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32-02)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2장 16-25절
이스라엘과 예레미야가 바라본 희망은 ‘기승전’-‘희망’이라는 점에서 결론 부분에서 같으나, 심판의 기간이 2년과 70년으로 현격하게 달랐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심판 이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란 점에서 희망의 결도, 질도, 속도도 달랐습니다.
-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조카 하나멜의 밭을 구입한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기도를 드립니다. 밭 구매에 담긴 신학적 의미(15)를 전달받았지만, 예레미야는 무엇인가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여호와께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 응답은 예루살렘의 멸망은 여호와의 무관심이나 무능력이 불러온 참사가 아닙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배반과 우상숭배가 초례한 여호와의 징벌적 재앙입니다.
도입부(16)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돌보시지만, 결코 죄는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기에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공정하게 중립을 지키며 남은 자비의 가능성을 찾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회복과 자비의 약속을 믿고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레미야의 태도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동시에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6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16)
현재의 문맥에서 예레미야의 기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의 기도는 도입부인 16절과 기도를 마무리하는 25절에 의해 앞 단락의 표적 행위에 연결됩니다. 17절부터 24절까지의 기도에는 밭을 산 사건에 관한 언급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24.25절을 제외한다면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을 고발하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강조 능력과 그분의 크신 은혜를 찬양하지만(17,18), 기도의 전체 분위기는 차라리 무겁습니다. 24,25절에서는 탄식하는 예언자의 음성도 들립니다. 구원 약속이 주어진 다음에 드려진 기도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구원 약속과 예레미야의 탄식 어린 기도가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사실 24-25절은 예레미야가 15절의 표적 행위 해석을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구원의 말씀으로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의 기도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로 시작함도 우연은 아닙니다. 매매 계약서를 바룩에게 넘겨주고 난 뒤 예레미야는 감사와 기쁨으로 여호와께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혹스러움과 슬픔이 그로 여호와께 기도하게 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은 한 걸을 더 나아가 원망과 탄식으로 가득 찹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는데 ‘그런데도 주 여호와여, 당신께서는 저에게 돈을 주고 밭을 사고 증인들을 세우라 하고 말씀하셨나이다 이 성이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는데도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 망했는데,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레미야의 복잡한 심경은 아마도 15절과 제1차 유배민들에게 주어진 29:5-14의 말씀을 비교해보면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능동으로 옮겼지만, 15절은 수동의 문장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땅에 있는 집과 밭과 포도원이 다시 사지리라,’ 동사 ‘사다’의 주어보다 목적어가 강조됩니다. 구원의 대상이 불분명해집니다. 단순히 멸망 이후의 삶이 어떠할지를 보여 주는 말처럼 보이 기도 합니다. 반면에 29:5-7는 ‘너희’에게 주는 명령문으로 구원의 대상이 분명합니다.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17-22)
하나님께서는 순종하고 주의 율법을 따르는 자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하나님의 약속을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17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18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17-22)
본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공의롭게 보응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공의를 인정하며 그분을 신뢰합니다.
⑴ 무한 능력의 창조주(17)
예레미야가 기도를 시작하는 ‘슬프도소이다’(참조. 1:6, 4:10; 14:13)는 예레미야의 당혹스럽고도 억눌린 마음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전체 기도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덧칠해줍니다. ‘주 여호와’는 기도를 마감하는 25절에 한 번 더 나오는데, 탄식과 호소의 음성을 담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움을 표출한 뒤에 예레미야는 먼저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심을 인정합니다(참조. 10:12).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큰 능력과 펼친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입니다(참조. 27:5), ‘큰 능력과 펼친 팔’은 출애굽과 창조와 관련해 각각 두 번 사용됩니다. ‘큰 능력과 펼친 팔’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참조. 신명기 9:29, 열왕기하 17:36) 여호와가 바로 큰 능력과 펼친 팔로 세상 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참조, 예레미야 27:5; 32:17). ‘주께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는 태초에 관한 언급 이상입니다. 열왕기하 19:15에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위협에 직면한 히스기야 왕은 성전으로 올라가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께 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참조, 창세기 18:14). 예레미야의 고백은 일종의 간구이기도 합니다. 무한 능력의 여호와께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를 외칠 수 밖에 없는 무거운 상황에 개입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접적 표현입니다.
⑵ 생존을 결정하신 하나님(18-19)
창조주 여호와의 무한 능력을 인정한 예레미야는 십계명의 일부를 인용해 내의 크신 은혜를 주장합니다(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니이다’(18a). 전반은 출애굽기 20:6(참조, 신명기 5:10)의 문자적 인용이고, 후반은 20:5b(참조 5:9b)과 내용 상 일치합니다. ‘은혜’(헤세드)는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사랑을 가리키고, ‘갚으시오니’로 옮긴 동사 쉴렘(שלם)은 ‘부당하게 발생한 손실에 상응해서 보상하다’를 뜻합니다. 수천 대에 걸친 여호와의 은혜와 두 세대를 넘지 못하는 그분 보응의 대비는 각각 창조와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전후의 문맥에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은혜가 거둬진 것 같은 이스라엘의 절망적 현재(24)와 관련해 이 말씀을 인용 것 같습니다. 당면한 재앙이 가나안 정착 이후 계속된 순종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이기에 직접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다시금 간접적으로 은혜를 수천 대에 걸쳐 베푸시는 여호와의 성품에 호소합니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19절의 말씀은 17절에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는 크신 지혜와 능하신 행동으로 인류를 통치하십니다. 그분은 결정하시고 그 결정을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책략’은 ‘조언’, ‘결정’, ‘계획’을 의미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분께서 땅 위의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지켜보시고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주십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인류(사람의 아들들)의 재판관이 되십니다.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기에’ 그분의 판결은 언제나 공의롭습니다. 18절과 함께 보자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관련해) 은혜가 한없이 크신 분이고, (인류와 관련해) 각 사람의 행실을 살펴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께서 은혜를 거두신다면, 이스라엘도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에 대해 그분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3) 출애굽과 땅의 선물(20-22)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언약적인 은혜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또 그 능력으로 자기 백성이라도 거역하고 제 길로 가면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지혜와 모략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시선이 인류에서 이스라엘로 옮겨집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먼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합니다. 출애굽은 과거사에 속하지만, 그때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행하셨던 표적과 기사는 그 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다’(2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당신 이름을 떨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곧 여호와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경험하는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21절은 출애굽 사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표적과 기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해방하실 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또 다른 큰 은혜는 가나안 땅의 선물입니다. 조상들에게 한 맹세를 지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22 참조 11:5). 여호와께서는 당신 맹세(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가나안 정착 이후의 불순종과 그 결과(23-25)
예언대로 멸망이 필연적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던 희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바벨론에 항거한 자들에게 전혀 살아남을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손길을 겸허히 수용하고 단순히 순종할 때,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찾아옵니다.
23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23-25)
이스라엘의 길은 여호와의 길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23절은 이를 삼중적으로 고발합니다.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다’(23),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일시적·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계속 나빠져만 간 의도적인 악행이었습니다. 여호와께는 은혜를 거두고 이들의 행위대로 벌하시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는 바벨론 군대는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이 초래한 되돌릴 수 없는 파국입니다(24).
예레미야는 멸망의 한가운데서 급진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대신,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인 묵상과 현실적인 질문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수록 흑화에 가까운 말씀 속에서도 마음을 타일러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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