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84-01)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기쁨
시편 84편 1-12절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힘이 납니다. 성도들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고 즐겨 찾아야 합니까?
- 본 시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성전에서의 하루가 세상의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더 낫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에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집에 거하는 자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과 그분의 집에서 누리는 축복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사는 자의 행복(1-4)
사람들은 세속적인 것들이 득세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패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만군의 주,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화려하고 웅장한 곳으로 임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곳을 통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1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1-4)
시편 84편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시인의 사모함이 가득 묻어납니다. “당신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라고 감탄하며, 시인은 하나님 ‘처소’(“장막”으로 번역됨)의 사랑스러움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은 시온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곳을 이스라엘과 함께 거주할 자신의 거처로 손수 택하셨습니다(시 24:3).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고(신 12:5; 렘 7:14)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후손과 영원히 함께 거주하겠다고 약속하신 곳입니다(시 78:68-69). 하나님의 처소에 대한 시인의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시인은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궁정을 고대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궁정”은 성전의 ‘뜰’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성전을 찾는 자들이 모이고 머물러 있는 장소로서,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점은 시편 65:4에서 ‘성전 뜰에 머무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택하여 가까이 오게 하신 자들’로 동일시한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처소나 그가 계신 곳의 뜰이 시인에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이유는 그 건물이나 장소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인이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계신 분이며, 지금도 시인과 사랑의 교제를 지속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마음과 육체를 다 쏟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원래 ‘기뻐 외치다’의 뜻으로 시인이 하나님께 즐거이 사랑의 말을 외치거나 기쁨의 찬양을 부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시 81:1).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가고픈 시인은 성전 제단에 제 집을 지은 참새나 새끼를 위해 둥지를 튼 제비를 떠올리며 부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새들처럼 자유롭게 하나님 거처로 날아가 거기서 자기와 자녀의 거처를 마련하여 하나님 가까이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사는 자들이 얼마나 행복한가!(‘복이 있나니’로 번역됨)”라고 외칩니다. 하나님 곁에 살며 늘 찬송하며 예배하기를 고대합니다(시 27:6).
한편,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불렀고, 3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그 능력을 나타내는 군대 지휘관이자 용사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능력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이란 표현은 시인이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셨다는 점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암시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칭호에 “나의~”를 반복하는데 시인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 힘을 얻는 자의 행복(5-7)
세상의 나라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부흥하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세상이 점점 강성해지고 이스라엘이 약해져 성전이 무너질 때, 세상은 승리의 잔을 들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돌아가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5-7)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사랑은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자들에게 나타납니다. 시인은 이들처럼 오직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고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는 대로를 품고 있는 자들에게 행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들은 4절의 성전에 사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성전으로 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이 있는 시온이 예루살렘 동편의 산등성이로서, 그곳으로 가는 길에 험난한 산들과 짐승이나 강도 등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지키실 것이므로(시 121:1-8)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라도 샘에서 물줄기를 내어줄 것이며 그들에게 이른 비를 복으로 덮어주실 것입니다(12). 이와 같은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주시고 그들의 40년 생활 동안 의식주를 해결해주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억나게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힘을 의지하여 순례의 길을 걷는 자들은 곧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위한 간구(8-9)
세상의 일을 귀하게 여기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예배에 소홀한 성도들을 볼 때 참으로 답답합니다. 예배를 중요시하지 않는 자세는 곧 은혜의 통로를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배를 정검하고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9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8-9)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 즉 왕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문맥상 이 간구가 느닷없이 들리긴 하지만, 왕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줌에는 틀림없습니다. 9절에 왕을 위한 시인의 기도로 나오는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는 원문에서 ‘우리의 방패’, ‘보소서’, ‘하나님’이란 단어들과 순서로 나옵니다. 이 단어들은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보소서’ 또는 ‘하나님, 우리의 방패를 보소서’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방패로 비유하는 예가 종종 있고(삼하 22:3;시 7:10; 59:11), 11절에서도 방패로 부르므로 전자의 번역을 따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후자의 번역을 따른다면 방패는 뒤에 나오는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인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편 89:19에서도 인간 왕을 방패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한편, 왕의 얼굴을 살펴달라는 간구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왕에게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행복(10-12)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전이기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만 성전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당을 나가서도 범사에 성전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0-12)
시인이 성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A가 B보다 낫다’는 형식을 두 번 이용하여 이 사랑을 표현합니다. 첫 번째로 시인은 하나님의 궁정에 있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더 낫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27편에서도 유사하게 시인이 평생 하나님의 집에 살기를 갈망함을 밝히며,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기도 제목이라고 말합니다. 본 시편과 마찬가지로 27편에서도 시인이 성전에 거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표현으로,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은 첫째, 하나님의 성전을 악인의 장막과 대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악이나 죄가 있을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 오는 자는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여야 함(시 24:4)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이 설명은 악인과 연루된 곳에서 안락을 추구하기보다는 고달프더라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문지기로 있는 게 낫다는 말로 들립니다. 다만, 이때 ‘문지기’를 성전에서 일하는 공적 직책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지기’는 하나님께 특별하게 선택받은 레위인들에게 맡겨진 직책 중 사무 보는 자, 관리, 재판관, 찬양단과 같은 직급의 하나로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대상 23:3-5). 한편 ‘문지기로 있는 것’은 ‘문지방에 누워있는 것’ 또는 ‘문지방에 서 있는 것’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의 의미를 문지기 직책을 감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성전 출입의 허가를 얻기 위해 성전 입구에서 있거나 성전 문지방에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좋사오니”(10)의 ‘좋다’란 동사는 ‘선택하다’, ‘선호하다’라는 뜻으로 시인의 감정만이 아니라 결단과 의지도 함께 나타냅니다.
시인에게 있어 하나님께서는 “해”와 “방패”와 같습니다. 해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 은혜, 구원, 호의 등을 의미합니다. 방패는 하나님의 보호, 도움, 힘 등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이 사는 자들에게나 흠 없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은혜와 영화 등 좋은 것을 망설임 없이 아낌없이 주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시인은 그와 함께한 공동체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격려하며 기도를 마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으로 나가서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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