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29-02)
불순종한 자들에 대한 경고
예레미야 29장 15-32절
누구나가 나를 보고 있을 때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의 행동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남은 백성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셔서 상해서 먹을 수 없는 몸쓸 무화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거짓을 예언한 아합과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유배지의 예언자들(15)
마지막 때가 될수록 기만과 거짓 평안의 메시지가 횡행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호응을 얻는 것은 거짓 예언일지라도 구미와 갈망에 들어맞아서입니다. 그러나 거짓 메시지는 잎만 무성한 나무를 키울 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거짓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5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15)
예레미야 29장 전반부에서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 대해 예레미야가 쓴 편지 내용입니다. 하나냐 같은 사람은 베벨론 포로에서 2년이 돌아온다고 주장했지만, 예레미야는 70년의 포로 생활을 예언했습니다. 본문은 그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예언자들에 관한 ‘너희’의 말을 인용하는 15절은 문맥에 이질적입니다. 현재의 위치에서는 아마도 바벨론 유배민에게 편지를 보낸 예언자 예레미야와 유배민들 가운데 활동하는 예언자들을 대비시키기 위해 유배민들과 관련한 말씀 마지막에 놓인 것 같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라고 말하지만, 이는 ‘너희’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너희’ 가운데 활동하는 예언자들은 여호와께서 보낸 자들이 아닙니다(8-9). ‘너희’에게 편지를 보낸 예레미야만이 참된 예언자로, ‘너희’는 편지의 메시지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4)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16-20)
평안한 삶이 늘 축복의 증거는 아닙니다. 평안하기 때문에 방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편안할수록 자성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할 때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16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1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16-20)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들은 칼, 기근, 전염병으로 큰 고통을 겪고 여러 나라에 흩어질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한 결과입니다.
(1) 유배당하지 않는 자들(16)
첫 번째 유배를 모면하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의 운명에 관한 말씀이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주어집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참조, 22:2)은 현재의 문맥에서는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를 가리킵니다. ‘너희 형제’는 남은 자들과 잡혀간 자들이 한 가족에 속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아마도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 형제의 의무를 저버렸음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참조. 겔 11:15).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보다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나은 바가 있어서 유배를 면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완전한 멸망을 위해 남겨졌을 뿐입니다. 바벨론 유배민을 기다리는 것은 구원과 평안과 소망의 미래이고(10-14),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큰 재앙입니다(참조. 28:14).
(2) 심판 선언(17-18)
여호와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 이들을 세상 나라들 가운데로 쫓아내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으로 만드실 것입니다(17-18).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에게 멸망의 심판을 선포하는 17-18절은 전체적으로 24:8-10의 반복입니다.
(3) 심판의 근거(19)
이들이 이처럼 비참한 운명에 넘겨지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9).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꾸준히 이들에게 보내셨지만, 이들은 예언자들의 선포에 귀 기울이기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25:4). 20절은 시선을 다시 바벨론 유배민에게로 돌려 이들에게 말씀에 순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바벨론의 거짓 예언자들(21-23)
거짓 선지자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희망과 축복이라는 마약으로 유혹합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낸다고 얻을 수 있는 미래는 아닙니다. 제멋대로 발행한 희망의 백지수표는 출저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백지화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말씀하신 만큼, 그가 보여주신 만큼만 믿고 따르면 됩니다.
21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2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3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1-23)
본문은 하나님에서는 바벨론의 거짓 예언자 아합과 시드기야가 악행과 거짓 예언으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죽이고 시체를 불태울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1) 심판 선언(21-22)
이 단락은 ‘너희’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으키신 예언자들로 인정하는 자들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유배지에서도 많은 예언자가 등장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했지만, 이들은 거짓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유배민들에게 거짓을 예언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2) 심판의 근거(23)
이들은 거짓을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21a) 이웃의 여자와 간음하는 망측한 짓을 저지르기까지 했습니다(23a; 참조. 23:14). 여호와의 예언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떠들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파렴치한 짓도 범했습니다. 이들의 신학적·윤리적 타락을 속속들이 아시는 여호와께서 증인이시기에,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23b).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들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 죽게 하고 저주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21b-22). 27장과 28장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거짓은 유배민들의 조속한 귀향이었고, 29:26-28에 나오는 스마야의 편지도 유배지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임박한 구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아합과 시드기야도 다르지 않았음은 이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공개적으로(‘너희 눈 앞에서’) 처형당했다는 사실로부터 어렵지 않게 끌어낼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처형은 이들이 정치범으로 고발당했음을, 곧 바벨론에 해로운 정치적 내용이 이들의 메시지에 담겨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이들은 유배민 조기 귀환의 배경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했던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입장에서 사로잡혀 온 예언자들이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은 반역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거짓 예언자들의 윤리적 타락을 고발하는 말씀은 여호와의 율법을 범하는 자는 그분께서 보내신 예언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구별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가 그분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자가 아님이 분명하십니다
예언자 스마야(24-32)
거짓된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예언과 악행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현혹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폭로하고 심판하십니다. 흔들려 잘못되었다고 변명할 수 없는 때가 오며, 하나님께서는 참된 말씀을 전할 자에게 자신의 말씀을 담아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쉽게 믿음의 대상을 바꾸거나 내어주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24○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26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7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29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30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4-31)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스마야가 거짓 예언으로 예레미야를 대적한 죄를 지적하십니다. 스마야와 그의 후손은 벌을 받아 다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스마야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거짓 예언으로 백성을 현혹했기 때문입니다.
(1)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24)
예언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편지를 보내자, 이에 맞서 유배민들 가운데 활동하는 예언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예레미야의 편지는 사로잡혀 간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지고, 스마야의 편지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25) 보내집니다. 예레미야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유배민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편지를 보내고(4), 스마야는 자기 개인의 이름으로(‘네 이름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편지에는 유배민들이 인정하는 예언자가(15; 참조. 8-9) 반응하고, 예언자 스마야의 편지에는 여호와께서 직접 반응하십니다(24-25,30;참조․ 28:12-14).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보낸 편지가 긍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유배민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예언자 스마야가 이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예루살렘의 공적 종교가 예레미야의 활동에 개입해 그를 단속하도록 요청합니다.
(2) 스마야를 고발하시는 여호와(25-28)
스마야가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 곧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로 예언자를 침묵시키려 하자 유일하고도 최고의 권위이신 여호와께서 직접 개입하십니다(25). 예레미야에게 가해지는 고발이나 위해는 그를 예언자로 보내신 분을 향한 도발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공개하신 스마야의 편지에는 서로 관련된 두 개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스마야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의 직무를 지체없이 이행하도록 촉구합니다. 그의 눈에 예레미야는 성전 주변에서 자주 보는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예언자 행세하는 미친 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26).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27)는 성전을 소란케 하는 자이기에 붙잡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고랑’으로 체벌하고 쫓아버려야 했습니다(참조. 20:1-3a). 28절은 스마야가 예레미야를 사이비 예언자로 간주한 근거를 보여주는데, 5절을 거의 문자적으로 인용합니다. 스마야와 같은 구원 예언자들이 볼 때 바벨론의 지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방 땅에 정착해 살라고 권면하는 예레미야는 헛소리를 떠드는 ‘미친놈’에 불과했습니다.
(3) 스마야에게 심판을 선고하시는 여호와(29-32)
스마야의 기대와 달리 제사장 스바냐는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한 소란꾼으로 체포하지 않고 (아마도 성전으로 불러) 그에게 스마야의 편지를 읽어줍니다(29). 스마야의 편지를 알게 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유배민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주십니다(30-31a). 유배민들은 자신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스마야와 같은 예언자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15). 31b절의 고발은 28:15의 고발과 거의 일치합니다. 스마야가 ‘이 년’ 이내의 구원을 선포한 하나냐와 같은 계열의 예언자였음을 보여줍니다. 32절의 심판은, 스마야의 후손까지 포함합니다. 스마야는 물론 그의 후손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구원에 참여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복된 일’은 칠십 년 후의 회복을 약속한 10절의 ‘선한 말’을 받습니다.
거짓을 따른 자와 거짓을 전한 자들이 받을 형벌이 각각 선고되고 있습니다. 흔들어서 흔들렸다고, 흔들린 자가 잘못이라고 변명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자신의 말씀을 담아 들려주시겠습니까? 쉽게 믿음의 대상을 내어주지도 말고 바꾸려 둘지도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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