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85-01)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약속
시편 85편 1-13절
성경은 종종 어리석은 사람을 개나 돼지에 비유하곤 합니다. 개는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는 더러운 곳에 다시눕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다시 죄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진정한 회개는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죄를 덮으시고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은혜를 고백한 후, 다시 진노를 거두시고 구원하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의 말씀으 전합니다. 구원은 주를 경외하는 이에게 가깝고, 인애와 진리가 만나며, 의와 화평이 입맞추고, 땅은 산물을 낼 것입니다.
포로 귀환에 대한 감사(1-3)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참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해방은 단순히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쁨을 선사합니다. 죄에서 해방된 기쁨은 우리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주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회복시키고, 참된 평안과 소망을 주는 기쁨입니다.
1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1-3)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시인이 언급하는 포로 귀환이 언제 일어난 사건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시신은 포로 귀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땅’에 호의를 베풀어 주고 기쁘게 봐주셨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온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땅’이라 부름으로써 이곳이 하나님께 속한 땅(레 25:23)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이 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여 유업으로 주신 땅임을 상기시킵니다. 잃었던 땅을 되찾게 하신 것은 백성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시인은 포로 귀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야곱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방의 포로 잡힌 백성을 해방하시고 하나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칭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언약의 백성임을 강조합니다. 이 언약 백성이 ‘포로가 된 것’은 단지 전쟁에 패하여 이방 나라에 끌려갔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죄 지었음과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 임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역대기에서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된 원인을 그들의 ‘범죄함’ 때문이라고 설명한 데서도 자명하게 나타납니다(대상 5:25-26;9: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고 불순종하면 대적을 보내 이스라엘을 치고, 땅을 황무케하고, 백성을 열방 중에 흠을 것임을 이미 경고하셨습니다(레 26:31-39; 신 4:25-27).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시시때때로 죄를 지었고, 결국 포로로 잡혀가곤 했습니다. 이런 자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이미 용서하셨음을 보여줍니다(대하 33:11-13). 본 시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이키신 것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고 모든 죄를 덮으신 결과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분노’와 ‘맹렬한 화’는 이스라엘에게 임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뜻이며, 심판 기간을 종결시키겠다는 암시입니다(슥 1:12).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셨음(슈브, 3절)은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심(슈브, 1절)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4-7)
유다 백성이 귀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아와야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이 없어집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속량된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속량 되었습니다. 죄에서 거저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4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4-7)
시인의 감사 기도는 4절의 “우리를 돌이키소서”라는 외침을 시작으로 애통과 간구로 전환됩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에서 ‘돌이키셨다’(“돌아오게 하셨으며”로 번역됨)고 말하며, 3절까지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4절에서는 “우리를 돌이키소서”라고 간청합니다. 3절에서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셨나이다”라고 감사했으나, 4절에서는 “우리에게 향하신 당신의 분노를거두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처럼 1-3절의 감사 내용 대부분이 4-7절에는 간구 내용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귀환 했으나 현재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이번에도 은혜를 베푸시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간구는 하나님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단락(4-7)의 시작과 끝에 “우리 구원의 하나님”과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가 ‘하나님의 구원’에 핵심을 두며 서로 연결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전능자임을 암시하면서 구원을 촉구합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회복을 간구합니다. “우리를 돌이키소서”(4)라는 요청은 문자적으로는 ‘우리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구체적인 뜻 또는 ‘우리를 회복하소서’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로 읽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4-13절의 내용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직접적인 간구나 암시가 없는 대신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머물고 땅이 산물을 내기를 고대하는 내용(9,12)이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기를 구합니다. 4-5절에 하나님의 분노는 세 문장에 반복되어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이스라엘임은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라는 어구나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겠나이까”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한 이유는 이 단락과 나머지 시 내용에서 언급되지 않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가 계속되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영원히 계속하시겠느냐고 부르짖으며 분노를 그치시길 간청합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소생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은 죽음을 맞이한 것과 같으므로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 하나님을 기뻐하게 해달라고 시인은 간청합니다. 시인은 이때도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2,6)으로 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의 선택하신 언약 백성임을 기억하고 긍휼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넷째,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통한 구원을 간청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비롯됨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응답(8-9)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큰 은혜이며,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8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8-9)
하나님의 응답이 시인을 통해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모든 이에게 저절로 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께 신실하고 헌신된 자들(“성도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의 백성에게 두려움이 아닌 화평을 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리석음으로 돌아가지(슈브, 8절) 않도록 경고합니다. 어리석음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백성에게 구원으로 곧 응답하실 것입니다. 시인은 이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땅에 머무를 것임을 확신합니다. 시인이 이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불렀다가(2) 이제 “우리의 중”(9)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유산으로 주신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땅에 임할 하나님의 통치와 축복(10-13)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고, 회개를 무력화시키는 일입니다. 회개한 사람이 옛 생활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것은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옛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10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10-13)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이 머무르는 땅에는 그의 의로운 통치와 축복이 뒤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통치는 단순히 공의뿐 아니라 인애, 진리, 의, 화평 등 하나님의 속성이 땅과 하늘에서 조화를 이루며 실행되는 통치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12)라는 시인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땅과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축복을 내리시길 바라는 간접적인 간구입니다. 학개서에는 ‘땅이 산물을 내는 것’과 반대 상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한 후 자기들만 위해 살 때 하늘의 이슬이 그치고 땅의 산물이 그쳤습니다(학 1:1-10). 하나님이 보내신 가뭄이 땅만이 아니라 산, 곡물, 새 포도주, 올리브 기름, 땅의 모든 소산, 사람, 육축,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했고,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이 내렸고, 곡식과 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함으로써 땅의 산물이 그쳤습니다(학 1:11; 2:17-19). 본 시편의 ‘땅이 산물을 내는 것’의 의미 또한 하나님께서 땅을 포함하여 백성과 백성이 소유한 모든 것에 좋은 것을 공급하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그의 공의로운 통치가 지속될 것을 고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더러운 죄의 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전의 끔찍하고 더러운 삶에서 멀리 떠나,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매일매일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갈망에 보답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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