에서 언급하는 영원한 나라는 다윗 왕국으로 시작하여 종말의 메시아 왕국에서 완성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시며 그와 그 후손에게 하늘의 날과 같이 영원하고 견고한 왕국, 세계에서 으뜸가는 왕국을 맹세하셨습니다(삼하 7:13,16;23:5; 시 89:3-4,28-29).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 왕은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영원한 왕국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후손의 왕국을 버리지 않겠다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표현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우주의 왕으로 다시 보내셔서 만국을 통치하실 때 비로소 영원한 다윗 왕국이 완성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에 다윗의 왕국은 역대기 저자가 부르듯 ‘여호와의 왕국’으로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대상 28:5; 대하 13:8;28:5;29:23: 벧후 1:11).

 

송영: 하나님의 통치 찬양(18-19)

찬양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며,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한 일을 과시하려는 마음이나 내 이름을 드러내려는 이들에겐 찬양은 공허한 울림일 뿐입니다. 하나님만 홀로 드러내는 순전한 찬양으로 영광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18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18-19)

 

18-19절의 하나님 송영의 내용은 원래 이 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시편 제2권의 끝을 표시하는 편집적 기능으로 이해됩니다. 시편 제1-4권까지 각 권 맨 마지막 시편의 마지막 절에 이와 유사한 하나님 송영이 나와 각 권의 마지막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시 41:13;72:18-19;89:52; 106:48). 제5권의 경우는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나는 146-150편까지가 하나님 송영으로서 시편 전체의 끝을 장식합니다.

송영의 내용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송하다”(18,19)로 번역된 단어는 ‘축복하다’의 수동형으로서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보통 ‘송축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홀로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란 칭호는 하나님만이 세상에서 참된 신이며 능력의 신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되어주신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므로 그의 이름과 영광도 영원하며 온 땅에 가득 찰 것입니다. 이름과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나오는 “아멘 아멘”은 백성의 찬송이며 화답입니다.

맨 마지막 문장인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19c)는 72편 이후로 다윗의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편의 수집과 편집 과정의 증거로 초기에 수집된 다윗 시선집의 끝을 알리는 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홀로 놀라우신 일을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자비로운 사랑의 통치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영광을 온 땅에 가득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져 그분 이름이 높임 받으실 수 있도록 힘써 주님과 함께 일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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