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33-02)
다윗과의 언약을 잊지 않는 하나님
예레미야 33장 14-26절
너무나 믿었던 사람에게 속았거나 실망을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연약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속이거나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대를 초월하여 신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는 전혀 불가능하고 예측불허의 시대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와 더불어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갈 것이지만, 반드시 돌아오게 하며 회복시켜 주실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은 귀환과 회복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성취해 나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새로운 일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고 존재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계열의 왕권과 영원한 제사장(14-18)
하나님의 약속은 수백 년이 흐를지라도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메시아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시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1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16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17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4-18)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지, 또 미리 조상들에게 약속한 것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스라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조목조목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단락은 심판 이후의 구원 시대를 이끌어갈 왕권과 제사장직에 관한 두 개의 말씀으로 구성됩니다. 15-16절은 각각 다윗의 후손에 의한 공의로운 통치와 유다와 예루살렘의 구원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로 시작하는 17-18절은 각각 다윗 왕권과 레위 제사장직의 영속성을 약속합니다.
(1) 다윗을 위한 ‘한 공의로운 가지’(14-16)
도입부에 해당하는 14절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구원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구원 약속의 대상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유다에 백삼사십 년 앞서 앗수르에 멸망 당한 북왕국 이스라엘도 미래의 구원에 유다와 함께 참여합니다(참조, 31:27,31). ‘일러 준 선한 말’의 성취는 구원 약속이 이미 주어졌음을 전제합니다. 아마도 29:10의 약속을 되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15-16절은 23:5-6의 약속을 일부 변경하여 인용합니다. 구원의 때를 이중적으로 표현한 ‘그 날 그 때에’는 시점이 아직 특정되지는 않지만, 반드시 올 것을 강조합니다. 먼저 다윗 왕조의 회복에 관한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한 공의로운 가지’(공의의 싹/가지)를 돋아나게 해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이루게 하십니다(15). ‘가지’(싹)는 다윗 왕조가 멸망했음을 시사해줍니다. 줄기가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듯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멸망 당한 다윗 왕조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새로운 통치자가 태어나게 하십니다. 왕정 시대 예루살렘의 왕들에 의해 무시됐던 정의와 공의가 구원 시대의 통치자에 의해 회복됩니다. 다시금 ‘그날에’로 시작하는 두 번째 약속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상으로 합니다(16). 23:6과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집니다. 유다의 구원만 일치하고 나머지는 차이를 보입니다. 안전하게 사는 주체가 후자에서는 ‘이스라엘’이고, 여기서는 ‘예루살렘’입니다. 또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이 후자에서는 구원 시대의 통치자에게(‘그의 이름은’), 여기서는 예루살렘에게(‘이 성은’) 주어집니다. 여호와의 약속이 성취되는 날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신실하시고도 의로운 역사를 경험합니다. 여호와의 의가 의로운 왕의 정의와 공의를 통해 예루살렘에 구현되고, 주민들도 여호와의 의에 참여해 정의와 공의를 행합니다. 심판이 예루살렘에 집중된 것처럼(4-5) 구원 또한 예루살렘의 회복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9).
(2) 끊이지 않을 다윗과 레위 자손(17-18)
17-18절은 앞 두 절의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합니다. 먼저 17절은 15절의 약속을 시간적으로 확장합니다. 후자가 메시아적 통치자를 내다보고 그의 성품에 관심을 둔다면, 전자는 왕권의 단절을 직시하고 그 지속성에 관심을 둡니다(참조. 신 18:15).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보좌’는 조건이 없는 일방적인 약속인데(참조. 삼하 7:12-16), 다윗은 이를 조건적 약속으로 바꿔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로 행하도록 권면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참조. 왕상8:25; 9:5-7)에 의해 조건적 약속으로 바뀐 나단의 신탁이 여호와에 의해 다시 원래의 무조건적 성격을 되찾습니다. 18절의 레위인 제사장직에 관한 언급은 뜻밖입니다. 30:1-33:13에서 제사장직의 회복은 지엽적이고도 간접적으로만 언급되고(참조. 31:6,14; 33:11), 어디에서도 주제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윗에게서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레위인 제사장들에게서도 번제를 드리고 소제를 사르고 희생제사를 드릴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6절은 예루살렘의 구원을 배경으로 주어진 약속 같습니다. 왕권(왕궁)과 제사장직(성전)은 예루살렘의 두 중심축이었는데, 이 점은 미래의 구원 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두 제도의 부패와 타락이 심판을 초래했지만, 그렇다고 폐지되지는 않습니다. 이 두 제도에 부여된 구원 매체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이하게도 제사장직이 아론이나 사독과 같은 특정 집안에 독점되지 않고 폭넓게 열두 지파의 하나인 레위인들에게 주어집니다(참조. 신 17:9,18;18:1-8). ‘내 앞에서’는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들만의 남다른 특권과 번제와 소제와 희생 제사를 여호와께 드려야 하는 이들의 (위험한) 책임을 보여줍니다.
다윗과 레위인들에게 주실 축복(19-22)
예배의 회복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것을 열심히 하더라도 예배에 중심을 지키지 못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빠뜨린 것입니다.
19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0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찐대 21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19-22)
본 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의 언약처럼 다윗의 자손에게 왕좌를, 레위 자손에게 제사장직을 영원히 주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와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들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 깨지지 않는 다윗과 레위의 언약(19-21)
20-21절은 자연 질서와의 비교를 통해 17-18절의 약속을 한 번 더 심화합니다. 10절의 경우처럼 20절의 청자가 갑자기 ‘너희’로 등장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들어야 할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말씀임을 시사해줍니다. 낮과 밤의 주기적 교체(참조. 창 1:3)는 창조 이래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과 레위인 제사장과 세운 언약도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이기에, 다윗 집안과 레위인 제사장들에 의해 깨어지지 않습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깨뜨리신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옛 언약과 다릅니다(참조. 11:10; 31:32). ‘나의 언약’이 ‘낮’ 또는 ‘밤’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합니다. 창세기 8:22을 노아의 언약(창 9:9-11)에 연결해 읽은 것 같습니다. ‘내 종’과 ‘나를 섬기는’(문자적으로, ‘내 시종들’)은 여호와와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17절의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에 비교해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은 다윗 왕권의 혈통적 연속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다윗과의 언약은 나단을 통해 주어진 영원한 왕권에 관한 무조건적인 약속을 가리키고(삼하 7:16; 23:5; 사 55:3; 시 89:3-4), 레위인 제사장들과의 언약(참조. 말 2:4-5)은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민 25:12-13)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2) 다윗의 후손과 레위인의 번성(22)
놀랍게도 22절은 아브라함에게 준 후손의 번성에 관한 약속(참조. 창 22:17)의 비유적 표현을 다윗의 후손과 레위인들에게 적용합니다. 다윗의 후손과 레위인들이 번성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집니다.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여호와의 특별한 간섭이 다윗의 씨와 레위인들을 셀 수 없이 많게 하실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의 후손들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언급됐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유효한 야곱과 다윗의 선택(23-26)
아무도 믿지 못할 크고 기이한 일이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긍휼히 여기시니 무참히 무너진 민족과 나라라도 결국 돌아와 한 나라를 세우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는 주의 긍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그 나라와 회복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23○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23-26)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레위의 자손과의 언약을 확고히 하여 그들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할 것을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회복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나타냅니다.
(1) 버림받은 두 가문(23-24)
여기서는 이스라엘과 다윗 왕조 선택의 유효성이 주제로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선택을 무효화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주는 답변입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이 백성’의 불만을 인용하시고, 그러한 불만이 ‘그들’에게 주는 부정적 결과를 지적하십니다(24). 여호와의 선택에 근거한 그분과 이스라엘의 남다른 관계가 끝났다는 ‘이 백성’의 불평으로 ‘내 백성’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멸시를 당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을 자랑하던 자들이 민족으로 살아남지도 못하게 됐다고 조롱합니다.
(2) 취소될 수 없는 선택(25-26)
이 백성의 비난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다윗 왕조의 선택은 낮과 밤의 창조 질서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유효하다고 주장하십니다(25-26; 참조. 31:35-37). 주전 587년 바벨론에게 유다가 멸망당하지만, 그것이 선택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선택은 땅의 정치적 사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선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이들의 운명을 되돌리시고 자비를 베푸실 때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백성’은 유다 백성으로, 예레미야서에서는 자주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 심판의 대상이 된 백성을 가리킵니다(참조. 5:13; 6:19, 21 등등), ‘두 가계’는 20-22절에 나오는 ‘다윗 집안과 레위 지파’보다는 한 민족을 구성하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 뿌리에서 나온 민족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변치 않는 약속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지키시고, 그의 자손을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레위 자손에게는 끊임없는 제사장직을 보장하셨습니다. 이 모든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해 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분의 언약을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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