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37-01)
시드기야의 선택: 순종과 불순종의 갈림길
예레미야 37장 1-10절
종종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도 부탁해 온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웃으면서 기도의 제목을 받습니다. 기도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는 합니다만, 마음은 영 꺼림직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 기도의 제목이 응답될 없을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합당한 방법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 본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기도해 달라고 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도입부(1-2)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의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1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1-2)
본문에서는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그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남유다의 멸망의 날이 더 다가왔습니다. 역대적으로 기록해 나간다면, 예레미야 37-38장은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예레미야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39장은 멸망의 날을 보고합니다. 시드기야 왕의 마지막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37-39장이 연대기적으로 약 17-18전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므로 37장은 34장 뒤에 나온 것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이 시기에 있던 사건은 바벨론 부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여호와께 계약을 맺고 종들을 자유롭게 놓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이 애굽 군대가 개입한 결과로, 잠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의 포위를 풀자, 예루살렘 사람들이 해방시켰던 종들을 다시 잡아서 종으로 부렸습니다(34장). 여호와께서 이러한 불순종을 보시고, 다시 바벨론 군대를 오도록 하셔서 성을 빼앗아 불사르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37장). 이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것이 예레미야 37장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저자의 의도는 시간적 차이를 무시하고 36장을 시대적 배경으로 37-39장을 읽도록 한 것입니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불에 태워버리는 여호야김 왕의 오만에 대해서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37-39장에 수집된 이야기들은 여호야김에 의해 확정된 심판의 구체적 집행 과정입니다.
⑴ 느부갓네살의 봉신 시드기야(1)
본 1-2절은 예레미야 37:1-10절을 넘어 예루살렘의 함락과 시드기야의 체포를 보고하는 39장까지의 도입부 역항을 담당합니다. 먼저 시드기야 왕권의 출발에 관한 기술합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의 뒤로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이었는데,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 땅의 왕으로 앉혀졌습니다(1).
바벨론 연대기에 의하면 주전 598년 겨울 서쪽으로 원정을 떠난 느부갓네살은 597년 3월에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그는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을 포로로 잡아가고 삼촌 맛다니야를 보좌에 앉히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꿉니다(열왕기하 24:17). 시드기야의 왕권은 처음부터 종속적이었습니다. 시드기야의 배반은 봉신조약의 파기이며 그를 유다의 왕으로 임명한 느부갓네살의 개인적 권위에도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배반을 철저하게 보복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공은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의 불순종을 징계하는 신학적 사건이었습니다.
⑵ 예레미야의 선포를 듣지 않는 자들(2)
시드기야와 신하들과 땅의 백성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 총체적 불순종입니다. 왕을 포함한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백성도 예레미야의 선포를 무시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신탁을 구하는 시드기야(3-5)
종종 환경에 따라 기분이 좌우될 때가 있습니다. 잠시 환경이 희망적일 때는 좋았다가, 희망이 없어볼 때는 힘들어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환경을 지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환경에 지배받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3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3-5)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루살렘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군대를 일시로 예루살렘에서 철수시킵니다.
⑴ 사절을 보내는 시드기야(3)
21:1에서처럼 시드기야 왕은 두 사람을 예레미야에게 사절로 보내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3). 중보 기도는 예언자의 역할에 속하기에 시드기야의 기도 요청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참조, 이사야 37:4; 7). 21장에서는 과거의 구속사에 소망을 두었다면(‘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신다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여기서는 유다 백성과 여호와의 개인적 관계에 의지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도(2)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극단적 위기에 처해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여호와를 찾습니다(참조, 2:27). 여호와를 일방적으로 유다 백성의 구원자로 이해합니다. 사절로 파견된 여후갈과 스바냐는 아마도 각각 예루살렘 정치와 종교를 대표해서 선발된 것 같습니다.
⑵ 예레미야의 개인적 상황(4)
셀레마의 아들 여후갈이 38:1에 나오는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동일 인물이라면, 여후갈은 예레미야에게 매우 적대적인 인물이고, 성전 관리의 책임을 맡은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는 우호적인 인물입니다(참조 29:24-32).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사절을 파견해 중보 기도를 부탁한 때에 관한 정보가 뒤늦게 나옵니다. 특이하게도 이중적으로 시점이 제시됩니다. 먼저 예레미야의 개인적 형편과 관련해 언급됩니다. ‘그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 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 었더라’(4). 예언자의 구금은 선포의 중단 또는 끝이기에, 예레미야의 예언자적 활동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뒤따르는 11-16절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 진영으로 옮겨 가려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됩니다.
⑶ 예루살렘의 정치적 형편(5)
다음으로는 예루살렘의 정치적 형편과 관련해 언급됩니다. 애굽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물러났을 때였습니다(34:21; 참조. 열왕기하 19:7; 이사야 37:7).
애굽의 개입은 시드기야가 애굽을 섬기기 위해 바벨론에 등을 돌렸음을 시사해줍니다. 주전 589-570년에 애굽을 통치한 바로 호브라(참조 44:30)는 포위된 예루살렘을 구출하기 위해 588년 초여름에 군대를 동원해 원정을 떠납니다. 애굽 군대를 막기 위해 느부갓네살은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풉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애굽 원정군은 바벨론 군대에게 격퇴되고 예루살렘은 고립무원이 됩니다. 시드기야는 아마도 애굽의 출정에서 소망을 보고 사절을 예레미야에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응답(6-10)
제도나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에 신앙이 더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마음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고,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해 헌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도나 환경을 바뀐 문제는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6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6-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다가 요청한 애굽의 군대는 돌아갈 것이며,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다시 공격하여 점령하고 불태울 것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받습니다. 심지어 부상당한 바벨론 군인들도 예루살렘을 불태울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집니다.
⑴ 말씀의 계시(6)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가 애굽의 군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애굽의 군대는 돌아갈 것이고 유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바벨론의 침략을 피하려는 인간적인 방법이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주변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⑵ 돌아올 바벨론 군대(7-8)
문맥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3)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으로 부르고,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시고,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부르십니다.
시드기야가 다스리는, 정치적 단위에 속하는 유다의 하나님이 아니라 신학적 의미로 각인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거리감은 ‘내게 구하게 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는데, 여호와께서는 이를 신탁을 구한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2절과 함께 보면 중보를 요청한 시드기야의 불순종 때문이고, 예레미야서의 문맥에서는 심판이 최종적으로 확정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참조 7:16; 11:14; 14:74). 시드기야가 피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답변으로 주어집니다.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로리라’(7-8절), 바벨론 군대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굽 군대가 돌아갑니다. 포위를 풀고 떠났던 바벨론 군대가 반드시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불태워 버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내리기로 하신 심판은 어떤 경우에도 취소되지 않습니다.
⑶ 피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멸망(9-10)
9절은 애굽 군대의 출정과 바벨론 군대의 철군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해방의 기대감을 심어주었음을 보여줍니다(참조. 34:11). 예루살렘을 둘러싼 국제정치적·군사적 상황의 급변은 구원 예언자들의 선포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바벨론의 굴레로부터의 임박한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일시적인 호전에 들떠 상황을 오도하지 말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길은 전혀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바벨론 군대에게 피해를 준다 해도 예루살렘은 반드시 점령당합니다. 바벨론 군대가 패하여 부상자들만 남는다 할지라도 이들이 진영에서 일어나 예루살렘 성을 잿더미로 만들 것입니다(10). 예레미야의 선포는 사람들의 막연히 들뜬 기대감과 소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체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악한 마귀와 싸워 나가는 승리할 수 있는 무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나가는 것입니다(엡 6:10-18). 말씀으로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순종하며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시는 데 스스로 속여 말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죄에서 떠나게 하시려고 책망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심판하실 하나님을 무시하진 않습니까?
바벨론 군데는 다시 돌아오고 애굽 군대는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말씀에는 귀를 막으면서 세속적인 안녕을 구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자기기만입니다. 예루살렘이 불타는 날 진실하지 못한 기도는 후회를 낳지만, 진실한 선포의 사역은 위로와 구원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심판자가 되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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