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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71-01)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신뢰한 하나님

시편 71편 1-16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도 인생에서 수많은 굴곳을 경험합니다. 똑같이 환난이 닥쳐왔을 때 어떤 성도는 주저앉아 버리거나 낙심합니다. 반면에 어떤 성도는 묵묵히 견디며 의연하게 이겨 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어려운 문제나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어떻게 해야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잘 이겨 낼 수 있을까요?

 

  • 하나님께서는 시인이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이 들어 늙을 때까지 늘 든든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현재 원수들이 그를 해하려 할 때에도 시인은 하나님만 신뢰하며 그의 구원만을 간절히 구합니다. 이때 그가 잘못했는데 구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고하게 고통 받고 있으므로 공의의 하나님이 상황을 살피시고 그의 공의를 따라 신속히 그를 구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구원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신뢰의 고백과 구원의 요청(1-4)

우리 인생에서 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안전과 승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들리고 넘어지고 쇠하고 사라집니다. 이 세상은 다 그렇습니다. 존재 의원이신 주님만이 영원하십니다. 그분을 의지하는 것만이 그 영원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1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1-4)

본 시편은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 고백과 구원 요청으로 가득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함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께”라고 첫마디를 외치며 “내가 피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자신이 피난처 삼는 분이 오직 하나님임을 강조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여호와여”라고 부르는 데는 하나님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시인의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음과 하나님께서 시인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분임이 암시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 자체에서 시인이 현재 고난에 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잇따라 나오는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마소서”(1)라는 간구가 이 점을 뒷받침합니다. 그가 당하는 수치는 그를 죽이려는 자들의 간계와 비방 때문이며, 이에 대해서 4, 7, 10-11, 13, 24절에 대부분 간접적으로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신뢰를 바탕으로 구원을 간구하는 시인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구원과 관련하여 시인은 “나를 건지소서”, “나를 풀어주소서”, “당신의 귀를 내게 기울이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항상 가서 숨을 바위가 되어주소서”, “나를 구원하라고 명하소서”, “악인의 손에서 풀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건지소서”, “풀어주소서”, “구원하소서”는 모두 ‘구원하다’로 번역할 수 있는 동사지만, 각 동사가 가진 의미를 풀어보면 ‘위험에서 잡아채어 건지소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소서’, ‘나를 도와 승리하게 하소서’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간구는 하나님만이 시인을 건져줄 수 있으며 그럴 능력이 있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때 시인은 특별히 하나님의 공의로 자기를 구해주시길 요청합니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을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장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시인이 하나님의 공의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현재 고난이 자기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상황을 공정하게 살펴보시고 자기를 원수들에게서 구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시인의 이런 기대는 ‘혹시나’ 하는 의구심 섞인 기대가 아니라 “당신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하셨나이다”(3)라는 선포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일어날 구원을 확신하는 기대입니다. 시인의 간구와 기대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뢰와 관련된 단어와 표현은 1절의 “주께 내가 피하나이다”와 더불어 “내가 항상 가서 숨을 바위”, “나의 반석”, “나의 요새”로 나왔습니다. 모두 하나님 안에서 생명의 안전을 얻고 위험으로부터 숨어 보호받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잇달아 나오는 “나의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나의 반석”, “나의 요새”라는 표현에는 시인과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도 드러납니다.

시인은 무엇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하나님께 보호받으려 합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악인의 손, 즉 악인의 세력이었습니다. 시인은 악인을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로 정의하였습니다. 4절에서 악인은 단수로 나왔지만 10절과 13절을 보면 한 명이 아니고 악인의 무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시인이 추구하는 가치인 ‘공’와 정반대 속성인 ‘악’과 ‘불의’와 ‘홍악함’을 지니고 이를 휘두르는 자들입니다.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찬양(5-8)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여기고 따돌리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노년에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온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강한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5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7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5-8)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한 시인은 이제 그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늘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찬양하고 있음을 진술합니다. “진실로 당신은 나의 소망이시라”라며 고백을 시작한 시인은 그가 어릴 때부터 특히, 그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이 신뢰하는 분이었다고 밝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태에서부터 자기를 붙들어주셨고 탯줄을 끊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이시며 태어날 때부터 그를 돌봐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찬양은 늘 하나님께 향합니다.

시인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관심사였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와 구설수에 오르는 놀라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징조”란 출애굽에서 일어난 기적과 표적(출 4:21; 4:34), 선지자들이 전하는 저주나 심판의 전조(왕상 13:3), 병 치료와 같은 이적(대하 32:24) 등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기이한 일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단어로서, 이런 표적들은 이를 목격하거나 들은 사람들에게 큰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본 시편의 시인에게는 어떤 징조가 일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가 원수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11)는 원수들의 말을 고려했을 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여전히 견고한 피난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고난에 처하여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믿음은 이렇듯 한결같습니다. 시인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자기를 돌보신 점을 언급하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감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점들을 눈여겨보시고 어려움에서 구하시기를 바람에서입니다.

 

시인의 간구(9-13)

자신을 하나님께서 버리실까 봐 이렇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다윗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 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나 노인이 되었을 때나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소망이시라는 다윗의 고백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9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10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3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9-13)

 

시인이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버리지 않았듯이 하나님도 시인이 늙어가고 육체가 쇠약해지는 때에도 계속 그의 피난처가 되시기를 시인은 소원합니다. “나를 내던져버리지 마소서”,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는 간구는 출생 때부터 시인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이시니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살펴달라는 요청입니다. 시인은 육체적으로 약해졌고 정신적으로도 고통 받아 힘겹습니다. 특히 그의 원수들이 그를 향하여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고 하고 “그를 뒤쫓아서 잡으라! 그를 건질 자가 없다니까!”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원수들은 서로 작당하여 시인의 목숨을 노리며 앙심을 품고 그에게 재앙이 언제 닥치나 하고 탐색하는 자들입니다. 시인이 원수들의 이런 비열한 행동과 모욕적인 거짓말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런 원수들의 악행을 그의 간구에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수치와 욕이 오히려 그들에게 임하고 그들이 멸망 당하길 간구합니다(1,13).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모르는 체하지 마시고 서둘러 도우시길 간구합니다(12). 하나님께서 신속히 그를 고난에서 잡아채지 않으시면 원수들의 비방과 거짓 소문은 사실을 진술한 셈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수치를 주시고 의인의 수치를 거두시며, 악인을 멸망에 내버려 두시고 의인을 멸망에서 건지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하나님 찬양과 선포(14-16)

버려진다는 것은 끔찍한 경험입니다. 누군가에게 버려졌을때 설상가상으로 큰 어려움들이 많이 닥쳐오기 때문에 충격은 몇 배로 더 커집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나이가 많아 쇠약해진 때에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면 자존감이 추락하고 더 큰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14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14-16)

 

시인은 “그러나 나는”이라고 외치며 원수들은 죄 없는 시인에게 앙심을 품고 모해하지만, 자신은 항상 하나님을 기다리며 계속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셀 수 없이 많은 공의와 구원을 하루 종일 전하겠다고 다짐하며 선포합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시인이 겪고 있는 고난에서 시인을 구원하시면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의 사건이 하나 더 늘어날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오로지 하나님의 힘과 공의로 성취될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간섭을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알릴 것입니다. 이는 아직 하나님께서 시인을 건지시지 않았지만 3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건지실 것을 확신하고 이를 선포함(15-16)으로써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재확증하고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의 응답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심연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끌어 올리십니다. 우리를 해하려는 자들을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십니다. 포기하지 말고 그 하나님께 계속 간구하면 어느새 우리의 부르짖음이 찬양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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